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1%
  • 리뷰 총점8 35%
  • 리뷰 총점6 4%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내용보기
이 책은 독재정권으로부터 저항한 4명의 젊은 남녀의 삶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화자인 나(女)와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 이렇게 남녀 4인방이다. 앞에서는 롤라가 뒤에서는 테레자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하지만 커다란 줄거리는 이들 남녀 4인방이 이끄므로 이 네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살펴보면 된다.   이들 4인방은 독재정권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항하는 젊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내용보기

이 책은 독재정권으로부터 저항한 4명의 젊은 남녀의 삶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화자인 나(女)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 이렇게 남녀 4인방이다. 앞에서는 롤라가 뒤에서는 테레자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하지만 커다란 줄거리는 이들 남녀 4인방이 이끄므로 이 네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살펴보면 된다.

 

이들 4인방은 독재정권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항하는 젊은이들로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름별장에 비밀도서를 숨겨두고는 몰래 몰래 읽곤 한다. 때때로 이들은 독재에 대한 저항의 뜻이 담긴 를 지으며 저항의 뜻을 다지는데 이를 통해 4인방은 내부 결속력을 다진다. 독재정권에 반기를 들면서부터 이들 4인방은 감시자들로부터 감시와 압박을 받지만 서로를 의지하면서 그런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간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강제 실직을 당하면서부터 이들은 점점 압박감에 시달리고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다. 경감 프옐레 이들 4인방을 가장 강력하고도 교묘하게 괴롭히는데 이로 인해 화자인 나,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는 서로에 대한 의지가 약해져 같이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결국 실직으로 인한 절박한 상황에 빠진 4인방은 도주와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상당히 독특한 전개구조를 가지고 있다. 저자의 생각의 구조가 특이해서 그런지 일반적인 책들과는 전개방식이 눈에 띄게 다르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땐 저자의 이야기방식이 낯설어 잘 읽히지가 않았고 거부감마저 들었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도 잘 잡히지 않아서 난 중간에 책을 그만 읽으려고까지 했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점차 적응이 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저자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점차 독자의 이해를 높여주는 방식으로 전환을 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 중반부터는 읽기가 수월했다. 책이 점점 읽히면서부터는 자연스레 내용도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다. 양철양나무수박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해설해주지 않은 점과 마음짐승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갖게 한 점을 제외하곤 대체로 괜찮았던 것 같다.

 

이 책은 파트 구분이 따로 없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사람들이 독재정권으로부터 도주만 하려 한 점’이다.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주하다가 죽는다. 독재정권이 싫어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도망을 치려다 도중에 잡혀 강제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희한한 점은 저자가 거론한 도주자 중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도주를 하면 무조건 죽는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헌데 신기한 것은 상황이 이런데도 끊임없이 자유를 찾아 독재정권으로부터 도주를 한다는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여 도주를 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재정권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 살겠다고 도주하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자기만 살겠다고 도주한 인간들이 이 책엔 적지 않게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여재단사다. 여재단사는 애들 할머니애들만 남겨두고 자신만 살겠다고 도주한 인물로 이 책에서 유일하게 도주해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다른 이들은 도주하면 거의 100% 사살되었는데 오직 여재단사만 잡혀 죽었다는 얘기가 없다. 자신만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가족을 버린 여재단사는 무사히 국경을 넘어 독재정권의 힘이 미치지 않는 땅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도주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재정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도주를 한 것도 적극적인 행동이니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왜 이런 적극적인 사람들이 독재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생각은 않고 그저 도주만 할 생각을 했느냐는 것이다. 4인방은 소극적이라 적극적인 대항은 물론이고 도주조차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도주를 시도하다가 실제로 죽음을 맞이했다. 어차피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고 계획한 일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정도의 추진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도망이 아닌 적극적인 저항을 펼쳐보았으면 어땠을까? 왜 이들은 그저 도주만 생각하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는 난 그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쿠르트와 게오르크의 자살’이다. 독재정권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꿋꿋이 살아가던 화자인 나,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 남녀 4인방은 경감 프옐레를 비롯한 감시자들이 심한 압박을 가하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패배감을 견디지 못하고 한명씩 자살하기에 이른다. 게오르크는 타국인 독일에서 투신으로, 쿠르트는 자국인 루마니아에서 목을 매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솔직히 난 이들이 자살은 선택한 것에 대해 못 마땅한 입장이다. 아무리 감시자들이 자신들은 물론이고 주변사람들까지 압박하고 괴롭혔다고 해도 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들의 자살을 통해서 독재정권이 타격을 입어 무너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면 이들의 죽음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재정권 속에서도 힘겹게 버티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자기만 자유를 찾으려고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들은 이기주의자에다 겁쟁이일 뿐이다. 이들이 보인 행보를 보면 나의 주장이 억측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인방은 독재정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항한 적이 없다. 그저 비밀 도서를 몰래 읽고 여름별장이라는 곳에 책을 숨겨두고 세상을 조용히 비판한 정도가 다였다. 이들 4인방은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서 공개시위를 해본 적도 없고 공개비판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들은 독재에 대항하자고 학우들을 설득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저 4명이서 모여서 조용히 세상을 비판하는 시나 지으면서 더 나은 삶을 꿈꿨던 것이 이들이 독재에 저항한 전부였다. 만약 이들이 강제 실직만 당하지 않았다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적응해 살았을지도 모른다.

