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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말이지 즐거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또는 행복하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하면서 평일에 주어지는 1시간 정도 여유 시간을 독서에 투자하는 것인데, 독서 후에 감성적이든 지성적이든 뭔가 느낌이 없는 허탈함만을 주는 책을 만난 경우에는 그 짜투리 시간들이 얼마나 아까운지, 거의 실신할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고를 때 이런 저런 정보를 충분히 살피고, 책 좋아하는 아내의 조언도 들어보고 갖은 정보를 모은다. 그나마, 지금까지 완전히 실신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은 그저 최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주식 투자에서 상한가를 두번 연속 맞았다고 할까? 즐거운 2009년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이 책 『천천히 읽기』는, 소위 파생 독서의 산물이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에서 다치바나식 다독 지향 독서에 대한 비판적 견지의 책으로 소개되었고, 하루에 겨우 1시간 투자하는 현실적 직장인에게는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던 다치바나식 독서를 비판한다니,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난듯한 반가움이 강한 느낌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허나, 책은 절판이고, 예스24 판매지수는 72 란다. 뒤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 피곤함을 몰두라는 약으로 잠재우기 위해 인터넷 헌 책방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기를 이틀 정도, 결국 중고 책으로 판매하시겠다는 분을 만났고, 이런 저런 인터넷상의 신용 관련 문제를 해결해가며 얼마전에 기여이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이때의 기쁨, 이해하시는 분들 꽤 되실거다. 책 하나 읽고 리뷰쓰면서 서론이 너무 길었다.
저자는 일본의 일개 학교 법인의 직원이다. 즉, 필자와 같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루에 독서에 투자할 시간이 출, 퇴근 시간과 집에서의 여유시간 합쳐서 그리 길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 다독만이 독서의 진수라는 식의 책읽기 관련 서적들이 대다수인데 (다치바나가 대표적이다), 일개 학교 법인 직원이 평론가인 다치바나의 독서론에 반기를 든 것이다. 실제로는 다치바나의 독서론 중에 한가지인 다독과 빨리 읽기에 대해서만 반기를 든 것인데, 저자는 평론가인 다치바나의 직업과 다치바나의 공력(왼쪽에 있는 다치바나의 서재를 보라)이 이미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힘든 독서의 경지에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다시 말해, 저자나 필자와 같이 먹고 살기 위해 사회 생활하면서 다치바나식 독서를 실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 일상인들에게 맞는 독서법이 생긴다는 것이다. 책은 그런 이유와 함께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헌데,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 근거를 주머니에서 동전 꺼내듯이 쉽게 이야기하지 않고, 천천히 읽기를 독자에게 강요하듯, 천천히 씹을때만 느낄수 있는 음식의 맛이 따로 있듯이 천천히 읽을대만 느낄 수 있는 여러 작품들의 내용을 실예와 함께 차근차근 읽는 이에게 보여 준다. 책의 페이지마다 있는 아래쪽 여백은 페이지 전체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는 크기인데, 이 또한 의도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읽는 이들이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느낌이다. 글의 전체적인 느낌도 웬지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따뜻하다. 마치 마음이 맞는 옆집 아저씨와 소주 한잔하면서 넋두리하는 시간을 가지듯,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친근하게 지나간다. 천천히 읽는 저자의 글쓰기 공력이 느껴진다. 저자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의 글쓰기를 일반인이 하였다는 것은, 분명 천천히 읽기의 또 하나의 산물일 것이다. 그럼, 천천히 읽기의 장점에 대해 저자가 제시한 한 예를 보자. 전혀 예사롭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글쓰기의 예로 『후지 일기』라는 책의 일부를 제시하는데, 그 책의 여자 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한 하루 세끼 식가의 메뉴부터 준비 과정, 그리고 식후의 모습까지 세세하게 묘사한다. 