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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역사 속 인물을 제대로 다루기 보다는 팩션을 가미해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 시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역사속 인물을 재조명 하기에는 좋지만, 제대로 이해 못하고 팩션 속 인물로 새겨질 우려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재조명되는 역사의 인물에게 생명감을 부여하는게 사실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역사서에 나타난 몇가지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는 건 어쩌면 작가의 역량이기도 하다.
사임당이 살았던 시기가 중종이 재위하던 시기로 나온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에서 중종이 왕이 되기전까지의 팩션으로 된 이야기를 읽으며, 중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산군을 폐위 시키고 신하들에 의해 왕이 되었던 중종이 자신도 그처럼 될까 우려해 우유부단한 정치를 펼쳐왔다는 건 이해할 만도 하다.
조광조와 함께 개혁정치를 펼쳤으나 이러한 사림파의 정치를 반대한 훈구파의 세력을 겁낸게 또한 중종이었다. 이는 임금의 권위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 또한 대리청정을 한 세자와 함께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이겸을 질투하고 그를 경계했던 것 또한 이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았다.
동명의 드라마 원작에서도 나타난 것과 같이 작가는 사임당을 현모양처로만 그리지 않았다. 남편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남편 역할을 했을 뿐더러 다정한 엄마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또한 자신 때문에 유민들이 핍박받았다고 생각해 그들과 함께 운평사 고려지를 만들고자 했던 것 또한 사임당과 유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함께 종이를 만들고 이윤이 생기면 함께 나눠갖는 것을 강조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 또한 죽지 않아서 자모회에서 곤란에 처한 한 부인의 치마에 포도 그림을 그린 장면은 압권이었다. 화기를 숨기고 살았지만 부지불식간에 찾아드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역할 탓인지 조선시대의 중종과 현대의 민정학 교수 역할을 했던 최종환이 밉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여성으로서 사임당, 어머니로서의 사임당, 화가로서의 사임당, 종이를 만드는 장인으로서의 사임당이 현대의 지윤과 겹쳐 보였다. 천재 화가로서 오로지 사임당 만을 향한 마음을 품고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이겸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역사적 인물의 재조명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가 가진 열정과 재능이 지금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더한 열정을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래전에 오죽헌에 다녀왔었는데, 강릉에 가게 되면 오죽헌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것 같다. 진실이든 팩션이 가미되었든 사임당의 불꽃같은 예술혼을 기억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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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 실력이 뛰어난 화가. 칭송을 받는 신사임당. 정작 그녀의 삶을 돌아본다면 이 책이 픽션임을 감안하고 읽는다 하더라도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으리라. 그것은 잘못된 배우자의 선택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어떻게 급하게 혼인을 하게 되었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이야기속에서는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 이겸을 위해서 그렇게 선택을 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후로도 계속 끊임없이 위협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그 결정이 반드시 옳은 것이었다고도 할수는 없을 것 같다. 평생을 그리워만 한 사람.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필부가 원망스럽기도 했을 터였다. 과게에 합격하지 못하고 번번히 돌아오는 가장이 밉기도 했을 터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잘 하는 일, 그림을 그려서라도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야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남편에게 원망이 가지 않을 수 있을었을까.
반대로 본다면 그 남편 또한 답답하지 않을 수 없겠다. 평범한 필녀를 만났다면 그의 삶은 오히려 더 편하지 않았을까. 그저 하루 먹을 것만 걱정하며 자신의 욕구에만 충족한 채 살아갔더라면 벼슬이나 급제에 상관하지 않고 그냥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았다면, 평생을 비교할수 밖에 없는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또한 더 행복했으맂도 모른다. 잘못된 만남은 평생을 따라붙는 법이다.
한복의 색처럼 고운 빛깔의 표지. 상권도 그렇지만 하권의 색은 더욱 곱다. 두권을 마주 놓고 보면 한벌의 한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자꾸 만져보게 된다. 혹시 이 한복에는 사임당 그녀가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묵포도도의 이야기가 이번편에서 등장한다.