 

심한 감시와 모욕 그리고 협박을 통해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 이들을 상당히 압박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기왕 독재정권에 대항할 생각이었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이런 것도 미리 생각지 않고 독재 정권에 소극적으로나마 대항하려 했다는 것인가? 독재에 대항하는 것은 곧 죽음이다. 싸우다 혹은 고문 받다 죽었으면 이들의 죽음은 고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살이라니! 독재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려다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어지자 죽음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하다니! 이런 나약한 정신 상태를 가진 자들이 독재에 대항하려 했던 자들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독재에 순응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자들보단 낫지만 그래도 자살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하며 독재정권에 타격 한 번 제대로 입히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점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독재에 대항하여 싸우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도주자살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독재로부터 혼자만 자유를 만끽하고자 도주를 하거나 자살을 하는 것은 독재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없을뿐더러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에도 한없이 부족하다. 진정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감시자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독재에 휘둘려 나약해져만 가는 자신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독재정권에 휘둘려 50년 넘게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주민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모든 도주는 죽음을 향한 프러포즈였다.”

 

“우정은 누구한테 물려줄 수 있는 재킷이 아니야.”



d****3 2010.10.15. 신고 공감 6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응축된 시적언어로 그려진 전체주의의 살풍경
"응축된 시적언어로 그려진 전체주의의 살풍경" 내용보기
눈앞에 달린 술(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달리는 말처럼, 딱딱하게 얼어버린 채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감시원의 눈길을 의식하며 걸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 일상화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고문과 감금,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공포의 세계, 독재자‘차우세스쿠’의 사익을 위해서만 작동되던 1970,80년대의 경찰국가 루마
"응축된 시적언어로 그려진 전체주의의 살풍경" 내용보기

눈앞에 달린 술(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달리는 말처럼, 딱딱하게 얼어버린 채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감시원의 눈길을 의식하며 걸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 일상화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고문과 감금,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공포의 세계, 독재자‘차우세스쿠’의 사익을 위해서만 작동되던 1970,80년대의 경찰국가 루마니아 전체주의정권의 스케치이다. 사실 우리의 70년대 전후시기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어서 소설 속 네 명의 청춘을 온통 빼앗아버린 살풍경(殺風景)한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개인의 내면적 사유의 자유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사회, 권력이 지시하는 것에 순응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향인 전체주의사회는 거짓과 불신을 조장한다. 거리와 상점, 식당, 학교 어디든 감시원의 귀와 눈초리가 사람들을 침묵하게 한다. 소설은 이런 암흑의 세계에서 상처입고 헐떡이는 젊은이들의 불안한 초상을 중심으로 작가 특유의 응축된 시적언어로 처연하면서도 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초반‘네모’로 표현되는 대학 기숙사의 방처럼 소설의 언어와 문장은 메마르고 건조하며 지극히 짧게 완성되지만, 그 어떤 장황한 묘사보다 독창적이고 풍부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어 여운과 감동이 소실되지 않고 지속되는 특유의 풍요로운 감정적 느낌을 갖게 한다. 바로 네모는 공간의 형태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그 공간에 있는 여자 대학생들의 감성이기도 하며, 각박한 사회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네모의 벽장 속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되는‘롤라’의 공책에 쓰인 “...라고 롤라는 썼다.”라는 진술들은 그야말로 시로 승화된 소설 아닌가 할 정도의 백미(白眉)들이다.


개인의 짐을 넣어둔 사적 장소인 트렁크조차도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나라 안에는 똑같은 트렁크 열쇠가 수없이 많았다. 모든 열쇠가 거짓이었다.”는 문장처럼 이상의 너절한 수식과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불법 수색과 압류, 사적자치의 불인정, 국가권력의 위선과 기만, 공포가 모두 내장되어있다. 또한, “옷 속에 그림자만 들어 있는 것 같은, 하루 일과에 지친 남자가 보인다.”라는 한 문장에서 비참한 노동자, 민중들의 희망이라곤 기대하거나 찾을 수 없는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듯이, 문장들은 고밀도로 단단하게 짜여있어 그 풍부한 의미를 음미하느라 쉬이 책장을 넘기지 못한다.


롤라의 의심쩍은 죽음이 인연이 되어 모인 여대생‘나’와 남학생‘쿠르트’,‘에드가’그리고‘게오르크’는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시를 얘기하고, 노래를 부른다. 이들의 시와 노래는 부조리하고 불온한 세상에 대한 불안한 감정이 흐른다. 이는 전체주의에 기탁하여 민중의 피를 빨아대는 개새끼들과 개의 형상을 한 감시원, 비밀경찰의 음험한 시선을 모은다. 졸업 후 국가에 의해 배정된 지역과 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지지만 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주구(走狗), 경감 프엘레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은 은밀한 고발과 감시만이 설쳐대고 신뢰라고는 한 조각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집단에 불과하다.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기 위한 편지 속에는 머리카락 한 올을 넣고, 손톱가위는 심문, 수색은 신발, 미행은 감기 걸렸다...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쉼표하나로 약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편지에는 어김없이 이 단어들과 문장이 들어있고, 호칭 뒤의 쉼표는 지나치게 두꺼워지기만 하며, 수시로 가해지는 심문과 수색, 그리고 고문은 죽음의 휘파람 소리를 점점 가까이 들리게 한다. 전체주의에 순응하지 않거나 작은 조짐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도시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영혼이 사라진“도시의 정신병자들은 절대 죽지 않아. 쓰러지면 그들이 서있던 그 자리, 아스팔트에서 똑같은 사람이 솟아”오르듯이 인간의 본원적 정신을 빼앗을 수는 없는 것.


