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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게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자라기 보다는 소설가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에코의 글쓰기는 크게 기호학, 소설, 문화비평으로 나뉘는데 대중들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소설이다. 따라서《장미의 이름》과《푸코의 추》와 같은 현학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도 그의 기호학 이론은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대다수 평론가들이 에코의 소설이 그의 기호학 이론의 재현이라고 평하길 좋아하지만 말이다. 에코의 허구적 담론이 그의 이론적 담론의 구현이라는 학술적 환상에 막상 그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에코의 이론가적 지위는 기호학보다는 해석학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가령 열린 텍스트에 대한 논의라든가, 과잉해석에 대한 위험을 우려한 해석이론 등이 각광받는다.
박상진의 《에코 기호학 비판》도 기본적으로 에코의 기호학 체계보다는 텍스트 해석이론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책이다. 책제목에 속지 마시라. 이 책은 에코의 기호학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텍스트의 개방성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에코의 사상을 기호학 이전 시기, 70년대 기호학 시기, 80년대 이후의 텍스트 기호학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이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에코의 이런 변화는 당시 서구 사상의 조류와도 맥을 같이 한다. 예컨대 60년대에는 구조주의의 물결이 이탈리아를 뒤덮고 있었고, 70년대에는 독자반응이론과 해석이론이, 80년대에는 해석학과 해체이론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에코의 전체 지적 활동은 시기적으로는 기호학 이전, 기호학, 텍스트 기호학의 시기로 나누고, 내용상으로는 문화비평과 기호학(또는 이론작업), 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두 범주는 서로 교차한다. 즉 기호학 이전 시기에서는 문화비평과 이론작업이, 기호학 시기에서는 문화비평과 기호학이, 텍스트 기호학 시기에서는 문화비평과 기호학과 소설이 모두 나타난다."(20쪽)
저자는 기호학 이전 시기의 작품들 가운데 1962년에 출판된《열린 작품》에 주목하는데, 여기서 제시된 '열림'의 개념이 에코의 기호학 이론 체계의 기본 축을 이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방가르드 예술과 조이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텍스트의 개방성에 주목한 작품으로 텍스트에 의도적으로 내재해 있는 모호하고 다층적인 의미들과 그에 대한 독자의 다양한 해석작업을 강조하고 있다. 텍스트의 개방성에 대한 해석이론은 《열린 작품》에서 《부재하는 구조》(1968), 《소설 속의 독자》(1979), 그리고 《해석의 한계》(1990)로 이어진다. 그런데 에코가 기호학 시기에 이런 열림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한다.《기호》(1971)와《일반 기호학 이론》(1976)으로 체계화된 에코의 기호학은 텍스트의 개방성과 맥락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에코의 기호학만으로는 열린 텍스트와 닫힌 텍스트에 대한 선별적 기준을 확립할 수 없다. 나 역시 저자의 에코 기호학에 대한 평가에 공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