자신을 음해하려던 휘음당이 사람을 시켜 자신에게 쏟으려던 찻물이 다른 사람에게 쏟아졌고 빌려 입은 옷을 걱정하던 그녀에게 먹과 붓을 가져오라고 해서 금세 포도를 그려내고 근사한 포도도를 그려내었다는 일화. 이 장면 하나만 보더라도 그녀가 대단히 뛰어난 화가였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바이다. 옛날 중국의 대화가는 벽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새들이 진짜인줄 알고 날아와 머리를 박고 죽었다던가. 사임당 또한 그에 버금 갈 듯 싶다.
현세와 조선 시대를 연결한 이야기. 한동안 조선시대의 사임당 이야기에 빠져있던 스토리는 본격적으로 현재와 조선을 연결한다. 조선에서는 사임당과 이겸이 쫓김을 당하고 있고 현재에서는 지윤이 민교수로부터 쫓김을 당하고 있다. 분명 금강산도는 가짜인데 민교수는 그것을 진짜로 둔갑시켜 국보지정을 하려고 하고 진짜를 가지고 있는 지윤은 반박을 하고 싶지만 일단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사임당과 지윤, 둘다 이 모든 위기와 난관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권력을 잡았다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면서 자신들의 안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처단하는 저들에게 반격을 할수가 있을까. 힘이, 권력이 다는 아닐진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어찌 그렇게 똑같은 행태들을 벌이고 있는지 시대는 달라도 같은 나라 사람이라 그런걸까 작금의 시대와 하등 다를바 없어 비통하기까지 한 심정이다. 사임당 그녀가 진정 바라는 나라, 그런 나라가 지금에라도 이루어질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앞으로의 삶이 점차 나아질 거라는 꿈. 현재는 보잘것없으나 노력하면 좋아질 거라는 꿈.......밤이 어두우나 두렵지 않은 것은, 기다리면 반드시 동이 트고 해가 뜰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인이라서, 서얼이라서, 양반이 아니라서,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이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밤길 걷는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전하....... 부디 꿈을 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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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가 이런 내용인 줄 알았다면 진즉에 드라마를 볼 걸 그랬다 라는 생각을 잠시했다. 솔직히 신사임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녀의 생애에 대해 그리 큰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이야기는 아무리 드라마로 각색을 한다고 하더라도 신사임당의 생애와 깊은 관련이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고.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과연 이걸 신사임당의 이야기라 해도 되는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시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신사임당의 이야기와 현재의 한국미술사 강사인 지윤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있는데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무척 흥미롭고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궁금해질만큼 재미있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왜 굳이 신사임당과 연결시켰을까,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처럼 신사임당에 대해 무지하지만 그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려 한 것일지. 책을 읽으며, 흔히 현모양처로만 알려져 온 신사임당의 생애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더구나 그녀가 남긴 작품들이 궁금해졌으니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그저그런 사극이야기겠지, 라는 생각에 책을 술렁거리며 읽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현재의 지윤과 과거의 사임당이 만나는 초현실적인 장면 역시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런 지엽적인 것이 이 소설의 이야기를 재미없다 할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초현실적인 연결고리 없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른 매개체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은 해 보지만 말이다.
얼마전 티비 프로그램에서 신사임당 이야기를 하며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이 이이의 어머니로만 설명되어 있다고, 심지어 사임당이 기거하던 방 앞에 있는 설명조차 이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며 흥분하는 모습을 봤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알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임당, 빛의 일기를 통해 나는 사임당이 어머니로서만의 모습을 강조하며 현모양처라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체로 살아갔으며 또한 예술가로서의 모습도 알게 되었다. 타인을 배려하고 가진것없이 내쫓겨 떠도는 유민들을 위해 그들과 같이 고려지를 복원해 만드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이 소설의 거대한 줄기는 이겸과 신사임당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보다는 강직하게 삶을 이끌어나가는 사임당의 모습이 더 좋다. 역사속의 사임당을 그대로 재현해낸 것은 아니지만 과거 조선 시대를 살아갔던 한 여인의 존재가 수동적이고 운명에 순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주체임을 느끼게 하고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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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를 보겠다며 담을 넘어 들어왔던 당찬 소녀.....당신이 그려내는 그림들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나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오." 그 말을 끝으로 이겸은 까무룩 잠이 든다. 사임당은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가슴이 저릿하다. 자신의 전부를 내걸고 달려오는 이 남자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갚을 길 없고, 마주 볼 수 없는 마음이 아닌가. 하늘이 제아무리 높고, 땅이 제아무리 넓다 한들, 목숨을 내건 사랑만큼 높고 넓을 것인가.
