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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이전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시계는 분명 지금보다는 아주 느리게 돌아같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를 사는 우리 보다 더 많은 기이한 일들이 벌어 졌고 그에 대한 반응도 지금의 사람들 보다 훨씬 강도가 큰 놀라움으로 다가같을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풀어갈 수 없다고 여겨진 기이하고 놀라운 일에 대해서 기적을 바랬을 것이다. 놀라움이 많고 클수록 기적도 자주 일어나는 것이니까. 이에 반해 현대를 사는 우리는 놀라움이나 기이한 일에 대해서 상당히 무감각해져 있다. 이제 사고로 몇십명 정도 죽어 나가는 일에 대해서도 그다지 충격으로 와닿지도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기적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난센스가 되어버린지도 오래되었다.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그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혜성처럼 나타난 영국의 신예 작가 존 맥그리거의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는 그 동안 정통 문학에 다소 식상 했던 독자들을 위해서 자구책이든 문학장르의 혁신이든 간에 추리,에로,호러,SF등 다양한 장르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왔던 문학계나 독자들에게 소설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제 독자들은 왠만히 상큼하고 기발한 플롯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내러티브로 어필이 되지 않는 이상 작품에 대한 기이함이나 놀라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던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적같은 작품을 바라지도 않고 바랄 수 도 없게 되어 버렸다. 너무나 극성스러운 플롯에 중독되어 왠만한 충격은 그저 그렇게 묻혀갈 뿐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는 그동안 스팩타컬한 내러티브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겐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내러티브의 연속뿐이다. 영국의 어느 빈촌의 다세대같은(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 발생한 한 소년의 교통사고와 사고 이후 화자이자 3인칭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이 그날 오후에 있었던 거리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나가면서 현재와 과거를 오고가는 그렇고 그런 내러티브이다. 추리나 반전의 요소도 없고 충격적인 장면 하나 나오질 않는다. 심지어 작가는 독자들의 가독성을 위해서 구어의 표현인 따옴표 조차 생략해 버렸다. 사실 한번 읽어 보다가 턴테이블의 카세트를 되 감듯이 몇 번을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고약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영국을 휩쓸고 각종 리뷰어지에서 찬사를 받게 된 계기가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조금씩 다가오다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뇌리에 깊이 오버랩 되는 작품이다.
흔히 쉽게 잊혀져 가고 지나쳐 버리는 소재를 이토록 유심히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특히 거리의 모습과 다세대 주택에 사는 사람들 하나 하나의 겉 모습과 심리묘사는 마치 CCTV를 통해서 리얼타임으로 현장을 중계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에서 소소하면서도 세밀했던 묘사들이 불현듯 생각나는 작품이다. 전혀 생각할 가치 조차 없다고 여겼던 일에 대해서 작가는 시와 같은 문체를 동원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한 의미는 소설을 읽는 내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그동안 무엇인가에 의해 잃어버렸던 감정의 순수함과 떨림을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서 되찾아가는 기분마져 들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이런 묘사력은 교통사고 당시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순간을 다음과 묘사함으로써 그 극치에 이른다. "운전자의 입장 뇌세포들 사이에서 전기 신호들이 뉴스 통신 본부를 뛰어다니는 사람들처럼 좌충우돌하다 하나의 신호로 수렴돼 터져 나오눈 의지가 척추를 항해 곤두박질치고 가장 짧은 경로를 찾아 건너뛰고 방향을 틀며 길을 잘못 든 자전거 배달부처럼 발목 근육에 도착해서 브레이크를 바닥 끝까지 밟아, 보통의 제어 행위를 벗어나 브레이크 폐달을 너무 세게 밟아서 며칠 후 근육이 노랑과 보랏빛으로 붓게 돼서야 뇌의 작용이 멈춘다" 