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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을 읽는 재미란 무엇일까? 희곡은 결국 연극이라는 무대예술를 실현하기 위한 텍스트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극을 준비하는 연출가나 배우가 아닌데 희곡 자체를 읽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고민해봤다. 연극이란 결국 해당 희곡을 바탕으로 연출가나 배우의 해석을 듣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한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흡수하게 된다. 그보다 먼저 희곡을 쓴 작가의 의도를 알고 해석하고 싶다면 무대에 올려진 연극이 아닌, 희곡 자체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바냐 아저씨에서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인물들이 있었다. 바냐가 그러했고, 엘리나가 그러했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인물들과 상황이 사람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바냐 아저씨라는 희곡에 대한 나의 해석은 완료됐고, 이제 연극을 통해 다른 사람의 해석을 바라보고 나의 해석과 비교하는 재미를 느끼고싶다. 이번 바냐 아저씨라는 희곡까지 더해 책모임 겨울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는 꽤나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었도다. 앞으로 어떤 책을 더 읽게 될지 기대만발이다. 한 해 잘 마무리하고 열독하는 새해를 맞이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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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체홉(1860~ 1904)의 주요 고전 희곡으로 언급되면서 오늘날에도 변주 상연되는 작품인데 우연한 기회에 읽게되어 삶과 인생에 있어서 가족이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화두에 골똘히 사색 하는 게기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쎄레브랴꼬프 라는 퇴직한 교수와 그의 젊은 새부인 엘레나가 함께 시골 집으로 오면서 교수의 전처소생 딸과 그녀의 바냐아저씨, 의사 등이 보이는 일상의 변화와 그들이 벌이는 사건을 그린 것인데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래전 러시아의 시골 가정에서 일어나는 알콩달콩한 사연들이 작금에 읽으면 조금은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겠으나 후반으로 치달을 수록 대사나 독백의 면면들이 삶과 인생의 깊이있는 사색의 장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것은 저명한 안톤 체홉의 희곡 문학에 있어서 단연 돋보이는 풍자정신에 다름 아니지 싶다,
실연의 상처와 쓰라린 삶, 속물적 인간의 고뇌들 속에서도 최후에 이르러서는 하느님이 이러한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 모두를 굽어 보실 것이라는 위로와 함께 삶을 견디며 나아 가야한다는 결의로 감동의 종막을 장식하게 된다,
안톤 체홉의 문학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것 중 하나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삶의 모습'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는데 그것으로 당대 러시아의 사회적 우수와 절망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인간애, 혹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통속성에 대한 통렬한 풍자 정신이 잘 녹아난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또한 이 작품을 변주해서 오래전 호주를 배경으로 배우 샘닐과 그레타 스카키가 열연을 보인 영화 [컨츄리 라이프 Country Life ](1994)를 최근 다시 보았는데 원작과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새로웠다, 한편 든든한 텍스트 로써 고전의 힘이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살아 있는 주제의식,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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