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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나쁜 생각이 떠오르는 일이 잦다. 일어난 일에 대한 생각이 아닌 지금 이 순간 갑자기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과 같은 가정 하에 필름처럼 결과가 끔찍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들이 자주 드러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고개를 흔들어서 생각을 지워버리거나 짧게 기도를 한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섣불리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 않은 요즘의 이런 생각들을 애써 떨쳐내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오래전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막 나쁜 짓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 나쁜 짓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살아볼까 하는 그런 거였다. 소심한 나는 생각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품었던 그런 생각을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나쁜 상상과 전혀 연관성은 없어 보이지만 과장해서 말하면 내면의 깊이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나의 본능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본능을 꾹꾹 누르면서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저자는 버젓이 드러낸 데에서 오는 충격이 있었다. 굳이 끄집어내어서 들려줄 정도로 건강한 이야기들이 아닌데 왜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있는 것일까?
꼭 기억에서 지워내고 싶은 이야기들의 나열 같았다. 이야기의 흐름도 갑자기 툭툭 튀어 나와서 안정적이지 못한 매끄러움과 자주 마주하다 보니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은 더 가관이었다. 식물인간 아들에게 끔찍한 행동을 하는 엄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몸을 마당에서 드러내고 있는 소녀, 바비 인형을 인간화 시키는 소년하며, 납치극을 다룬 이야기도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모처럼 결근을 해야 하는 변호사가 출근을 꼭 해야겠다는 이야기는 소소할 지경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드러날 때마다 불편했다. 고삐가 풀려버린 본능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 같았고, 종종 선을 넘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종종 나의 내면에도 이렇게 고삐가 풀려버리고 싶었던 상황이라던가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기에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욕망이 존재한다고 해도 범죄와 연결되는 내용들은 공감하기 힘들었고 어찌되었든 여전히 감추고 싶었다. 무조건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잘못 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욕망의 분출이라면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이기에 어쩌면 내가 분출하지 못한 어긋난 욕망에 대한 해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일상이 이렇게 어긋나는 건 원치 않는다. 그 욕망의 분출이 다른 방법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고 믿기에 소설은 소설로 간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너무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한 걸까 고민할 때,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사실 생각도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좀 무서운 생각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경험 다 있잖아요? 이렇듯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범위를 제안하면서 살고 있는데, 작가들은 보통 사람들을 대신해서 상상하고, 이상한 세계를 탐험하죠. 물론 여기서의 이상한 세계는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예요.(말하다, 112쪽)’ 이 문장을 통해서 어쩌면 작가는 보통 사람인 나를 대신해서 이상한 세계를 탐험하고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그제야 나를 너무 깊게 개입시키지 않고 소설을 소설로 볼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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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내가 저질렀던 은밀하게 이루어진 만행스러운 일들. 누구에게 딱히 피해를 준건 아니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숨겨진 진실들을 들추어내는 뜻한 단편들이다. 성장을 하기 위한 통과의례?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서 만나게 되는 진실들. 딱히 누군가에게 드러내서 말하기도 좀 낮선 삶의 숨겨진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대부분의 소설들이 형식상의 옷을 갖추어입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을 하는듯한 글을 써내려간다면 이 책은 진실은 그 안에 있는 것을 당신도 알잖아? 라고 뱉어내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작가들이 많다면? 글쎄 그것도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일듯도 하고 말이다.
[어른들끼리]는 그야말로 탈선하는 아이들처럼 아이들에게서 해방되어 탈선하고픈 부모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아이들이 여행을 갔다. 어딘가에 놀러갔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토론의 대상이 될법도 하다. 토론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수다 정도? 첫문장부터가 리얼하다.
일레인은 아이들을 플로리다로 데려가 세탁물처럼 떨궈놓는다. "열흘 후에 보자." 그녀는 터미널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말한다. "착하게 굴어!" 그녀는 시어머니의 뺨에 입을 맞추며, 입술에 닿은 거칠거칠한 피부 감촉에 문득 이 여자가 말 그대로 머리끝부커 발끝까지 남편의 유전자지도구나 하고 생각한다. "가봐라." 시어머니는 그녀를 문 쪽으로 밀면서 말한다.(13쪽)
그렇게 휴가기간을 즐기기 위한 아이들과의 이별을 한다. 아내는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데려다 주고 남편은 공항에서 기다린다. 그렇게 그들은 집에 들어오고 아이들과 나누기에는 은밀한 부부만의(?) 탈선을 하게된다. 마약을 하고 텔레비젼을 보며 침대위에 그야말로 널부러져 술을 마신다. 그리고 마약에 취해 술에 취해 딱히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른들이 여행 간사이에 아이들이 느끼는 해방감을 만끽한다. 그 해방감을 방해하는 아이들은 역시 존재한다. 칭얼거리며 전화해서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작은 아이의 말에 탈선의 시간은 서서히 사라져간다.
[조니를 찾아서]에서는 지진아인 누나를 둔 동생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지진아인 누나때문에 항상 뒷전이다. 그런 모습이 넌덜머리나지만 어쩔수 없이 살아간다. 가끔 지진아인 누나나 동생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게된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조니를 찾아서]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괴당하는 것이다. 누나때문에 스트레스 투성인 조니가 유괴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아빠없이 셋이 사는 조니는 그것이 유괴라는 생각을 못한다. 단지 엄마가 자기가 모르는 또 누군가에게 자신을 맞겼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과 동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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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휴가철이다. ‘일상 탈출!’ 이라는 말이 절실한 시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휴가를 떠나는 그 순간, 혹은 휴가를 못 가게 된 그 순간 떠오르는 말은 ‘집 떠나면 개고생’ 이라는 말이다. 매일 보던 풍경, 매일 하던 일에서 떠나고 싶지만 어느 순간 일상이 아닌 위치에 있게 되면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듯 불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안정과 불안, 일상과 비일상의 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 소설집은, 그 미묘한 균열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보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임에도 그들이 직접 ‘당사자의 입장에서’보여주는 사건들은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참을 수 없이 민망하고, 부끄러운 순간의 불안상태와 안도하는 상태를 오간다. 따라서 이 책에서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사건은 사소하지만 본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이 거대한 비일상의 사건이다. 아이가 없는 휴가를 즐기기 위해 대마초를 피우려다 경찰을 맞닥뜨리고, 폭탄 위협을 피해 회사에 나가지 못한 날, 뒤뜰의 잡초를 뽑으려다 아내의 맨드라미를 뽑고 핀잔을 듣는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여자아이는 뒤뜰에서 성적 상상을 하며 옷을 벗어제낀다. 그러다 마트에서 돌아온 엄마를 맞닥뜨린 앞에서 앞섶을 가려버리는 민망한 순간, 우연히 동생의 바비 인형에 반해버린 남자아이 등 작가는 누구나 생에 한 번 쯤은 혼자 은밀히 갖고 있는 기억들을 불러내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일상과 비일상 사이, 은밀한 균열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 <사물의 안전성>. 뫼비우스의 띠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 일상의 사물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안전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