이렇듯 이 소설은 작가의 이런한 세밀하면서 상상을 뛰어 넘는 묘사들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묘사는 읽는 당시에는 그저 눈요기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뇌리에 오래토록 남아있게 하는 마력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기적이라는 것은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린 기적을 모르고 지나쳐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정형화되고 화려한 미사여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러티브 그리고 상상을 초월해 버리는 플롯으로 점철된 현대 소설이라는 아름다운 꽃밭에서 한쪽 구석에 이름모르는 야생화를 발견하고 절로 고개가 돌아가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야생화의 향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그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지만 야생화가 내뿜는 향은 오래토록 은은하게 우리의 후각에 남아있기 마련이다.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이 바로 이런 야생화 같은 작품이다.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지고 나면 그 파동이 서서히 밀려왔다가 다시 잔잔 해지는것 처럼 이 작품은 이렇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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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그리거의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은 그가 스물일곱 살에 낸 첫 장편소설이다. 삶과 기억에 대해 이처럼 흥미로운 소설을 쓴 나이가 고작 스물여섯이란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이야기라 저자의 나이를 알고 많이 놀란 작품이다. 귀를 기울이면, 들린다. 도시가, 노래를 한다. 정원 끝에서, 길 가운데서, 지붕 위에서 가만히 들어 보면 말이다. 밤엔 아주 분명하게, 사물의 표면을 스치는 소리가 더 날카로워지고, 노래는 우리 내면을 파고든다. 노랫말은 없다고 해도, 버젓한 노래고, 다들 듣지 못한다고 해서 도시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음 하나하나를 알아듣게 되면 노랫소리는 아주 크게 들린다. -p11- 위의 글처럼 처음 초반부에 시작하는 글들부터 상당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장면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처음에 읽을 때는 무심히 지나치던 장면들을 다시 돌이켜 앞으로 돌아가게 할 정도로 일상의 모습들이 자꾸만 만지고 싶고 기억하고 싶게 하는 오래된 골동품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슬로우무비처럼 흘러가는 스토리 전개방식이 독특하면서도 읽을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소설은 여주인공의 현재의 이야기와 어린시절 과거 속 사건의 시간 속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는 한 가족을 지칭할 때 누구네 집 아들이나 딸이, 부부가 아니라 18호, 19호, 20호 등과 같은 호수를 통해 가족들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여주인공은 가족에게 알려야 할 중요한 일이 생긴다.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정작 어머니는 딸의 말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제대로 된 말씀 없이 전화를 끊는다. 이런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쌍둥이 형이 예전에 그녀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헌데 여자는 그의 형에 대한 큰 틀에서 기억되는 부분은 있지만 정작 자신을 좋아한 소년의 이름은 모른다. 그녀가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에 남자는 실망한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잘 알고 있을까? 솔직히 나는 나 자신을 모를 때도 있어 타인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책 속에 그들 역시 이웃으로 살고 있지만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이웃은 고사하고 부부조차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20호의 노부부의 경우 남자는 전쟁이야기나 암에 걸린 사연을 아내에게조차 말하기를 꺼린다. 이런 남편의 모습에 아내 역시 자신이 남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렇듯 살을 맞대고 살고 있는 부부, 자식조차 잘 모르는데 타인이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네 인생.. 