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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shing voices'라는 제목에서 흐릿하게 처리를 해서 잘 보이지 않는 단어들이 '살려 줘~'라고 외치면서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책 표지의 인물들은 현재 이 지구의 권력을 잡고 있는 '백인'들이 아닙니다. 입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할 말이 없는 표정이 아닌 말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갑갑함이 온 몸으로 전해져 옵니다. 그 위에 제 얼굴이 제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사라집니다. 책을 받아들고 표지에서 권력의 변두리에서 쫓기듯 사라지는 수 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생태계 파괴로 하루에도 몇 십 종의 생물들이 사라지는 현실 속에 주목받고 있지 못하지만 그 생태계를 기반으로 수 천년 동안 삶을 유지해 오던 언어들이 같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는 수 천의 언어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기반으로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언어 들이 소멸되어 사라지고 있습니다. 왜? 책에서는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사용자의 감소라든가 자발적인 선택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와 같은 언어들이 기존 삶에 파고들면서 사회,정치,경제적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하기 때문에 기존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미 우리 주위에서 영어가 구축하고 있는 '권력'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사용자 수에서 세계 15위권에 들 정도로 강력한 한글의 경우가 이러할 정도라면, 수 백 혹은 수 천명의 사용자밖에 갖고 있지 못한 소수 언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언어의 다양성은 생명의 다양성과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뭇 생명들이 이 세상을 살아 가는 수 많은 존재방식을 투영하는 창이라면, 언어는 이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틀 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위기에 처하면서 언어가 같이 위기에 처해 가고 있습니다만, 생명의 위기에 보이는 관심만큼 언어가 처한 위기에 보이는 관심은 없습니다. 생명들을 우리의 귀중 한 자산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언어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언어가 생명체들만큼의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들을 한 가지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의사소통할 수 있으면 편리할 것이다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삶의 형태가 한 가지이고 해석의 틀이 하나일 때 나타 나는 세상은 조지 오웰의 '1984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권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혹은 해석할 수 없이 다양하게 표출되어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해서 저자의 말처럼 한 가지 언어가 군림하는 세상은 권력이 집중화되어 전체주의화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오랜 시간 그 지역에서 생활해 온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말로 '바람'이라고 하는 것을 영어로 'wind'만 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가진 정서와 다양한 느낌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세상 어디에건 그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사람들에겐 그 나름의 삶과 역사가 그들 언어에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건 그런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단지 언어만이 아닌 그 속에 깃든 삶과 지혜가 함께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영어만으로 혹은 다른 공용어로는 절대 다시 찾아내기 어려운 것들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말 속에는 이처럼 다른 언어들이 풀어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사투리와 표준어와의 관계입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의 언어가 다른 언어에 밀려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위기에 처해 있는 다른 언어들에 비해 아주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언어라고는 하지만 표준어에 비춰볼 때 사투리의 처지는 위기에 처한 다른 언어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표준어가 권력을 차지한 자리에 사투리가 낄 자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이건 공용어가 자리를 잡은 후에 지역 고유 언어가 사라지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학교에 서는 표준어 사용을 강제하고, 가정에서도 사투리대신 표준어를 사용합니다. 세대를 이어 언어가 전달되지 못하면 소멸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투리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습 니다.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처럼 지역색은 강하지만 표준어와 비교할 때 의사소통이 이루 어지는 사투리인 경우는 처지가 그나마 낫습니다. 하지만 제주도 사투리의 경우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외국어 정도로 인식이 되어 이미 오래 전부터 학교를 통해 표준어 보급에 나선 결과, 가정에서도 사용 빈도가 줄어들면서 점차 그 명맥을 상실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향후 2,3 세대를 거치고 나면 과연 어느 정도의 제주 방언이 살아남게 될런지 의문입니다.(제 고향이 제주도라서 더더욱 착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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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미 논쟁의 열기가 다 식어버린 시점이었다. 고종석에 대한 관심은 복거일로 옮겨갔고, 복거일에 대한 관심은 그로부터 시작된 영어공용화론으로 옮겨갔으며, 이 논쟁에 참여한 학자와 지식인들이 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언어'는 내 안에 들어왔다. 