침묵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죄책감을 죽지 못해 사는 자신들의 가족과 이웃, 사람들로 정당화하지만, 그렇다고 파괴된 도덕성까지, 정의까지 모른 채하기에는 너무 젊기만 하다. 사악한 권력은 끝내 청춘의 목숨을 하나씩 앗아가고, 떠날 수 있는 자는 독일로, 헝가리로 도피한다. 발령 받은 곳에 자신의 짐을 풀 수 없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안에는 불안감에 날이 고추선 흉흉한 자의식인‘마음 짐승’만이 도사리는 곳, 독재자의 확인되지 않은 병에 대한 소문은 모두에게 쾌재를 부르게 하는 곳, “바늘귀에 꿰인 실처럼” 굴욕이 이어지는 곳, 오로지 불신만이 깊게 드리워진 세상이 젊음과 자유를, 인간의 존엄을 누른다. 전체주의의 무참함과 옥죄는 공포의 긴장이 젊은이들의 절망적인 시선에 불안하게 흔들리며 소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잔혹하고 뼈아픈 우리 인간사회의 기록이다. 다시금 헤르타 뮐러의 시적 감수성이 농축된 언어를 통해 음울한 이 시대의 초상을 우아하게 읽어냈다. 이 같은 역사의 오류, 인류의 어리석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리뷰 총점 종이책
빠져나간 마음짐승마저 아름답다
"빠져나간 마음짐승마저 아름답다" 내용보기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헤르타 뮐러의 작가 한마디다. 그녀의 작품들을 추적하며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이토록 뮐러의 소설에 매혹된 걸까?'라는 것이다. 언어 예술의 궁극을 달린다는 나름의 평가를 내렸지만,
"빠져나간 마음짐승마저 아름답다" 내용보기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헤르타 뮐러의 작가 한마디다. 그녀의 작품들을 추적하며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이토록 뮐러의 소설에 매혹된 걸까?'라는 것이다. 언어 예술의 궁극을 달린다는 나름의 평가를 내렸지만, 과연 그 이유였을까? <숨그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에 이어 만난 <마음짐승>을 통해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내용 자체로만 보면 피폐하고, 불안한 전후 전체주의의 단면을 담고 있어 무겁고, 다소 암울하다. 내용 이해가 힘들고, 화자의 목소리나 시점의 변화가 변화무쌍하여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일상과 대상에 대한 묘사, 인간 심리에 대한 서정 깃든 언어는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한 편의 그림을 보고 있는 건지, 나아가 처연한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짐승>은 지금까지 읽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 요소가 많은 소설이다. 마음짐승. 제목부터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그녀가 줄곧 고발하고자 했던 전체주의의 산물이 담겨있다. 루마니아의 독재 치하에서 소수 독일인이 겪어야 했던 핍박과 억압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심장이 뛰듯 그네를 탄다.

 

한 남자가 있다.라고 롤라는 쓴다. 옷 속에 그림자만 들어 있는 것 같은, 하루 일과에 지친 남자가 보인다. 그의 머릿속에선 사랑이, 주머니에선 돈이 사라진지 오래다. -P22

 

모든 도주는 죽음을 향한 프러포즈였다. 그래서 소곤거림은 매혹적이었다. 도주의 절반은 감시원의 개에게 들키거나 총탄에 맞아 좌절되었다. 흐르는 물, 움직이는 화물트럭, 가만히 있는 들판이 죽음의 궤적이었다. 농부들은 추수 때 옥수수밭에서 말라붙거나 터지거나 까마귀들이 쪼아 먹은 시체들을 발견했다. -P82

 

나를 포함한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 이렇게 4명의 청춘이 겪게 되는 억압의 시간들을 관조한다.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던 롤라가 체육 강사에게 강간을 당한 뒤 자살을 선택한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4명의 청춘은 경찰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독일로의 도주가 원천봉쇄된다. 또한 각자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게 되지만, 해고를 당한다. 그렇게 모진 감시와 억압 속에서 그들은 나름의 소통으로 연을 이어간다. 

 

너는 나무인간이야. 우리의 마음짐승은 생쥐처럼 도주했다. 털을 벗어놓고 무(無)로 사라졌다. 앞사람의 말을 받아 떠들어대면 마음짐승들은 더 오래 공기 중에 머물렀다. 날짜 쓰는 거 잊지마, 편지 속에 머리카락 한 올 넣는 것도, 에드가가 말했다. 머리카락이 들어 있지 않으면 누군가 편지를 펼쳐봤다는 거야, 에드가가 말했다. -P107

 

해고당하고 나서 우리는 익숙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 두려움을 느낄 때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고용됐든 해고됐든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낙오자로 여기자 스스로도 점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모든 게 옳았는데도 우리는 그렇게 느꼈다. 우리는 먼지로 흩어지기 직전의 나달나달한 가죽처럼 지쳤다. 독재자가 머지않아 죽으리라는 소문에, 도주하다 죽은 사람들 소식에 지쳐가면서 우리도 모르게 도주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 쪽으로 다가갔다. -P280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채 수색을 당하기도 하고, 그림자처럼 사람을 붙여 감시의 고삐를 놓지 않았던 프엘레 경감. 마치 우리나라의 60~70년대 독재 치하를 보는 듯 했다. 그들이 읊었던 시가 경감 프엘레에 의해 아래와 같이 바뀌기도 한다.

 

구름 한 점마다 친구가 들어 있네

공포로 가득한 세상에서 친구란 그런 거지

어머니도 원래 그런 거라 하셨네

친구야 아무렴 어떠니

진지한 일에나 마음을 쓰렴

 

구름 한 점마다 세 남자친구가 들어 있네

구름이 가득한 세상에서 창녀란 그런 거지

어머니도 원래 그런 거라 하셨네

남자친구가 셋이면 어떠니

진지한 일에나 마음을 쓰렴

 

-P124~125

 

어떻게 보면 감시를 당하고 있는 그들은 독재자 입장에선 하찮은 그 무엇에 불과했다. 하여 유희처럼 그들을 괴롭혔고, 가혹한 고문 또한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결국 '뱉어놓은 침보다 쓸모없는 게 배운 여자'라고 주인공인 나는 차츰 불안을 넘어 체념상태에 이르게 된다. 

