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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앰버연대기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덤으로 빌렸던 책이 동일한 저자의 '스노우크래쉬'였다. 롤플래잉게임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을 그려놓은 내용에 나름대로 감동받았고, 아바타로 명칭된 그 가상의 공간의 캐릭터들에 약간 놀라기도 했다. 그 작품이 쓰여진 건 92년이니까. 이 작품은 96년 작으로, 나노테크놀로지의 역시나(?)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 그게 기본 배경이란 소리지. 92년에 아바타라는 건 상상도 못했던 것 같고, 96년에도 나노기술이란 용어가 무척 생소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꽤 앞서가는 소설가란 생각이 든다. 예전에도 쓴바 있지만, 매트릭스의 가상공간의 기본모델은 아무래도 스노우크래쉬에서 따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사이버펑크라고 하는 SF의 하부분류라는게 있다고 하고, 이 작가와 작품들도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언급했던 이전작품의 특성을 생각해볼때, 뭐 그럴만하다고 생각해볼 수 있고, 본 작품에서도 카오스적인 사이버공간에서의 사건들이 상당한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사이버 펑크계열의 작품이라는 것을 읽어본 기억이 없긴 한데, 적어도 이 작가의 문제의식중 하나는 사이버세계와 실제세계와의 관계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사이버펑크라는 것들 모두가 그럴 것 같다. 당연하지 않은가... 사이버공간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가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거나, 사회에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던지기는 어려울 테니까) 스노크래쉬는 사이버세계에서 퍼진 일종의 바이러스가 실제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급기야 실제 인간의 두뇌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그려져있다. 공각기동대/이노센트와 같은 전뇌기술을 전제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사이버공간의 특성은, 말했던바와 같이 카오스적이라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단계별 설계에 의한 기획의 추진이나 수행이 아니고, 어떤면에서 생물계의 복잡성이나 우발성을 본딴듯한, 리좀적이고 카오스적인 비평형 역학계의 이미지를 사이버공간에 도입했다. 그러기 위해서, 수십년간 자연적으로(애초에 기획과 의도가 있었다고 하겠지만) 생장하는 실제 인물과 사이버세계의 진화라는 모티브를 도입했다.
많은 평에서, 동서양 문화의 교류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별로였다. 이 작가가 가지는 취향중 하나이긴 하지만, 별로 성공적이라고 보여지진 않는다. 20세기 후반까지 남아있던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이 22-23세기를 지향하는 SF에도 잔존해있다는 정도랄까? 장자의 나비와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선문답 같은 클리셰들은, 뭐 그럭저럭이라고 할 정도.... 마찬가지로 고전적인 혹은 진부한 모티브라고 할 지라도, 한 소녀의 성장기라고 하는 측면의 소재가 오히려 매력있게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그 성장의 자양분이라고 하는 '소녀를 위한 그림책'이 주는 매력때문이라고 할까? 어쩌면,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는 첨단기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품이어서 그랬을런지도 모르겠다.
어느정도 SF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SF독해 모임같은것이 어딘가에서 꾸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근히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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