저자의 주문대로 세세히, 즉 천천히 읽어 보니 이런 평범한 일상을 글로 읽고 있는 재미가 정말이지 솔솔하다. 저자는 이런 류의 감동을 "나와 비슷함"의 감동이라는 멋진 표현으로, 읽고 있는 필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덧붙인다. 천천히 읽지 않으면, 그저 식사 시간이구나 라는 예단과 함께, 그 글들이 눈에서 흘러간다고. 맞는 말이다. 주로 과학서적을 선호하는 필자이지만. 소설 책들을 좀 더 천천히 읽기에 도전해 보아야 겠다는 일희일비적인 다짐도 하게 만든다. 그런 저자의 주장은, 예시된 수 많은 작품들과 함께 큰 설득력으로 다가오는데, 마지막을 화끈하게 장식하겠다는 듯이, 맨 마지막에 있는 문구 하나로 책의 전체 내용을 한번에 정리해 버린다. "젊었을 적에는 어떤 책에 감동한 적은 있었지만 독서 자체에 감동하는 일은 없었다. 시간은 피어오르고 펼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지금은 확실히 독서의 감각이 달라졌다. 체감으로 알 수 있다. 언제쯤부터 알았을까, 그것도 알고 있다. 바로 천천히 읽게 되고 나서의 일이다" PS) 사족을 하나 달지 않으면 안되겠다. 정말 못 참겠다. 이 책에서 알게 되었는데, 일본의 어느 작가가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쓴 단문이다. "갈매기여 오라. 천금의 책을 펼칠 때마다" 그 작가가 바닷가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손에 있는 책을 눈높이에 올려서 눈과 수평으로 해서 페이지를 넘겨가며 보시라. 수 많은 갈매기들이 보이실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비유가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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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야마무라 오사무 / 송태욱 / 샨티]
책을 읽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속도와 양으로 따져본다면, 천천히 읽기, 빨리 읽기, 많이 읽기, 적게 읽기 등이 될 것이다. 이 방식들은 천천히 읽으면서 많이 읽기, 빨리 읽으면서 많이 읽기 등 여러 형태를 띤다.
요즘의 책읽기 추세는 책을 빨리, 많이 읽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고 다그친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독서량이 남만큼 미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읽는 속도에 치여, 읽어야 할 책들에 짓눌려, 왜 읽어야 하는지 잊는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책읽기는 더 이상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자신이 해 나가야 할 부담스러운 일이 된다.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극단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빨리, 많이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치바나 다카시’ 부류와 책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마무라 오사무’ 부류가 그들이다.
이 책의 저자 야마무라 오사무는 천천히 읽기의 매력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책을 빨리, 많이 읽는 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평론가나 책의 지식을 기반으로 또다른 저작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한달에 100권도 부족할 만큼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또 그렇게 빨리 읽어야 하는, 빨리 읽어도 되는 책들이 있다. 반면에 빨리 읽으면 안되는 책들도 많다.
저자가 말하는 독서란?
자신에게 맞는 책읽기 속도에 대해서 저자는?
책 읽기의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내용을 얼마나 몸소 느끼고, 책 읽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천천히 생활하는 습관을 지니도록 우리에게 권한다. 살아가는 리듬이 다르면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이 세계가 드러나는 방식이 전혀 달라 보인다. 저자는 책에서 어느 방송 프로그램을 인용하면서 천천히 생활하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예전에 NHK 교육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쓴 생물학자 모토가와 다쓰오가 나와서 자신이 메밀국수를 먹는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를, 빨리 돌려 보여주기도 하고 천천히 돌려 보여주기도 하면서 동물들이 ‘살아가는 리듬’을 설명한 적이 있다.