영어공용화론에서 이제는 전 세계 언어의 생성과 사멸에 대해 생각한다. 범위는 넓어졌고 관심은 깊어졌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은 이와 같은 관심에서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언어의 죽음>이라는 책과 매우 닮아있다. 논지 전개 방식이며 담아내는 내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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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에는 대략 6천여 가지 정도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 6천여 가지 정도의 언어 중 90%가 전 세계 인구의 10%에 의해 사용된다고 한다. 이 언어의 상당수가 위기에 처해있으며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21세기의 말엽에는 그 중 반 정도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 한다. 우리 정도의 규모를 가진 국가가 단일 언어를 가지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경우여서 이런 언어 사멸의 문제는 우리에겐 사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먼 나라의 문제이다. 더구나 바벨탑의 신화를 동화처럼 듣고 자랐으며 영어도 모자라서 제2외국어 학습의 압력에까지 시달리고 있는 요즘 상황에선 오히려 저거 좋은 일 아냐? 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올 법도 하다. 전 세계인이 하나의 언어만 가지고 소통한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 복거일을 필두로 한 영어 공용화론이었고 국제 경쟁력을 운운하며 그것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실제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이른바 황국신민화라는 미명하에 우리 국어를 잃을 뻔 했고 더 멀리는 훌륭한 우리말을 두고도 언문이니, 뒷간글이니 하며 같은 민족에게조차도 한글을 무시당했던 기억을 가진게 또한 우리이기도 하다. 더구나 언어의 사멸이 언어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결정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한 언어교체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일제 시대의 우리 국어에 대한 억압이 단순한 일본어로의 교체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혼이 걸린 중요한 반일 투쟁의 이슈였듯 말이다. 한 마디로 언어는 한 생활권에 숱한 세월 동안 정착하여 살아온 언어 사용자들의 생활이 농축된 지식과 역사의 총체적 체계이며, 따라서 그 언어의 사멸은 인류의 지식 중 소중한 일부분의 영원한 상실을 의미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허긴 우리말의 ''붉으스름''란 말을 어떤 외국어로 완벽히 어감을 살려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언어의 사멸을 주도하는 자들이 주로 서구적 근대화를 기치로 내건 세력임을 생각해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진보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윤을 추구한다. 원주민들의 언어를 포함한 문화와 생활 양식을 무조건 하등한 것으로 취급하고 원주민들에게 선진화된 서구의 생활 양식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방금 문장이 와닿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때 배운 다양성을 생각해보라. 그래도 역시 안된다면 당신도 이미 서구의 근대화론에 찌들대로 찌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저자(둘다 영국인이다)는 서구의 생활양식은 서구 특유의 역사적 환경에서만 유효할 수 있다 주장하면서 이를 입증하는 증거들을 숱하게 제시한다. 결국 저자는 진보=근대화=산업화=서구화라는 생각의 틀을 깰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저자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회들에게 그들의 고유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빈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냉혈한들일까? 그렇지 않다. 그런 반문조차 여전히 위에 제시된 진보에 대한 사고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각 국가들은 서구와는 분명히 다른 마인드와 방법을 통해서 현재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해냈다. 즉, 진보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며, 합리성이란 것은 각 사회마다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일 것이다. 즉, 각 사회는 행복의 자결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사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왜 저기까지 나가게 되나하며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언어라는 것이 단순한 의사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역사와 지식이 농축된 총체적 체계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 사회의 전체적인 맥락을 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언어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며 지난 수백년간 인류가 숨가쁘게 진행해온 근대화와 진보가 과연 옳은가라는 문제를 언어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 이 책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언어들, 특히 사용자가 적은 언어들이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지게 되는가, 언어의 소멸이 정치/경제/사회/문화/권력/자연환경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그리고 그런 소멸현상을 왜/어떻게 막아야 하는가에 대해 쓴 책이다. 동사+목적어+주어로 된 언어도 있다는 것이나, 파푸아뉴기니에는 860가지 언어가 있다는 것이나, 우리나라말이 사용인구면에서 세계 12위의 언어라는 것 등등 곁가지 지식들도 흥미롭다. 저자들의 주장이 전부 맞지는 않을수도 있지만, 다양성, 문화우월주의, 권력 등과 관련해서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문체는 약간 딱딱한 편이다. 논문을 읽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에겐 그래서 더 읽기 편했지만.. 번역도 훌륭하다. 한글과 한국어도 위협받고 있다. 영어 공용론 같이 세종대왕이 들으면 통곡을 할 소리도 나오고 있고, 우리말 두고 괜히 영어로 말/표기하는 행태가 만연해 있고... 