| 우리나라 근대성에 많은 사람이 눈을 돌리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듯하다. 일제 치하에서 근대화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또 마무리하지 못한 채 해방을 맞고, 전쟁을 겪고, 군부 독재에 놓이고, 경제 발전과 위기를 넘나들며 정신없이 달려온 게 우리 현대사의 굴곡 많은 초상이다. 따라서 오히려 21세기로 넘어온 지금이 우리나라 근대성의 정체를 밝혀 보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1920년대 ‘연애를 통한 개조’가 만연했던 사회상을 짚어 본다. ‘연애’라는 말은 영어의 ‘Love’와 같은 이국어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였다고 한다. 연애가 일반화된 것 또한 1910년대 이후였다고 하니 ‘연애’라는 단어이자 감정, 사건이자 역사가 탄생한지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연애는 신여성, 신남성이라 불리던 이들을 중심으로 유행했고, 기생이며 여학생, 유학생들의 ‘구식 아내’들을 포함한 구여성/신여성, 신남성들은 연애 때문에 상처받고 버림받고 심지어 목숨을 걸었다. 연애에 목숨만 걸었던 것이 아니라 목숨을 버리는 자살이나 정사가 신문 지면을 숱하게 장식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극닥적인 연애상 조차 당시엔 유행 같은 것이었다니. 비단 사람들의 실제 연애 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비극적인 사랑이 유행을 탔다고 한다. 유난히 스위트홈에의 동경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성에 매혹되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 또한 소설에 그려진 연애의 모습이나 신문에서 미화시킨 자살이나 정사를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꿇어 엎디어 두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입으로 주먹 같은 피를 토하고 있다.”(노자영,「무한애의 금상」)는 것이 비련의 주인공들이 맞는 전형적인 최후였다. 처음에는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던 사건이었으나 오래지 않아 현실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사건이 되었다. 애초에 자유 연애를 주장했던 사상가들에 “사랑은 무엇보다 생의 에너지였고 그 사상의 핵심은 삶의 가능성을 최대로 누리려는 놀라운 낙관이었지만, 근대 초기 한국의 열애열에서는 되려 감상성과 비극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당시 많은 문학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사랑이 비극에의 욕망과 손잡고 있었다는 점, 이것은 1920년대를 휩쓴 열애열의 중요한 특징”이다. 거기에 우편 제도가 출현하면서 편지가 간접 소통의 중개자 역할을 하게 되었고, 서간체 소설 또한 유행하게 된다. ‘연애의 시대’라 부를 만한 시기는 고작 2, 3년 정도였다. 이후 지금까지 삶은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삶이 달라졌는데도, 감정과 사상이 달라졌는데도, 1920년대 초반을 지배했던 ‘연애’를 대치할 만한 사람의 새로운 담론은 등장하지 않았다.” 1902년대를 지배했던 현상을 ‘연애’로 보는 작자의 시선이 독특하다. 대개의 인문학 책이 그렇듯이 지식과 정보의 전달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책이지만 주제의 신선함과 당시 신문 기사나 잡지 같은 매체, 문학, 문화, 유행 등을 두루 자료로 이용한 구성이 흥미롭다. 3•1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 정도로만 남아 있는 1920년대에 대한 내 지식(과 상식 또는 수준)을 흥미로운 소재인 연애를 통해 그 지평을 넓혔다는 것 또한 일면 뿌듯하다. 사실 읽어 내기에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인문학적 소양 운운하기엔 밑천이 워낙 부족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내 취향의 소설책만 편식하듯 읽어 온 독서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여러 방면의 책들을 일부러라도 찾아 봐야겠다는 자극도 받았다. 아무튼 나흘에 걸쳐 이 책을 읽으며 연애가 결코 가벼운 화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근대성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건가 고민도 하게 되었다. 덧붙여서 이 책에서 언급하거나 인용하고 있는 수많은 소설 작품들은 뒤에 따로 목록이 나와 있다. 전공자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처음 접하는 제목들이 많았다. 그 많은 자료들을 읽고 분석했을 작자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내며 나도 이광수의『무정』이나 나혜석의『경희』처럼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들이라도 찾아 읽어야 겠다는 기특한 결심을 했다.(*) |
