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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소리를 저렇게 길게 늘여서 말을 하는 자체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모르고 나잇값도 못한다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니다. 이런 건 다 사람이 자란 집안 분위기를 반영하며, 당연히 그 나이(가 아니라 훨씬 이른 나이)에 알았어야 할 걸 모르고, 이제 와서 혼자 깨달았다는 듯 목청을 높이는 자체가 코미디다. 저렇게 어리석으니 지가 한 대 터져도 이게 목인지 다리뼈인지도 분간 못 하고 혼자 신난 것 아니겠는가. 돈이 있어야 생전 특급 호텔 같은 곳을 가 보지 어디 ㅉㅉ.
어제 리뷰한 <포스 오브 네이처>의 한 시퀀스에서 새러(샌드라 불럭 扮)가 임시변통으로 돈을 벌러 당구대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겠다고 부른 금액이 150달러였고, 이때 주인은 '큰 돈'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며 난색을 표시한다. 실제로 이스라엘에는 '호텔 다비드'가 여러 곳 운영되며, 지중해를 내다 보는 풍광이 좋은 만큼 그리 저렴한 요금들은 아니다.
이 영화에 대고 '다윗 대왕'이란 제목을 붙인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일본의 경우 '킹구 다비데'ㅋ). 본디 '대왕'이란, 그 명명 과정이 공정하건 타당성이 있건 없건, 역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 후대인이 임의 평가대로 붙이지를 못한다. 용례를 보면 일관성은 전혀 없는데, 그렇다 해도 한번 굳은 이름을 제멋대로 바꾸는 건 무식의 소치이다. 다윗의 경우 이스라엘- 유다 왕국 12지파에 의해 충분히 '대왕' 칭호가 붙을 만도 한 업적(그들 입장에서)을 남겼으나, 그를 두고 '다윗 대왕'이라고 부르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있긴 함).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에 이 이스라엘- 유대 12지파가 전에 없던 강력한 패권, 경제적 번영을 누린 건 사실이나, 솔로몬 사후 10지파가 여로보암 장군을 앞세워 그토록 간곡한 청원을 넣은 걸 보면 어디까지나 수도와 귀족을 위한 영화였지, 주변부나 일반 민중의 고단한 삶은 국가 위신 창달 여부와 무관했던 듯하다. 솔로몬 사후, 10지파는 이런 액션을 보인 끝에 바로 '분리독립'했는데, 지금 카탈루냐에서 보이는 동향과는 다만 다분히 반대 방향의 동력이 작용도 하는 듯하다. 여튼 정치가 잘 이뤄졌으면 누가 살림을 따로 차린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올 턱이 없지 않은가.
이 영화와 종종 헷갈리는 게, 1964년에 찍힌 마르첼로 발디 감독의 <사울 왕과 다윗>이다. 올드팬들이 기억할 만한 작품은 저것이며, 지금 리뷰하는 이 작품은 그로부터 무려 21년이 지나서야 만들어졌다. 1964년작도 단연 졸작이지만 지금 이 작품은 저것과 비교하는 것마저 민망할 만큼의 기념비적 망작이다. 각본도 형편없을 뿐 아니라 대체 뭘 의도하고 발주된 기획인지 모를 정도로 난장판의 진행이다. 촬영상의 솜씨 역시 21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전혀 발전된 기색이 안 보이는데, 재미있는 건 엄연히 구약 시대 팔레스타인 일대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이 이탈리아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마르첼로 발디의 작품에서 정말 큰 영향이라도 받았음을 고백하는 걸까?
12지파는 연맹체 단위의 성숙도에 그쳐서였는지, 사람들이 성질만 드셀 뿐 단합된 역량을 갖추고 생존 투쟁에 나서지를 못했다.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 일대는 그 개방된 지형 때문에 가장 잔혹하고 빈번하게 분쟁이 벌어졌던 곳이다. 분리주의 성향이 강하고 지독하게 감정적인 이들조차,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여겼는지 그토록이나 제사장들이 꺼려했던 '세습 군주'를 뽑아 안보를 도모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가장 작은 지파 출신의 핸디캡을 딛고 등극한 최초의 왕 사울은, 나이 들어 총기가 흐려지고 건강까지 악화되는 등 어렵사리 취득한 권좌를 아들에게 넘길 만큼 위신이 유지되질 못했다.