이 무슨 망할 놈의 사대주의란 말인가. 영어가 우월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연의 산물일 뿐이고 강대국의 땅따먹기 놀음 덕분인 것 뿐이다. 말을 잃고 글을 잃는다는 것은 나라를 잃고 목숨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언어를 잃고 모든 것을 잃은 예가 너무나도 많다. 이 책을 읽으면 왜 그토록 우리의 언어가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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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교민신문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지난달 2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총회에서 한국어가 포르투갈어와 함께 ‘국제공개어’로 공식 채택되었다는 것.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뉴스거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낯선 외국 땅에서 살면서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실감하는 재외동포의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국제공개어’는 출원된 특허기술이 어떤 것인지 국제사회에 알릴 때 사용하는 특허계의 공용어인데, 그전까지는 유엔 공용어인 6개 언어(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에 일본어와 독일어를 더해서 모두 8개 언어가 국제공개어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여기에 한국어도 포함이 되어 세계 10대 언어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특허 분야에 국한된 것이긴 해도 이번 결정은 국제기구에서 한국어가 공식 언어로 인정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 매우 뜻 깊은 일로 여겨졌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점차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되어 세계 무대에서 한국어의 위상이 점차 높아질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외국에 나가 살면서도 우리말을 쓰는 것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안 되는 날이 오겠거니 하는 희망도 나는 가져본다.
그러나 이것은 떠나온 자의 바램일 뿐이고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광풍’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영어 교육 열풍이 갈수록 거세지는 모양이다. 영어를 배우려고 어린 나이에 부모 품을 떠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조기 유학생 규모가 사상 최대라느니, 영어를 제대로 못하면 아무리 명문 대학교를 졸업했어도 취업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들려오니 말이다. 앞으로도 쉽사리 가라 앉지 않을 것 같은 이러한 영어 광풍을 생각해 보면, 한글날을 앞두고서 스위스 제네바에서 날아든 최근의 낭보도 무색해질 지경이다. 앞으로 두세 세대까지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 이후에도 과연 한국말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우려감마저 든다. 역사 속에서 이미 사라진, 그리고 현재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소수 언어들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책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을 읽어보면,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각각 인류학과 언어학을 학문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영국인 학자 두 명이 함께 쓴 <사라져가는 목소리>에 의하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대략 6천 7백 개의 언어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백 개의 상위 언어를 세계 인구의 약 90퍼센트가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최소한 6천 개 정도의 언어를 세계 인구의 10퍼센트에 불과한 수가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용자의 수가 고작 수십에서 기껏해야 수만에 불과한 이러한 소수 언어들은 아프리카와 남북아메리카, 동남아시아에서 태평양에 걸치는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등 지난 날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받았던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들은 지구상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는 지역과 다양한 소수 언어가 분포하는 지역 간에 보이는 밀접한 상관 관계에 입각하여, 저자들은 ‘생물언어적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인간의 언어와 문화, 인간 이외의 생물종, 그리고 지구의 생태계는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에 기반하는 이러한 생물언어적 다양성의 시각으로 볼 때, 20세기 후반부터 심각하게 대두된 이들 지역에 있어서의 생태계 파괴 문제는 동시에 언어 사멸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지구상의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과정의 주요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인간이 자연 환경과 그 환경에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고, 유지하고, 전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의 위기에 관한 문제는 지구 생태계의 보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56쪽)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태계 보존의 열쇠는 언어 속에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언뜻 지나친 비약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환경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수세기를 살아온 작은 집단들이 사용했던 토착민의 언어들 속에는 자연 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담겨 있고, 이러한 지식들은 우리들 모두가 의존하는 자원과 생태계를 관리하는데 대단히 유용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 저자들은 여러 쪽에 걸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북극권의 이누이트인, 그리고 태평양의 여러 섬에 사는 토착민들의 토착 언어에 담겨 있는 구체적인 생태 지식들을 