삶이 멋지고 대단한 일은 별로 생기지 않지만 느리고 평범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정 소중한 것들을 흘려보내는 것은 아닌지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을 읽으며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솔직히 이 책에 뛰어난 재미가 막 느껴진다는 말은 못하겠다. 어찌 보면 조금 느슨하고 지루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이 책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저자의 처녀작이 흥미롭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저자의 다음 작품은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증까지 들게 한다. 이상한 시절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인파 속에서 길을 잃듯이, 사람들이 돌연 도시에서 미끄러져 빠져나가며, 임시 주소와 연락하겠다는 약속만을 남기곤 떠났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빠져 달아나는 느낌, 여유를 잃어버리고, 기회를 놓쳐 버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길고 뜨거운 여름, 아름다운 여름이었다. 하루하루가 세상을 활짝 들어내며 터져 나왔지만, 즐기기는 어려웠던 것이, 막다른 시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p53- 오늘, 그는 생각한다. 그녀에게 가서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저기 혹시 얘기 좀 해도 될까, 너 저번 날 밤, 그 파티 기억하니? 혹은 저기 말이야, 실은 나 정말 너를 너무 사랑하게 됐어. 그는 이 불가능한 장면을 생각하며 미소 짓고, 눈을 깜박거리고, 손등을 긁는다. -p77-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제목에 딱 부합되는 이야기를 주인공의 아버지가 한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내 딸아, 언제나 네 두 눈으로 보고 네 두 귀로 들어야 해. 세상은 아주 넓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 버리는 것들이 아주아주 많단다. 늘 놀라운 것들이. 바로 우리 앞에 있지만, 우리 눈에 태양을 가리는 구름 같은 게 있어서 그것들을 보지 못하면 삶이 초라하고 지루해진다. 만일 아무도 놀라운 것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놀라운 것들이 존재할 수 있겠니? -p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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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은 언제나 작가로서의 잠재력을 측정하는 기준점이 된다. 그만큼 처녀작의 성공은 작가에게는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가 된다. 이후의 모든 작품은 대단한 호평을 자아낸 처녀작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존 맥그리거와는 초면이다. 그의 처녀작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도 여러 문학상을 휩쓸며 호평과 찬사를 받은 그런 대박 작품이다.
저자의 서술상의 특징은 '슬로우 모션'이다. 아름다운 장면은 디테일을 살린 표현 덕분에 생동감을 더하게 되고,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는 느린 화면과 정체된 동작의 연속을 거쳐 그런대로 견딜만한 장면이 된다. 추억의 고물상처럼 저자는 섬세한 산문적 문체로 과거의 기억의 파편들과 현재의 잡다한 풍경들을 채록한다. 대형 사건보다는 일상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풍경과 분위기의 파노라마적 묘사가 두드러지는 다소 무료한 리얼리즘이 특색이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긴박하지 않고 충격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평범하고 약간의 우수를 머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런 스타일리쉬한 기교를 ‘스냅숏 콜라주(a collage of snapshots)’라고 말하는데, 서사인류학에서 말하는 '두터운 묘사'와 유사하다.
재밌게도 이야기의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22호 여자애와 18호 남자애는 이름이 소개되지 않는다. 소설 속의 화자 '나'는 22호에 살고 있는 여자애다. 짧은 금발에 네모난 안경을 꼈고 세라란 이름의 절친이 있다. 세라를 통해 18호 남자애의 쌍둥이 동생 마이클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형 18호 남자애가 자신을 짝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3년 전 샤히드가 당한 교통사고에서 18호 남자애가 보여준 용기와 충격을 기억해낸다.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기억에 기생하는 존재이고, 기억은 관심과 사랑의 복합체라는 것이다. 기억이 존재를 결정한다고 할까. 이런 소설의 메시지를 가장 잘 형상화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18호 남자애다.