 

수요일마다 까마귀 둥지는 비어 있었다. 거봐, 그가 말했다. 까마귀 얘기는 그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지푸라기 얘기는 맞지 않았다. 숲 바닥에 놓인 지푸라기는 하찮았다. 나는 그에게 그런 존재였고, 그도 나에게 마찬가지였다. 하찮음은 상실이 이미 습관이 되었을 때의 정거장이었다. -P209

 

나는 쿠르트에게도 말했다. 테레자랑 사귀어. 우정은 누구한테 물려줄 수 있는 재킷이 아니야. 그가 대답했다. 입을 수는 있겠지. 겉에서 보면 맞을 수도 있고. 하지만 속은 따뜻하지 않아. 무슨 말이든 유효했다. 발로 풀을 밟듯 입속의 말들로 많은 것을 짓밟는 것, 모든 작별이 그랬다. 사랑하고 떠나는 건 다름 아닌 우리였다. 우리는 어떤 노래에 담긴 저주를 극단으로 몰아갔다.

 

사랑하고 떠나는 자

신의 저주를 받아야 하리

풍뎅이의 걸음으로

바람의 웅웅 소리로

땅의 먼지로

신은 그를 저주해야 하리

-P295

 

초한적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는 창문이야. 누군가 한 번 거기로 뛰어내린 적이 있는, 나는 편지에 그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초한적인지는 경감 프엘레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악했다, 자신을 그 단어에 빗댈 만큼. 심지어 그는 발을 디뎌보지도 않은 땅에 묘지를 세웠다. 그는 복도를, 창문을 참 많이도 알고 있었다. -P304

 

작품 전면에 '마음짐승'이 등장한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자장가를 읊조리며 내뱉는 마음짐승. 저마다 생쥐처럼, 마법처럼,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본능처럼 마음짐승이 그들을 지배한다. 마치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에서 상징하는 날지 못하는 꿩의 모습으로 분한 마음짐승은 영혼을 피폐하게 한다. 어쩌면 <숨그네>에서 수용소의 배고픔과 절대 고독이 심장에서 그네를 뛰는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마음짐승>에서는 독재 치하에서 남겨진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도사린 커다란 불안에 다름 아니다. 

 

다시 한번 뮐러의 말을 되뇌여본다. 처참한 상황을 아름다운 문자로 풀고자 했던 그녀.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하며,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의 명예임을 강조했던 그녀가 새삼 사랑스럽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단문의 아름다움, 비극을 담는 아름다운 언어의 향연. 그래서 더더욱 뮐러의 문장에 빠져드는 건 아닐까?

 

한편으론 우리나라처럼 수난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드물기에, 일제 치하와 6.25전쟁, 분단과 이후 이념적 투쟁 등을 뮐러의 그것처럼 엮을 수 있는 작가가 왜 없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민족주의 문학이 종언을 알린 지 오래된 작금의 현실에서, 어쩌면 그러한 소재들은 시효가 지난 제재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뮐러의 사례에서 보듯, 그것을 담는 그릇과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독자가 감동받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숨 막히듯 응축된 불안 속에서 나려지는 뮐러의 언어 향연은, 말이 필요없는 소설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한동안 그녀의 작품 속에 푹 빠질 것 같다.



t******2 2010.09.25. 신고 공감 4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루마니아 헤르타 뮐러의 소설 [ 마음 짐승]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루마니아 헤르타 뮐러의 소설 [ 마음 짐승]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내용보기
끔찍한 충격과 공포를 겪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과정이 있을 것 같다.   먼저 두려움과 아픔을 겪는 것, 그것들을 통과하여 나온 후에 내면에서 정리하고 기억하는 것, 아련하면서도 트라우마인 상태로 보관된 그 ‘마음짐승’을 기록해서 표현해내고 남기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알려지게 되는 것.   헤르타 뮐러의 작품을 읽으며 고국 루마니아에서 방황과 불안
"루마니아 헤르타 뮐러의 소설 [ 마음 짐승]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내용보기

끔찍한 충격과 공포를 겪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과정이 있을 것 같다.

 

먼저 두려움과 아픔을 겪는 것,

그것들을 통과하여 나온 후에 내면에서 정리하고 기억하는 것,

아련하서도 트라우마인 상태로 보관된 그 마음짐승을 기록해서 표현해내고 남기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알려지게 되는 것.

 

헤르타 뮐러의 작품을 읽으며 고국 루마니아에서 방황과 불안의 청춘을 보낸 한 영혼이 겪었을 이 네가지의 모습들을 떠올리고 고스란히 체감하게 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소설이어서일 뿐 아니라 마음짐승을 읽는 것은 내게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부지불식간에 취미 혹은 열정으로 읽어온 서양 소설의 스펙트럼이란 것이 절대적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같은 나라에 몰려있었던 것임을 알았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어갔음에도 80년대 루마니아 독재정권 하의 젊은 주인공들의 심상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헤르타 뮐러가 고유하게 쉼표를 자주 쓰는 문체를 구사하고 있었던 것도 그간 읽던 소설들과 많이 달랐고 시적이고 환상적, 상징적인 표현들은 30년이 훌쩍 넘은 독자를 당시의 숨막히는 상황으로 뛰어들게끔 했다. 너무도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의 형식때문에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두움과 억압의 그늘속에 신음하고 분투(奮鬪)하는 인물들의 삶 깊숙이 들어갈수 있게 하는 실로 탁월한 필력이었다.

 

서유럽 중심주의의 가치관에서 철저히 벗어나 있는 마음 짐승의 프리즘으로 루마니아에 대해 그 이전 어느때보다 많은 것을 알고 느낄 수 있었고, 전혀 다른 체제의 세계관으로 스윗치를 전환할 수 있었다.

 

헤르타 뮐러를 통해 획일적인 사회주의가 낳은 부조리한 역사의 단면을 지식으로써가 아닌, 말그대로 온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는 소중한 독서 체험이었다.

 

자유를 통제당한다는 것은 너무 느리게 걸어서도 안되고 빠르게 걸어서도 안되는 것이라는 한마디에 전율과 강렬한 여운이 남는다.