풍부한 사례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신념이 막연한 가설이나 당위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지식의 보고인 소수 언어들이 생태계의 파괴 못지 않은 속도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이들 6천 개 소수 언어들의 최소한 절반이나 그 이상이 21세기를 지나는 동안 사멸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지난 5백 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의 언어들 중 거의 절반 가량이 이미 사라졌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에 결코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런 데도 많은 사람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팬더 곰이나 얼룩올빼미에게는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언어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언어가 많이 있으면 의사소통, 경제 발전,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현대화에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 속에는 다중 언어를 바벨탑의 저주와 연결시키는 잘못된 관념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토착민들이 구사하는 그러한 소수 언어들은 오늘날 대다수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유라시아 대륙의 언어들보다 열등하고 결함이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그러한 언어들이 사멸하는 것은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르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생각도 크게 작용했다. 저자들은 이러한 생각들이 잘못된 것임을 조목조목 지적하기 위하여 그들의 전공인 언어학과 인류학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태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역사학과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지리학까지도 동원하고 있다. 그 논리 전개는 구체적이고 명확해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소수 언어들의 운명에 대해서 우리가 무심할 수 있는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이 문제는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제3세계 원주민들의 일일 뿐이라는 무관심과 상징적 자본으로서의 언어의 역할에 주목하는 권력의 은밀하고도 노골적인 개입이 작용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1846년에 영국 정부의 교육위원들은 웨일스어를 “웨일스 내의 모든 도덕적 발전과 대중의 진보를 가로막는 피해 막심한 장애”라고 공격하고, 웨일스어가 “진실을 왜곡하고, 사기를 조장하고, 거짓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19세기에 학교에서는 웨일스어를 사용하다가 걸린 학생들에게 “웨일스어 금지”라고 씌어진 나무 패를 달게 했다. 패를 단 아이는 웨일스어를 하다가 들킨 또래 아무에게나 그 패를 넘길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패가 한 아이에서 다른 아이로 전해졌다. 주말이 되면 누가 됐든 패를 가진 사람은 매를 맞았다. “웨일스어 금지” 악습은 대체로 1880년대에 없어졌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20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 (237쪽) 언어의 입지와 사회의 권력 구도간의 긴밀한 관계를 한 편의 우화처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언어의 사멸 문제는 결코 제3세게 토착민들의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도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지난 시절,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생태학적∙문화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윤리적인 이유에서도 생물언어적 다양성은 유지되어야 하고 아무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이라 할지라도 보존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결론과 더불어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까지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의 미덕이다. 여러 대안들 중에서 저자들이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은 집에서 부모나 다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언어를 전하게 하는 노력을 장려하는 ‘밑으로부터의 전략들’이다. 점박이올빼미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서식지, 즉 생존하는 데 필요한 숲을 보호하는 것이 관건인 것처럼, 언어 사멸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언어에 대한 문법 연구나 사전 편찬, 또는 위협에 처한 언어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공식적인 지위 획득을 위한 운동 등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언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최소 집단인 가정에서 언어 사용을 장려하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3.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엄마, 아빠 따라서 열 살 때 이곳 뉴질랜드로 이민을 와서 점차 우리 말과 글을 잃어버리고 있는 딸아이에게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걸로는 미흡한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익히고 연습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보다는, 한글로 일기를 써라, 우리말로 된 책도 좀 읽어라 등 그때 그때 내 기분에 따라 딸아이에게 잔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은, 우리가 비록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말과 글을 잃지 않고 계속 사용해야 하는 이유부터 딸아이에게 잘 설명해야겠다. 쉽지 않은 그 설명 역시 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한글날인 오늘 저녁에 이걸 읽어주어야겠다. 언어는 복장, 행동 양식, 종교나 직업 등 여러 특성들과 더불어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한 언어를 포기하거나 잃게 되면 다른 언어가 곧 대체하겠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차이가 생긴다. 언어는 궁극적인 상징체계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표시하는 데 아주 적합한 도구이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공유하는 의미나 경험을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하려는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언어든 큰 부분은 그 문화 특유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어가 사라질 때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다고 느낀다. 한 아메리카 원주민 대릴 베이브 윌슨은 아주머니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백인들의 말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남으려면 우리말을 알아야만 한다.” (321-322쪽) |
