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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진지한 것이 모두 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아무리 진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아무런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마는 세상이다. 문학도 진지함을 잃은지 오래고, 음악도 마찬가지로 대중화라는 논리에 밀려 가벼워진지 오래다. 이제는 진지한 사색의 대명사였던 철학마저도 '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작고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 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목소리만 높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는 삶의 근원적인 물음이 필요없어졌는가? 진정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라는 물음은 그 의미를 상실했는가? 그냥 그렇게 아무런 의미부여없이 하루하루 가볍게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정말 삶의 의미를 묻는 일은 무의미한가?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가?
인간은 유일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의미부여가 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것은 삶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인간은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순간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끝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자신의 목숨이 걸린 중대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 의미가 돈이 되었던, 권력이 되었던, 쾌락이 되었던 무엇인가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돈, 권력, 쾌락이 삶의 의미가 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철학노트>는 돈, 권력, 쾌락이 우리의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대화의 형식을 빌려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돈, 권력, 쾌락이 덧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과 대면하면 그들의 완고한 논리에 밀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의심하게 된다. 돈, 권력, 쾌락은 어쩐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을 것지만, 왜 그런지 말할 수 없어 답답해 지는 것이다. 그런 답답함을 <철학노트>의 저자는 우리를 대신해서 속 시원하게 풀어준다.
<철학노트>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아직 황금만능주의에 빠지기 오래전, 저자의 대학시절에 쓰여졌다고 한다. 그 오래묵은 글이 지금에야 빛을 보게 된 것은 어쩌면 미리 준비되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황금만능, 감각적 쾌락주의, 권력만능의 시대를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글은 훨씬 더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진실'이라고. 진실없는 시대에 이 한마디는 우리의 가슴을 때린다. 그리고 <철학노트>을 읽으면서 오랫만에 진지하고 끈질긴 사색을 따라가면 느끼는 즐거움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삶의 '진실'은 무엇일까... [인상깊은구절] 진실을 얻으려는 부단한 긴장의 자세, 끝없는 싸움의 자세를 잃어버리면 안된다. 진실을 추구하는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만이 지상 최고의 현실을 우리의 현실로 가능하게 한다.철학노트>철학노트>철학노트>철학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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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대하며, 무엇보다 우선, 제목이 가슴에 확 다가왔습니다.
'철학 노트'
철학에세이도, 철학이야기도, 철학 산책이나 철학 입문도 아닌 철학 노트라....... 제목을 들여다보는데 가슴 한복판이 자꾸 저릿저릿해지면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해묵은 먼지 뒤집어쓴 채 다락 한 구석이나 책꽂이 어느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척척 꽂혀있을, 그간 정말 까맣게 잊고 있던 노랗게 빛이 바랜 제 대학 시절 노트들이요. 내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푸르른 노트들.
아, 그래. 맞아. 내게도 노트를 옆에 끼고 다니며 늘 긁적긁적 무언가 고민하고 토해놓던 때가 있었지. 그러다 밤 새워 깨알같이 적어놓은 것들을 북 찢어내 구겨 던져 버리기도 했고. 가끔 노트 한 구석에 보일듯 말듯 눈물 몇 방울 찍어내기도 했는데.......
그때는 참 왜 그렇게 고민도 많고 의문도 많고 하루하루가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세상에 과연 진리란 게 있기나 한 건가. 현실과 이상 사이의 이 괴리감을 어찌해야하나. 죽은 철학, 죽은 진리, 죽은 이상이 되지 않게 탁상 공론이 되지 않게 내 이 모든 고민과 방황의 흔적들을 삶 속에서 어떻게든 잘 녹아내야할텐데. 그리고 비겁하고 이중적이고 게으른 타협이나 포기가 아니라 참된 '조화'로서 내 이상을 현실 속에서 잘 이뤄가야할텐데. 이런 내용의 고민과 끄적거림들이 내 노트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지요.
홍종률 선생님의 '철학 노트'는 이런 내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의 흔적을 다시 떠올리고 끄집어내어 곱씹어 보도록 해주었습니다.