<사임당 빛의 일기>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이겸이 사임당을 위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희생했는지, 그 전모를 알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는 왜 갑작스레 사임당이 자신과의 혼인을 파기하고 다른 남자와의 삶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어 괴로웠는데, 비로소 전모를 알게 된다. 그 모든 일들의 배후에 전하께서 내린 시가 있었다는 것. 그 시를 본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가 바로 사임당이라는 것도. 예정대로 두 사람이 혼인을 했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는 것도 말이다. '미안하오! 미안하오! 당신의 희생으로 내가 살아왔소! 이제부턴 내가 당신을 위해 살 차례요. 조선에서 제일 힘 센 사내가 될 것이오. 당신을 위해..... 아무 걱정 없이 오롯이 화가 사임당으로만 살아갈 수 있도록! 한편, 사임당은 종이공방에서 아주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유민들을 위한 제사를 이십 년째 지내고 있다. 그 동안 겪어온 양반들과는 전혀 다른 사임당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던 종이 공방의 대장은 그들을 귀한 사람들이라 지칭하는 그녀의 말에 당황한다. 그러다 팔봉의 고백에 의해 운평사 유민들이 몰살당한 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그림과는 상관없이 애초에 놈들은 고려지 비법만 챙기면 죄다 쓸어버릴 심산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죄책감과 울분이 숨통을 조이던 이십 년 세월 앞에 사임당은 무릎에 힘이 풀리고 만다. 그 와중에 종이공방의 유민들이 포교에 의해 줄줄이 잡혀 들어간다. 그 동안 어마어마하게 밀린 조세 때문에 구속이 되고 만 것이다.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에게 그들을 구하기 위해 땅문서와 집문서를 담보로 속전을 구해야겠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나머지 금액을 구해오겠으니 사람들을 풀어달라고. 부서질 듯 여리고 작은 모습 어디에 대장부보다 더 큰 배포가 숨어 있는지, 유민들은 감격한다.
"그 소녀는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 공 앞에 있는 저는 보잘것없는 아낙일 뿐입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지나간 인연을 위해 공의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현명한 사랑이란 게 있소? 사랑은......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것이오." "............" "그저.......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사임당과 유민들은 나머지 돈을 구하기 위해 운평사 고려지를 만들어내기로 하지만 수월치 않다. 그 과정에서 민치형과 휘음당은 더욱 악독한 방법들로 그것을 방해하고, 이겸은 묵묵히 뒤에 서서 그녀를 보호하고 도와주기 위해 애쓴다. 휘음당의 계책에 의해 결국 사임당의 아들 현룡은 자진 출재하는 걸로 중부학당을 나오게 된다. 그 와중에도 '아이보단 그 아비의 권세와 재물을 더 중시하고, 나라의 근간이 되는 백성들마저 우습게 여기면서까지, 오로지 과거공부만을 강요하는 이곳에선 더는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부학당 자모회 수장 자리가 다른 이를 짓밟으면서까지 그토록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면, 댁은 계속 그리 사시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온몸이 타 들어갈 것만 같은 휘음당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듯 선과 악의 대비, 쫓기는 자와 괴롭히는 자, 음모를 꾸미는 자와 그것을 빠져 나오는 자의 대비로 이야기는 시종일관 흘러간다. 어찌 보면 우리 나라 사극의 거의 모든 드라마가 이런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다. 아마도 사임당과 이겸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 때문이 아닐 까 싶다. 그들이 실존 인물이고 우리 역사 속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독자들에게도 전달이 되어서 일 것이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횃불처럼 뜨거운 남자 이겸, 그리고 삶이 어떤 고통과 역경을 주더라도 넘어질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여자 사임당. 다만 아쉬운 점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하는 강사 지윤이 미술사학계의 실세인 민정학 교수에 의해 위기를 겪고,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고서를 복원해서 과거 사임당의 일상을 담은 일기로 교차 진행되는 스토리는 상권보다 하권에서 더 몰입을 방해한다. 사임당과 이겸의 스토리에 푹 빠져들려고 하면 갑작스레 등장한 현재의 이야기가 그 흐름을 끊어낸다고 할까.