| 만 이틀.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는 내가 가장 빨리 독파한 사회과학 책으로 기록될 것같다. 사회과학서적은 그 매체의 특성상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한다. 소설이 조밀한 인과관계와 주인공들의 감정라인을 따라 흘러간다면, 이런 류의 책은 산재한 정보를 차례차례 ''설명''해가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 자체가 주는 문체의 재미나 관점의 기발함, 극적인 줄거리의 마력같은 것은 찾기가 힘들다. 조미료가 안 들어간 환자용식사 같은 느낌이랄까. 반면 연애의 시대는 1920년대의 전국민적 연애열을 아주 다양한 시각과 논증을 통해 하나하나 밝혀낸다. 그 방식은 당시의 신문, 책, 광고 등을 통한 추론이지만, 기가 막히도록 흥미진진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작가가 그 시대를 설명하는 것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직접 시대속에 살다나온 사람처럼 주제에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 만큼의 몰입은 주제에 대한 깊은 애정과 끈기있는 탐구, 날카로운 통찰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회과학 서적이 실패했던 그 도전을 작가는 상당히 훌륭하게 해내버렸다! 이것이 ''나''라는 독자를 뒤흔든 힘이었다. 그는 분명히 책이 팔리는 1~2년을 내다보고 글을 쓰지않았을 것이다. 그는 멀리 후세에까지 사료가 되는 글을 남기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채찍질했을 것이고, 이 책이 몇 백권을 팔리다만다해도 의미가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근사하다. 그의 자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리뷰를 쓰는데 참고하려고 책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출판계, 인문학계를 볼 때 요즘은 한국 근대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때 소개했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연애의 시대"이다. 또 한권은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라는 책인데 이것도 시간 내서 꼭 읽어보고 싶다. 왜 지금 근대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까?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겪지 못했다고 했다. 세계가 근대화를 겪고 있을 때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 자발적 근대화가 아니라 타의적으로 끌려가고 흉내내는 겉모습만 갖춘 근대화를 이루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 다시 정신 없이 6.25를 겪은 후에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눈 가려지고 억압된 삶 속에서 민주화를 위해 숱한 피를 뿌리며 근대화를 진행하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근대화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근대화는 정치적, 경제적, 민중 의식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군부독재 시절까지도 경제는 성장했고 민주화에의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으되 정치적으로는 뭔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강의 시간에 들은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에 와서 근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지금이야말로 근대화를 완성하고 근대를 뛰어넘어야할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거시사에서 벗어나 철도, 연애, 만화처럼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역사학하는 방법이 널리 퍼진 것도 한몫했을 듯 싶다. 저자는 1920년대 초반을 '연애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연애'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나아가 동양 고유의 개념은 아니라고 한다. 이를테면 'love'라는 단어를 번역하려고 했을 때 옛날부터 있어왔던 개념인 '사랑'을 이미 기독교에서 신에 대한 감정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남녀간의 감정을 말할 때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던지 '연(戀)'과 '애(愛)'의 합성어인 '연애'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었다. 이로써 '연애'라는 말과 함께 '남녀간의 love'는 물을 건너와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되었던 것이다. '연애'라는 화두의 중심에는 신여성, 신남성이 있었다. 그들 주위로 기생, 구여성(신여성과 반대되는 개념)들이 포진해 있었다. 신여성, 신남성은 1919년 3.1 운동과 함께 개량개조론이 우리 사회를 풍미하면서 탄생한다. 3.1 운동 이전까지만 해도 교육을 받는 여성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3.1 운동 이후 여성들도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데다가 1920년대 문화통치가 시작되고 남성들 뿐만 아니라 '보통학교'에 다니는 '여성'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신여성, 기생들과 구여성들의 복장 대비를 통해 그들 각자의 특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아무튼 근대 서양의 합리적 사고방식과 자유, 개성 등에 대해 알게 되고 전근대적인 것을 '개조'하자는 생각을 갖는 것이 교육 받은 신여성, 신남성들의 특징이 된듯 하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것이 '사랑 없이 부모가 맺어주어서 한 조혼'이었다. 신남성은 신여성을 만나 '연애'하게 되고, 고향에서 남편 밖에 모르는 구여성인 아내에게 가서 이혼하자고 말한다. 신남성이 기생과 연애하게 되면 그의 부모는 당연히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그러면 그들은 비극의 끝으로 치닫곤 했다. 