 

http://blog.yes24.com/bohemian75

http://cafe.naver.com/mhdn/50652

YES마니아 : 로얄 b********5 2014.05.22. 신고 공감 3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눈부시고 찬란했어야 할 시기를 절망적인 기억들로 채워야만 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
"눈부시고 찬란했어야 할 시기를 절망적인 기억들로 채워야만 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사람들은 자주 현실을 잊곤 한다. 고통스럽고 힘이 들면 힘이 들수록 되도록이면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고 하지. 그렇게 무디어져 가고 무감각해져 가는 것이다. <마음짐승>은 책을 읽는 것이 괴롭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기에 그저 글만을 읽을 생각이라면 너무나도 쉽게 술술 읽히지만 그 잔잔히 흐르는 듯한 물밑 아래에 정체모
"눈부시고 찬란했어야 할 시기를 절망적인 기억들로 채워야만 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사람들은 자주 현실을 잊곤 한다. 고통스럽고 힘이 들면 힘이 들수록 되도록이면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고 하지. 그렇게 무디어져 가고 무감각해져 가는 것이다. <마음짐승>은 책을 읽는 것이 괴롭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기에 그저 글만을 읽을 생각이라면 너무나도 쉽게 술술 읽히지만 그 잔잔히 흐르는 듯한 물밑 아래에 정체모를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어 글을 읽는 것이 괴롭더라.

물론 공포물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다. 뭔가 스펙타클하고 역동적인 내용이 아닌데도 책을 읽다보면 그대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 아름답고도 잔잔한 문장들 아래로 흐르는 뭔지 모를 불안감이 스물스물 온몸에 기어올라 나를 잠식할 것만 같은 두려움… 시와도 같은 운율을 가졌지만 길게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만 같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은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들이 느끼는 그 불안감과 공포를 함께 느껴야 했다.

저자인 헤르타 뮐러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 아래에 잔혹한 진실들을 숨겨 놓았다. 그 숨겨진 진실들은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지만 서서히 읽는 이의 마음 안에 검은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듯 처음에는 작은 얼룩에 불과했을 불안감과 거북함 같은 감정들을 조금씩 고조시킨다. 그렇게 독특한 문장들에 떠밀려 읽게 된 이 책은 생각보다 더 어두운 전체주의의 실상을 고하고 있었다.

가난한 마을 출신으로 그 가난을 벗어나보고자 자신의 반려가 되어줄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 - 아마도 인텔리를 말하고 싶었던 듯… - 를 찾던 롤라는 어느 날 갑자기 기숙사에서 목을 맨다. 자살… 이라는 결과로만 끝났을 그 사건은 ‘나’가 트렁크 안에 있던 롤라의 공책을 찾아내면서 뒤틀린다. 체육 강사에게 강간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던 롤라의 공책.

체육 강사가 저녁에 나를 체육관으로 불러 안에서 문을 잠갔다, 라고 롤라는 썼다. 두꺼운 가죽공들만이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는 한 번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몰래 그를 뒤쫓아가 그의 집을 알아냈다. 그의 셔츠를 하얗게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가 교수회의에서 나를 신고했다. 나는 메마름을 떼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신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는 결코 발이 붉은 양 떼를 몰지 않으리라.
- p.36

롤라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있는 ‘나’와 세명의 남학생은 서로가 만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이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면서 친해지지만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비밀경찰의 감시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간 이하의 대우와 탄압. 게오르크의 의문의 죽음. 망명 후에도 계속되는 감시. 눈부시고 찬란했어야 할 시기를 절망적인 기억들로 채워야만 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이 <마음짐승>이다.

올바름과 참됨이 죽은 시기… 추함이 아름다움을 짓밟던 시기… 기득권자들의 탐욕으로 인해 벌어졌던 일들을 담담한 필체로 풀어낸 이 책은 전체주의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었다. 전체주의 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기에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해서 경계하라고… 이 같은 실상을 가진 전제주의 라고 하는 것은 결코 만들어내서도 만들어져서도 안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민정치라 멸시 받는다 해도 민주주의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후세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요새 들어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국가를 위해서…” 라는 말. 개인과 국민이 있어야만 국가는 존재하는데 그러한 국가가 개인들에게 희생을,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번 정권에 들어서면서 자꾸만 강화되는 공권력들이 점점 불쾌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에 읽게 된 이 책은 그러한 상황들을 무심코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제는 그것을 고민해봐야 하겠다.



n******5 2010.10.29.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나무인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무인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용보기
헤르타 뮐러의 소설은 ‘언어의 향연’이 안개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조어법(造語法)을 빌리자면 ‘언어안개’라고 할 수 있다. 언어안개 속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말해 줄 사람은 없으리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불안한 길을 오직 ‘나’만이 언어들을 주섬주섬 챙겨야 한다. 작가에게 루마니아의 독재 상황은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 속에서 주고받은 말들은 간결하
"나무인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용보기

헤르타 뮐러의 소설은 ‘언어의 향연’이 안개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조어법(造語法)을 빌리자면 ‘언어안개’라고 할 수 있다. 언어안개 속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말해 줄 사람은 없으리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불안한 길을 오직 ‘나’만이 언어들을 주섬주섬 챙겨야 한다. 작가에게 루마니아의 독재 상황은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 속에서 주고받은 말들은 간결하면서도 어둡게 부서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특한 은유(隱喩)라는 간절함이 삶의 메마름을 적셨다. 이번『마음짐승』도 마찬가지다. ‘마음’과 ‘짐승’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를 가지고 작가는 ‘마음짐승’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도 정작 그녀의 언어는 시적이며 은유적이라 우리는 남몰래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다. 