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빼고 그냥 정통 사극으로 풀어냈다면 드라마도 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이라는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무너지고야 말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와도 삶에 휘둘리지 않고, 넘어질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던 사임당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삶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모습이 아마도 당신에게도 다시 일어설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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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 이은 후편의 이야기를 기다린 끝에 읽는다. 신사임당이란 이름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머니 상으로 인식된 바, 이 책에서의 신사임당의 모습들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진 않지만 좀 더 당시의 시대에 살아갔던 여인들의 전형적인 삶을 벗어나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보임에 있어서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 능력을 펼칠 기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뛰어난 능력들은 여전히 그녀의 작품을 통해 느껴지게 만든다.
부부로서 살아감에 있어 남편보다 더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던 여인, 남편에 대한 사랑도 애틋하지만 자식들 건사에 좀 더 힘을 쓰는 과정이 하권에서는 상권에 이어서 이어지고 사임당의 이겸에 대한 사랑의 느낌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 점이 다르게 다가온다.
남편도 좋았지만 의롭고 정의로운 인물로 표현이 되는 이겸과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은 그래서 더욱 미련이 남게 되고, 이는 곧 현실의 지윤과의 만남이 성사되는 것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중의 모습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이겸을 사랑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선택한 사임당, 현재의 지윤 또한 민 교수의 방해를 물리치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를 그린 이 소설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여전히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내치면서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모습들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해서 씁쓸함마저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또 다른 여인, 휘음당의 등장은 사임당과는 또 다른 이겸에 대한 사랑과 질투, 그로 인한 악녀로서 행할 수밖에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를 드러냈기에 삼각관계에 얽힌 모든 감정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재미도 준다.
시대를 넘어선 두 여인의 활약과 등장인물로 내세운 것은 기존의 실존 여성을 내세운 타 작품들보다 확실히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점, 드라마를 통해서 보인 영상미를 생각하며 그에 맞는 장면들을 회상해 읽어가는 재미도 주는 책이다.
저자의 상상력을 토대로 그려진 이 소설 안에서의 두 여인들의 만남이 비록 시대는 달리했지만 저마다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재능을 통해 현실에서 안주하지 않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 그래서일까? 새삼 오만 원 지폐에서 우러나오는 신사임당의 아우라가 새롭게 보인다.
새롭게 태어난 신사임당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 된 책이기에 드라마와 비교해 읽어도 좋은 듯 하단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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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가 사임당이 우리에게 심어준 이미지라면 배우 이영애의 이미지는 '단아함'이다. 예전 드라마 <대장금>에서 성인 역을 맡은 이영애 씨를 보며 어색함을 느꼈다면 지금 사임당의 이영애는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를 보면서 주연인 사임당보다 더 눈에 들어온 인물이 휘음당 최씨인 석순(오윤아)였다. 그리고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 올랐기에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을 중종 역의 최종환 씨다. 최종환은 중종과 민정학이라는 두 인물을 연기했으며 둘 모두 실세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흔들리는 허깨비 같은 이미지를 안고 있었다.