신남성과 신여성이 스위트홈을 꿈꾸며 결혼에 성공한다해도 생활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서 끝내는 파탄을 맞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대량으로 탄생한 신여성, 신남성들에 힘입어 '연애'는 192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서울대 국문학과 출신답게 저자는 그 시절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끌어와 연애의 시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이광수의 "무정"에 나타나는 신남성, 신여성, 기생의 대립구도는 1920년대 초반에 나타날 연애의 시대를 예언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념처럼 간간히 등장하는 그 당시 신문에 실렸던 만화나 책의 삽화들은 책 읽기의 재미를 더해주고 1920년대를 살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빈번했던 연애자살, 정사(情死)관련 기사를 다루면서 신문이 현실을 만들고 현실이 다시 신문에 실리던 순환 과정도 꼬집어냈다. 근대 서양 사상과 함께 묻어온 새로운 지식 권력의 태동을 엿보게 된다. 그때부터 이미 언론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취사선택하여 보여주며 사회를 조종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연애가 유행하면서 "사랑의 불꽃" 같은 연애서간집도 덩달아 많이 팔리게 되었고 염상섭, 김동인처럼 지식인의 한편에서는 자유연애론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 보론에서는 '님'이란 연인뿐만이 아니라 철학도 될 수 있고 국가도 될 수 있고 종교도 될 수 있다고 소설 주인공의 입을 통해 주장하던 한용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연애와 독서, 육체와 사랑, 연애와 죽음 등의 주제를 통해 저자는 '개조'의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간 1920년대 초반 연애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학기에 "무정"을 읽은 덕분에 책을 읽기가 편했다. 책에 제시된 다른 텍스트들에도 관심이 갔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의 사회상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에서 제시된 1920년대 초반의 사회상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지금도 '연애'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소위 '자유연애'를 통해 결혼했다 하더라도 쉽게 이혼하곤 한다. 문화가 '연애'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돌아가곤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연애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과포화 상태인 것 아닐까? 이 책에 대한 현대에의 적용은 연애의 부활인가, 탈연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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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거액의 자산가가 결혼 정보업체 게시판에 데릴사위를 공개 모집한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었다. 몇 년 전, 위와 비슷한 상황을 가정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데 비하여 이번 ‘데릴사위 공개 모집’에는 270명에 가까운 사윗감이 몰렸다고 한다. 위와 같은 현상은 몇 년 전과 현재의 ‘사랑 풍속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랑 풍속도’는 그 시대의 문화적 지표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을 설명하며 그 시대의 ‘사랑’이야기인 ‘연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1920년대, 외국 문물의 유입에 따라 ‘love’라는 감정을 번역하여 ‘연애’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낮았던 시대인 만큼 새로운 유행인 ‘연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여성은 이전 시대의 여성들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기생과 여학생이었다. 기생의 스타일은 근대 이전부터 대중적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3.1운동 후 늘어난 여학생들도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자리매김 하였다. 서양식 트레머리나 짧은 통치마 등은 여학생을 나타내는 신분과도 같았고 또 하나의 유행을 창조하였다. 하지만 결코 ‘온당한’ 존재가 아니었던 기생들은 여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였고, 결국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의 여학생들이 새로운 유행의 선두가 되었다. 이즈음 일본 유학을 다녀온 신지식인 남성들 사이에서 ‘스위트홈’과 같은 서양식 가정문화가 선호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스위트홈’은 조혼한 ‘구여성’인 아내와 이혼하고 연애 대상인 ‘신여성’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연애의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신남성’과 ‘신여성’은 신소설을 읽고 이국의 번역 소설을 보며 ‘자유연예’, ‘자유결혼’, ‘자유이혼’ 등의 개념에 심취하게 된다. 또한『사랑의 불꽃』과 같은 연애 서간집이 인기를 누리면서 이 시대의 연애열과 문학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애편지’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 이 시대의 ‘순결’은 새로운 연애 패턴을 보여주게 된다. 