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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끝자락까지 부끄러움을 부여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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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옛소설 '외딴방'을 읽다보면 반성문 쓰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읽은 반성문에 관한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공장에서 일하고 밤늦게 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녀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선생님께 반성문을 쓰라는 이야길 듣는다. 소녀는 반성문을 쓰기 시작한다. 말없는 소녀는 글을 쓰는게 편하다. 형식적으로 쓴 한 장 짜리 반성문만 봐왔던 선생님 눈에 소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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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옛소설 '외딴방'을 읽다보면 반성문 쓰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읽은 반성문에 관한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공장에서 일하고 밤늦게 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녀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선생님께 반성문을 쓰라는 이야길 듣는다. 소녀는 반성문을 쓰기 시작한다. 말없는 소녀는 글을 쓰는게 편하다. 형식적으로 쓴 한 장 짜리 반성문만 봐왔던 선생님 눈에 소녀의 특별한 재능이 발견된다. 선생님은 소녀에게 '너는 글쓰는 아이가 되면 좋겠구나'한다. 소녀는 지금 작가가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여기 다른 방법으로 작가로 만든 반성문이 있다.

김도연의 반성문은 억울한 구석이 있어보인다. 중학교 2학년 소년에게 500매 짜리 반성문이라니? 5매도 벅찼을 텐데 500매라니? 이 어마어마한 반성문을 써 낼 소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소년도 그랬다. 벌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뻔뻔하지도 못하다. 담임 선생님도 아닌데 그깟 반성문쯤은 잊어버릴 만도 한데 이 선생님은 잊지도 않고 반성문을 요구한다. 그러더니 30년 뒤 병상에 누워서까지 반성문을 써내라고 나이든 제자를 다그친다.

선생님은 왜 반성문 500매를 요구하셨을까? 당신이 글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어느 누구든 남의 글을 함부로 훔치는 행동을 용서하지 못하셨기 때문일까? 아님 소년이 500매 정도는 써 낼 정도의 재능이 있어 보였기 때문일까?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나이든 제자에게 반성문을 요구하신 건 그 소년이 작가였기 때문인 건 확실하다.

처음 공개적으로 쓴 글이 하필 표절이었던 작가. 소년은 작가가 되어서도 이 부끄러운 체험을 떠올르지 않았다. 아니 안좋은 기억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다. 한번도 떠오르지 않던 기억은 선생님의 '반성문 내야지?'하는 말 한마디에 생생하게 재현된다. 소년은 잊어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여 작가는 '부끄러움은 인생의 끝자락까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모양이네'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끝까지 간다는 건 인생을 착하게 살았다는 증거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뻔뻔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 시절에 특히 그렇다. 나이가 들어도 부끄러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나를 소중히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부끄러운 짓을 했다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반성이란 잘못한 것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것, 또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반성'이란 말이 정말 좋은 말이구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n****5 2011.03.24.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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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에 대한 몇 가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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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절, 창작의 원천 표절은 이 시대의 화두 가운데 하나다. 키치문학처럼 드러내놓고 표절, 심지어 복제까지 시도하며 원본 비틀기에서 작품성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표절 사실을 숨기기에 바쁘고 애써 발뺌하려는 분위기가 대세다. 특히 대중음악 창작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실은 모든 창작품이 표절과 복제에서 완전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직접 대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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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절, 창작의 원천


표절은 이 시대의 화두 가운데 하나다. 키치문학처럼 드러내놓고 표절, 심지어 복제까지 시도하며 원본 비틀기에서 작품성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표절 사실을 숨기기에 바쁘고 애써 발뺌하려는 분위기가 대세다. 특히 대중음악 창작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실은 모든 창작품이 표절과 복제에서 완전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직접 대놓고 베낀 건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원작의 이미지를 차용한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순수 최초로 이루어진 창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물론 표절을 장려할 수는 없겠지만 완전 금기시하는 것은 예술 창작의 원천을 봉쇄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하여 표절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좀 삼갔으면 한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가릴 건 가리고 받아들일만한 것은 용인해야 예술의 풍성함과 질적인 깊이를 쌓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물론 표절자의 윤리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라 할까,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누구를 사숙했다든지,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든지 하는 것을 솔직하게 밝힌다면 크게 문제될 것도 아니라고 본다. 이 책에는 어린 시절 행했던 표절의 경험을 평생의 업보,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어른 아이가 나오는데 누구나 습작기엔 통과의례처럼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인데 너무 심각하게 여긴 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 기억을 의식에서 애써 지우려했던 게 아닐까?


2. 말 없음의 무게


때론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말을 건넬 수 있다. 재잘거리는 숱한 언어들 속에 정작 의미는 사상되고 공허한 발음만 허공에 내뱉는 경우가 대부분인 시대에 차라리 입을 닫음으로 더 깊은 사인을 상대에게, 세상에 발신할 수 있는 것이다. [진부의 송어 낚시]의 고3, 정미는 세상과 절연한 대신 송어에게 심경을 고백한다. 특별한 말로 자신의 절박함을 포장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실은 없는 대상에게 독백하듯, 아니 진정성 있는 상대와 마음을 담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잡지 못한 송어와 함께 떠날 수는 없는 걸까.

얼음구멍 속의 물은 여전히 흐리고 송어는 보이지 않는다.

“담탱이가 마침내 시집을 냈어.”

“......”

“너, 좀 너무하지 않아? 얼굴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 거 아냐?”

“......!”

“고마워.”

“......?”

“그냥 고마워!” (208쪽)


아무 대답도 없는 연어의 심경은 느낌표와 물음표로 처리하며 결곡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마치 선사와 제자의 선문답 같다. 하지만 정미가 하고 싶은 말, 정리하고픈 일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살아있는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여운이 길게 남는 이 대목만으로도 이 책의 고갱이를 알 수 있을 듯하다. 나도 이런 대화를 나눌 대상을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도 메시지를 모두 담을 수 있는 멋진 글을 쓰고 싶다.



a*****7 2010.09.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