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앨범은 당대악기(period instrument)를 사용하여 연주한 Vivaldi 협주곡집이다. 유명한 "사계"를 포함하는 "창의와 화성에의 시도" 작품 번호 8번과 "La cetra" 작품 번호 9번을 망라하고 있다.
2003년 본 앨범의 등장은 시장을 경악에 빠지게 했다. 연주의 위대함때문에? 물론 연주 좋다. 그러나, 본 앨범에 담긴 연주들은 1987년-1990년도에 녹음된 것들로서, 이미 시장에 선 보인지는 꽤 되었다. 그렇다면?
4 pleasure 시리즈로 나왔기 때문이다. 4 pleasure? 4장을 한 장 가격으로! 놀라지 마시라. 16000-18000원 정도만 내면 4장의 CD가 포함된 본 앨범을 살 수 있다. 장당 가격이 고작 4000원 정도 선이다. Brilliant나 Naxos도 아닌 메이저 레이블인, Virgin-EMI 레이블이 이런 걸 내놓다니. 시장의 변화가 온 몸으로 느껴진다.
음반업계의 불황이 심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게 중론이다. 본 앨범은 기존의 메이저에서 나온 버짓(budget) 음반들과는 그 궤를 좀 달리하고 있다. 우선 녹음부터가 DDD다. 50-70년대 아날로그 음원도 아닌 것이 벌써 버짓, 아닌 수퍼 버짓으로 시장에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당대악기 연주다. 당대악기 연주 녹음이 거슬러올라가면 70년대까지도 가지만, 인기를 얻은 것은 최근이다. 따라서, 아직 메이저 레이블의 당대악기 녹음은 버짓으로도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데카의 호그우드의 앨범 정도가 2 for 1으로 많이 풀렸을 뿐, 아직 그다지 많지 않다.
연주 역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좋다. 사계는 워낙 대중적인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이 음반이 선두를 다툰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심지어 당대악기 연주로만 카테고리를 한정시켜도, 그렇다. 벌써 머리에 떠오르는 음반만 해도, 파비오 비온디의 음반들, 카르미뇰라의 음반들 및 일 지오디노 아르모니코의 음반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차이라는 것이 종이 한 장 수준이다. '여기서 좀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좋을텐데'라든지 '독주가 좀더 강했으면'하는 정도의 수준 정도의 아쉬움이 있는 정도일 뿐, 연주는 분명 상위권에 속한다. 그리고, 락(rock)적인 강렬함보다는 단정함을 찾는 청자라면 분명 본 음반이 제격이라고 생각된다. (본인은 강렬한 연주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아르모니코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
사계 연주는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3장의 연주 수준은 분명 최상위급이다. 특히 CD3과 4에 담긴 La Cetra 연주는, 다른 비교음반이 수중에 없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좀 곤란하지만, 이제까지 들어본 비발디 음반들과 비교해볼 때 동곡 연주들 중에서 분명히 최상위급으로 평가받을만하다는 게 본인의 판단이다. 펭귄 가이드에서도 별 셋을 준 연주다.
이런 연주들을 이렇게 싼 가격에 소유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음반구매자 및 음악애호가에게는 축복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음반이 출현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음반 업계의 불황도 신경이 쓰인다. 앞으로 좋은 연주의 음반이 새롭게 계속 나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 이익이 눈에 보여야 할텐데, 이와같이 경쟁 상대들이 연주면 연주, 경제적 측면이면 경제적 측면, 어느 모로 보나 버거워 보이는 수준으로 시장에 속속 포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연 음반사의 프로듀서는 본 음반을 본 후에 La Cetra의 새로운 녹음을 시장에 내놓을 생각을 하게 될까? 정말 혁신적이지 않고서야 경쟁하기 너무도 벅찬 상대가 아닐까?
하긴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또,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니...
아무튼 본 음반을 구매하면서 본인이 결심한 게 있다. 그래, 클래식 음반을 구매할 때는 장당 10,000원 이하가 되도록 조합을 해서 사기로 한 것이다. 그만큼 좋은 음반들이 싸게 속속 새옷을 입고 시장에 들어서고 있다. 클래식은 더이상 부자를 위한 음악이 아니다! 오히려 재즈 음반을 수집하는게 더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CD 한 장이 10000-13000원 정도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관념이 잘 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음반사들이 만들어 놓은 이상한 기준. 그것이 지금 깨지려하고 있다.
마침 유니버셜 음반사는 최근에 자신들의 CD 가격을 20-30% 낮추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단 클래식은 제외 - 클래식음반은 이미 상당수의 음반이 그렇게 낮춰진 상태에서 출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글쎄 더 낮춰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