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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의 지형적 위치를 보자면, 여량산맥(呂梁山脈)과 태행산맥(太行山脈)은 남북으로 뻗어있고 태행산(太行山)은 분하(汾河)계곡과 심하(沁河)계곡을 품으며, 태행로는 끊어질 듯 동서로 이어져있다. 서(西)로는 태생이 무사인 진(秦)나라 사람들을 맞아야 했고, 북(北)으로는 이름 자체에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융(戎)과 적(狄)을 상대해야 했다.
춘추시대, “제사와 전쟁은 국가의 대사”라고 할 만큼 전쟁은 국가의 존망을 걸고 하는 일이었으나 융적, 진(秦)과의 난타전을 통해 성장했고 때로는 비굴함도 감수할 만큼 정치적이었던 진(晉)에게는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이익을 제대로 분배하고 성과를 잘 갈무리 할 수 있는 전쟁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도덕적 명분을 들어 전쟁을 시작하고 그속에서 패권과 실리를 찾았던 춘추시대 싸움의 규칙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순식(荀息)은 헌공(獻公)의 충직한 신하로 해제(奚齊)를 보필했으나 이극(里克)과 비정(丕鄭) 등의 반란으로 해제가 살해당하고 탁자(卓子 해제의 이복동생, 여희(驪姬)의 동생(소희 少姬)의 아들)마저 살해당하자 따라 죽었다.
개자추(介子推)는 중이(重耳, 훗날 문공文公),가 굶주릴 때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서 먹였다고 한다. 그러나 환국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제외되었지만 직접 나서서 포상을 주장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숨어버렸다.
두 군주(君主)를 살해하고 혜공을 세웠으나 도리어 죽임을 당한 이극, 끝까지 권력을 포기하지 못한 채 죽어간 혜공의 극예(郤芮)와 여생(呂甥). 오랜 망명 생활을 견디고 문공을 세워 포상을 받은 호언(狐偃), 가타, 조최(趙衰), 서신, 선진(先軫)등의 측근들과 서(胥), 적(籍), 호(狐), 기(箕), 난(欒), 극(郤), 백(栢), 선(先), 양설(洋舌), 동(董), 한(韓) 등 11개 씨족.
권력의 2인자들이 제(齊) 환공(桓公)을 춘추시대 첫 패자로 만들었던 관중(管仲)과 충정을 다했으나 죽을 수밖에 없었던 헌공의 순식, 포상을 바라지 않고 숨어버린 개자추가 아닌 자신의 주군(主君)을 위해서 휼계(譎計)와 권모술수를 부리며 권력을 사유화하는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삼진(三晉)으로 훗날 전국칠웅 중 하나인 위(魏)나라는 중이를 따라 망명했던 위주(魏犨, 위무자魏武子)의 후손들이, 진(秦)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조(趙)나라는 조최(趙衰)의 자손들이며, 한(韓)나라는 혜공(惠公)에게 진(秦)과 싸움을 하지 말자고 주장했던 한간(韓簡)의 자손들이었다.
아버지 헌공(獻公)과 그가 총애했던 여희(驪姬) 그리고 동생이었던 혜공(惠公)의 음모와 살해 위협을 피해 유랑했던 19년, 진 문공은 고생이 몸에 밴 인물이었다. 보통 사람은 고생이 끝나면 방탕해지기 쉬우나 그는 그 고생을 간직해 스스로 검소한 생활을 해 진나라의 기풍을 세워갔다. 지난날의 고난을 잊지 않고 기억한 것이다.
군주는 인재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과 원수를 진 사람은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까지 쓸 수 있어야 진정한 군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호언(狐偃), 가타, 조최(趙衰), 서신, 선진(先軫) 등 당대에 이름을 날린 인재들이 있었으나 사람 욕심은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발제(勃鞮)를 용서하여 극예(郤芮)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다. 인재 확보와 보호에 온 힘을 쏟았는데 이 또한 아랫사람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패자의 조건은 신뢰이나 욕심 많은 인간으로서 의(義)를 세우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남의 위에 오르면 권모술수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그러지 않으려면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진 문공을 본바탕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그는 끊임없이 신하들에게서 꾸지람을 받으며 반성했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되새기는 동안 점점 패자에 가까워진 것이다.
"여권 쪽에는 왜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는가?"