코끼리와 생쥐를 비교하면 심장박동이건 혈액 순환 사이클이건 코끼리가 생쥐보다 열여덟 배나 긴 리듬으로 살고 있다. 그것을 설명하면서 생물학자 모토가와 다쓰오는 메밀국수를 먹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했다. 우선 열여덟 배 빨리 돌리기로 재생한 움직임이 코끼리가 본 생쥐의 움직임과 같다고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를 말한다. 심신의 조화를 이룰 때 독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독서에는 ‘읽기 시작하는 행복’이 있고,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의 행복도 있다. 다독을 하기 위해서 속독을 하는 경우에는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천천히’는 얼마의 빠르기인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정경이 떠오르면, 그것이 바로 ‘천천히 읽는’ 리듬이다. 보통의 행위에 대해서 보통의 시간에 대한 감각을 느끼면 ‘느림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읽기는 예사로운 일상의 시간을 느끼는 일이다. |
| 천천히 읽는 것과 빨리 읽는것 즉 속독. 현대의 관점에서 비추어 볼때 분명 후자쪽에 비중을 두는 듯 하다.-그런면에서 볼때 사회에 반하는,신선한 기분을 들게 하는지도. 그것이 자신이 바란 것이던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분명 우리는 미디어에 휘둘리면서 살고 있다. 단 몇분의, 찰나의 탑을 우리는 쓸수 없다. 그 누구에게나 허용된, 친숙한 금지(禁地)-성찰의 시간. 분명 아침형 인간이나 각종 미디어에서 발표하는 유명책들이 다수의 독서가들을 '몰아'가고 있다. 아침형 인간만 예를 하더라도 후에 의학계나 한의학계에서 각종 반증을 제시하면서 일찍일어 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던가. 어찌보면 이 책도 마찬 가지가 아닐까? 나는 속독가도 아니고 또 이 책에서 말하는 완독가도 아니다. 책이라면 좋아 미칠것 같은 무리에게 완독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너무나도 읽을 좋은 책들이 많기에. 그리고 머리속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그 골수 매니아 무리들에게 빠르게 읽으라고 말할수 없다. 거기에 따른 기회비용을 그네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이 "각자의 리듬'에 맞추어 읽으라 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분명 천천히 읽으라고 말하고 있지만 오해하기 쉽다는것을 먼저 밝혀 둔다. 저 천천히라는 개념은 사회 속도에 비한 것이다. 분명 한쪽을 표방하고 나설때는 다수의 지지는 받을수는 있어도 모두를 포용하기는 힘들다. 천천히 읽으라고 해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자신나름의 독서 철학을 확립해 나간다면 최선의 목적을 달성한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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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책읽기 2022.1.19. 읽어치우지 않기
《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송태욱 옮김 샨티 2003.11.11
《천천히 읽기를 권함》(야마무라 오사무, 송태욱 옮김, 샨티, 2003)은 ‘천천읽기’나 ‘느릿읽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좋은읽기·나쁜읽기’를 가리려 하지 않습니다. ‘느슨읽기·느긋읽기’나 ‘가만읽기·찬찬읽기’로 저마다 스스로 ‘삶읽기·살림읽기’를 거쳐서 ‘사랑읽기·숲읽기’로 나아가자고 속삭입니다.
바쁘고 일거리가 넘치는 오늘날 천천히 읽거나 느릿느릿 읽는다면 뒤처진다고 여길 만합니다. 느슨히 읽거나 느긋이 읽다가는 줄거리를 종잡지 못한다든지 글도 못 쓰겠거니 여길 만합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왜 빨리 가야 할까요? 왜 빨리 죽어야 할까요? 왜 빨리 먹어야 할까요? 왜 빨리 늙어야 할까요? 빨리 죽고 싶지 않다면서 정작 빨리 달리지 않나요? 빨리 늙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막상 빨리 먹어치우지 않나요?
2003년 여름이었지 싶은데 민음사에서 엮음빛으로 일하는 분이 제 단골책집으로 찾아와서 함께 책을 내면 좋겠다고 얘기한 적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민음사처럼 커다란 곳에서 책을 낼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는걸.” 하고 생각했으나, 그곳 엮음빛이 들려주는 말을 찬찬히 듣고서 되물었어요. “아니, 편집장님이 한 해에 책을 쉰 자락씩 엮어내야 한다면 거의 이레마다 내는 꼴인데, 그러면 글손질(교정·교열)은 어떻게 해요?” 그때 그 엮음빛은 스스로 책이 아니라 쓰레기를 내놓는다고 느껴서 그만둘 생각이라고 밝히시더군요.