주막집 딸이라는 신분차를 뛰어넘어 성공의 길에 접어든 휘음당 최씨야 말로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성공해낸 케이스 아닐까 싶어. 윤형원의 부인 정난정처럼 말이야. 아~ 그러고보니 정난정의 뒷배경이 되어줬던 문정왕후가 중종의 제2계비이니 중종과 정난정이 연관 없다 말할수는 없겠는걸. 휘음당 최씨가 가공인물이 아니라면 정난정과 휘음당이 만났을 수도 있었겠어. 조선 3대 악녀하면 장녹수/ 정난정/ 장옥정(혹은 김개시)를 들고 있다. 조선 3대 악녀가 있다면 조선 3대 악남도 있어야 공평한 것 아닐까 싶어 네이버를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나와있지 않다.
《사임당 빛의 일기》하편을 통해 서지윤이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사임당 신씨의 일기와 미인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곳에 있었는지도 밝혀졌다. 어린 시절 사임당을 만나 사랑하게 된 의성군 이겸은 평생동안 그 사랑을 간직하며 사임당을 돕고자 노력한다. 그에 반해 무능한 남편 이원수(윤다훈)은 참으로 마음에 안드는 인물이었어. 무능하면 성실하기라도 하던가 무능한 주제에 바람까지 피워 아내 속을 썩이다니 말이다. 주모 권씨(김민희)가 그 상대였다. 드라마 <달동네>에서 어린 똑순이역을 맡아 당차게 연기하던 아역 김민희를 기억하는 한사람으로 비록 배역이라지만 서운했다고 할까.
'두고 봐라. 이 민치형이 이대로 나자빠져 죽을 것 같으냐! 다 죽여버리겠다. 이 민치형을 이 꼴로 만든 연놈들을 싹 잡아 죽여버리겠다!' (p.248) 민치형과 신사임당의 악연도 만만치 않다. 어린 시절 산에 올랐다 운평사에서 민치형이 유민들을 살해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 악연의 시작이다. 그후 신사임당과 휘음당 최씨가 고려지를 두고 경합을 벌이기도 하지.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보면 민치형과 휘음당 최씨는 참 잘 어울리는 부부다. 목적을 위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이용하거나 해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이겸과 사임당을 향한 민치형의 증오심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종영되고, 소설《사임당 빛의 일기》를 손에 넣어 읽어가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통해 이미 아는 내용이 많다보니 드라마와 소설의 다른 부분을 비교하며 빠른 속도로 읽혀졌다. "모든 것은 너희가 자초한 일이다. 나는 이 나라 조선의 사직과 군왕의 존엄을 지키려 했을 뿐." (p.304) 민치형이 신사임당을 납치한 뒷배경에 중종이 숨어 있었다? 그렇다면 중종이 의성군 이겸과 신사임당을 죽이려 하는 이유는? 조선의 사임당과 현대의 서지윤이 만나 의성군을 탈출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탈리아에서 이겸의 그림이 발견되었으니 그의 탈출이 성공이라 말해도 스포일러는 아니렸다?
