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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는 음울한 비석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체호프(마흔 한살의 나이로),고골,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표도르 샬라핀(오페라 가수)이 오르페우스처럼 지하에서 노래를 부른다. 한쪽에는 제일 크고 호전적으로 생긴 묘석 아래, 단 한 명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독실했던 흐루쇼프(1953~64년, 스탈린 사후 공산당 제1서기장에 오른 최고 권력자)가 누워 있다. 묘지는 찾아오는 이 없이 버려졌다. <본문, 예술가의 묘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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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라는 느낌은 나에게는 항상 이질적이었다. 고리끼의 러시아는 항상 음울하고 우는 아이들에게 흑맥주나 먹였다. 너무 넓지만 쓸모있는 땅이라고는 바이칼 호 근처와 유럽에 면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그리고 흑해 연안의 땅 정도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너무 넓어서 사람의 생명이 아무 것도 아닌 느낌이 드는 땅이다. 예전에 친구가 쾰른 대성당에서 사진을 찍어 왔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건물을 짓느라 얼마나 많은 뼈와 살을 묻었을까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마찬가지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에르미타주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압제와 암살이 판치는 나라, 알렉산더 네프스키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도 못했을 나라, 그러나 몽골을 제외하고 그 어느 누구도 슬라브 족이 아닌 이민족이 지배하지도 못했던 나라....
그 넓은 시베리아를 용병으로 하여금 불과 100년도 안되어 지배했던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고 성능이 뛰어난 기계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인 짜르를 몰아내고 전인미답의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나라이자 그 모든 혁명 정신을 뒤로 하고 자본주의의 쓰레기들로 도배된 나라에 나는 동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러시아의 날씨는 극단적인 여름과 극단적인 겨울로 나뉜다. 그러한 극단적 러시아는 지금도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 넘치는 천연자원으로 유럽을 옥죈다. 그리고 상류층은 미친 듯이 살이 찌고 그 상류층 밑에서 러시아 마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KGB출신인 푸틴은 자신의 반대파를 아주 쉽게 암살하고 러시아 국민들은 그대로 침묵한다. 테러와 전쟁이 도처에 있고 한 번에 2-300명은 쉽게 죽는다. 옐친이 만든 지금의 러시아는 생기가 전혀 없다. 도시와 시골 모두 죽어간다. 단지 유가와 천연가스의 폭등으로 지금의 러시아는 생존했을 뿐이다.
‘백년보다 긴 하루’에서의 러시아는 그래도 살 만했다. 그러나 리처드 와이릭이 쓴 ‘너의 시베리아’에서의 러시아는 죽어가고 있다. 이 나라에서의 시간은 과연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의 종교적 삶 또한 전혀 없다.
술에 취해 있는 남정네들과 탕녀처럼 변해버린 전형적인 러시아 미녀들만이 존재한다. 특히 작가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러시아 문학에 대한 지식과 50살이 되어버린 작가의 깨달음이 시베리아의 자연환경과 섞여 산문이 일종의 시처럼 변한다. 시베리아의 모든 시공간이 얼어붙었다.
이제 수많은 고아들은 해외로 입양되는 것을 기다릴 뿐이고 이 희망 없는 공간을 바꾸기보다는 통제하려는 정치인들이 보일 뿐이다.
작가는 수많은 여정과 역경을 이겨내고 그의 새로운 아이와 대면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조리에 대하여 완벽하게 담담한 목소리를 낸다. 오히려 그 담담함이 더 잔인하다. 잔인하게 그네들의 삶이 시시포스의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음을 웅변한다.
