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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무엇인가요?”
이 한마디로 유쾌한 오리엔테이션의 분위기는 잠시 적막해졌다. 잠깐 당황스러운 눈빛을 지닌 교수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질문의 방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건축학도가 가져야 할 사명감에 대해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대학 신입생으로서 자신의 전공에 대해 그 정의를, 신입생 모두와 생각하고 교수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라고 생각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잘못이었다.
일단 적절한 대상을 택해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교수는 건축전공자이지 철학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단어의 정의에 접근한다거나 하는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고건축과 현대건축의 연관성을 묻거나 모더니즘이 가진 상징성 등을 물었더라면 훌륭한 질문이라는 칭찬과 함께 분위기는 좀 더 진지해지거나 지루해졌을지 모른다.(물론 당시 고졸수준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무슨 일을 하거나 과제를 선택해서 시작할 때 항상 단어의 의미, 본질을 따지는 버릇은 그때부터 생겼을 것이다. 대학교수란 자가 신입생의 호기심에 불을 붙여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고 말았으니. 하긴 그의 탓이 아니다. 자신이 교육받은 데로 제자들에게 베푸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대부분 4지선다형의 문제풀이를 위한 암기교육에 익숙한 우리에게도 그것은 별로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우린 창의력이 높거나 아이디어가 독특한 인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판능력이 뛰어나거나 뛰어난 사고력으로 남들이 짚어내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를 잡아내는 이들을 반기는 곳도 드물다. 초등학교 중학교 뿐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조차 철학, 인문학을 배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거꾸로 되었다. 철학교육의 혜택(?)이 없는 현실 때문이다. 입시와 철학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가장 쉽게 예를 드는 것이 프랑스의 사례다. 바칼로레아의 출제방식과 채점 등을 예로 들면서 결코 암기하려해서는 답을 낼 수 없는 문제해결능력에 대한 평가방법을 논하기도 한다. 이 책은 프랑스의 철학교수가 철학교육의 확장을 위해 쓴 책이다. 고등학교 뿐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인 유치원 때부터 가능한 것이 철학교육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실례는 유아기의 아이들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어떻게 철학을 접하는지를 보여준다. 학습을 통해 길들여진 어른들에게서는 나오기 힘든 다양한 생각의 표현이 왜 철학교육이 필요한지를 증명한다. 모두가 철학자이며 가정에서 시작해서 공공교육기관으로 이어지는 철학교육에 관한 주장을 다루고 있다. 학교의 의미와 도덕의 문제, 민주시민의 의미, 종교에 관한 고차원적인 주제를 놓고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즐거워진다. 책에는 있지만 한국의 현실에는 없는 것. 철학교육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나 입시라는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자연스레 여기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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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본고장 프랑스에서도 철학 교육은 고3부터 시작한다고 한다(아니, 그럼 1년 공부하고 바칼로레아 시험을 그렇게 잘 적어낸단 말이야?!). 철학은 굳센 지성과 사유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의 종합 결정체이고 따라서 ‘인내의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철학 조기교육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제법 많다. 개인적으로도 철학을 배우려면 빨라야 고등학생, 보통은 대학생 정도가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는 그러한 생각에 똥침을 놓고 처방전까지 내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철학 교수인 저자가 실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철학 토론 수업을 실시하며 철학교수법을 연구해 온 결과물이다. 처음 토론을 할 때는 저자도 포기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예를 들어 40분이 토론 시간이라면, 아이들은 30분 이상 토론 주제에 대해 너무 현실적이고 지엽적이며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만 주고받았다. 하지만 토론 차수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조금씩 주제의 핵심을 깨달아 가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령, 아이들이 정의와 부정의에 대한 토론을 하는 대목에서, 처음에는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과 준법주의적 차원에서 말을 꺼낸다. 그러다 차츰 가정과 사회적인 차원으로 범위가 넓어지다가 나중에는 평등과 불평등에 관한 의견도 나온다. 그러다 한 아이가 “그런데 왜 우리 모두가 평등해지는 게 올바른 거지?”라고 질문하며 토론이 끝난다. 비록 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지막 이 질문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더구나 그들은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다!
책에서 저자는 믿음의 세 가지 축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할까. 둘째,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정당화해 줄 것이 세상에 있는가. 셋째, 어떻게 남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서 관건은 셋째 질문이다. 이에 대한 효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한 중학교에서 무슬림 학생들이 라마단(이슬람교에서 금식을 하는 달) 기간 중에 식사를 한 소녀에게 집단 돌팔매질을 한다. 꼭 라마단을 잘 지키는 무슬림이 아니어도, 한국에도 이러한 집단 왕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무슬림 학생들의 행동은 명백히 잘못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피력하게 해주고, 그들의 판단과 행동이 옳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을 부여하며, 왜 식사를 한 소녀는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그 차이를 깨닫게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교육 아니겠는가.
저자는 어린 학생들도 얼마든지 추상적이고 개념에 기반한 사고가 가능하며, 그에 대한 토론 또한 가능함을 설파한다. 그리고 교실에서,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철학적인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조심스러운 접근 방법을 일러준다. 물론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철학이 ‘인내의 학문’이라면, 토론 과정에 따르는 수많은 시행착오도 인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