"사셔야 합니다. 절 위해, 그리해주십시오. 그 어떤 순간에도 삶을 선택해주십시오." (p.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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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원 지폐의 위엄을 자랑하는 신사임당은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으로 전 국민이 좋아하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친숙하고 익숙한 여인으로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신사임당이 아닌 한 남자를 가슴 깊이 사랑하고 그 남자를 지켜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소설 '사임당 빛의 일기'는 그 만큼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져 이영애 씨의 복귀작으로 화제에 오른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는데 개인적으로 평소에 드라마 시청을 하지 않는 나로서도 관심이 가졌던 드라마이고 비채에서 책으로 나와 상권을 읽으며 내심 하권을 은근 기다렸는데 역시나 상권에서 안견의 금강산도를 둘러싼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사임당과 이겸의 애절하고 슬픈 사랑이 평소에 로맨스 소설이 주는 재미를 온전히 느끼며 읽었던 작품이었다. 부와 명예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도교수 옆에서 옳은 방식이 아님을 알고 진실을 밝히려는 주인공 지윤과 그녀를 사랑하지만 더 안락하고 좋은 삶을 위해 앞만 보면서 달린 지윤의 남편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의 추락은 아내 지윤이 하는 일과도 연관이 깊은 이야기가 상권에서 펼쳐졌다면 하권에서는 이겸과 사임당의 가슴 절절 애절한 사랑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임당과 그녀의 가족들은 생계를 걱정하는 고단한 삶에서 종이공방을 통해 숨통이 틔여간다. 이런 와중에 이겸은 이십년 전에 사임당과 자신의 이별이 왜 일어났는지... 그 가슴 아픈 사연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을 삭이던 모습을 넘어 진심을 전한다. 허나 사랑보다는 가족이 우선인 사임당은 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아무리 뛰어난 여성도 현실을 넘어서기 힘들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예술적 역량을 온전히 보여주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사랑마저도 권력과 암투로 인해 허락하지 않는다. 의롭고 정의로운 남자 이겸은 옳은 일을 하려던 행동이 위험에 처하고 그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한 사임당과 지윤은 현실을 넘어서는 만남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현실의 벽을 넘어 사랑하나만 가슴에 묻고 산 이겸과 이겸을 사랑하지만 가족과 자식을 위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임당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과거의 인물을 애절한 사랑으로 재탄생한 작품으로 만난 '사임당 빛의 일기'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이며 스스로의 삶을 진취적으로 살아가려는 여성으로 지금 현실에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다. 드라마보다 책으로 만난 사임당과 이겸은 더 좋았다. 사랑했던 여전히 사랑하는 여인 사임당 그녀 모르게 도움을 주려는 이겸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 내 여자에게 지고지순한 순정을 보여주는 멋진 캐릭터란 생각이 새삼 든다. 내가 알고 있던 사임당보다 더 멋진 여성으로 산수화에도 능하다는 것도 책을 통해 새삼 알게 된 이야기로 오만원 지폐를 볼 때마다 사임당 빛의 일기 책 속에 사임당을 떠올릴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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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과 지윤, 전생과 현생의 그녀들의 힘들고 굴곡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임당, 빛의 일기 - 상 >. 지윤은 우연히 손에 넣은 사임당의 일기를 복원하고 진짜 금강산도를 찾기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사임당은 한양으로 올라와 유민들과 함께 힘겹게 종이공방을 꾸려가고 있다. 여전히 그녀들은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방해꾼들은 그녀들을 훼방놓고 있다.
민교수는 금강산도가 가짜임이 밝혀질까봐 진실을 알고있는 지윤을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압박해온다. 지윤은 동료들과 은밀하게 사임당의 일기를 조금씩 복원해나가면서 마침내 진짜 금강산도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전세는 역전되었고 진실을 밝힐 기회를 엿보는 지윤, 하지만 민교수의 방해또한 만만치 않다.
여전히 사임당을 시기질투하는 휘음당. 부와 권력을 이용해 사임당을 옥죄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사임당은 더욱 고고해지고 의연해진다. 어떤 방법을 써도 사임당을 뛰어넘을수 없다는 자신만 발견하게 되는 휘음당은 점점 더 악에 받치게 된다. 갖지 못한것을 욕심내는 비뚤어진 욕망때문에 망가져가는 휘음당의 모습은 한편으론 애처롭다. 그녀도 단지 한 여인으로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데....그 사랑이 무엇이건데 한 여인의 인생을 이리도 망쳐놓은 것일까.. 사임당과 휘음당이 바라보는 남자 이겸. 사임당이 떠나야만 했던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 이겸은 더욱더 사임당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녀를 지키고자 한다. 그들의 안타까운 관계는 어떤 결말을 보여주려나..
