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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예수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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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만나서 대화를 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이 책을 펴게 되었다. 난 기독교인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 교회를 안 다녀본 사람이 없겠지만, 한때는 자그마한 교회에서 나름 열심히 학생부와 청년부의 활동을 한 적도 있었고, 그 덕에 신 구약 성서를 많이 읽고 공부했었다. 현재 머리속에는 별로 남은 것이 없지만, 그 반면 단군에 대해서는 역사에 그다지 잘 설명된 부분이 없는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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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만나서 대화를 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이 책을 펴게 되었다. 난 기독교인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 교회를 안 다녀본 사람이 없겠지만, 한때는 자그마한 교회에서 나름 열심히 학생부와 청년부의 활동을 한 적도 있었고, 그 덕에 신 구약 성서를 많이 읽고 공부했었다. 현재 머리속에는 별로 남은 것이 없지만, 그 반면 단군에 대해서는 역사에 그다지 잘 설명된 부분이 없는 관계로 잘 알지 못하고 지내오다 얼마전 한단고기와 한국사의 여러 책들을 접하면서 우리의 고대사가 얼마나 외곡되고 묻혀버렸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전통 종교가 불교라고 알았던 적도 있었다. 도교나 유교, 기독교, 천주교, 기타 여러 종교가 있지만, 사실 예수가 마리아의 아들이라면서 두 신을 따로 종교를 분리하는 것도 이해 못했으며, 유교와 미신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특히, 무당은 경멸하기까지 했다. 오행은 또 무엇이며 철학관과 무당의 차이도 몰랐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흔아홉의 무당을 상상하면 우리 나라의 전설에 나오는 무당들이 나쁜짓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듯하다.

 

우리 나라 역사가 반만년에 일본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의 주장에 의하면 2 ~3천년도 안되는 것으로 만들어 지곤 했다. 한단고기를 읽으며 우리나라 역사와 역사적 지리, 단군이 단일 왕이 아닌 여러 왕을 칭한 호칭이며, 일만년이 넘는 역사의 전통과 그 정통성, 예수의 위기는 극독되어 지는 듯 한데 왜 단군의 존재성은 인간의 사술로 없어지고 외곡되어 지는지 참 안타깝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성경내용이 단군팔조교의 내용에 많은 부분이 중복된다. 하지만, 서로 내용은 중복되지만, 성경은 분리요, 팔조교는 융합이라. 이건 좀 아이러니 하다. 아직 제대로 이해 하기 힘들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 보려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솔직히 난 그러지 못할것 같다. 아니 절대 그러지 못한다. 겨우 할수있다면 잊어 주거나 무시해 주는 정도는 가능할지모른다. 내가 원수라 생각할만한 것은 참 많다. 남녀 불평등 사상도 나의 원수이며, 호주제도 나의 원수였고, 나의 인생에 끼어든 여러 사람도 그러하지만 그저 그들과 그 법과 그 사상들도 그 것들 자체의 기능을 했을 뿐이라 생각하기로 한 것이 내가 원수에게 할 수있는 최대의 아량이리라.

 

이책을 대략적으로 읽고 난 느낌은 다시한번 다른 책들과 같이 읽어 보고 생각해보고 정리 해봐야겠다. 내가 늘 관심을 가지던 조선말의 한국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대사를 어떻게 하면 좀더 정확히 밝혀 낼수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마음이 개운하지 않아 집의 책들을 정리해서 다시한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을 검토해 보아야 겠다.

 

종교나 사상을 떠나서 한번쯤을 접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y*****i 2010.09.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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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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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고유신앙인 단군의 한철학과 서양을 대표하는 예수의 철학을 비교검토한 서적이다. 한철학을 대표하는 단군의 사상적 검토를 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100이라는 온이다. 이것은 신의 완성이라는 것으로 표현할수가 있다. 그래서 100=99+1 이다. 이에 대한 사례는 영암 월출산의 전설에서도 나타난다 영암지역의 월출산에는 99개의 골짜기와 99개의 사찰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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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고유신앙인 단군의 한철학과 서양을 대표하는 예수의 철학을 비교검토한 서적이다.

한철학을 대표하는 단군의 사상적 검토를 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100이라는 온이다.

이것은 신의 완성이라는 것으로 표현할수가 있다. 그래서 100=99+1 이다.

이에 대한 사례는 영암 월출산의 전설에서도 나타난다 영암지역의 월출산에는 99개의 골짜기와 99개의 사찰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1개의 사찰과 1개의 골짜기가 부족해서 서울이 될수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무당이 굿을 할때 쓰는 방울도 99개의 방울도 이루어져있어서 무당이라는 1개의 사람이 하늘에 대고 굿을 해야 성공적이 굿이 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99칸이라는 것도 100개칸이라는 것은 완성된신이라는 의미이므로 왕만 사용할수가 있었다.

이외에도 인천지역과 제주도 지역에서도 같은 유형의 전설이 나타나는 것을 책을 통하여 확인할수가 있었다.

 

서양을 대표하는 예수는 한마리 어린양이라는 구절을 통하여 1나의 버림받은 계층까지도 포함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종교전쟁과 마녀사냥을 그동안 벌인것이다.

그래서 이책은 단군과 예수의 만남이라는 장을 통하여 완성된 하나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은 이원론적인 구분을 버리고 특히 흑과백이라는 특성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모든것을 포용하고 소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대가 이제는 변하고 있다.

나와 남을 구분해서는 결코 세상과 하나가 될수가 없다.

우리의 고유신앙인 한철학의 하나님을 사용한 기독교와 함께 하나라는 실천을 하여야 될것이다.

내종교만 바르고 남의 종교를 헐뜯어서는 안될것이다.