18호 남자애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노트를 이용해 자신이 본 것을 꼼꼼히 기록한다. 정보수집벽이 있는 편집증환자처럼 18호 남자애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눈에 띄면 찍고 기록하고 '도시 기록 박물상자'에 갈무리한다. 그는 무시되고 잊히고 버려지는 것들에 심한 반발심을 갖는 '현재의 고고학자'라고 스스로 자리매김한다. 심한 안구건조증에 시달리고 있고 고고학 관련 논문을 집필중이다. 셀카에 찍힌 그의 모습은 이렇다."이십대 초반, 젊은 남자, 부드러운 둥근 얼굴, 곧게 쭉 뻗은 코, 두툼한 입술, 관자놀이 부근에 성긴 밝은 머리칼, 눈 밑의 살집". 일란성 쌍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마이클의 생김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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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후, 작은 마을 주택가. 길에 있던 아이가 마주 오는 차에 치이려는 순간 18호에 사는 남자애가 튀어나갔다.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고 내 옆에 있던 여자애는 맥주 캔을 떨어뜨렸다. 세발자전거를 타던 남자아이는 그 광경을 보다가 가로수에 부딪혀 넘어졌고, 세차 중이던 남자는 움직이지 못했다.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3년이 지나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나는 얼마 전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갔다가 만난 남자와 보낸 하룻밤으로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직 아기를 낳기엔 이른 나이인데다 남자의 연락처도 몰라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 친구 세라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3년 전 18호에 살던 남자애의 동생이라고 했다. 최근 그때의 사건이 종종 생각났던 나는 그 애의 동생 마이클을 만나 여러 대화를 하고, 제법 가까워져 아기에 관한 문제와 어머니와의 갈등 등을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마이클은 쌍둥이 형인 그 애의 이야기를 한다.
현재 화자의 일상과 3년 전 새벽부터 사고가 나던 오후까지 마을 사람들의 하루를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던 시간에 문득 깨어난 사람이 있었고, 젊은이들은 뒤늦게 집에 들어가 떠들었으며 어떤 남녀는 서로의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모든 것이 일상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되어 부모가 식사를 차리면 아이들은 대충 먹고 밖으로 나가 뛰어놀면서 장난을 쳤다. 노부부는 함께 어딘가를 가고, 누군가는 빨래와 청소 등의 일을 했다. 그 사람들 사이에 18호 남자애가 있었다. 그 애는 버려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겨 집으로 가져왔고, 가져가지 못하는 것들은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많은 사진들 속에는 이웃에 사는 쌍둥이 남자아이들과 그 여동생,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사진이 있었고, 18호 남자애가 좋아하는 22호 여자애의 사진도 있었다. 스토커로 보이는 그런 사진이 아닌,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의 순간이 담겨있었기에 그의 사진은 순수했다. 그 애에게는 물건과 사람을 대하는 진심이 있었다.
그 애는 모든 것들이 무시되고 잊히고 버려지는 것이 너무 싫다고 했어. p.190
그렇게 과거가 진행되면서 그 많은 마을 사람들 중 현재에 왜 하필이면 화자가 등장하는지는 중반에 밝혀진다. 그녀가 18호 남자애가 좋아하던 22호 여자애였기 때문이다. 그 애는 마음속 깊은 곳에 감정을 키워나가고 있었지만, 화자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애와 만날 약속까지 했었다고 마이클이 상기시켜줬지만, 화자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화자에게 그 애의 기억은 교통사고의 순간뿐이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제일 먼저 튀어나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를 이어주는 존재는 18호 남자애의 쌍둥이 동생 마이클이었다. 그 애라고 착각할 만큼 꼭 닮은 외모를 가진 마이클은 형제에게서 그녀에 대해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금세 친해졌다. 얼마 전에 새로 사귄 친구라고 하기엔 더없이 다정하고 친절했고, 화자 역시 마이클에게 남다른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때 사건에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비밀이 밝혀진다.
언제나 네 두 눈으로 보고 네 두 귀로 들어야 해. 세상은 아주 넓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 버리는 것들이 아주아주 많단다. 늘 놀라운 것들이, 바로 우리 앞에 있지만, 우리 눈에 태양을 가리는 구름 같은 게 있어서 그것들을 보지 못하면 삶이 초라하고 지루해진단다. 만일 아무도 놀라운 것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놀라운 것들이 존재할 수 있겠니? p.292
그 순간을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당연히 기적이라 부를 수 있지만, 다른 갑작스러운 그것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병이 들었지만 아내에게 차마 알리지 못하는 노인, 화재로 아내를 잃고 손에 화상을 입은 소녀의 아버지, 근처에 사는 많은 학생들 중 단 한 명에게 나타난 침묵의 순간이었다. 기적은 생과 사를 가르는 순간에 전능한 자가 손을 들어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불러야 했다. 전능한 자가 이끈 사람에겐 기적이었고, 아닌 사람에겐 너무나 외롭고도 괴로운 쓸쓸한 순간이었다. 그 갑작스러운 순간에 혼자였다는 게 안타깝고 슬프기만 했다. 이런 과정에 쌍둥이가 세 형제나 됐다는 것이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고를 당한 아이와 구하려던 그 애, 그리고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에게까지 어떤 신비로운 것이, 기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사람에게 남겨진 각인의 흔적이었다.