저자의 내밀한 고백과 낯선 시베리아의 풍광 속에서 만나는 값진 성찰들은 입양한 <아이>를 통해 진실의 빛을 던져 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는 예측할 수 없는 무한한 것들이 늘 도처에 널려 있음을, 관심 속에서만 그 차가움은 우리에게 놀라운 따뜻함을 안겨주리라는 믿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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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말하는 동쪽 한 귀퉁이의 미개한 나라의 이야기에 (그곳에 살고 있는 나는) 책을 읽으며 내내 불편했다. <너의 시베리아>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시베리아는 무법천지의, 마약쟁이의, 가난의 얼음투성이 척박한 땅이다. 시베리아를 고향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겐 불편한 현실이다. 아니다. 이젠 아멜리아를 입양하러 가는 마음으로 다시 책을 읽는다. 자신의 새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소중한 아이를 잉태한 시베리아라는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아무리 가지려 한 대도 차가운 공기, 눈, 그곳만의 태양이 만들어낸 풍경을 아멜리아는 더는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멜리아는 더는 마약쟁이의 아이를 낳지 않아도, 끔찍한 사건 사고를 겪지 않아도 될 터다. 아이를 특히 딸 아이를 가진 아빠의 눈에는 현실이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훨씬 더 과장해서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게 이 책을 읽으며 불편했던 것의 원인이다. 시베리아 여행기는 많다. 사진집도 있고, 그곳의 곰을 비롯한 야생의 것을 다룬 기행문도 많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곳의 정보만을 따진다면 책은 인터넷만 못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받아 안아야 할 어린 생명을 대하는 느낌으로 시베리아를 겪고 쓴 책이다. 시베리아는 내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곳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조금은 다른 여행을 생각해본다. 그곳에 할아버지나 삼촌, 어쩌면 어린 생명을 만나러 가는 여행을 그려본다. 그런 내게 시베리아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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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하면 어떤 단상들이 떠오르시는지요? 동토의 땅, 끝없이 펼쳐지는 설경, 타이가기후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을 찌를듯한 침엽수림들, 특히 자작나무길~~ 우랄산맥 동쪽의 문화적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곳. 그리고 러시아문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죄수들의 유형지..... 그런 단상들이기에 밝고 맑은 느낌보다는 침울하고 침체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 그런데, 여기 우리들에게 '시베리아'를 좀더 정확하게 알려주는 책이 있으니 그 책은 '너의 시베리아'이다.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와이릭'은 작가이면서 변호사이다. 일때문에 방문하곤 하던 시베리아에서 그곳의 고아인 '아멜리아'를 입양하게 되면서 그 딸에게 남겨주고 싶은 일종의 선물의 의미로 쓰게 된 책이다. '아멜리아'가 성장한 후에 자신이 태어난 곳인 '시베리아'를 정확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그곳의 모든 이야기들을 책으로 담아 낸 것이다.
'리처드 와이릭'은 2004년부터 2005년에 걸쳐서 아멜리아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시베리아를 새롭게 조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시베리아는 과거 유형지였던 황량한 땅이 아닌 '약동하는 신화의 땅', '역사적 탐험과 지혜의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미국 변호사가 시베리아 고아를 입양하기 위해서 떠난 여행중의 에피소드를 담은 좌충우돌 여행에세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정을 따라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전달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류의 여행에세이가 많이 출간되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을 펼쳐든 순간, 설명식의 에세이가 아닌 짤막짤막한 100 편의 이야기가 너무도 담백하고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로 쓰여져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 이야기들은 시베리아의 대자연, 역사, 사회, 정치, 문화, 신화, 전설, 민담, 전통 등을 총망라한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시베리아의 백과사전'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들로 짜여 있었다. 바이칼 호수의 신성한 생물들의 이야기. 철갑상어, 비버, 여름벌레, 얼음호박, 야생화.... 아름다운 풍경들. ![]()
![]() ![]()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실의 비참한 최후, 곰 7 마리에 의해서 살해된 일가족 이야기. 체첸 무슬림의 이야기.... 이 책이 아니면 접해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글들은 시베리아로 우리들을 조금씩 다가가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아멜리아의 입양기로 시베리아의 현실상황을 많이 알려준다. 시베리아의 고아들의 이야기가 가슴이 찡해온다.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리처드 와이릭'과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입양이 된다면 운이 좋은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아이들의 앞날은 너무도 비참하기에.....
우리들의 정서로는 입양을 한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처럼 생각되고, 고아들에 대해 무관심한 편인데 반하여 서양인들은 자신의 국가의 고아들이 아닌데도 이렇게 어려운 입양절차를 거치면서도 자신의 아이로 받아 들이고 있다. '리처드 와이릭'은 그것도 부족해서 자신의 딸 '아멜리아'에게 자신이 느낀 시베리아를 고스란히 책에 담아 남겨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먼훗날에는 '너의 시베리아'가 '아멜리아의 시베리아'가 되어 그녀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 책 속의 글들이 담백하고 정서적이며, 아름다운 문체로 쓰여진 것과 같이 삽화들도 채색되지 않은 삽화들로 시베리아를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이것 역시 '리처드 와이릭'이 폴란드 출신 인류학자이며 삽화가인 '예루힘 크레이노비치'의 책에 실린 것 중에서 선정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혹시라도 미국인의 시각에서 시베리아를 왜곡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베리아 관련 연구소를 뒤진 끝에 찾아낸 삽화들이라고 하니, 작가의 열정이 돋보이기도 한다. 한 권의 책으로 인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시베리아의 많은 부분들도 알게 되었고, 입양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가지게 되었으나. 그런 것보다도 이 책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멜리아'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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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라는 단어에서는 그 자체로 몹시 차가운 겨울이 느껴진다. 동토의 땅이라고 흔히 말하는 딱딱하게 얼어붙은 혹독한 그런 차가움 말이다. 저자는 입양을 위해 러시아를 가게 되고 또 러시아 내에서도 시베리아까지... 2년이란 시간동안 입양절차를 위해 그곳을 방문하면서 이 책은 그렇게 쓰여졌다.