언제부턴가(아직 그리 나이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시계추처럼 똑딱이는 일상 속에 파묻혀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내는 것 조차도 지겨워했던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얄팍한 계산이나 잇속차리는 것이나 아주 효율적인 기술에만 능해지는 속빈 기능인이 되어가면서요.
어찌보면 삶을 살아가면서 늘 가슴 속, 머리 속에 품고 되묻고 현실 속에서 다시 검증해보며 또 다시 떠올려야할 아주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중요한 질문들을 한때 짧게 지나쳐버리고 싹 잊을 간단한 통과의례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참, 현학적인 허세나 위선이나 과장 없이 아주 진솔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독백같은 문체가 무엇보다 많이 다가왔습니다. 황금과 권력과 쾌락에 대해서 '갑'과 '을'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들을 보면서는, 시시때때로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듯 하여 재미있기도 했고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지 어찌보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 속에서 어떤 문제에 닥치면 어쩔 수 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우리의 양면성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도 결국에는 진실을, 이상적인 세계를 향하려는 순수하고 뜨거운 열망이 느껴져서 좋았고요.
마지막에 책장을 덮으며 저도 모르게 이런 장면이 하나 떠오르더군요. 이야기 한 번 나눈 적 없고, 물론 얼굴도 한 번 뵌 적 없지만 왠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선배님이나 허물없는 선생님처럼 느껴지는 저자 홍종률 선생님과 술 한잔 나누며 잊었던 내 '개똥철학 노트' 꺼내 펼쳐놓고 이런 저런 고민과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요.
'철학 노트' 이 책 덕분에. 여전히 불투명하고 방황의 연속인 내 앞의 생을 향해, 늘 바쁘고 지치고 허덕이면서도 뭔가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어가며 늘 허전해하던 내 내면을 향해, 조심스레 희망이란 단어를 속삭여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꼭 위대한 명작이나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대작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다가오는 '나만의 책'이 있나봅니다. 누구에게나요. 적어도 제게 이 책은 바로 그런 '나만의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인상깊은구절] 그 누구든지 그 어떠한 말이나 문자에 얽매여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화, 하나의 철학만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조심하거나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진실을 배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닫힌 사람들이다. 그 누구든지 그러한 말과 문자를 사용하면서도 그러한 말과 문자에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러한 말과 문자의 배경을 느끼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진실과 더불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열린 사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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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그대로 '철학 노트'이다. 처음부터 출판의 의도를 갖고서 철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노트'에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단지 '노트'에 그치지 않고 '철학' 노트가 된 것은 거기에 저자의 철학적 태도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예리하면서도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면서 이에 대해 근본적이면서도 진실하게 답변을 시도한다.
'젊은 날의 방황과 희망의 철학'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젊은 시절에 겪었던 방황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삶의 희망을 찾았는지를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통상적으로 겪는 방황과는 달리 '진지한' 방황, '철학적' 방황을 하게 된다. 저자는 진리를 갈망하는 꿈을 안고 강원도 원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 당시에도 철학은 배고프고, 외롭고, 고독한 학문이라는 통념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철학과 입학에 많은 반대를 하였지만, 저자는 진리를 얻겠다는 신념 하나로 철학과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철학과 강의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매우 컸다. 저자는 단지 철학 이론이나 사상을 나열하고 소개하는 철학 강의에서 진리와 진실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저자가 던진 물음에 대해 교수나 동료 학생들은 귀찮아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저자가 택한 길은 강의실이 아니라 대학 도서관이었다. 저자는 강의실에 발을 끊고, 그 대신에 대학 도서관에 파묻혀서 하루 종일 책만 보았다. 그것도 일이 년이 아니라 거의 십여 년을 책만 붙들고 있었다. 아마 그 당시에 서울대 문리대에서 가장 책을 많은 본 사람은 아마 저자인 홍종율 선생님이실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고,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면서 '기인' 또는 '폐인'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리와 진실을 향한 저자의 노력은 아무 것도 막을 수가 없었다. 저자가 부단하게 책을 읽은 것은 '황금'을 위해서도, '권력'을 위해서도, '쾌락'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진리를, 진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서관의 수많은 책을 벗 삼아서 젊은 날을 보냈으며, 거기에서 선인들의 위대한 사상과 지혜를 접하면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에게 진리나 진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굳이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저자의 삶 자체가 철학이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항상 깨끗함과 진실함을 추구하면서 한 평생을 책과 철학과 사상과 벗하면서 살아왔던 저자의 삶이 이 한 권의 책에 녹아 있다. 이 책은 가치는 바로 삶의 진실함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위선이나 과장도 없다. 여기서는 우리의 삶을 침범하고 있는 '황금'과 '권력'과 '쾌락'과 같은 부차적인 가치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본원적인 가치를 만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진실 그 자체는 말과 문자로 표기할 수도 없으며, 말과 문자에 담을 수도 없지만", 그러나 "인간이 깨끗한 마음과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다면 진실을 쉽게 감지하거나 인지할 수가 있다."
