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유럽 역사를 읽다 보면, 항상 마주치는 게 이슬람 산적들의 이야기이다. 비잔틴 황제 헤라클레이오스가 사백 년의 숙적 사산 페르시아의 숨통을 끊고 마침내 알렉산더 이래 처음으로 동서통합제국을 세우려는 그 순간, '(마지막) 예언자'의 홀연한 등장, 그 기치 하에,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셈으로 베팅한 돈 일시에 날리고는('대부3'에도 대사로 나오는 유명한 말처럼 "All bets are off!")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주저앉게 만든 사라센, 내부 갈등의 연속과 새로운 the establishment의 등장(물론 옴미아드 왕조의 개창을 말함)으로 인해 계층 이동, 신분 상승이 곤란하게 되자 그 남아돌아가는 정력을 주체할 수 없어 만만한 인근으로 노략질의 캠핑을 떠나는데(시대와 공간을 현격히 달리하나 戰國시대를 거친 일본에서 쏟아져 나온 倭寇도 이의 일종이다), 당시만 해도 그저 미개의 호구였던 유럽은 이들의 가장 탐스러운 사냥터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이 딱히 산에만 은신해 있던 것은 아닌데도 '산적'이라 불린 건 인문학 서적의 번역문제이며, bandit는 항상 산악 지대에만 고정 거처를 둔 定義는 아니다. 물론 떼도둑놈들이 지상의 공권력을 피해 은신하기에 산보다 더 좋은 곳은 없고, 역으로 아프간이나 호라산 지역1)의 예에서 보듯, 험준한 산악 지형은 체류자의 '근성'을 길러주는 환경결정적 팩터 노릇도 하기 때문에, 산적이 산채를 만들고, 산채가 산적을 다시 낳아 기르는 법2)이라는 건 뭐 부인할 수 없겠다.
혼란한 세상, 기본적 룰과 사회계약이 강자, 지배층에 의해 무너지고 파기되기 시작할 때, 핍박받는 민초 중 태생의 완력 혹은 드센 심적 기질깨나 타고난 분자들은 반역을 꿈꾸기 시작하며, 그의 현실화가 용이치 않을 때 민중은 설화를 지어내어 비장한(...) 대리만족을 시도한다. 나는 근래 '파이(원주율)의 근삿값을 구하는 과정은 인류 문명 발달사 그 자체'라는 다소 과감한 言述도 보았거니와, 그런 맥락에서라면 구비문학의 본령은 어찌보면 '도둑놈 찬송가' 장르일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한다 해서 과히 억단, 억담도 아니지 싶다. 해서, 유럽인들에게 산적의 '제대로된' 원형은 아마 사라센일 것이라 추측하고, (바로 그 산적은 아니라도)사라센과 오랜 기간 터전과 호흡을 같이한 이베리아 반도인들의 마음에선 이미 천 수백년 후의 '뒤집힌 영웅' 캐릭터가 싹트고 있기에 넉넉했으리라.
조로는 그런 의미에서, 결국 유사 이래 줄곧, 각성 없는 어리석은 대중의 현실도피적 resort로 삼아지던, 뻔하고 식상한 장타령격 판타지의 주인공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 특이한 건, 본디 그 배경, 태생이 라틴 아메리카인데다 대단히 전근대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시기는 19세기로서 훨씬 말쑥한 입체적 성격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었음- 전승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본래 원작자가 미국의 일개 통속소설작가에 지나지 않았던 탓이 큼), 오랜 동안 美 본토에서까지 이 아이콘이 사랑 받아 왔다는 점. 앵글로색슨은 본래 불만이 있으면 대화를 시도하고, 상대가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바로 tea party 같은 걸 열어 그대로 들어엎어버리는3) 화끈하고 뒤끝없는 종자들이라서, 현실에서 패배한 채 '우리는 뒤에서 욕하지롱♬ 것도 모르는 나으리 니네는 개병신' 같은 마스터베이션 블루스를 읊는 찌질이들과는 그 함양된 정서 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데도, 여하간 이 조로는 코믹이건 소설이건 디즈니판 애니이건 세계 문화의 주변부 아닌 코어 벨트에서 꾸준히 리사이트되어 왔다는 점은 다소 이례적이다. 물론 1990년대 후반 '마스크 오브 조로' 등등 각종 '조로물'이 등장했다가 早老하고 사라진 건, 당시 미국을 휩쓸었던 라틴 열풍의 유행이 있었던 이유뿐인데, 리키 마틴이나 산타나(생각해 보니 이 영감은 그 압도적 구력 면에서 뉴비들과는 비교가 안 되기에 명단에서 빼야 옳지만, 여하간 영감이 갑자기 회춘한 건 유행 덕도 있었다는 점 지적), 혹은 제니퍼 로페스, 심지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역시 차별 받는 소수민족의 '조로'로서 그처럼 떴을 따름이라는 것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겠다. 몇 년 전에는 '마셰티'라고 해서 역시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양키들을 거리에서 확 쓸어버린다는 라틴 영웅 캐릭터가 부각되었는데, 이 역시 대중의 각성 못한 무의식이 빚어낸, 조로의 '일그러진 병신 버전'에 불과하다.
