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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이 작품을 보면, 신라의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가 떠오른다.
삶과 죽음의 길은[生死路隠]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此矣有阿米次肹伊遣], “나는 간다”는 말도[吾隐去内如辝叱都] 못 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毛如云遣去内尼叱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於內秋察早隠風未]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한 가지에 나고[一等隠枝良出古] 가는 곳 모르온저[去奴隠處毛冬乎丁].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阿也, 彌陁刹良逢乎吾] 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道修良待].
두 작품 모두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죽음이라는 ‘이별’로 그려내고 있다. 신라의 승려 월명사(月明師)는 누이를 기렸는데, 대한민국의 판화가 이철수는 누구를 기리며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사실 이 책,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는 시집(詩集)처럼 리뷰쓰기가 난감한 글이다. 작품마다 이렇게 간략한 느낌을 달기도 그렇고, 반대로 하나로 뭉쳐서 감상을 늘어놓기에는 각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도 소재도 모두 다르다. 마치 사람의 일생을 요약해서 감상을 적으라고 하면, 한참 머리를 싸매다가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혹은 ‘태어나서 아이를 낳고 살다가 죽었다’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기에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를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호기심에 구입했지만 막상 책을 펼쳤다가 덮고 나니 막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삶에 대한 자습서랄까? 한번에 읽어 내릴 수는 있지만, 진도에 따라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하는 자습서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틈틈이 읽어야 하는 그런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책 소개에 언급된 것처럼 저자의 판화가 선(禪)의 세계를 일상적인 삶으로 끌어들인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반대로 일상을 선(禪)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입시교육에서 비롯된 분석에의 강박 때문일 수도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자기 작품에 대한 ‘저자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있지도 않는 허상을 찾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명확한 것 같다. 불교의 ‘화두(話頭)’처럼 곱씹으면서 보고 읽고 느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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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화가 이철수는 일벌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판화를 만들어낸다. 그는 그 판화를 인터넷에 올리고 필요한 사람에게 메일로 보내준다. 어떨 때는 하루에 서너개의 판화가 배달될 때도 있다. 언젠가 이철수는 가슴속에 있는 분노와 슬픔이 자신의 창작의 원천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에 살림집과 작업실을 마련하고 사는 그에게도 아직 풀리지 않는 분노와 슬픔이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분노와 슬픔이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세상을 관조하듯 물 흘러가듯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곳곳에 배어 있다. 나는 그것이 비록 그런 삶을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꿈 꿀수는 있는 것 아니냐는 항변으로 들린다. 오늘도 나는 이철수의 판화를 보면서 그의 분노를 그리고 나의 슬픔을 헤아려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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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 저 | 문학동네 | 143쪽 | 543g | 2003년 11월 07일 | 정가 : 18,000원 [책은 도끼다]를 읽고 이철수 선생의 판화집을 찾아다녔다. 몇권을 읽었는데, 그 읽은 몇권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참 어려웠다. 점 하나, 나뭇잎 하나, 찻잔 하나, 나무 한그루 던져 놓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참으로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하는 것인데도, 나는 마음이 급해 천천히 읽고 다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시 안에는 우주가 있는데, 우주를 느끼기에는 내 품이 너무 작다. 나는 날마다 들끓고 속 시끄러운데 어찌 저 멀리 가는 길까지 그리 평온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두고두고 읽을 수 없게 이 책은 절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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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의 글과 그림은 지친 영혼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바쁘고 힘들때 짬을 내서 한 꼭지 두 꼭지 읽다보면 차분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 내가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해?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인데. 멀리 보고 넓게 보면 결국 아무 일도 아닌 것을....'
얼마 전에 읽었던 나뭇잎 편지에 비해 작품집이 크고, 판화 형식이어서 그런지
그림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짧을 글을 통해 그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 좀 있었다. 다시 한 번 천천이 음미하며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은 내가 읽고 좋아서 따로 적어 놓았던 구절들이다.
'길'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 몰라도 그 길 알아도 그 길 우리들의 삶 그렇기는 하지만 떠나려니 부끄럽다. 길 위에서 길을 찾지 못하였다. ---------------------------- 길 위에서 길을 찾지만, 결국 길을 못찾는다는. 말장난 같지만 정말 깊은 뜻이 담겨있어 입 속에 맴돌리며 자꾸 읽게 되었다. 지금의 나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눈보라' 눈보라가 거칠어 눈 뜨지 못하겠다. 눈 감고도 보이는 길만 길이다. ------------------------------- 이 역시 짧지만 큰 울림을 주었다. 정말 그 길이 맞다면, 눈을 감고서도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여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나아갈 수 있는 길. 정말 멋지다!
'화두 - 빨래를 널면서' 미간을 빨랫줄 삼아서 마음 가져다 널어보라. 바람부는대로 색색의 마음 나부끼면서, 갈수록 가벼워짐도 그렇거니 가끔씩 떨어져 땅에 뒹굴어도 그만. 마음 빨래와 같으니 ---------------------------------- 마음을 빨래에 비유한 글이다. 미간을 빨래줄에 비유하였고. 정말 대단한 비유이다.
'배꽃'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 한 생애가 빨리 흐르는 저 별똥과 같음을 안다. --------------------------------- 배꽃이 하얗게 지는 밤에 별똥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내가 깨닫는 바는 우리의 삶이 이토록 아름다운 삶이 저토록 빨리 지는 것임을 깨닫는다. 슬프네.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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