위기의 순간에 전생과 현생을 뛰어넘어 서로 교감하게 되는 사임당과 지윤. 어둠이 아무리 까맣다 한들 한줄기 빛조차 가리지는 못하는 법. 한치 앞이 안보이는 힘든 삶일지라도 그 앞날엔 희망이 있기에 그렇게 지윤과 사임당은 자신을 위해 ,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여인 사임당을 재조명한 소설 <사임당, 빛의 일기 -상,하>.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온 그녀의 모습은 훌륭했지만 자기자신을 위해 그림에도, 사랑에 있어서도 조금더 욕심내어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여운으로 남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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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넘고 시대를 넘어서도 끝나지 않은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사임당-빛의 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인 사임당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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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kindlyhj/220984266543 ☞ 사임당 : 빛의 일기 上
한달여만에 두번째 '사임당 : 빛의 일기'를 만났다. 사실 여행을 가기 전에 다 읽고 여행을 가려고 했었지만, 계획한대로 되지 않아 여행을 다녀와서 어느정도 여독이 풀린 다음에서야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사임당과 이겸. 두 사람의 다시 시작된 인연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은 끝까지 기구했다.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읽는내내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팠다. 결혼을 하고 네 아이를 두었지만 여전히 이겸에 대한 마음을 모두 떨쳐내지 못한 사임당이나, 사임당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단 한번도 버릴 수 없었던 이겸이나. 그저 애처롭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겸은 알아내고야 말았다. 사임당이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하고 떠나야했던 이유를 말이다. 자신과의 혼약을 깨야했던 바로 그 이유. 20여년의 세월을 사임당은 홀로 어찌 감당하며 살아냈단 말인가. 이겸은 고맙고 미안하고 안타깝고 슬펐다. 그래서 잃어버린 그 20년의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그녀를 위해 살아야겠다 결심한다. 다른 남자의 아내라 할지라도, 두 사람 앞에 놓인 길이 영원히 만나지지 않는 평행선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녀의 곁을 지킬 것이라 다짐한다. 하지만 사임당은 그런 그를 내치기만 한다. 각자의 길을 가자고 단호히 등을 돌린다. 사임당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한번 연이 끊어진 사이다. 게다가 현재 자신에겐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이가 넷이나 있고, 지아비가 있으며 그녀가 살려내야 하는 유민들도 있다. 이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릴 수 없음이다. 때문에 모질게 마음을 다잡고 그와 멀어지려 애를 썼다. 이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날카로운 두 쌍의 눈이 있었다. 한쌍은 중종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이겸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참의 민치형이오, 또 한쌍은 사임당을 증오하는 민치형의 아내 휘음당이었다. 이겸은 그렇다해도 휘음당은 누구란 말인가. 사실 휘음당과 사임당의 인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인연은 이겸에게까지 닿아있었다. 한때 이겸을 짝사랑했던 휘음당. 하지만 이겸과 사임당의 사랑은 굳건했었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홀로 가슴앓이를 했던 휘음당은 끝내 그 탓을 사임당에게 돌리고 만다. 결국 그녀는 이겸과 사임당의 사이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뿐이 아니라 두 사람의 목숨마저도 위험에 빠뜨린다. 그 위기는 사임당이 사랑을 포기하면서 가까스로 넘겨야했었다. 그랬던 악연이.. 20여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겸의 여전히 지독한 사임당에 대한 사랑을 단번에 눈치챈 휘음당은 다시 질투와 증오의 불길에 휩싸인다. 한편, 현실에서 지윤은 민 교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증거를 확보했고, 남편 민석의 혐의를 벗길 수 있는 방법 또한 찾아낸다. 하지만 민 교수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리 없었고, 지윤은 다시 한번 좌절감에 빠져야 했다. 그녀가 위기에 빠져있을 때, 똑같이 위기에 빠진 과거의 사임당. 두 여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내고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전편에선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내용이 조금 두서없이 느껴졌었지만, 이번 이야기에선 자연스럽게 읽혔다. 전편보다 훨씬 흥미진진했고, 그만큼 재미나게 읽혔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평을 듣지 못한 드라마보다 책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시청자들에겐 선물같은 책이 되지 않을까? 그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는 독특한 사임당을 만나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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