| 이 책을 보고 우선 받은 인상은 놀랍다는 것이다. 생태학적인 환경과 언어 존립과 관련을 지은 점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언어들에게 닥치고 있는 언어들이 상상 외로 너무나 많다는 점, 왜 우리 고유어들이 뜻이 세분화된 낱말들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준이나 중심, 핵심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중앙 집중식 사고인 것이다. 다양한 현상들을 인정하고 다양성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울러 언어를 통해서 힘을 가진 세력들이 힘이 없는 소수들을 어떻게 제압하고 어떻게 언어를 통해 언어에 대한 이데올로기 주입이 이뤄지는지도 알 수 있다. 이 책의 첫장은 우울한 어조로 시작한다. 자식들과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없는 우비크어 마지막 사용자 이야기, 와포어를 능숙하게 알았던 마지막 인물 로라 소머설, 카토바족 수어의 마지막 사용자인 붉은천둥구름 이야기 등을 통해 지난 수세기 동안 실개울처럼 진행되어 온 사멸 현상이 이제는 홍수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멸현상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고 보기보다는 ‘언어살해’와 ‘언어자살’(글쓴이는 이 용어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이란 용어가 보여주듯이 언어들이 저절로 죽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언어를 포기한다. 왜 우리는 언어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존해야 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는 전세계 언어의 10%도 안 된다. 나머지의 대부분은 모르고 있으며, 고작 알고 있는 언어 몇몇을 통해 언어의 보편성을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은 예외,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특성을 놓치고 있다. 또한 언어적 다양성은 인간의 의식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 그 속에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체계화하고 분류하는 창조적인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각 언어마다 세계를 보는 자신만의 창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를 가질 권리, 그 언어를 문화자원으로 보존하고, 자손들에게 물려줄 권리를 갖고 있다. 그 권리를 누가 빼앗을 수 있는가? 그리고 환경의 파괴를 미리 점쳐 보여주는 그래서 언어들의 멸종은 전 세계적인 생태계 붕괴 현상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지배적인 언어의 등장은 사회적 변화가 불균등하게 일어남에 따라,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 간에 현저한 자원의 불균형이 생긴 데서 나온 결과이다. 이미 1966(아마 이 연도는 잘못되지 않은가 싶다)년 무렵에 전세계 우편물의 70퍼센트와 텔레비전 방송의 60퍼센트가 영어로 된 것이었고, 이는 대규모의 사회적 변화 과정의 조짐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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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전공과 관련된 책을 읽은 것 같다. '언어'에 대한 관심, 그리고 특히 '사라져가는' 언어에 대한 관심은 대개 언어를 전공으로 하는 소수 학자들만의 고민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소수 언어를 지키고 가꾸는 일이 환경을 보호하고, 경제적으로도 효과가 있어 결국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음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가며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한글(한국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는데, 한글이 이 책에서 제시된 표의 순위(해당 언어 사용 인구수)로는 10위권 바깥의 언어이지만 표를 잘 살펴보면 중국어가 겹치는 부분도 있고, 서구권 언어가 잘게 나눠 있는데다 한국 외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인구수가 잘 포함되어 있지 않아 조금 더 한국어의 위상이 높지 않을까 싶다. 굳이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언어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당장 우리 나라의 경우 제주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 방언이 메스컴의 발달 등의 이유로 사라져가고 있고, 그로 인해 문학적 표현뿐 아니라 말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삶의 지식 등이 없어지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별다른 해결 방안이 제시되기 어려운 현실이 아닐까 하고 포기하기 쉬운데, 이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소수 언어 보호 정책들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민족의 자부심 어쩌고 하는 소리들을 다 제쳐두고라도, 언어를 지키는 것이 환경과 자원을 지키는 일이고, 그래서 결국 경제를 지키는 일이 될 수 있을텐데, 우리 나라는 대통령부터 나서서 영어 몰입이니 어쩌니 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언어에 대한 관심을 모두 다 가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한글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일은 조금씩만 덜 해줬으면...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모레는 한글날이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