어떤 정치 세력이건 권력을 잡은 후에 논공행상을 하는 것과 자신의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측근들을 배치하는 코드 인사(Code人事)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아메리카 합중국은 조지 워커 부시(George Walker Bush)가 정치 및 선거 자금 액수에 따라 해외 대사관직 및 주요 요직들을 수여할 정도로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의 전통이 있다. 물론 대한민국은 다르다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집권 초기에 펼쳐졌던 기관장 축출 사태와 낙하산 인사를 한 이명박 정부를 이해 못할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왜 그의 주변에 인재가 없는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에게 어찌 고난의 시절이 없었겠냐만,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 30대 사장으로 1970년대 개발독재 시절과 1980년대 군부독재, 반독재 민주화운동 시절을 보낸 그에게 학비를 위해 했던 청소와 신문배달과 한때의 민주주의 투쟁은 그저 과거의 경험일 뿐,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된 추억의 부스러기일 뿐이다.
집권 초기 졸속 협상으로 채결된 아메리카 합중국 산(産) 쇠고기 수입에 대해 촛불을 들어 항의하자,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으며 “반성하고 자책했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지난 5월 11일 “촛불시위 당시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음에도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도리어 국민들에게 반성을 요구했다.
MBC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에서 봤던 것처럼,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겠다던 대운하를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바꾸고 수심 6m를 유지하도록 한 추진 주체가 누구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에게는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신뢰’가 없다.
이런 주군(主君)에게 어찌 정치적 생명, 목숨을 걸고 함께 할 측근들이 있겠는가. 만사형통(萬事兄通) 영포(迎浦)대군과 왕의 남자의 자중지란(自中之亂) 친이(親李), 적과의 동침 친박(親朴), 얄미운 시누이 자유선진당, 조변석개(朝變夕改) 뉴라이트(Newright)들 뿐이다.
하다못해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고,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할 수 있지만 너무 심한 것 같다. 해 먹어도 적당히 해 먹었어야지.”(8월 26일자 하니TV(http://www.hanitv.com) ‘인사청문회 길거리 민심 들어보니...’에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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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2-영웅의 탄생』에서는 서방의 진秦과 남방의 초楚가 중원을 향해 무섭게 몰아쳐오는 상황에서 패자의 나라로 군림한 진晉의 흥기를 통해 산악국가와 평원국가의 차이, 물질적인 조건과 정신력의 상관관계, 중앙집권화, 초보적인 영토국가의 탄생, 제왕학의 탄생, 귀족제의 발전과정 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진나라의 흥기를 이끈 문공을 소개한다
영웅의 탄생은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철인의 시대가 저물고 본격적인 인간 영웅들의 군웅할거시대가 시작되는 춘추시대의 초기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진과 진중 누가 제나라를 이어 중원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는가를 저자 자신만의 안목과 주관을 가지고 종횡무진 해부하고 설명을 해나간다 진 문공은 뛰어난 철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능력을 가진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위협을 피해 도망다니기 시작하여 동생의 살해 위협에서도 도망을 다니면서 마지막에는 제나라에 도착해서는 안락한 생활에 빠져들고 만다 그런 문공을 가신들이 업고 진나라로 다시 들어가 왕위에 오른 까닭은 문공에게는 반서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누군가 자기의 허물을 지적하면 곧 깨우치고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뒤를 따를 인재가 많을 것이다
이 힘을 바탕으로 진문공은 초나라와의 성복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두번째 패자의 자리에 오른다 진문공은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가 참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저자는 그를 아버지는 그에게 칼을 들이댔고 동생은 군주가 되기 위해 외국에서 떠도는 그를 핍박했으며 열국의 군주들은 물론 심지어는 첩까지 그를 무시했다 하지만 진문공은 기어이 귀국하여 진나라의 군주가 되었고 진-초 성복대전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패자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11라운드를 두들겨 맞다가 12라운드에 역전시키는 파이터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그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 패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대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쉽지 않았을 터인데 참으로 놀라웠다
그리고 이 책에는 당시의 국경지도와 전투대형과 같은 내용도 나온다 주력인 전차전에 대해서는 사진과 해설이 달려 있어 당시 전투와 관련된 사료도 많이 덧붙여 있다 흥미위주의 이야기보다는 당시 여러나라의 국제정세와 중국이외의 주변국이 중국에 흡수되는 과정등을 주로 다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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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1]을 통해 중국이란 커다란 지도를 통해 세상을 봤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관중을 만났다. 관중은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환공을 패자로 올린 2인자였다. [춘추전국이야기2]에선 1인자, 영웅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대표적인 영웅으로 문공과 목공, 성왕을 꼽았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수많은 국가가 난립한 춘추의 무대에서 질서를 잡은 패자覇者 문공이다. 그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을까? 한원을 중심으로 치러진 춘추 최초의 동서대전에서 진秦 목공은 진晉 혜공과 싸워 이겼다. 전쟁이 이유는 자원, 이념, 종교, 경제적 이익, 안보 등 여러 가지다. 전쟁은 승리해도 피해가 크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전쟁 후 목공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혜공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기다릴 줄 아는 군주였던 그에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혜공은 자신이 잡힌 것이 경정의 죄라고 여겨 자진해 죽겠다는 그를 참했다. 싸움에 진 맹명시가 직위를 해제해 달라고 하자 목공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빗어진 일이라며 계속 맹명시에게 책임을 맡겼다. 비슷한 상황에서 혜공과 목공의 대처는 달랐다. 권위와 명분을 붙들고 있는 군주는 세상을 제패할 수 없다.
