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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날 무렵에 아는 어른들이 더러 돌아가셨다. 그래서 문상을 다녀와야만 했다. 힘들게 아픔을 참고 견디다 피붙이들을 다 보고난 다음에 마음이 풀려 저승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영하 10도를 넘게 추웠던 날씨가 설날 앞날부터 영하 1~2도로 풀린 탓에 날씨에 맞게 몸도 따라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문상을 다녀오니 아내가 같이 보자고 고른 영화는 삶과 죽음을 다룬 일본 영화다.
다키타 요지로 감독이 2008년에 만든 <굿' 바이 Okuribito / Departures>는 첼로를 켜던 사내가 고향에서 죽은 사람들을 염한 뒤 널에 넣는 일을 하면서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에 빠져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래서 우스운 대목에서도 억지로 참았다.
2. 도쿄에서 교향악단의 첼로 연주자로 일하던 다이고 고바야시(모토키 마사히로)는 구경오는 사람이 적어 악단이 문을 닫게 되자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고향 야마가타로 간다.
어느날 신문에 실린 광고에 눈이 번쩍해서 찾아간다. 여행 도우미를 뽑는다는 '엠케이 에이전트'다. 사장인 이쿠에이(야마자키 쯔토무)는 바로 묻는다. "열심히 한 번 해볼 텐가?" 다이고는 망설이며 말한다. "예..." 그런데 사장은 더 물어보지도 않고 짧게 외친다. "합격!" (요즈음 큰 배움터를 나온 이들한테 이런 일자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력서를 보자마자 더 따져 묻지도 않고 그냥 일하러 나오라 하는 곳이니...)
그 일터에서 일하는 유리코(요 기미코)한테 먼저 물어보았지만, 사장한테 다시 묻는다. "무슨 일을 합니까?" "일단 내 조수로 일하면 돼...죽은 사람을 염하고 널에 넣는 일이지" "광고엔 여행 도우미를 뽑는다고 했는데요?" "아하, 그거 오타야. 앞에 '영원한'을 넣어야 해" 죽은 사람들을 저승으로 보내는 '영원한 여행 도우미'로 다이고는 바로 뽑혔다. 그날 일당도 두둑히 받고.
3. 그런데 잘나가던 첼리스트가 납관사 일을 하는 걸 좋게 볼 리가 없다. 고향 동무인 야마시타도 다이고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그런 일을 해?" 한 마디로 쪽팔린다는 거다.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니 아내인 미카는 더 펄펄 뛴다. 널에 주검을 넣는 일을 본보기로 보여주도록 찍을 때 다이고가 모델이 되었는데, 그것을 틀어 본 아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런 일을 하다니 창피하지도 않아?"
다이고는 미카를 달래본다. "언젠가는 너도 죽고, 나도 죽어...죽음을 좋게 배웅하는 게 뭐가 나빠?" 미카는 딱 자른다. "친정에 가 있을 테니, 그 일을 그만두면 데리러 와..."
썩어가는 주검을 다룰 때는 속에서 올라오려 하고, 죽은 이의 피붙이들이 낮춰볼 때는 하기 싫었지만, 이쿠에이 사장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갈수록 다이고의 마음에 드는 일이다. 그런데 곁에 있는 이들은 말리는 판이라 다이고는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없다.
4.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문과, 죽은 이와 그 피붙이 사이에 있는 문을 열고 닫는 문지기 노릇을 하는 일에 다이고가 차츰 빠져들면서 납관 일을 죽을 때까지 하려고 마음 먹는 것만으로 영화가 이루어진 건 아니다.
납관 일이 씨줄이라면, 날줄로 아버지를 엮어 놓았다. 작은 찻집을 꾸려가던 아버지는 다이고가 여섯 살 때 바람이 나서 다른 아낙네와 떠났다. 게다가 강가에서 돌을 건네며 해마다 마음을 담은 돌을 서로 주고 받자고 아버지가 다짐을 했지만, 그 한 해로 끝이 났다. 아버지와 헤어진 어린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미움으로 바뀌어 다이고는 이제 아버지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사랑과, 삶과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버무려 놓아 맛깔스런 영화가 되었다. 다이고를 맡은 모토키 마사히로는 익살꾼 신동엽의 얼굴과 비슷해서 자꾸 겹쳐 보였고, 그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내 눈에는 사장으로 나온 야마자키 쯔토무가 더 돋보였다. 은근히 풍겨오는 무게나 멋은 아무한테나 나올 수 없는 모습이다. 복어알을 구워 먹으면서 "미안하게시리 맛있다"며 삶을 겸손히 받아들일 때의 얼굴은 보기에 좋다.
5. 죽은 사람을 널에 넣을 때까지 하는 일을 지켜보는 일은 궁금한 걸 알려주는 것이라 눈길이 갔다. 먼저 주검을 깨끗이 닦아내고 (덮여있는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닦는 탓에 살을 드러내지 않고), 맨살이 보이지 않도록 수의를 입힌 다음, 얼굴에 난 수염을 깎아주고 얼굴 화장을 해서 죽기 전에 찍은 사진과 같거나 나아 보이도록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솜씨있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놀랐다. 보기보다 손놀림이 빠르다.
장례 절차를 맡은 장례사가 따로 있는데도 납관사 일은 돈을 많이 받는지, 다이고의 달삯은 500만원이나 되어 일은 남들이 꺼려하지만 돈벌이는 괜찮은 셈이다.
염을 할 때 사람 몸에 난 일곱 구멍을 다 솜으로 막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널에 넣을 때의 주검으론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이고가 비디오를 찍을 때 똥구멍을 막는 것을 보여주며, 어느 대목에선가 콧구멍을 막는 모습도 잠깐 나오는 것을 보면, 일곱 구멍을 다 막는 건 맞는가 보다.
6. 다이고가 첼로를 켜던 사람이라서 영화 속에서 첼로로 들려주는 가락이 많다. 납관 일에 빠져들면서 다이고가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일 때 나오는 가락이나, 다이고가 있었던 악단이 들려주는 베토벤의 9번 합창교향곡은 듣기에 좋았다.
저승으로 가는 사람한테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잘 가요!" 하며 보낼 테지만, 영화 이름으로 <굿' 바이: Good & Bye>라 옮긴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굿 다음에 따옴표는 왜 붙였을까?
영화 디브이디는 화면이나 소리는 깔끔하다. 9,900원 하는 한 장짜리라 그런지 보너스론 예고편만 있어 조금 아쉽다. 잘 짜여진 영화라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영화라면, 감독이나 배우들이 나와 영화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보너스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만 가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