이 책 역시 재독이다. 이 책은 결말이 가물가물 기억나긴 했지만 확실하진 않았는데, 다시 읽으니 역시나 처음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고(대체 그걸 왜 놓쳤지?), 이름이 등장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평범한 무명 씨들의 일상에도 기적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마이클과 화자인 그녀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간직하며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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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동안 아주 천천히 본 책. 굉장히 특이한 문체 덕에 담담한 문장 하나도 머릿 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영상이 재생되곤 했다. 또한 챕터가 번갈아가며 1인칭 시점과 주인공이 없는 3인칭 시점처럼 관찰하듯 반복되는 것이 독특했다. 모든 인물들은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이 중심이 된다. 사실 한번 읽고 모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엔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음을 말하고자 한다. 이런 책을 27세도 안되서 썼다니 난 그동안 뭘하며 살았나 싶을 정도로 관찰력이 좋은 작가임이 여실히 들어났다. 미안, 많이 바빴어 하고 시작하는데, 우리가 정말 그렇게 바쁜건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서로 할 말이 없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하는 듯한 모습.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는 사실을 조금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아내가 걱정하고 화내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고, 특히 이제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노인은 알고, 아내는 모르고, 이것이 더 낫기도 하지만, 이것이 더 어렵기도 하다. 나는 원초적인 어떤 것에 뿌리 깊이, 대지의 흙과 별들의 빛에, 세대에서 세대로 자아져 전해 내려오는 실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꼈다. 잠시 동안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장을 보면서 눈을 계속 깜박이고, 침을 꿀꺽 삼키며, 눈물을 참았고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떨려 나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얼굴에, 아빠 얼굴에 나타난 주름들을 본다. 주름에는 오랜 지난 세월들이 하나씩 새겨져 있고, 나는 이 세월들에 대해 아는 게 얼마나 되는지 생각한다. 나는 아빠의 얼굴 구김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러 펴 주고 싶다. 나의 아버지, 이 강한 남자는, 내 어머니를 이 세월 동안 모두 지탱해 왔다. 나는 아버지에게로 가서 아기처럼 안아 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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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제목, 생각을 이끄는 제목이다.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기적이 필요한 순간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절망하고 슬퍼하는 일뿐이겠지. 일어나기 어려워 ‘기적’이라 말하고 실제로 겪게 되는 경우도 그만큼 드물지만, 단 한 번 겪지 못하더라도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일, 기적을 말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제목에서부터 감사를 부르는 '긍정적인' 책의 알맹이는 어떤 모습일까. 혹시 자극적인 요즈음의 이야기들이 그렇듯, 제목과 다르게 소름끼치는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반신반의하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몇 권 읽다 보니 비슷한 글의 생김새를 찾을 수 있게 됐다. '모던'이 비정형화를 표방하기라도 하듯, 내가 읽은 것들은 거의 하나같이 신선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존 맥그리거의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만난 낯선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의 시점에서 1인칭 전개를 보이는가 하면, 교차되는 다른 장에서는 그녀가 3년 전 살았던 조용한 마을의 일상을 3인칭 시점으로 펼쳐낸다. 여자의 목소리로는 급작스럽게 변한 상황 속에서 겪는 불안 등의 심리를 면밀하게 들려준다. 한편 마을을 관찰하는 목소리로는 각 가정과 그 구성원들을 '18호 남자애'와 같이 객관화하여 들려준다. 