러시아라는 나라와 시베리아가 함께 연관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이야기로부터 크고 다양하며 알수없는 나라 러시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많은 부족이 살고 있는 땅, 그리고 그들의 전통과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 러시아인가보다. 그들의 동물 사냥이나 부족의 전통적인 무기 혹은 풍습같은 이야기는 에스키모나 인디언의 이야기들과 언뜻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전통과 더불어 잔인한 러시아의 현실이 그대로 전해진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다는 불법택시, 의사가 마취제를 병째로 빼돌리는 현실, 아이를 돌보는 보모들도 젊은 여자라면 서슴없이 매춘을 하고 마약을 하는 러시아의 어두운 면까지 모두 드러난다.
나같은 범인은 이런 러시아의 상황에서 긴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아이를 입양하는 수고를 견디지 못했을텐데.. 이 부부는 불법택시가 추운 길가에서 퍼지고, 고아원 원장의 야릇한 시선과 대화를 참으며, 터무니없이 비싼 호텔비를 지출하고, 아무 이유없이 법령이 바뀌어 입양이 대책없이 미루어지는 이런 한숨 나오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결국 아멜리아라는 천사를 맞이하게 된다.
아마도 시베리아의 웅장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런 수고에 대한 작은 보상이지 않을까~
이국적인 문화, 그리고 부패한 정권과 현실에 찌든 상황을 보면서 그때 그때의 느낌을 살려 간결하게 적은 글들은 마치 그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착각도 들게 된다. 다양한 스탬프를 찍은듯한 삽화들이 더욱 글을 풍성하게 만들고, 글은 그런 그림을 더욱 생동감있게 만든다. 시처럼 짧은 글들이 묶이면서 산문이 되고 서사시가 된다. 그의 시베리아, 그리고 그의 딸의 시베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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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변 훈련
고아원 아이들은 앉을 수 있는 나이만 되면 변기에 앉혀진다. 정확히는 단지랄까. 서양에서와 같은 플라스틱 아기용품이 아니라, 버려지거나 눌어붙어 못 쓰게 된 주방용 단지라서 그을음도 묻어 있다. 그 변기의 긴 열을 지나가는데, 올라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중 하나는 일어나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여기 마타(보모)들이 무서운지 휙 한번 노려보자 여자아이는 바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랑은 그 집을 배설의 장소에 짓는다." 예이츠의 시 [미친 제인이 주교와 얘기하다] 의 한 구절. 아름다움은 더러움이 있어야만 가능함을 역설한다. 먼저 아이들은 스스로를 달래는 법을 배운다. 불이 꺼진 후에는 울음을 터트려도 무시될 뿐이다. 일찍 시작되는 엄격하고 일관된 배변 훈련이 두 번째로 우리가 놀란 점이다. 나중에 입양아들이 이 변기와 비슷한 것만 봐도 움찔한다는 얘기가 많다. 세상에 나온 우리가 처음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밀어내버릴지'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그 밖의 모든 것들도 틀이 만들어져버린다. 처음에는 분노를 터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긴급하고 순수하고 직접적인 목소리를 밖의 어둠 속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고 오지 않는다. 차가운 금속 테두리가 궁둥이에 자국을 남긴다. (261-262)
표지 색감이 좋아서 어떤 내용인지 알기도 전에 표지와 제목만으로 이건 꼭 손에 넣고 말겠어! 한 책. 고아원과 입양에 관심이 많은 내게 포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아 현대 러시아의 세태를 구석구석 그려내고 있어 어느 순간 머리 안에 들어있는 톱니바퀴가 작동- 단순히 <입양기>라고 하니 입양의 과정만 담겨져 있나 보다, 했는데 펼쳐보니 다양한 시베리아 이야기가 한가득 들어있다. 그래도 역시 나의 심장이 뜨겁게 반응을 보인 곳은 <신은 어린이다>에 담겨져 있는 짤막한 글들.
아이는 잘 크고 있겠지. 아름답고 튼튼하게.
우리나라는 입양에 대해서 아직 오픈마인드가 아닌지라 입양 이야기만 나오면 불편해한다. 특히 가까운 이들이 입양을 직접 하겠노라 한다면 핏줄을 중시하는 고루하고 편협한 전통관을 슬며시 들이대며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권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직까지 한참 멀고 멀었다고 할 수 있겠지. 리처드 와이릭이 딸을 입양한 시기가 2004년에서 2005년 사이. 당시 러시아에는 50만 명의 고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몇 명의 고아들이 있을까.
고아원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고등학교 졸업하기 바로 직전. 그 아이들은 여러모로 결핍으로 가득한 존재들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고아원에 몇 차례 다니면서야 고아원이란 시설과 고아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너의 시베리아]를 읽는 동안 나 사는 일에 바빠 멀찌감치 치워뒀던 관심의 불꽃이 다시 타올랐다. 더 많은 아가씨, 아줌마들의 필독서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글쓴이도 이야기하지만 '고아원'이란 곳은 역시나 여성들의 공간인듯, 전세계 어디를 가나 남성들의 보다 많은 참여가 필요하겠다. 환심 사려고 할 때만 가지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