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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외가 친척들을 잘 따랐다. 비록 얼굴 한 번 못 뵈었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도 마음 깊이 사랑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엔 총명하신 외할아버지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나를 귀애貴愛해 주셨다. 네 명의 이모들, 이모들의 자녀들, 잘생긴 큰외삼촌까지 모두 좋아했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사람은 작은 외삼촌이었다.
세 살되던 해, 작은 외삼촌은 무척 아팠다고 한다. 고열에 시달리는 작은 외삼촌을 보다 못해 동네 의사를 불렀는데, 작은 외삼촌은 주사 한 대를 맞고선 언제 그랬냐는 듯 열이 내렸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삼촌은 열이 내린 대신 청력을 잃었다.
이때부터 삼촌의 지난至難한 인생이 시작된다. 삼촌은 말을 잃었을 때, 그렇게 답답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순진한 욕구 하나도 설명할 수 없다면 그도 그럴 것이다. 초등학교에선 뭇 아이들의 놀림과 맞서야 했다. 남과 '다르다'는 건 그렇게나 모진 거였다. '병신'이라는 손가락질, 사람들의 괄시. 맞기도 참 많이 맞았다. 그때부터 삼촌은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고 그들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삼촌은 듣지 못해 대부분의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공부는 잘 했다,고 엄마는 회상한다.
세상에 유일했던 삼촌의 편인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함께 농사일하며 추억을 쌓아온 우리 엄마마저 타지로 시집갔을 때 삼촌은 무던히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삼촌은 땅으로 꺼져들고 싶은 유혹을 모두 이겨내고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농아인교회의 목사님이 되어 베푸는 일, 좋은 일에 앞장서시는 삼촌. 신도들과 장기기증 서약까지 하시며 스스로도 행복한 인생을 사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 바이러스를 나눠주고 계신다.
그런데 지금껏 우리 삼촌만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인 줄 알았더니 중국에는 저우팅팅이 있었다. 저우팅팅은 한 살때 고열에 시달렸다. 우리 외삼촌과 비슷한 케이스다. 열을 내리기 위해 젠타마이신을 처방받았고 다행히 열은 내렸지만, 그녀는 청력을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여느 청각장애인들과는 다르다.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보통 농아인들과는 달리 아버지의 교육열로 말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을 하는지조차 몰랐던 그녀는 이렇듯 '아버지'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유창하게 중국 표준어를 구사했고, 다섯 살에 이미 2천여 자의 한자를 익혔다. 여덟 살에는 원주율 소수점 이하 천 자리 숫자까지 암기하여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 아버지의 노력으로 농아인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진학, 두 번이나 월반을 거쳐 열 여섯에 대학에 입학한다. 스물한 살에는 자신의 꿈이었던 미국 갤로뎃대학-세계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인을 위해 설립됐다.-에 입학, 석사 과정을 마쳤고 졸업과 동시에 보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렇듯 그녀의 삶을 요약하고 나면『기적을 만든 천만번의 포옹』이 한 청각장애 소녀가 명문대에 진학하는 고군분투孤軍奮鬪 스토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을 한 꺼풀 벗겨내면 사실 교육에 관한 책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범대학을 나온 할머니와 딸을 위해 교육법을 연구, 창의적인 교육법으로 딸의 학업을 도운 아버지가 저우팅팅의 뒤에 있었다. 저우팅팅은 청력을 잃었지만, 대신 '가족'이라는 복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저우팅팅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그녀의 열정 때문이다. 무엇보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저우팅팅의 성취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적을 만든 천만번의 포옹』은 이게 다가 아니다. 한 번 더 꺼풀을 벗겨내 이 책의 아름다운 속살을 확인해보라. 달콤한 즙대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림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은 따뜻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가족애에 대한 얘기다.
팅팅, 아빤 내가 경험했던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거야. 생명은 고통과 행복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생기고, 고통은 생명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야. 고통을 겪지 않은 생명은 완전할 수 없지. 행복이 있으면 고통이 있고, 고통이 없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없어. 행복은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고 나서야 비로소 생기는 고상한 의지이고, 우리는 고통과 시련 중에서 새롭게 태어나지.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느껴봐. 고통이라는 음표는 삶이라는 악장을 보다 힘 있고 매력 있게 바꾸어준단다.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고통을 겪어야 비로소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거란다. 생명의 힘은 받아온 고통의 양에 따라 결정돼.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힘겨운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지. 고통의 보상으로 행복을 느끼게 되고 말이다. 고통과 행복은 종이 한 장 차이야.
"아빠, 이번 일로 사람의 성장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걸 알았어요. 진정한 행복은 고통 이후에 온다는 것도요. 하지만 인생이 이러저러한 고통을 겪기 위해 있는 거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각해보렴. 큰 나무가 성장하는 과정을 말이야. 처음에는 그저 작은 새싹에 불과했던 나무가 생살을 찢는 고통을 느끼면서 가지 하나를 제 몸에서 솟아나게 하지. 분명히 일생에서 처음으로 겪는 큰 고통이었을 거야. 만약 그때 나무가 곁가지를 하나도 만들어 내지 않은 채 원래 상태를 보존했다면 그저 민숭민숭한 나무가 되지 않았을까? 첫 가지가 난 후 부단히 성장하고, 그러면서 가지도 많아지고 적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되는 거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나무처럼 말이야." (183~185p)
팅팅에게 아버지는 인생의 스승이자 학업의 길잡이였고, 엄한 아버지이자 좋은 친구였다.
