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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하고 적당히 세상에 비관적이었던 나의 젊은 시절 대학 졸업장을 받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졸업식장에서 졸업가운을 반납하며 출발할 때, 나는 새로운 기회에 한껏 부풀었고, 마음껏 내 세상을 펼치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었다. 그렇게 자신 있던 내가 시간이 지나감에 하나둘씩 나 자신에게 실망하며 그 끈을 놓고 있었을 때, 왜 나는 공부를 하면서 설레지 않을까. 왜 나는 지적인 유희를 느끼지 못할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에게는 그 전공이 맞지 않았고, 그 공부는 나 자신을 위함이 아니고 다른 사람 즉,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알고 난 후에는 공부가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당장의 시험과 리포트 작성들이 걱정으로 다가왔다. 초조하기 시작한 나는 깊은 갈등에 빠졌고, 학비에 생활비에 돈을 보내 주시던 부모님께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친구와 대화도, 술로도 해결 못 하는 이 문제를 하루는 긴 여행으로, 하루는 밤에 강가를 어슬렁거리며 방황하기도 했고, TV에 내 몸을 던져, 아무 때나 이유 없이 폭식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도망갈 수는 없었다.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저 밤하늘의 둥근 달에 한숨만 불어넣고 있던 어느 날,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그래 모든 걸 다시 시작하자, 처음부터 다시 아주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교 실력으로 초보자가 되는 거다. 한 번 봐서 모르면 두 번 보고 세 번 봐서 꼭 몰라도 되니 계속해서 보자하며 무지한 주문을 걸었다. 대학원 강의시간에 남들이 전공서적(Computer science)을 볼 때, 나는 중학교 수준의 파스칼 랭귀지를 다시 시작했다. 남들의 눈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했던 건 내 공부 수준이었다. 나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내가 공부하는 교재보다는 기초교육이 다급했다. 그 후에 난 몇 개의 낙제점수를 맞았지만, 다시 재수강하여 그럭저럭 그 과목들을 이수했다. 애초에 이 전공을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성실하게 해서 뭔가를 이루어낸다면 그 방법이 뭔들 그리 중요할까. 자기 수준에 맞는 실력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그 당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사회에 나와서 많이 써 보지도 못했고, 내 직업도 그것이랑은 연관도 없다. 하지만 그때 공부한 나의 습관이나 방법들은 지금도 유용하고, 실용성이 있다. 이제 나는 스펙을 위해서 공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 함을 느낀다. 경영자가 되면서 예전에 남의 일이었던 게 바로 나의 문제가 되어 다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문제를 보면 해결을 해야했는데, 그것은 내가 할 일,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 뿐이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길을 생각해 내야 했고, 법칙을 고치든, 무언가를 새로 만들든, 이때 새로운 과정이 필요했다. 새로운 걸 만들어 내려면 창조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 시대 생존의 최상의 방법은 공부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실제로 음식점이라고 해서 노동으로 모든 걸 때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뭐 하나를 만들어도 비법이 있어야 한다. 그 비법은 재료 하나하나의 맛, 향기, 영양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책으로 읽고, 사진으로 보고, 연구하여 창조적인 제품을 개발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보통 수준을 넘는 인재들이 있다. 천재는 그 인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탁월한 사람으로, 이름 그대로 하늘이 준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천재는 실제로 많지 않아서 그야말로 백 년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하는 특출한 인재다. 그 사람들은 한 분야에 재능이 너무도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라 평범한 사람은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한다. 그런 천재들이 세상을 바꿔 놓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지만, 이 사회를 진보시키고 발전시켜 나간 사람들은 그런 천재가 아닌 유능하고 실천적인,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즉, 창조적인 인재들이 사회에서 창조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 천재 -창조적 인재- 를 관찰한 보고가 있다. 학자마다 주목한 부분은 조금씩 달라도 공통된 하나의 결론은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창조적 인간이 되기 위해선 결국,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한 달 평균 세 권의 책을 읽는다면, 그 사람은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세배 이상 살아있는 지식을 몸에 익히게 된다.는 말이다 나에게 한 권의 책은 하나의 드넓은 세상이다. 아직도 모르는 세상이 바깥에는 수없이 많이 있고, 나는 그 세상에 빠져들 준비를 하고 있다. 독서는 일단 해 두기만 하면 그 결과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확실한 자산이 된다. 조선 시대의 백곡 김득신이란 사람의 독서법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치열함이 있다. 한 번도 읽기 어려운 책을 만 번 이상을 읽었고, 심지어 "백이전"이라는 책은 일억 삼천 번을 읽었다고 한다. 백곡 김득신은 왜 그리 힘들게 독서했던 걸까. 당사자는 그 이유를 자신의 둔함에 있다고 했다. 머리가 나빠 열살이 지난 후에야 글을 깨우쳤고 금방 읽은 책도 기억이 나질 않아 그는 책을 반복해 읽었다고 한다. 백곡은 이렇듯 재주가 뛰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글공부를 포기하라고 수없이 권고했지만, 그는 40여 년간 꾸준히 읽고 공부한 끝에 말년에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렸다.
그는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겟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배움의 마음에 처절한 노력이 있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