도둑놈은 그저 도둑놈일 뿐이고(출신이 귀족이든 뭐든 무관. 출신이 귀하다면 고작 그런 해결책을 택했다는 점에서 더 비난받아야 하고, 그 한심함에 비레해서 종놈근성의 비겁추종자들은 더 요란을 떨어댄다) 도둑놈이 대신 풀어주는 한이란 결국 무고한 어느 타인에게 또다른 tort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 철지난 조로 타령은 결국 죄 없는 강아지 발로 차는 못난 밑바닥 말단의 쓰레기자위질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인류 역사상 당분간은 저능아의 출생이 근절될 기미가 안 보이듯, 현실에서도 조로 타령의 반복 변주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를테면 제 일상의 좌절을 끊임없는 블록질로 도피하려는 꼴뚜기의 정치 타령도 그에 속한다. 이 자는 60년 전 한반도에 戰禍를 몰고 왔던 역사의 사생아, 비뚤어진 꼴통 스탈린 워너비였던 김일성이를 두고 극구 찬양을 하는 부류인데, 그 못난 하빠리 종놈 근성으로는 만주에서 마적질4)이나 하던 도둑놈이 민족의 태양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전과자나 보고 자란 인생이 늙어서건 먼 눈이 새삼 뜨일 리가 있겠는가. 이 자는 제 또다른 우상으로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을 심심하면 입에 올리는데, 과연 지하에서 그가 이런 따위의 숭배찬양에 대해 달가워나 할지 지극히 의문이다. 꼴뚜기의 면상에서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듯, 이런 자는 분위기가 유리할 때나 누가 제 성향이랍시고 과시하듯 떠들어대기 마련이고, 행여 대세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숨어서 꼬릴 내리고 제 상전을 부인하는 더러운 기회주의 근성이 그 못난 쏘가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
ps 1 영화는 들롱의 신나는 활극이며, 영화가 그를 필요로 하는 만큼이나 그의 필모그래피가 이런 영화를 필요로 했다 할 만큼, 배우와 영화가 환상의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ps 2 '조로'는 스페인어로 '여우'라는 뜻이며 따라서 본 발음은 '소로'가 맞겠다. '사파타'가 '자파타'가 아니듯, 우리에겐 매우 어색하지만 언어학적으로 사실이고, 다만 매컬리의 캐릭터명임을 분명히하고 싶을 때에는 라틴권에서도'조로'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ps 3 그제 죽은 게리 무어에 대해서는 뻔히 하는 이야기말고 나중에 내 버전으로 썰 좀 풀겠다. 다만 지금 내 별수가 심각히 부족한 형편이라 리뷰 말고 일반 포스트는 쓰기가 좀 곤란하단 점 양해바람.
1) 모르는 사람은 내 블로그의 태그 참조. 2) 이런 말이 본래 있는 건 아니고 명언제조기인 내가 지금 만든 말. 3) Boston Tea Party 말인데 모르면 네이버 찾아 보길. 4) 독립운동 한번에 마적질 열번이면 그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그냥 도둑놈이다. 마적이란 조선인 포함해서 일반 백성, 양민을 뜯어먹는 놈들인데, 이런 걸 옹호하는 인간은 세상이 한번 뒤집어질 때 강자에 빌붙어 팔자를 고치려는 덜떨어진 꿈을 꾸는 인생낙오자라고 할 수 있다. 믿을 만한 소문에 의하면 이런 자들은 다 꼴뚜기의 면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
|
이 영화는 알랑드롱의 50살 기념작품인 것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대구의 제일극장에서 본것으로 기억된다.영화를 볼 그당시는 독특한 주제가를 앞세워 알랑드롱이 악한들을 물리치는 통쾌한 영화 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조금 싱겁다. 하지만 당대 최고 꽃미남 알랑드롱을 보는것 만으로도 본전치기는 할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