 

『마음짐승』을 찬찬히 펼치면 루마니아 독채 치하에서 대학생 롤라의 죽음이 있고 죽음을 전후로 작중화자인 ‘나’와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라는 세 남자와의 얽히고설킨 굵직하게 아픈 시간들이 있다. 얼굴에 빈곤한 지방을 가졌던 롤라는 자신이 살던 메마른(굶주림)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왔다. 메마름이 모든 것을 먹어치웠지만 롤라는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가 곧 ‘내 사랑’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그녀에게는 맹목적인 증오가 있었다. 맹목적인 증오란 구내식당에서 접시 위의 고기를 먹는데 숟가락만 먹는 것이다. 나이프와 포크를 쓸 수 있으면 그녀가 굳이 짐승처럼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짐승처럼 먹어야 했다. 

 

만약 롤라가 ‘내 사랑’을 하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자살했을까? 아마도 그녀는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4년 뒤에 내 사랑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사랑은 한 밤중에 전차를 타는 남자와 달랐다. 내 사랑은 하얀 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하는 남자다. 반면에 한 밤중에 전차를 타는 남자는 옷 속에 그림자만 들어 있다. 그러나 독재 치하에서 그녀의 맹목적인 증오는 더 이상 숨 쉴 구멍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빨간 수첩을 가진 당원에도 불구하고 당은 그녀를 경멸했고 국가적 수치로 여겼다. 이유인즉 그녀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자살은 자살로 끝나지 않고 침묵을 남겼다. 그녀의 친구 에드가의 말대로 ‘침묵하면 불편했지만’ 오히려 침묵으로도 많은 것을 짓밟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침묵…그럴 것이다. 삶의 소중한 것을 침묵으로 무겁게 지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가 하면 이 소설에서 보듯 ‘마음짐승’을 쉬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면 사람은 누구나 마음짐승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먼저 ‘생쥐’일 수 있다. 털을 벗어놓고 무(無)로 사라지는 것이다. 소설에 따르면 그녀는 다른 여자의 남편을 빼앗는다.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 노래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얻는다. 그녀가 그를 갖고자 하므로 그가 아닌, 그의 들판을. 그리고 그녀는 그를 소유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는 그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인간’일 수도 있다.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당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문득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나무인간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무인간처럼 지루한 삶을 버티며 살 수 있을까? 나무인간이 독재자들이 만든 하나의 허영이라고 한다면 사는 동안 우리는 흉측한 짐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짐승과 달리 묘지를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묘지는 독재자들이 가장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 나오는 청춘들은 묘지 만드는 것을 방해하고자 한다. 단지 이 세상에서 ‘걷고, 먹고, 자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해서 묘지를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는 독재자의 오류보다도 더 가장 큰 오류였다. 이 소설에서 ‘나’는 어떤 죽음이든 자루와 같다고 했다. 그 자루에는 허리띠, 창문, 호두와 노끈이 들어 있다. 자루에 든 네 가지는 곧 맹목적인 눈물과 같다. 

 

이중에서 호두와 관련된 테레자의 죽음은 남다르다. 사람들은 벼락출세한 자, 자기를 기만한 자, 양심불량자를 ‘자두 처먹은 놈’일고 불렀다. 또한 독재자를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테레자의 겨드랑이 아래에 죽음의 덩어리인 호두가 있었다. ‘나’에게 그녀의 호두가 문제인 것은 ‘호두는 우리에게 대항했으며 모든 사랑에 대항해 자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든 걸 누설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우리의 우정을 갉아 먹었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증오인지 불분명했으나 사랑이 풀과 지푸라기처럼 섞여 자라나길 바랐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가장 어리석은 식물이 되고 말았다. 

 

『마음짐승』을 쓴 헤르타 뮐러는「문학이 증인이 될 수 있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꽃잎과 나뭇잎을 먹었다. 그들과 내 혀가 친척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비슷해질 수 있도록. 왜냐하면 그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아니었다.’ 그들(식물)은 사랑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사랑을 모르는 것일까? 우리 사는 곳이 지옥이며 더욱 더 지옥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부조리한 권력의 생리 때문일까? 부패한 권력 앞에서 사랑은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른다. 좀 더 불안하게, 좀 더 하찮게… 작가에 따르면 하찮음은 상실이 이미 습관이 되었을 때의 정거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2010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한 둘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욕망의 바벨탑이 허물어지고 세워지기를 계속하고 있다. 일찍이 역사학자인 부르크하르트는『세계사적 고찰』에서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어느 한 순간 영리해지기 보다는 영원히 지혜로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9년 노벨문학상 작가인 헤르타 뮐러를 통해 우리는 루마니아의 참다한 역사를 새로운 서사구조로 눈여겨보게 되었다. 작가와 루마니아의 역사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었다. 차우셰스쿠 정권하에서 하루하루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작가는 생의 의지를 깨달았다. 작가가 말하는 생의 의지는『마음짐승』에서는 에밀 시오랑이 말한 ‘이유 없는 불안’이었다. 다시 말하면 독재하의 이유 없는 불안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실존의 물음부터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마음짐승』은 불행하다. 겉보기에는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내면에는 타살의 흔적들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자살, 타살보다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다름 아닌 ‘피부’다. 폴 발레리는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마음짐승』에서 빈곤한 지방을 가진 얼굴이며 이발사와 손톱가위는 피부를 억압한다. 그러보면 이 세상에서 자신의 피부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나무인간이 된다면 피부는 부서지기 쉬우며 감정의 호르몬은 더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0 2010.10.19.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짐승.
"마음짐승." 내용보기
두 눈을 아무리 비벼 보아도 글을 오롯이 씹어 삼킬 수 없는 이유는 나의 마음 때문인가 보다. 롤라를 외부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는 누구인지 혼란스럽다. '나'가 말하는 '네모'가 기숙사 방 안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제서야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귓가에 머무르고 흐릿했던 사물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은 롤라의 죽
"마음짐승." 내용보기

