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루스 리 혹은 이소룡은 몇 되지 않는 작품으로 거의 신화의 반열에 오른 무도인이자 영화배우입니다. 체 게바라, 모택동, 호치민 등과 동렬로 위인전기에 포함된 것은 좀 재미있기도 합니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절권도를 수련하는 백인 수련자가 이소룡이 무도인으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괴성만 내지르는 액션 영화배우로 취급되어서 불만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럴 정도로 그가 남긴 영화 속의 이미지는 매우 강력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이소룡의 생애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데, 딱딱한 서술이 아니라 소설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홍콩에서 안정된 스타의 길을 갈 수도 있었을텐데 미국행을 과감히 결심한 것이나 신체적인 핸디캡에도 끊임없이 노력해서 일가의 무도를 이룬 점 등 배울만한 점이 많은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대순으로 서술되고 있는 전기에서 무도인으로서의 이소룡의 사상 같은 것도 서술되어 있고, 그가 홍콩과 할리우드에서 찍은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망유희'의 촬영이 30퍼센트 정도 진행되었을 때 조연인 한국인 배우가 시나리오가 태권도를 모독하는 내용이라고 항의를 해서 중단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재미있습니다. 책 끝에는 절권도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간단한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중간중간 흑백 삽화가 실려 있는데, 그냥 이소룡의 사진이 실렸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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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중 아들의 글> 홍콩의 무술 영화를 업그레이드 시킨 사람. ‘아뵤~!’ 소리를 내며 날렵한 동작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사람. 지독한 근시에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보다 2.5cm나 짧다는 신체적 약점도 극복한 무술인. 바로 이소룡이다. 비록 3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사람들에게 그는 우상이 되고 영웅이 되었다. 1940년 11월 2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소룡(브루스 리)은 태어났을 때부터 사람들을 좋아했다. 혼자 있을 때는 병원이 떠나갈 듯이 울다가도 사람들이 들어오면 방실거리며 웃었던 것이다. 리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였던 아버지를 따라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또, 그는 아버지가 하고 있던 태극권을 따라 하며 의사가 되고 싶어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다. 이소룡은 그의 부모님이 원래 살고 있었던 홍콩으로 돌아온 뒤,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리는 그의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과 싸우게 된다. 사실 그 학생은 쿵푸 유단자였고, 이소룡은 그의 부모님께 쿵푸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결국 그는 태극권으로 갈고닦은 실력을 쿵푸에 쏟게 된다. 이후 그는 영춘권 등 다른 무술도 배우다가 결국 점점 싸움꾼이 되어 갔다. 하지만, 리는 무술 수련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당랑권, 소림권, 권투, 공력권 등 다양한 무술들을 익혔다. 리가 싸움꾼이 된 이후로, 그는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불량배들 때문에 가족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리는 싸움에서 다른 도전자를 묵사발로 만들고, 무일푼으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 그는 기무라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 친구의 영향으로 워싱턴 주립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전공 교과는 철학이었다. 리는 기무라와 같이 무술 도장을 열었다. 그는 자주 결투에 휩싸였지만, 리는 슬기롭게 이겨 냈다.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던 리에게 한 가지 행운이 찾아왔다. 무술 대회에 초청을 받은 것이다. 그 곳에서 리는 자신이 창안한 무술인 절권도를 선보이며 유명해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무술 시범을 펼쳤다. 무술 시범을 펼치던 중, 리는 린다 에머리라는 처녀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돈에 쪼들렸고, 설상가상으로 리의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리는 <그린 호네트>와 <귀여운 여자>, <롱 스트리트>에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찬밥 신세였던 그는 결국 홍콩으로 돌아가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처음에 서술했듯이 홍콩의 영화 촬영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영화 한 편당 제작비가 할리우드의 10%에 불과했고, 정해진 일정이 없이 즉흥적으로 제작되었으며,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엉성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어 했던 그는 홍콩에서 <당산대형>을 촬영한다. 이후 엄청난 인기몰이 속에서 리는 중국인을 무시하는 일본인을 혼쭐내 주는 두 번째 영화 <정무문>을 촬영한다. 이소룡의 몸값은 수십만 달러로 치솟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그는 세 번째 영화 <맹룡과강>을 찍는다. 그의 세 영화는 파산 직전에 놓인 그의 소속사를 살릴 정도로 엄청난 돈을 끌어들였다. 이후 그는 새로운 영화사를 차리고, 무술의 대가들과 결투하는 내용의 영화 <사망유희>를 찍다가 여러 사정상 중단된다. 리는 마약 밀매단을 소탕하는 이야기를 담은<용쟁호투>를 찍게 된다. 그러나 이소룡은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두통에 시달리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의 삶 속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하나 있다. 타오르는 집념이다.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에는 싸움에 휘말렸고, 영화를 찍을 때에는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무시당했다. 어쩌면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죽기 2년 전에야 겨우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당산대형>을 내놓았고, 그 전에는 단순히 조연 배우였다. 하지만, 그는 열정 하나로 다양한 무술을 이용하여 절권도라는 무술을 만들고,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았다. 한계를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소룡의 이야기를 읽어볼 것을 권장한다. 분명 한계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