사울 왕은 에드워드 우드워드가 안경을 안 낀 채(당연ㅋ) 연기했는데,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변화나 좌절, 오만, 체념, 위엄 같은 다양한 인물의 표징을 능숙하게 잘 표현했다. 제목을 정말 '사울과 다윗'으로 붙여도 좋을 만큼 비중도 큰 편이다. 위기를 모면한 후 입을 씻고 미소를 지을 때는 특유의 야비함이 잘 드러나는 도널드 트럼프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분은 청년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가 열심히 책 팔아댈 때는 그 존재를 알았겠으나, 죽을 때까지 설마 그 자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리라곤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에드워드 우드워드 같은 민완 배우가 열심히 균형추를 잡아 줘도, 정작 타이틀 롤인 다윗 왕의 연기가 형편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작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연출한 브루스 베레스포드가 감독인데(정작 <드라이빙...>은 작품상 수상작인데도 감독으로서는 오스카상 후보에도 못 올랐음), 그 퀄리티가 딱 대한뉴스, 문화영화 수준이다.
영화에서는 사울 왕의 죽음 후 바로 계약의 궤 봉정이 이뤄지는 것처럼 묘사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이렇게 문헌 기록에 불충실하면서도, '사무엘 하권에 바탕을 뒀'다느니 하며 뻔뻔스럽게 사기를 침). 다윗이 맨몸을 드러내고 백성 앞에서 춤을 춘 건 해당 기록의 6장에 나와 있긴 하나, 이는 사울의 죽음과 자신의 입신 출세를 기뻐해서는 아니었다(적어도, 그렇게 함부로 속을 드러내 보일 만큼 정치감각이 서툰 자는 아니었을 듯). 다만 리처드 기어의 철없는 연기 때문에 하나 시사점이 드러나긴 하는데, 다윗은 백성들 앞에 입증해 보인 무공과 군사적 수완 덕분에 왕이 된 인물이긴 하나, 어딘가 아이돌 스타처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작용한 바도 크지 않았을까 하는 것. 이 사람이 둔 비운의 아들 압살롬(<압살롬, 압살롬!>이라고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한 윌리엄 포크너의 장편도 있음) 역시, '이스라엘 전체를 통틀어 압살롬만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생긴 이가 또 없었다'는 기술이 나오는 걸로 보아 당대의 분위기가 다분히 짐작이 됨.
압살롬의 경우 기록에 드러나는 바처럼 누이동생이 능욕을 겪은 후에도 그 원한을 극구 숨겨 오다 몇 년이 지나서야 기습적으로 잔혹한 복수를 감행하는데, 사내자식이 일을 도모하려면 이처럼 진득한 끈기와 배짱과 독기와 전광석화 같은 결단력이 있어야만 한다. 영화에서는 전혀 그렇지를 못하고, 순간의 격정을 못 참아 일생을 망치거나, 변덕스러운 충동에 이끌려 패륜적 쿠데타를 감행하는 졸장부로 묘사된다. 용모에 대해서는 분명히 드러나는 바 없으나 터울이 많이 지는 이복동생 솔로몬 역시 저런 음흉한 성격을 공유한 인물로 짐작된다. 그 정도가 아니라 몇 수는 더 위였을 것이다. 인물 묘사가 이처럼 부실하고 평면적이라는 사실에서도 각본과 작품의 퀄리티가 충분히 짐작될 것이다.
셰리 렁기는 이때로부터 몇 년 전 존 부어맨의 <엑스칼리버>에서 귀니비어 왕비 역도 맡았던 여배우이다. 신비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사극에 자주 모셔졌으나 여기서(뿐 아니라 기록에서도) 질투심 많고 왕녀다운 자부심도 하늘을 찌르는 성격이었겠는데, 각본도 부실했던 탓에 그리 잘 표현되지는 못했다. 여기서 기어는 피부색만 흴 뿐 얍삽한 표정을 지을 때는 마치 제이미 폭스를 연상시키는 표정도 눈에 띄며, 그 아들 솔로몬 역의 제임스 카터(대략 아들뻘쯤 됨)는 얼핏 봤을 때 올랜도 블룸인줄 알았다(이때 대략 취학 전 아동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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