황금과 권력과 쾌락이 뒤범벅되어 혼탁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진실'을 만나고 '깨끗한 영혼'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은 삶의 행복이자,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처세술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실한 삶과 영혼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잔잔한 감동을 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진실 그 자체는 말과 문자로 표기할 수도 없으며, 말과 문자에 담을 수도 없지만", 그러나 "인간이 깨끗한 마음과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다면 진실을 쉽게 감지하거나 인지할 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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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사롭지 않은 한 권의 책이 우리들에게 다가 왔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저자의 삶의 색다름은 우리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접근법은 남달라야 한다. 지식정보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유용한 정보 정도를 이 책에서 찾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에 질식당하기 십상이다. 간단하게 말해 이 책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 책의 내용과 책의 저자의 삶만큼이나 진지하고 깊이 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으며, 만일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 책을 통해 얻을 것이 별로 없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30여 년전 저자가 대학에서 철학에 대해 막 강의를 시작하던 시점에서 쓰여졌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생의 의미와 같은 철학의 근본적 물음에 관심을 가졌던 저자는 대학에 진학한 후 제도권 철학 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대학도서관을 자신만의 진리의 전당으로 삼아 도서관에 소장된 책을 선생의 가르침으로 하여 자신만의 철학을 추구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까지 마친 저자는 강단에서 또 한 번의 고독과 회의를 느낀다. 내부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철학적 욕망과 이를 실현할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저자가 선택한 탈출구가 바로 이 책의 저술이었다.
이 책은 형식에서도 남다르다. 철학에 관한 저자의 주요한 생각을 표현한 형식은 논리정연한 이론이 아니라 대화이다. 저자와 저자가 세 가지 주요한 적으로 삼고 있는 황금숭배자, 권력숭배자, 쾌락주의자와의 대화 속에서 저자는 현실의 잘못된 풍조를 넘어서 진실이 추구되는 이상적 세계를 그리고 있다. 대화는 고전 철학의 주요 매체였지만 이 책의 대화 방식은 왠지 모르게 또스또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과 같은 소설에 나오는 대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철학적 형식이든 문학적 형식이든 이 책의 대화는 결국 저자의 자신과의 대화이며 독자의 내적 갈등을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다.
30여년 간 이 책의 근간이 된 원고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지만 원고 속의 고민과 정신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세태가 더욱 물질적이고 향락적으로 변함에 따라 저자가 던지는 물음은 한층 더 준엄하다. 인생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시대에 살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취직이 안되어 머리가 빠질 정도인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반문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에는 취직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 이상으로 취직에 관한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취직이 네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나 하고 취직하려느냐?"고 물음으로써. [인상깊은구절] 나의 현실은 대학도서관 바깥이 아니라 안이었다. 가장 매혹적인 것들은 다 책의 세계에만 존재했었고, 책의 세계인 도서관만이 지상에서 가장 유일한 안식처였다. 대학 강의실은 죽음의 가스실이었고 대학 도서관은 늘 푸른 초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