두 눈을 아무리 비벼 보아도 글을 오롯이 씹어 삼킬 수 없는 이유는 나의 마음 때문인가 보다. 롤라를 외부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는 누구인지 혼란스럽다. '나'가 말하는 '네모'가 기숙사 방 안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제서야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귓가에 머무르고 흐릿했던 사물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은 롤라의 죽음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롤라를 죽게 한 사람은 누구인지, 왜 죽었는지에 파고 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롤라는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의 기억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롤라의 죽음으로 '나'의 내부에 억압된 사슬이 스르르 풀려버리고 '나'와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가 함께 바라본 세상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나'와 롤라,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의 자유가 억압된 삶은 '숨그네'를 떠올리게 만들며 '마음짐승'이 '숨그네'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도 '마음짐승'에서는 죽음을 무심하게 바라보게 만들진 않는다. 단지 침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해 준다. 롤라의 죽음에 대해 이제 모든 독자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간 이 가련한 영혼을 기억해줄 이가 있을까. 흰 종이 위에 남겨진 글에서만이 롤라가 이 세상에 있었음을 증명해줄 뿐이다. 그러나 롤라가 남겨 놓은 공책이 사라졌으니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녀를 기억해내야 한다.

 

독재자 '차우셰스쿠' 아래에서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아가는 이들은 감시원의 시선 아래에서 말을 잃어가고 마음의 빗장마저 닫아 버린다. 자신의 소유물인 트렁크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 수없이 많은 똑같은 열쇠들이 열어 젖힐 수 있는 트렁크는 이미 '억압'의 대상물이다. 편지 속에 머리카락 한 올을 넣고, 트렁크 위에도 머리카락을 둬야 할 만큼 나를 에워싼 모든 것이 나를 감시한다. 편지를 쓸 때는 손톱가위는 심문, 수색은 신발 등 우리들이 평상시에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들을 암호로 사용해야할 정도로 영혼까지 억압당한다. 생각들이 자유롭게 흘러 가지 못하고 고여 썩어가고 급기야 '나'와 에드가는 고향을 등지게 된다.

 

얼마동안의 세월이 흐른 후 '나'와 에드가가 고향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네들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들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쿠르트', '게오르크'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미 언급하여 알고 있었지만 왜 '나'와 에드가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는지 알아가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경감 프옐레가 집요하게 이들을 압박해 오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불행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지만 모든 것에 침묵하지 못했던 이들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봐야 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남긴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헤르타 뮐러의 시적 언어는 현실이 잔혹함을 알고 있음에도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억압받는 삶이지만 다른 이들처럼 외면하고 살면 되지 않느냐, 는 말조차 던지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 옷 속에 그림자만 있을 것 같은 지쳐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표현한 글 정도만이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전체주의의 흐름에 거스른 사람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정신이 빼앗긴 이들만이 이 곳에서 살아간다. 도피하고, 떠날 수 있는 자들만이 이곳을 기억하고 죽은 이들만의 기억속에서나마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청춘의 시대에 자유과 정신을 억압당한 이들이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마음짐승"을 누르며 억압하고 나서야 헤르타 뮐러의 아름다운 시적 언어에 의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었으니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무릇 역사란, 사람들의 삶이란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y*****6 2010.09.02.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짐승
"마음짐승" 내용보기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시대를 잘 못 만나 불안과 공포속에 조심스럽게 목숨을 유지했던 청춘들에 대한 이야   기. 그런 숨막힘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온전히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의 감정을 제대   로 느낄 수는 없지만 읽으면서 저런 경험을 하지 못한게 다행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마음껏 지껄이면서 다녀야지 ㅋ)
"마음짐승" 내용보기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시대를 잘 못 만나 불안과 공포속에 조심스럽게 목숨을 유지했던 청춘들에 대한 이야

 

기. 그런 숨막힘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온전히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의 감정을 제대

 

로 느낄 수는 없지만 읽으면서 저런 경험을 하지 못한게 다행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마음껏 지껄이면서 다녀야지 ㅋ)

 

이번이 그녀의 책을 세권째 읽게 된것인데 나와는 전혀 상관없던 루마니아가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와 루마니아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처럼 많이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계속 자매처럼 느낄거 같다.

 

 

 

 

 

 

 

k******2 2010.09.02.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독재의 아픔을 시의 언어로 그리는 [마음 짐승]
"독재의 아픔을 시의 언어로 그리는 [마음 짐승]" 내용보기
독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또한 일가견이 있다. 공화국 시절로 불렸던 독재체제. 금기된 책이 있고 말 한마디 함부로 못하던 시절. 그 터져나올듯 한 억압에 대해 헤르타 뮐러는 줄곧 써 온 것이다.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도 어릴 적에 초록 자두를 먹었다. 그들에 게는 자두와 관련된 어떤 풍경도 머릿속에 남아닜지 않았다. 그 누구 의 아버지도 자두 먹는 걸 말리지 않았으
"독재의 아픔을 시의 언어로 그리는 [마음 짐승]" 내용보기

독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또한 일가견이 있다.
공화국 시절로 불렸던 독재체제. 금기된 책이 있고 말 한마디 함부로 못하던 시절. 그 터져나올듯 한 억압에 대해 헤르타 뮐러는 줄곧 써 온 것이다.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도 어릴 적에 초록 자두를 먹었다. 그들에

게는 자두와 관련된 어떤 풍경도 머릿속에 남아닜지 않았다. 그 누구

의 아버지도 자두 먹는 걸 말리지 않았으므로. 꼼짝없이 죽는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나를 놀렸다. 하얗게 열이 오르고 심장이

안에서부터 타버려.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죽음을 물 필요가 없

었어, 아버지가 안 볼 때 먹었으니까. 감시원들은 대놓고 먹어, 내가

말했다. 그래도 그들은 죽음을 물지 않아, 행인들도 자두 딸 때 나는

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가난의 시큼한 트림을 알고 있거든.

 

여기, '자살'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 용납하지 않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 한다. 수치스러운 것이다. 당에게 자살로 인해 수치를 안기고, 당의 위신을 떨어트렸다. 이 뿐이다. 과도한 존경심은 극단적인 방법들을 부른다.