근대 이전의 결혼을 ‘육체적인 관계’만을 갖는 야만적인 행위로 보고 영적 사랑, 영육일치를 이루는 연애관계를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일본의 성욕학에서 나온 ‘빨간책’들이 거리를 뒤덮고, 근대 이전과는 다른 ‘성(性)’이 정착된다. 이 시기의 병원에는 성병환자가 절반이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191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이루지 못한 사랑에 절망하여 자살하’는 ‘정사(情死’)가 우리의 소설과 현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20년대의 ‘3대 연애사건’에도 꼽히는 강명화와 윤심덕의 정사 사건은 사랑은 죽음도 이기지 못한다는 ‘아름다운 자살’을 유행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연애’는 많은 유행을 낳았고 여성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개조’적인 역할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1920년대 후반에는 일부 ‘과격한’ 여성 해방이 논의에 오르기도 하였다. 저자는 1920년대의 유행처럼 번져나간 ‘연애’이야기로 ‘개조’의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연애’라는 말의 도입에서부터 극단적인 ‘연애’인 ‘정사’까지 다채로운 주제를 통해 감추어져 있었던 1920년대의 모습을 드러내 준다. 또한 신여성의 논의와 더불어 구여성과 기생의 모습도 화두로 제시한다. 이 책이 단지 ‘연애’의 시대만을 보여주지 않고 ‘하위주체’였던 신여성들의 담론 또한 제시하여 앞으로의 신여성의 연구에 대해서도 좋은 첫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다양한 화제를 통하여 많은 것을 다루려고 하다 보니 내용에 있어 덜 다듬어져 있는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주제 자체가 매우 광범위하여 ‘연애’를 나타내는 화젯거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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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권력이나 명예를 획득하려는 야망조차 가지기 힘들었던 절망적이고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당시의 갑남을녀들이 가슴 속에 끓는 욕망을 표출할 해방구로 찾은 것은 새로운 문물인 ‘연애’다. 지은이 권보드래는 이 책을 통해 보통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이 ‘연애’라는 소재를 가지고 1920년대 일제 강점 하의 식민지조선의 문화를 읽으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발행된 신문과 잡지, 유행 소설을 통해 문화를 읽는 것에서 나아가 '연애‘라는 것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된‘ 근대의 산물이라는, 그런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서 착각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꽤나 신선한 사실을 알려준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가볍고 단순한 흥미성 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머리말에서, 특히 ‘개조론’이라는 단어에서 이 책이 범상치 않은 책임을 예감하였다. 당시 유행한 헤어스타일, 패션, 연애를 소재로 한 대중 문학 작품들을 통한 피상적 문화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개량 개조론’을 읽어 내고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근대의 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글쓴이의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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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모 인터넷매체에 서평연재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다루게 된 테마가 ‘근대’라는 것이었다. 원고를 쓰려는 중간에 마침 전국민의 기대와 우려 속에서 우리의 고속철도 KTX가 첫 운항을 시작하게 된 사정으로, 철도라는 것을 생각하다가 철도를 비롯한 전기 전화 신작로의 개설 등을 통해 우리의 ‘근대’를 조망하고 있는 노형석의 <<모던의 눈물 모던의 유혹-근대한국을 거닐다/생각의 나무 간/ 사진 및 자료 이종학>>이라는 책을 읽었던 감명이 되살아난 이유에서였다.
그 서평을 쓴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근대’라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던 중에 최근 일이년 사이 많은 분야에서 ‘근대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이고 그 때의 생활상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서들이 출간되어 있음을 알았다. 몇몇 책을 소개하면, <모던의 ~>과 마찬가지로 철도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근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박찬홍/산처럼 간>>, 1920년대의 풍속도를 ‘연애’라는 열쇳말로 들여다본,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젊은 연구자들의 성과이기도 한 <<연애의 시대/권보드래/현실문화연구 간>>, 문화변동과 사회적 소통 양식 전반의 변화를 이끈 원인인 동시에 그 결과인, 책읽기의 한국 근대사에 대한 기록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근대의 책읽기/천정환/푸른역사 간>> 등이다. 