책을 즐겁게 읽는 사람은 ‘책이 쏟아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책을 안 읽거나 모르거나 책읽기가 지겨운 사람이 으레 ‘책이 쏟아진다’고 말합니다. 다 다른 책은 다 다른 사람한테 맞추어 태어납니다. 그래서 다 다른 고장마다 책숲(도서관)은 매우 넓어야 하고, 다 다른 사람이 스스로 살필 책을 골고루 오래오래 건사할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거의 모든 책숲은 마치 빌림터(대여점)로 굴면서 책을 자주 쉽게 버릴 뿐 아니라, 잘팔리는책(베스트셀러)에 너무 꽂힙니다.
곰곰이 보면 글을 쓰거나 책을 내놓는 사람들 스스로 ‘좋아하는 갈래’만 더 북돋운다고 할 만합니다. ‘모든 갈래가 새롭게 어우러지면서 다 다르게 빛나는 무지개로 나아가도록 북돋우는 길’이 아닌 ‘몇몇 글님·펴냄터에 쏠린 책밭’으로 내몬다고 느낍니다. 이런 얼거리를 바꾸어 내는 힘 가운데 마을책집이 있습니다. 책을 더 많이 팔려는 뜻으로 여는 마을책집이 아니기에, 마을책집은 오늘날 이 나라 굳어버린 책밭을 바꿀 만합니다. 마을책집은 잘팔리는책을 하루에 열스물씩 팔려는 데가 아닙니다. 마을책집은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누릴 책길을 헤아려 찬찬히 이끌고 ‘느긋이 기다려서 책을 받도록’ 징검다리 노릇을 합니다.
읽어치우지 않을 생각입니다. 읽어치울 책은 처음부터 사지도 들추지도 만지지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읽으려고 손에 쥡니다.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밝히려는 뜻이기에 이 삶을 들여서 가만히 읽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짓는 어진 사람으로 노래하면서 아이들한테 살림을 물려주려고 오늘 하루를 들여서 차근차근 읽습니다.
ㅅㄴㄹ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쪽 읽는 데 1초, 좀 늦더라도 2,3초’라는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굳이 심신에 무리를 주면서라도 훈련을 거듭하면 나한테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모르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엉터리 책 그리고 나의 대량 독서술, 경이의 독서술》은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 가운데 5분이나 15분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매력이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여느 때처럼 느릿느릿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손에 들지 않는다. (18쪽)
그들(다치바나 다카시)이 주장하고 권유하는 독서법은 그들 외에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19쪽)
눈이 글자를 좇아가다 보면 그에 따라 정경이 나타난다. 눈의 활동이나 이해력의 활동이 다 갖추어진다. 그때는 아마 호흡도 심장 박동도 아주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읽는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읽는 리듬을 타고 있을 때, 그 읽기는 읽는 사람 심신의 리듬이나 행복감과 호응한다.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이다. (38쪽)
필요가 있어서 책을 읽을 때 나는 그것을 독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읽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펴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참조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한 권의 책을 읽고 기획서나 리포트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어도, 나에게는 그것을 두고 독서라고 말하는 그런 감각이 없다. 물론 필요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띄엄띄엄 읽기도 하고 건너뛰며 읽기도 한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띄엄띄엄 다 읽고 난 뒤, 나는 그것을 독서한 책의 권수로 세지 않는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46쪽)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30분이라도 낮잠을 자야 한다고 쓴 신문 기사를 보고 웃고 만 적이 있다. (144쪽)
#山村修 #??のすすめ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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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방식은 삶의 방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먹는 사람도 있다. 책 읽을 때 다독을 위해 빨리 읽는 사람도 있고, 저자처럼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읽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할까? 이 책만큼은 천천히 읽었다.