주인공의 목소리를 지닌 여자가 철저하게 타자화 된 인물로 교차되어 등장하는 방식은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지는데, 가까우면서도 한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일종의 소격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이런 새로운 방식을 취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짐작해보면 수긍이 간다. ‘나’는 3년 전 목격한 교통사고를 잊지 못한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고는 그녀와 가족들, 마을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보도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일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굵직하고 자극적인 것들에만 주목하게 되는 주의 깊지 못한 우리 일상을 작가는 독특한 이야기 방식을 통해 보여준다. 이것은 그동안 주목 받지 못한 것들, 사소해보이고 어디에나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정말 사소하지는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마을에서의 사건을 중대하게 받아들인 ‘나’가 세상에 섬세한 눈을 뜨고 살아가는 사람이가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이야기의 또다른 주축이자 소설의 진짜 주인공으로 비춰지는 ‘눈이 아픈 소년’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렇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혼란에 빠진 ‘나’의 앞에 등장한 ‘마이클’은 3년 전 같은 마을에 살았던 쌍둥이 소년으로, 그의 형이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나’는 쌍둥이 형제임에도 마이클을 보고 그의 형제를 떠올리지 못하며, 그의 이름은 물론 그의 마음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마이클은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지만, 독자는 관찰자 시점으로 그려지는 마을의 정경을 통해 소년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사연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나와 무관한 어떤 것을 무척이나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눈치채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소설 속 어느 집의 아버지가 말하듯 우리 삶의 놀라운 것들을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놓쳐버리면 얼마나 초라하고 지루해져버릴지, 참 아득하다. 어쩌면 나 역시 이 부족한 활기의 원인이 더 세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아차! 하는 마음과 함께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다. 일관적이게도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사건 전환의 국면도 글 전체에 배어 있는 이미지처럼 온화하고 감상적이며 시적이어서, 아무래도 취향을 깊게 타는 편이긴 하겠다. 다만 삶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인만큼, 좋은 시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많은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빠져 달아나는 느낌, 여유를 잃어버리고, 기회를 놓쳐 버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53쪽)
마이클이 말한다, 그 애는 수집 같은 것도 했어, 거리겡서 발견한 물건들, 영수증이나 필기 공책이나, 잡지에서 뜯어낸 페이지 같은 거였는데, 한번은 부서진 자동차 창문 유리 조각을 한 아름 가져와서 목걸이를 만든 적도 있어. 그게 도시에서 나는 다이아몬드라고 했지. 그 애는 유리 상자를 만들어서는,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쓰고 버린 주사기들을 가지런히 모은 적도 있어. 그리고 집에 가져올 수 없는 것이면 사진을 찍곤 했어 하고 마이클이 말한다, 그런 사진으로 가득한 앨범이 있지. 그 애는 모든 것들이 무시되고 잊히고 버려지는 것이 너무 싫다고 했어. 자기가 현재의 고고학자라는 거였어 하고 마이클이 말하곤, 웃으며 라디오를 켜는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190쪽)
아빠는 기다렸다가, 아기가 태어나면, 자신이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알겠니? 하고 말한다. (212쪽)
아버지가, 내 딸 하고 말하는데, 아버지의 모든 사랑이 그 두 단어를 말하는 목소리와 어조에 듬뿍 담겨 나온다, 아버지는 말한다, 내 딸아, 언제나 네 두 눈으로 보고 네 두 귀로 들어야 해. 세상은 아주 넓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 버리는 것들이 아주아주 많단다. 늘 놀라운 것들이, 바로 우리 앞에 있지만, 우리 눈에 태양을 가리는 구름 같은 게 있어서 그것들을 보지 못하면 삶이 초라하고 지루해진단다. 만일 아무도 놀라운 것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놀라운 것들이 존재할 수 있겠니? 하고 아버지는 말한다. (29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