파란만장 가족사와 방랑이 영웅의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역사적 영웅들을 보면 권력을 둘러싼 파란만장 가족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망명생활을 하고 환국해서 영웅이 되는 단계를 거친다. 아버지 헌공은 다른 아내와의 사이에 난 아들을 후계자로 올리기 위해 역시 자신의 아들인 문공에게 자객을 보냈다. 문공은 나라 밖으로 도망쳤지만 동생은 군주가 되기 위해 방랑하는 그에게 다시 자객을 보냈다. 영웅들은 시련을 겪지만 결국엔 왕의 자리(혹은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문공 역시 그랬다. 그럼 문공이 다른 영웅들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춘추전국이야기1]에서 관중은 인재 등용을 중요시한 지도자였다. 문공은 논공행상에 대한 특별한 원칙을 갖고 있었다. 문공의 19년의 망명생활 중 13년 동안 함께 망명생활을 했지만 논공행상의 혜택을 보지 못한 도숙호가 불만을 토하자 문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어찌 그를 잊을 수 있겠소? 대저 크게 명철하고 지극히 현명한 사람으로, 덕행이 지극하여 도로써 나를 깨우치고 인으로써 나를 설득하며 나의 그릇된 점을 고쳐주며 내 이름을 밝혀서 나로 하여금 훌륭한 임금이 되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나는 최고의 상을 내렸소. 예로써 나의 잘못을 미리 예방해주고 정당한 말로 나에게 간하고 울타리가 되어(나쁜 길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여 나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고 나를 현자의 문으로 이끌어준 사람, 그에게 나는 차등의 상을 주었소. 용맹하고 강건하여 재난이 앞에서 닥치면 앞에서 막고 뒤에서 닥치면 뒤를 막아서 나를 환난에서 구해준 용사, 그에게 그 다음의 상을 주었소이다. 외숙부도 알지 않소? 죽은 사람이 아무리 귀해도 살아 있는 사람만 못하고, 도망친 사람은 아무래도 남아서 나라를 지킨 자보다 못하다고 하오. 3등까지 상을 준 후에야 몸으로 고생한 사람들에게 상을 줄 수 있소. 대저 고생한 사람들 중에는 도숙호 그 사람이 제일 아니오. 내가 어찌 그를 잊을 수 있겠소?”(193쪽) 평범한 사람도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도 이런저런 충고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자신을 위해 고생한 사람보다 자신에게 인의를 깨우쳐준 사람에게 상을 줄 수 있는 군주가 몇이나 될까. 저자는 문공을 ‘반성하는 지도자’라고 칭했다. 문공은 완벽한 임금은 아니었지만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고 조언을 따랐다. 관중이 부유한 나라를 추구했다면 문공은 강한 나라를 추구했다. 관중이 내실을 중요시했다면 문공은 밖으로의 팽창을 중시했다.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은 고생이 끝났어도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중은 출사, 장사, 전투에서 계속 실패를 했지만 경험을 통해 백성을 이해했고, 문공은 방랑생활을 잊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아버지와 동생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았던 문공은 덕을 중시했지만 창 또한 놓지 않았다. 경제학자였던 관중보다 더 현실적인 정치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춘추전국이야기1]을 읽고 나서 이 땅의 지도자들이 읽어야할 책이라고 리뷰를 썼다. 현재는 전차를 타고 칼을 들고 싸우는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 정치, 외교, 교육, 문화 등 지도자가 해야 할 일들은 산적해 있다. 고대 영웅과 현대의 영웅은 분명 차이가 있다. 지도자의 위치에 따라 통치방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지도자의 기본 역할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국 영웅에 관한 이야기지만 높으신 분들이 이 책들을 통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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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출간될런지요.. 기다리는 설레임도 즐거웁습니다..만 친구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어제는 1권을 다시 꺼내 줄쳐 놓은 대목을 느슨하게 보았습니다.. 머리가 나빠 한번 읽은 책속의 내용, 중요점, 새기고 싶은 글.. 등이 모두 담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볼때 형광펜으로 가늘게 줄치는 버릇이 있지요.. 살아가면서 그때 그 글귀가 뭐였더라.. 싶을때면 빠르게 찾아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마다 전권을 다 읽어낼 수는 힘드니까.. ^^ 제 소원은 이런 좋은 책은 한번 읽으면 그 내용과 훌륭한 가르침이 머리에 화석처럼 새기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뭐 그렇습니다..
