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음사에서 출간된 세계시인선 01 호리타우스 시인의 카르페 디엠을 읽고 나서 쓰는 리뷰입니다. 호리타우스는 로마의 유명한 시인으로 그의 시는 이때까지 본 적이 없었으나 카르페 디엠은 들어본 적이 있어 시집을 읽게 됐네요. 지금 시대에 쓰인 시가 아니기에 마음에 바로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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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이란 말은 언어 자체가 그렇듯 익숙하진 않은 단어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양한 곳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마치 '청춘'의 상징인 것처럼 쓰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르페 디엠은 젊은 날에 대한 긍정과 같은 좋은 의미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오용과 남용으로 보이기도 한다. 근래에 자주 쓰였던 '소확행' 같은 말처럼 현실에 대한 진지한 혹은 진지하지 않더라도 진실된 마음에 따른 말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현실에 대한 도피 방편으로 현실 자체를 지나치게 찬양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래의 의미 또한 그런 의미인가? 아니다. 카르페 디엠은 격변하는 세상의 중심 곁에 서서 세상을 바라 본 깊고 높은 정신의 통찰에 따른 사상적 태도이다. 과정과 시간, 생각의 태도가 다르다면 결과가 같더라도 그 두 가지를 같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은 약 2000년 전에 쓰인 기록임에도 바로 오늘의 것처럼 생생하다. 비록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대한 지식과 인명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나, 그 문장들은 결국 만인에 대한 현실로 모여들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자신의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편집 과정에서 각주를 책 후미가 아니라 본문 바로 아래에 달았으면 분명 읽는 데에 더 수월했을 것이다. 특히 본 도서처럼 단어에 대한 의미 풀이가 많이 필요한 책이라면 분명히 그래야 한다. 출판사의 선택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하나 어쨌건 정확하고 쉬운 풀이는 책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현실을 긍정하는 것도, 현실을 부정하는 것도, 오늘과 내일에 대한 태도를 가지는 것도, 분명히 진실한 사고와 마음이 따라야만 스스로가 그 태도로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태도는 단지 하나의 변명이자 두 번의 거짓말일 뿐이다. '카르페 디엠'의 가치는 바로 그 태도에 관련되어 있다. 카르페 디엠의 문장들은 가르치지 않는다. 호라티우스가 세월을 통해 갈고닦고 배운 시각을 습득하게 한다. 현실의 부정과 긍정을 묘사하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은 호라티우스는 어떤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 사람들에게 스스로 직접 그곳으로 걸어가도록 종용한다. 200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이들은 스스로의 진리를 강압적으로 설파하고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만 이 시인은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혹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할 만큼 절절한 진실과 통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