한겨레 구아무개 기자는 근대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지금 이 땅의 사람들에게 근대란 잊고 싶기에는 너무 가까운 과거이자 기억하기에는 가슴이 아리는 복잡한 상념의 시공간인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을 필자는 기억한다. 너무 의미심장하고 적절한 표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식의 일단은 서두에서 소개한 <모던의 ~>에서 정의매김하고 있는 근대성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있어 근대란, 한마디로 표현하여 ‘식민지 근대’라는 것이고, 이는 곧 우리의 근대화가 우리 스스로의 자주적인 역량과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따라서 우리는 외세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과 신문물과의 융합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그 불행한 근대의 경험과 유산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모던의 ~>은 ‘제1부 뒤틀린 근대성의 상징들’과 ‘제2부 변화의 소용돌이 조선팔도’로 구성되어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공간까지의 우리의 근대화의 과정에 대한 고찰과 생생한 자료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내게 큰 감명을 준 것은 우리에게 근대란 정말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피상적인 근대화의 전개과정을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역사의 중심에서 우리 민초들이 겪었음직한 애환과 눈물, 근대라는 괴물의 침입과 유혹 앞에서 당황하고 절망하던, 그러나 또한 기민하게 또는 억지 춘향식으로 강제되고 강요된 근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선조들의 삶의 기록을 생생한 자료와 함께 전혀 과장됨이 없이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노형석이 쓴 책의 서문을 일부 인용해보자. “정치, 사회제도의 폭압성과 소비문화의 매혹이 뒤얽힌 근대생활의 파노라마가 바로 당대의 시공간 속에서 표출되었다는 것은 식민지 근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기본 전제다. ........ 농촌공동체를 뒤흔든 전기와 전화, 신작로, 철도 등과 도시공간을 주름잡은 전차, 버스, 카페촌 같은 근대문물들 앞에서 뒤바뀐 감수성과 인간관계, 일상생활양식들의 다기한 양상들이야말로 근대의 참모습이 아닐까. 현기증 나는 속도전으로 치달아온 근대사의 뒤안길 속에서 놓쳐버린 식민지 일상의 하찮은 기억을 끄집어내고, 근대가 일상 시공간에 남긴 미세한 흔적들을 새삼 더듬는 것은 지겨운 근대의 미몽을 직시하기위해 필요한 통과의례일 것이다” 철도의 경우에만 국한하여 근대를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있어 철도는 야수와 폭군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고 민초들에게는 노역의 고통으로 등골이 휘고 뼈가 녹아내리도록 만든 공포의 대상이었다. 철도 용지는 아무 대가없이 징발되었고 노역과 식량 등은 식민지 백성의 몫이었다. 그 속에서 수많은 민초들의 목숨이 희생되었고 징발과 노역, 수탈을 견디지 못한 민초들은 정처 없이 떠도는 유랑민이 되어갔다. 이처럼 철도는 우리에게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한없는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일 뿐이었다. 또한 일제에 의해 건설된 철도는 우리의 왜곡된 불행한 근대를 지금까지도 가슴으로 드러내며 한반도를 질주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한국을 상징하는 철도나 신작로 모두가 대륙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한 일제의 병참보급로로 설계되고 건설되었다는 사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원산이나 신의주 청진 나진 군산 등 철도의 노선이나 신작로의 건설에서 식민지 자원의 침탈과 보급물자 수송을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조선의 전통적인 도시체계 및 지리교통의 특수성을 깡그리 짓밟는 것이었다. 전기 전화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신작로로 뚫린 고을에 전기가 들어가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농촌공동체 문화는 일순간에 파괴된다. 이런 근대성의 상징들과 그것으로 인한 사회상의 변화가 바로 우리의 생활상을 일거에 뒤바꿔 놓은 것에 저자는 주목한다. 즉 시간대별로 움직이는 열차운행은 사람들의 시공간에 대한 습관을 바꿔놓았다는 것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분, 초 단위로 움직이는 근대의 인위적인 시간개념이 일상의 모든 행위를 규정하는 새로운 질서로 등장하게 되고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시간표에 맞춰 의도적으로 스스로 행동의 범위를 미리 짜는 버릇을 들여야 했다는 것이다. 경망스레 뛰지 않았던 조선의 지사들은 이제 증기기관차의 헐떡이는 기적소리마냥 숨 가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철도와 마찬가지로 근대성의 상징으로 예시되고 있는 전화 전기 자동차 등은 그 도입과 건설과정의 어둡고 아픈 이면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이 땅에 ‘모던’ 혹은 ‘근대’ 또는 ‘신식’으로 통칭되는 시대의 개벽, 문화의 발전과 변화를 앞당겼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근대의 태동과 숨결이 우리 스스로 받아 들인 것이 아니고 제국주의 열강의 수탈과 탐욕에서 강제된 근대라는 한계로 말미암아 근대화의 격랑에 내몰린 우리의 선조들은 아마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나서고 싶지 않은 거리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했던 것은 아닌지. 