대문을 나설 때마다 5층 창문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거기엔 너무도 익숙한 형체가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머니였다. 그렇게 나는 잠시 서서 어머니가 보내는 따스하고도 사랑 가득한 공기를 호흡했다. 그런 다음 어머니의 애정 어린 눈빛을 받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해 달렸다. (150~151p)
아름답고 눈부신 그 이름 '가족'이 있었기에 저우팅팅은 그 누구보다 멋진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은, 한 소녀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절절한 가족애 때문에 눈시울을 붉히게 될 것이다.
http://www.cyworld.com/hyangslibrary ⓒ Hyang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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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뻔한 얘기는 지극히 뻔한 감상을 낳는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그 뻔한 이야기와 감상 속에서 매번 더해지는 눈물이나 감동을 쏟아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식상하다 질리다 하면서도 틀에박힌 신파를 찾고,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주인공의 인생역전 극복 이야기에 열광하는게 아닌가 싶다.
지난 9월 중순, 가을바람이 착각인가 싶게 조금씩 그 존재를 알릴 무렵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중국의 청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중국 내 대학은 물론 미국 명문 대학에 진학한 저우팅팅, 그리고 이런 인생역전이 가능할 수 있게 옆에서 조력자가 되어준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다. '중국의 헬렌 켈러'라 불리는 저우팅팅은 이러한 일대기를 통해 '중국의 여성 십대인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무렵에는 체벌금지 현안이 상당히 이슈화되어있던 터라 좀 남다른 시각으로 더 몰입할수가 있었다. 그래서 본문 속에 저우팅팅의 아버지가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다만, 나쁜 교육만 있을 뿐이다"라고 한 멘트가 더욱 와닿아 이 글의 제목으로까지 쓰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글을 트위터에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호응하며 RT해주기도 하셨다.
책을 다 읽고나서 떠올린 두 명의 소녀가 있으니, 바로 얼마전 숙대에서 시각장애인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전체수석 및 조기졸업의 영예를 차지한 김경민씨와 내 생에 두번째로 많이 눈물을 쏟았던 영화 블랙 속 여주인공이었다.
숙대 졸업생 김경민씨 사진 출처 ☞ 링크 바로가기 각기 다른 이야기 속의 이 주인공들 중 저우팅팅은 친 아버지, 김경민씨는 안내견 미담이 그리고 블랙의 영화 속 여주인공은 데브라이 선생님의 도움으로 두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고 자기 삶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 조력자들의 위치는 다르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을 사랑하고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감내하며 옆에서 지켜줬다는 것 만큼은 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말한다. 인생에서 나 대신 죽어줄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것이라고, 그래서 이 세 주인공들은 모두 그런 사람을 만났기에 보다 극적인 성공 스토리가 가능했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싶어졌다. 말이야 쉽지 정말 불가능한, 그래서 기적같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일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서평을 위해 책을 되새기니 문득 감상이 깊어졌다. 덕분에 다시 블랙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내 주변에는 누가 있고 그동안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살았나 반성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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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팅팅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보면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조금 숙연해 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이와 일상을 조금씩 돌아본다. 한 사람의 일대기 일 것 같은 이 책은 어쩌면 부모들에게 더 필요한 책 일지 모르겠다. 아이의 더딤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고 격려하여 주는 그런 부모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기에 주인공은 저우팅팅이지만 그를 만든 사람은 그의 가족이고 특히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을 읽어 나갔으니 말이다. 한 살 약을 잘못 써서 귀머거리가 된 저우팅팅은 자신이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를 두 번이나 월반을 하고 16살 나이에 대학을 들어가는 놀라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한 때 자신에게 주목되는 시선에 불만을 표시하고 조금은 당황해 하지만 역시 그를 바로 잡아 준 것은 아버지이다. 한 단어를 발음하기까지 그의 가족은 천 번 이상을 그의 앞에서 얼굴을 보여 주며 그가 따라 하기를 바라고 그의 발음에 환호하였으며, 그의 작은 성취에 서로 기뻐하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신이 듣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좌절하고 절망하였을 것 같지만 그의 뒤에는 힘들고 어려워도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었다. 단 한 문제를 맞은 시험지를 보고도 그의 아버지는 하나도 맞히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것이라 이야기하면서 격려하였으며, 60점에 실망하는 저우팅팅도 더 끌어 올리는 격려의 힘과 스스로 익히기까지 기다리는 은근한 끈기를 발휘하였다. 결국 그는 16살에 청각 장애인 대학생으로 그리고 미국 유학에 이은 박사학위까지 그의 끝없는 노력은 그의 노력과 가족의 사랑이 만들어 낸 하나의 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이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면 사랑스럽고 세상의 기준에 떨어지면 야단치고 다그치는 것이 일상의 부모의 모습이기에 나또한 다르지 않았음을 안다. 부모의 역할이 어떤 것이고 그 역할이 만들어 낸 업적은 상상을 초월한다. 천만번의 포옹은 저우팅팅이 실패하고 좌절하였을 때 그의 부모가 그녀에게 전해준 하나의 사랑의 표시였을 것이다. 남들과 다르지만 그 포옹이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힘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그런 것이기에.. 편한 마음으로 책을 짚어 들었다가, 부모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예쁘고 씩씩한 아이들에게 어쩜 나는 많은 좌절과 실망을 안겨 주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아이가 “전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잖아요.” 하는 말을 듣고 먹먹해 졌던 기억이 있다. 아직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아이에게 부모의 조급함과 지나친 기대가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들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천만번의 포옹은 아니더라도 이 시간 아이를 꼭 안아 주어야겠다. 따뜻하게 감싸줄 보모가 네 곁에 있음을 나의 체온으로 전달하여 주면서 더 사랑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