나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유형의 삶을 살아왔다. 삶의 리듬이 그 사람의 세계관의 리듬이고 가치관의 리듬이라고 말한다. 이제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가야 할 나이라고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말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성과가 남다르다. 실적이 남다르다. 뭔가 결실을 일찍 거둔다. 그렇게 살아왔다. 저자는 그런 사람을 생쥐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반대로 주위를 돌아보며 느릿느릿하지만 생각을 깊게 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코키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코끼리가 생쥐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기겁을 할거다. 반대로 생쥐가 코끼리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숨 넘어 갈 듯이 지켜 볼거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독서의 즐거움이 크다. 정확히 말하면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통쾌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 얼른 컴퓨터를 켜고 무작정 키보드를 이용하여 글을 친다.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친다는 표현이 맞다. 연필로 글을 쓴다면 무게감 있는 글을 쓸텐데 경박스럽게 키보드로 대충대충 글을 쓴다. 글을 써야 왠지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 '천천히 읽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천천히 책을 읽었다면 글도 천천히 써야 하는데.
책벌레라 불리우는 사람이 있다. 생활 속의 모든 일 가운데 독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을 말할것이다. 그런데 직장 생활하면서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을 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나마 자투리 시간 아껴서 책상에 펴 놓은 쪽을 슬금슬금 읽어내며 다음 쪽을 넘긴다. 그리고 일을 한다. 그러다가 또 다시 시간이 나면 눈을 책으로 가져간다. 이전에 읽은 내용이 가물가물하더라도 괜찮다. 일단 읽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어떻게 책 한 권을 읽는다. 그렇게라도 읽지 않으면 독서 리듬을 유지할 수 없다. 천천히 읽기와 거리가 먼 독서법이다.
매달 1만쪽의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은 39도의 고열에도 그 기준을 깨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무서운 사람이다. 빨리 읽어서는 알아채지 못하는 구절을 만난다. 천천히 읽는 사람은 시간이 더디걸리더라도 그 구절의 참뜻을 이해하고서야 넘어간다. 난, 그렇지 않다. 대충 넘어간다. 전형적인 다독형의 사람이다. 책 많이 읽는다고 누가 칭찬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읽고 싶다.
숨을 깊게 쉬자. 책을 여유있게 바라보자. 책은 적이 아니다. 공격 대상이 아니다. 친근하게 바라보자. 저자의 노력에 값어치를 하자. 저자는 책 한 권 쓰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생했을텐데 그것도 모르고 단 몇 시간에 읽어 해치우려고 했으니. 몸쓸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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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책을 읽는다. 천천히 읽다 보면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문득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 때가 있다. 일 년 365일 가운데 그런 기쁨이 찾아오는 일은 단 몇분이나 몇 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빨리빨리 건너뛰면서 읽는다면 단 몇 분, 몇 초의 그 기쁨조차 만나지 못할 것이다.(8쪽) 라고, 책은 시작한다. 나는 이 몇 줄의 문장을 읽으며, 정말 그렇다라고 깊은 공감과 함께 행복을 느꼈다. 정말 그렇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이렇게 책을 읽고있는 이 순간의 기쁨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참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말 그대로 많이, 수시로 책을 읽는 편이다. 누구인가를 기다릴 때도, 전철을 기다리거나 이동할 때도, 근무 중에도 틈이 날 때마다, 혼자 밥을 먹게 되면 언제나, 그리고 아주 가끔은 길을 걸을때도 책을 읽는 나는 책을 늘 가깝게 두고 읽는 편이다. 자주 읽다 보니 양적으로도 많이 읽는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책들은 내용이 서로 얽히고 설켜 나중에는 이 책과 저 책의 내용을 마구 뒤섞어 기억하기도 하고, 책의 제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책의 의미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텍스트를 스쳐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때면 한번씩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책이 좋아 책을 읽는 것인지, 단순히 문자 중독인지 나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중독이 된 채로 쫓기듯이 빨리 그리고 많이 책들을 읽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속독술의 유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야마무라 오사무는 읽어치우는 급급한 독서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평론가들의 독서 안내나 독서 일기에서 권하는 '빨리 그리고 많이 읽는' 독서에 대해 반대하는 것인데, 진정한 독서란 정보습득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이뤄낼 수 없는 진득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속독술을 배우거나 배워야 할 필요를 느껴본 일은 없지만, 어쨌거나 나도 모르는새에 책들을 빨리 많이 읽어치우는 독서를 지향하고 있었다. 