혹여 <연애의시대>의 작가 권보드래가 지적하듯이 “한국의 근대가 흔히 암울한 식민지 지배 하에서 비주체적으로 맞았던 모방의 시기이자 기준에 미달된 한심한 시기라고 여기기 쉽지만, 당시 대중들은 굉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자기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하여도, 많은 부분에서 희생과 혼란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근대라는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의 슬픈 식민지 근대의 모습을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근대에는 식민지배의 제국 일본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이라고 근대의 창을 여는 최초의 모양새는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아메리카의 해군제독 페리의 내항에서 시작된 일본의 근대 역시 외세에 의한 빗장풀기라는 점에서 우리와 별반 다른 구석이 없다. 다만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가지고 이었고 그것을 국수적인 좁은 틀에 가두어 놓지 않은 점에서, 즉 좀 더 주체적이고 역동적으로 근대라는 것과 맞딱뜨렸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작은 차이가 일본과 우리의 운명을 갈랐다. 우리의 근대와, 이와 같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근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근대를 정직한 모습으로 알아보는 데에 필수적인 절차일지도 모른다. 그 일본 근대의 풍경을 자세하게 파헤친 책이, 앞서 소개한‘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또 다른 성과인 <<일본근대의 풍경/유모토 고이치 저/ 연구공간 수유+너머 근대 세미나팀 엮음/그린비 간>>이다. 페리의 내항에서부터 천황의 죽음까지 메이지 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정치 경제부문과 풍속, 복식, 음식, 미디어, 교육 등 그 시대의 다양한 풍경들을 그린 사회문화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일본 근대의 파노라마를 생생한 만화와 삽화와 함께 보여준다. 646쪽에 달하는 책의 분량과 두께는 어지간한 독자들에게는 읽기의 시작부터 부담을 주고 엄두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흠이지만, 이 책은 우리의 근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동아시아의 근대에 대한 기획출판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어지는 ‘중국 근대의 풍경’(근간 예정)과 ‘한국 근대의 풍경’(근간 예정)과 연관지어 읽는다면 그 읽기의 재미와 깊이에서 매우 유익한 도서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필자 역시도 이 책을 우선 책에 실린 삽화들과 당시의 잡지 등을 통해 수박 겉핥기식의 방법으로 읽고 아무데나 펼쳐서 그 단편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으로 근간 예정의 책들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때로는 정독이나 완독보다 가벼운 독서의 방법이 더욱 유용할 때가 있는 법이다./3 jul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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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 검색 창에 ‘연애’라고 치면 수십 개의 연관 검색어가 나온다. ‘연애의 목적’이라는 영화제목부터 연애의 기술이라는 다소 적나라한 표현까지 그 내용도 다양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 혹은 연애라는 단어에 왜인지모를 호기심을 가지는데 나 역시도 이러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호기심과는 반대로 이 책은 단순히 남녀간의 연애를 다룬 책은 아니다. 대신에, 자유로운 연애를 중심으로 급변했던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 과거의 다양한 문화를 다루고 있다. 보통 과거의 시대상을 다룬 책들은 지나치게 흥미 위주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학술적인데 반해 이 책은 그 중간지점에 서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가 과거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통로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 시대 작가가 쓴 소설이나 그것을 재현한 영화 정도랄까.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는 비교적 쉽게 또 자세하게 시간 여행을 해 볼 수 있다. 그 당시 유행했던 가치관이나 사회현상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를 들어서 독자가 스스로 그 당시를 느낄 수 있게 한 부분이 특히 좋았다. 예를 들면, 당시에 지식층에 해당하는 신여성이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기생들도 그 복식을 따라 했다는 대목을 서술한 후에 실제로 보도 되었던 그 당시 신문이나 만화를 소개해서 사실감을 부여하는 식이었다. 또한 문자 그대로 연애에 목숨을 걸어서 사랑을 위해 자결하는 일도 유행처럼 번졌다고 하는데, 강명화와 윤심덕의 실화를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설명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했다. 