이제는 그동안의 모든 사고와 체계를 다시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는 시대인것이다.

우리의 우수한 문화와 서양의 문화의 차이를 통하여 세상은 하나가 되어야 우리를 떠나 인류가 행복해질수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번 해본다.

 

우리문화와 서양문화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철학적인 고찰을 통하여 이해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일반인들에게

한번 어떤것이 올바른지 하는 생각의 전환적사고를 가르쳐줄것이다.

 

모든것을 결코 둘이 아닌 하나다라는 의미가 가슴속깊이 다가옴을 느낄수가 있었다.

 

k********8 2010.08.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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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 대화의 좋은 예를 보여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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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한겨례의 전통철학과 성경 4복음서의 예수의 가르침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단군과 예수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단군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의 참모습을 존중하고 알리며,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단군의 참 모습을 존중하고 알리는 것이 단군과 예수의 진리를 따르는 참다운 길이라 믿는다.” 그가 예수의 가르침을 재해석하는 집필 과정에서 이러한 종교 간의 대화에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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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한겨례의 전통철학과 성경 4복음서의 예수의 가르침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단군과 예수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단군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의 참모습을 존중하고 알리며,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단군의 참 모습을 존중하고 알리는 것이 단군과 예수의 진리를 따르는 참다운 길이라 믿는다.” 그가 예수의 가르침을 재해석하는 집필 과정에서 이러한 종교 간의 대화에 가장 바탕이 되는 상호존중의 원칙을 잘 보여주었다. 『천부경』 『366사』『삼일신고』등의 저자이기도 한 최동환은 한국의 전통철학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예수의 잃은 양의 비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 해박한 한국의 전통철학을 바탕으로 예수의 비유들을 새롭게 풀어주는 내용들은 흥미로왔다.

  숫자 100을 가지고 다양하게 풀어가는 철학적 우주의 원리강론은 처음 그 설명을 듣는 독자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구나’ ‘이런 사상도 있구나’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저자는 “온”이 의미하는 바가 100개의 성씨가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다는 말로 백성이란 말이 생겼다는 설명에서 새로운 것을 배웠다. 우리나라에 온전히라는 말도 숫자 100(온)에서 기원되었나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그는 100(온)을 통한 하나님 나라 설계의 원리와 통합의 원리를 성경과 한철학에서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대화하기보다는 몰랐던 내용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단 후반부에가서 그리스도교의 신론과 기독론을 설명하는 부분은 한철학을 잘 모르는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한 본문도 참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고 재미난 설명도 많았다. 그럼에도 저자가 저자서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의 내용이 2000년 동안 그 많은 신학자들이나 종교인들이 풀지 못했던 복음서 예수의 “참”진리를 드러낸 것이라고 선뜻 동의하기는 좀 주저된다. 예수의 가르침은 예수의 삶과 실천, 그리고 그의 죽음과 동떨어져 그 비유에 대한 해석만으로 뜻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복음서는 예수를 한 명의 현자가 아닌 메시야로 소개하고 있지 않다.

  자신의 깊은 철학적 성찰과 예수의 비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다양하게 보여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주체적 관점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동양과 서양의 대화에서 중요한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l*******h 2010.09.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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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예수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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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예수의 대화"라는 제목이 강하게 나를 끌어 당긴다. 현재 기독교사상은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이 되어있는데 반해 단군은 우리의 시조로서만 남아있어서 굳이 비교를 한다면 태양아래 반딧불정도라 해야 할까? 이러한 현재의 위상이 상이한 두분의 만남과 대화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동양과 서양의 종교가 어떻게 서로의 사상을 관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거기에 앞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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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예수의 대화"라는 제목이 강하게 나를 끌어 당긴다.

현재 기독교사상은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이 되어있는데 반해 단군은 우리의 시조로서만 남아있어서 굳이 비교를 한다면 태양아래 반딧불정도라 해야 할까? 이러한 현재의 위상이 상이한 두분의 만남과 대화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동양과 서양의 종교가 어떻게 서로의 사상을 관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거기에 앞서 우선 저자가 단군과 예수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결론은 단군과 예수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다고 결론지었다. 

 

단군과 예수의 갈등은 누가  일으키고 있는가?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유일신 사상의 개신교의 도발로 인해서 갈등이 만들어졌고 키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단군과 예수의 갈등이 그들의 철학과 사상들의 차이에서 온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책의 저자가 말한 단군과 예수의 대화가 이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을 들어다보면 메아리처럼 공허하기 그지없다. 이원론과 유신론과 범신론과 범재신론등의 이론을 열거는 했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4대복음서안에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철학과 신학의 이론 체계를 발견하여 기존의 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의 과정을 발견했다고 하는 것도, 또 100= 99+1 의 원리에서 단군과 예수의 사상이 같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뱀과 비둘기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비유를 천부도와 연결하여서 100=45+55이며 이것이 우주의 암호라고 말하는것도 동의할 수 없으며 나아가 저자가 이책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담긴 진리는 복음 안에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과 신학이 전혀 접근도 하지 못한 양극단을 통합하는 대진리가 숨어있다.(P128)

그러나 과연 이말씀이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과 신학이 전혀 접근도 하지 못한 대진리일까?

예수의 말씀이 다른 여타종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위대하고 놀라운 가르침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유보한다.

 

이책이 필요한 사람은 개신교인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단군과 예수가 사상적으로 닮아있기때문에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단군과 예수의 갈등은 철학과 사상의 갈등이 아닌 그것을 배우고 따르는 사람들의 오만과 독선에 의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남의것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것만 인정받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욕심에서 생겨난 갈등, 이런점에 대해서 저자는 어떤 고민을 하였는가 물어본다.

j*****6 2010.09.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