단지 읽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는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 이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된다. 비단 읽는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빨리'를 외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소르라치게 놀라곤 하는 경험 역시 자주있다. 나는 물같이 평화롭고 유유한 사람이고 싶은데 실제의 나는 어째서 그렇지 못한가 까지 <천천히 읽기를 권함>을 통해 생각을 뻗치게 된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은데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없다는 데에서 쫓기듯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지만 역시 책을 양적으로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한권이라도 진득하고 지독하며 진지하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을 이 책이 아니었더라도 늘 하고 있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의 독서방식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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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벼를 베고 난 자리의 휑하지만 따뜻한 땅의 그 색. 그런 황토색 표지에 잎사귀가 어린 잎을 틔우며 자라고 있는 표지이다. 약간 거칠기도 하면서 한지 느낌이 나는 표지부터가 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집어 올렸더니 무지 가볍다. 책 내부 재질도 눈을 피로하지 않게 하는 색에다가 가볍기까지 하다. 대중교통을 늘 이용하는 나에게 가벼운 책은 무척 반가운 존재이다. 이사한다고 짐을 싸도 부담을 던다. 무거운 책들은 버리고 가야 하나, 그래도 데리고 가야 하나 갈등하게 만드는 성가신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인 저자인 만큼 '책읽기'에 다양한 견해를 가진 많은 일본인들의 이름과 책들이 거론된다. '책읽기'를 주제로 한 많은 도서가 있지만,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저자가 쓴 것은 이런 묘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일본에서 유명한 저자나 '책읽기'에 관한 권위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 한권으로. 그것도 겨울 대지와 같은 바탕색에 봄의 파릇파릇한 싹을 담은 표지와 가볍고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중량의 이 책으로 말이다.
가장 많이 와닿았던 것은 '책을 즐기는 사람'이 참 많구나 하는 것이다. 저자도 물론이거니와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 정말 매료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팍 왔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책 껍데기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류다 보니, 반가운 이야기들이었다.
앙드레지드가 한 말이라고 한다. 여행을 가서도 그 곳 경관보다는 책안에 흠뻑 빠져든 앙드레지드는 유명하다는 동굴 구경을 하러 가서는 '내 생각은 마차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쇼펜하우어에게로 달려갔다'라고 하였다. 실제 쇼펜하우어는 당연히 아니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있었던 앙드레지드가 얼마나 책에 몰입해있었냐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읽기와 관련된 많은 구절들 중 기억에 남는 몇가지가 있다.
책읽기에 대한 사색을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충분히 한 것인가가 바로 엿보인다. 읽는 것을 먹는 것과 닮았다고 보는 것이다.
책 제목에서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고 해서, 꼭 그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하루에 1만페이지를 읽거나 1쪽을 1초만에 읽거나 하는 속독파가 아닌 천천히 읽는 그런 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속독파에 대해서도 비판만 하고 있지는 않다. 즉, 이 책을 통해 속독파와 천천히 읽는 파의 양 입장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의 구절이 아마 저자의 생각을 응축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운이 남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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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호흡으로 인생을 살자. |
| 제목 자체가 평소 나의 독서습관과는 잘 맞지 않아 갈등을 조금 했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몸에 밴 습관이라 이 책도 빨리 읽으려고 하는 게 좀 문제였지만 ^^;) 빨리 빨리 읽는 게 습관이 된터라 책의 내용에 푹 빠지지 못해 흥미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는데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은 것만 같아 기쁘다. 재치있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로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었고 가끔 생각이 나서 꺼내 읽곤한다. 저자의 표현들이 깔끔하고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천천히 음미하며 생각하며 읽는 것. 눈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상력과 경험을 되살리면 읽는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