그리고 단순히 연애의 변화만을 단편적으로 살펴 본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 등도 세심하게 다룬 점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자유 연애관이 사람들에게 처음 자리잡게 된 시기가 3•1 운동 후였다는 사실에서 그 당시의 전체적인 사회변화상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의 구성목록 중 결론 부분에 기록 되어 있어 독자들이 감상을 잘 정리 할 수 있게 했다. 반면에 저자의 국문학 경험 때문인지 문화 중에서도 문학 쪽이 부각 된 점은 다소 아쉽다. 소설이나 작가의 소개 혹은 예시가 많은데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 문화를 다루고 있다면 더 다양한 문화적 서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화나 음악의 얘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과 비중이 비슷해야 좀 더 공평한 서술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1920년대 초반 무렵의 다양한 사회현상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과거는 언제나 현재를 밝히는 불이 될 수 있다. 그 대상이 꼭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사 일 때 만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대중들의 생활상에서 우리는 사회를 읽을 수 있고 그 때는 몰랐었지만 지나고 나서 알 수 있는 다양한 지혜들을 얻을 수 있다. 연애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고, 이제 자유연애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연애에 목숨을 거는 정사가 동경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연애관의 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1920년대와 지금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아마 우리는 충분한 시간이 흐르기 전에는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현재의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다면 맹목적인 트랜드의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대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나누게 되기를 바란다. |
| 재미있는 책이다. 책은 1920년대 초반이 약간의 공백기가 아닌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딱히 20년대 초반을 규정지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조금 더 뒤로 가야 되니. 정치적 사건이 뚜렷이 없던 시대는 아무래도 도드라지기 어려운 시대인 듯 싶다. 저자는 이 시기를 정치적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부제에서 보듯이 '문화와 유행'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본다. 이 점이 흥미롭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자유연애론을 주장하는데 그것이 어떤 사회적 함의를 가지는지 이 책을 통해 분명해 진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올 겨울에 러시아풍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해서 너나 나나 다 그러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나 그 때나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꿋꿋이 한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든, 이 시대는 정치가 뒤로 약간 물러가고 책의 제목대로 '연애의 시대'였다. 저자는 1920년 초반의 유행 코드를 문학과 신문 잡지를 통해 바라본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추월색'(저자가 누구더라) 정도만 읽어도 책이 무척 흥미로워 질 것 같다. 읽으면서 문득 문득 문학 작품이 당대를 얼마나 잘 반영해 줄까 하는 의문이 생겼는데, 이 의문은 양면이 있는 것 같다. 문학도 유행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니까. 이 시대의 유행은 '연애'였다. 이 시대의 '연애'는 다분히 외래적인 사조였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유연애'가 마치 우리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듯이 창궐하던 시대였다. 갑자기 '불륜'과 '정사' 신문과 잡지마다 난무한다. 신문과 잡지에 나타나는 사건의 주인공의 삶은 그들의 죽음에 의해 아름답게 미화된다. 일본에 유학간 신식 남성이 자신의 구식 아내를 차는 것은 당연시 된다. 학생이 기생을 사모하다 자살하고. 이 연애의 신형엔진은 우편제도의 발달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대에 이광수 등이 유행하던 '자유연애'라는 것의 이면에 대한 저자의 견해다. '자유연애'라는 것이 말 그대로 자유스러운, 개인의 의지에 의한, 조건이 없는 연애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이해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연애'라는 것의 이면에는 '교제, 약혼, 결혼'이라는 체계적인 단계를 통한 결혼의 통제가 전제된다고 한다. 과거 '운영전'의 운영과 같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연애가 그런 것 아닌가? 당연한 사실에 관해서도 우리는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산다. 그 중에는 정말 '자유'스럽게 연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