 

강간과 독재의 피해자인 그녀들을 당은 수치스러워 하고, 그녀를 과도한 박수로 지우려 한다. 그녀들을 지우고, 충성을 다짐하기 위한 박수는 멈추지 않는다. 누구 하나라도 멈추려 한다면 당에 대한 충성을 의심받을 것이 뻔한 상황인 것이다. 박수는 하루 종일 지속된다.

 

아이러니컬 한 상황들의 연속 속에서 삶의 모습은 단편적으로만 보여지고, 끔찍한 상황을 묘사하는 언어는 미적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몸부림치는 삶들이 있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저들을 기억하려 애쓰고, 이야기하고, 또 잡혀간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때에도, 그 기억들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한 여인의 손에 의해 써지도록, 사람의 기억이란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상처자욱처럼, 독재의 모든 과정 과정은 남을 것이다. 마치 독재에 바치는 아이러니컬한 헌사와도 같은 이 소설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독재, 압제, 모든 삶을 압박하는 이들에게 건네넌 저주의 시다.

p*********y 2010.08.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마음짐승’ - 불안과 공포 그리고 슬픔과 아픔
"‘마음짐승’ - 불안과 공포 그리고 슬픔과 아픔" 내용보기
불안과 공포는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감정이다.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작가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는 “희망과 공포는 분리될 수 없다. 공포 없는 희망이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가 없다.”고 말했다.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청춘들의 일기와도 같은 소설이다.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
"‘마음짐승’ - 불안과 공포 그리고 슬픔과 아픔" 내용보기

 

 

 

불안과 공포는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감정이다.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작가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는 “희망과 공포는 분리될 수 없다. 공포 없는 희망이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가 없다.”고 말했다.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청춘들의 일기와도 같은 소설이다.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지는, 그런 시대를 살았던 젊음들에게 주어졌던 것은 슬픔과 아픔이다.

 

‘나’는 트렁크에서 룸메이트 롤라의 공책을 발견한다. 남쪽의 빈곤한 지방에서 온 롤라는 손톱이 깨끗하고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던 중이었다. 뭔가 되어가는 것 같았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내 허리띠로 목을 매 자살을 하고 나는 공책의 마지막 장을 통해 이 죽음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체육 강사가 저녁에 나를 체육관으로 불러 안에서 문을 잠갔다, 라고 롤라는 썼다. 두꺼운 가족 공들만이 우리를 지켜보았다…….중략……. 그가 교수회의에서 나를 신고했다. 나는 메마름을 떼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신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는 발이 붉은 양 떼를 몰지 않으리라. (p.36)

 

헤르타 뮐러의 작품 ‘마음짐승’의 테마는 ‘전체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상은 독재자들이 권력 강화를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이다. 작가 본인이 그런 시대를 살았고 생생한 경험과 참상들이 자신의 글들에 녹아들어 있다. 과연 이 소설에서는 어떤 경험을 이야기하고 얼마나 더 비극적인 참상을 보여주게 될 것인가. 뮐러는 ‘낱말상자’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고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새로운 말들을 탄생시킨다. ‘마음짐승’이라는 단어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단어는 불안과 공포의 삶 속에서 절망하는 이들의 모습을 의미한다. 또한 시적 언어들의 사용으로 인해 여타 소설가들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최신작인 ‘숨그네’와 이 작품을 비교, 대조하며 읽어본다면 작가의 문학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마음짐승’은 1994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를 통치했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불안과 두려움이 감도는 와중에도 뮐러는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의 명예를 잃지 않는다.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이런 독특함이 악에 관한 한 편의 잔혹동화와 같은 소설을 탄생시켰다. 온유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내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소설에 등장하는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 그리고 주인공이 친구가 되어 모임을 갖고 책을 접하는 것처럼 실제로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악티온스구루페’라는 젊은 지식인들의 집단을 결성해 금서들을 읽으며 활동했다.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뮐러는 그 당시 모든 걸 제대로 이해하고픈 욕구가 강했으며 불행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작가의 생각은 ‘마음짐승’ 속에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완치되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는 것, 뮐러의 이야기들은 난해하고 고통스럽다. (우리에게도 그런 상처는 남아 있다. 아직도......)

 

‘마음짐승’은 독재치하에서 죽은 두 친구 롤프 보세르트와 롤란트 키르시를 위해 썼다고 한다. ‘숨그네’가 동료였던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미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본다면 이 두 소설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하겠다. 독일의 철학자 폴 티리히는 “죽게 된다는 깊은 슬픔은 곧 영원히 잊혀진다는 두려움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뮐러의 세 친구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잊혀지는 두려움은 맛보지 않을 것이다.)

 

독재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나와 친구들은 감시의 대상이 되고 죽음의 피리소리에 힘겹게 대항한다. 나는 결국 루마니아를 떠나 독일로 망명하지만 죽음의 공포는 끊임없이 엄습해온다. 인내만이 그들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유일한 희망조차 완전한 동아줄은 아니었다.

 

그들은 불행한 현실에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했고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죽지 못해 살았다. 각자 자살을 통해 어떤 식으로 친구들을 버릴 수 있을까 상상하면서. (어떤 이에게 있어 하루하루가 사랑일지 몰라도 또 다른 이에겐 그 하루가 지옥이다.)

 

지옥 같은 삶을 영위해갈 여력이 없었는지 게오르크와 쿠르트는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고 만다. 육 층 건물에서 떨어져 즉사하고 집에서 목을 매 시체로 발견된 친구들, 나와 에드가는 루마니아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짐승은 너무나 지쳤고 큰 상처를 입었다.

 

이 소설이 독자인 우리들에게 남기는 질문과 의문점은 적지 않다. 당신의 ‘마음짐승’은 어떤 모습인가. 물론 우리가 독재치하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불안과 공포가 담겨져 있다. 현실의 불안정한 다리 위에 선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소설은 슬픔과 아픔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