3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 이..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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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이 되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제나라의 환공과 관중이었다. 제나라의 환공과 관중의 시대는 약탈 전쟁을 일삼던 국가의 형태에서 너른 토지와 그 식량을 어떻게 증대하고 백성들이 얼마나 부유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경제학자 측면의 관중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다. 국가적 기틀을 다지지 못하던 시기 처음으로 환공을 패자로 올리면서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주변국들을 제압하면서 제나라의 번성을 가져온 시기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진나라의 문공의 이야기가 되겠다. 춘추전국시대 두 번째 패자이기도 한 문공은 그렇게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도 아니고, 너른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도 아니고, 관중과 같은 천재적인 관료를 동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두 번째 권을 시작하는 서두에 영웅과 성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그렇다면 진나라의 문공은 어떤 인생을 살아온 사람일까? 먼저 그가 집권한 기간을 말하고 싶다. 딸랑 9년이다. 9년의 집권을 하면서 그가 춘추전국시대 두 번째 패자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생 역경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진나라 사람이지만 진나라를 떠나 오랜 망명생활을 하며 갖은 고초와 시련을 겪어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실리를 따져 자신의 위치를 잡았으며 그의 판단은 자신 혼자의 독단이 아닌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의 힘과 머리를 빌어 진행 하였다.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 그들을 저자는 영웅이라 칭하고 싶었던 것 같다. 9년 동안 진 문공은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그가 만들고자 하였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진나라는 제나라만큼 부유한 토지를 가지지 못한 분지로 둘러 싸여 있던 나라였다. 이런 지리적 형편은 제나라가 사람을 끌어들이고 경제적 관점에서 부흥을 노렸다면 진나라는 현재의 여건 즉 토지 내에서 잘 정돈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밖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정책을 펴고자 하였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문공은 진 나라를 근검절약하는 나라 꼭 필요한 것에 힘을 집중하는 나라로 성장시키길 원했다. 그래서인지 제나라의 환공의 팽창 정책은 영향력 즉 전국시대의 패자가 되기 위한 지배력 혹은 정치력의 강화에 힘을 기울였다면 문공의 팽창정책은 좁은 자신들의 땅을 벗어나기 위한 확장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바탕으로 국가의 기반을 다진 문공은 항상 실리적이면서 상과 벌을 분명히 하여 국가의 기초를 다지려 하였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본다면 관중과 환공이 제나라에서 보여준 면은 경제적인 측면의 국가정책으로 하나를 만들었다면, 문공은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잘 관리하기 위한 조직 즉 업무의 분담과 상벌 그리고 보상에 대한 국가적 기틀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공의 행적을 패자의 조건으로 살펴본다면 지난날의 고난을 잊지 않는 군주, 인재를 들이는 일에 힘을 모으고 인재를 보상과 처벌로 명확히 다룰 줄 아는 군주, 그리고 자기 반성을 통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군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번째 패자의 나라가 도래한다.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나는 주로 문공의 사람됨 즉 리더십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성복대회전 등의 전투 장면과 당시 전장의 전차로 구성된 부대에 대한 설명 그리고 전차에 대한 설명등 참 많은 이야기와 작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당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서로의 동맹을 깨고 배신을 하고 다시 종속의 관계로 돌아가는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이 담은 이야기를 한 번쯤 다시 머리에 담아 둘 필요가 있다. 삼국지처럼 다시 읽을 때 마다 들어오는 이야기의 경중이 다를 것 같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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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영웅, 여우의 마음을 가진 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