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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우는 일에, 남편 뒷바라지에, 종교 활동에 내삶을 바치면서 살아왔다. 사실 바친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까. 누구를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작년 부터인가 몸도 마음도 내맘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조금 슬펐다. 지난 11월 여고 동창들과 난생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의외로 집 생각이 덜 났다. 나도 이제 내 스스로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나는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나 해방감보다는 그 친구가 권한 한 권의 책 때문에 무척 기뻤다. 고시 공부를 하는 딸이 읽어보니 좋더라면서 자신에게 권했다는 그 책은 바로 '게으름의 즐거움'이었다. 요즘 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휴식을 준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 글을 쓴다. 그리고 나도 이제 조금 쉬어가면서 살아야겠다. 왜냐하면 아직 살 날이 많이 있으니 무리하지 않겠다는 의도에서이다.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인상깊은구절] 스페인식 낮잠을 자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선수였다. 먼저 좋은 소파를 골라 보도록. 꽤 묵직한 열쇠도 하나. 그런 다음 소파에 편안히 자릐를 잡고 나서, 손에 열쇠를 쥔 채 팔은 팔걸이에 걸친다. 무지근한 잠이 당신을 끌어당기면, 힘살이 차츰 풀릴 것이다. 그러다가 열쇠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당신은 깨어나서 다시 의식을 찾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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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한해의 마지막 달을 맞으며 이 해가 가기 전에 못다 한 일을 마무리하고 산뜻하게 새해를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다. 그런 때에 집어든 '게으름의 즐거움'은 있는 한숨 돌리고 쉬어갈 수 있는 여유로움을 주었다.
이 책은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해도 나는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게으름이란 있는 그대로의 이 순간을, 지금 여기를 즐기는 것이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엇을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들은 삶을 매순간들을 더욱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활력을 제공해준다.
'게으름의 즐거움'을 읽는 동안 나는 맛깔스러운 글뿐만 아니라 글 사이의 여백, 자연을 닮은 종이의 질감, 넉넉함을 느끼게 하는 사진들 때문에 많이 여유롭고 행복했었다. [인상깊은구절] '잠은 어떤 믿음을 필요로 한다. 나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다시 깨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세상을, 내 몸을 내 마음을 믿는 셈이다. 게으르다는 것은 느즈러질 대로 느즈러져서 절대로 아무 것도 안하는 것하고는 다르다. 마치 극장에서 공연이 없는 날을 '공연 안 하는 날'이라고 하기보다는 '공연 쉬는 날'이라고 하듯이. 우리는 저마다 사회라는 극장 또는 무대의 배우다. 우리도 때때로 휴식이, 다시 말해 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공연은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할 것이고, 우리 스스로도 지치게 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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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살쌀한 겨울이 왔다. 나무는 모두 나뭇잎을 떨구고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갔는지... 특히 이번 학기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잠깐 교내 서점에 갔을 때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게으름의 즐거움이라니... 앞만 보고 달려도 위기감을 느낀다고 하는 이 바쁜 시대에 게으름인데다가 거기서 즐거움을? 이 무슨 시대에 어긋나는 발상? 하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책을 들추어 보니 사진이 아름다웠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한 권 사들고 집에 와서 읽기 시작했다. 누워서 한줄 한줄 읽으니 좋은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내게 필요한 책은 요즘 골치 아프게 읽고 있는 예술 미학 서적이 아니라 이런 책이 아니던가? 책 장정도 예쁘고 사진도 좋고 막힘없이 읽히는 번역이 좋았다.오랜만에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따뜻한 책이었다. 올 겨울 이책을 읽으며 게으르게 그리하여 풍요롭게 보내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물러났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 들어주기, 꿈꾸기, 글쓰기 따위처럼 사람들이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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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52 / 에세이] 게으름의 즐거움. 호미출판사. (2003)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강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 얇지만 한 장 한 장 내 이야기가 아닌 부분이 없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즐거웠다. 누군가 내 마음이나 기분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멋진 말로 풀어쓴 글 같달까. 2003년에 출판되어 ‘당연히’ 절판된 이 책은 프랑스 향기를 가득 채운 열 명의 사람들이 느림과 멈춤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에 대해 쓴 글을 엮었다. 정원 설계사, 기자, 물리학자, 작가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가득 담고 있어 각 장마다 풍기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한동안 이런 책을 읽을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그런 여유 부림은 지금처럼 먹고살기 노력해야 하는 시기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스스로를 억제하곤 했다. 하지만 생긴 대로 사는 게 인간이니까, 이 책 곳곳에 나온 구절들은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것 마냥 ‘나’ 그 자체였다. 경매테크, 미니멀리즘, 제4차 산업혁명 등 쓸모와 실용이 대세인 요즘 같은 시기에 유행하는 책은 분명히 아니기에 최근 읽었던 신작들과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책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자칭 옛사람인 나는, 늙은 사고방식을 가졌기에 이미 오래전 절판된 이 책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200여 쪽의 얇은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행복했다. 허무함과 쓸쓸함, 게으름을 주제로 이만큼 정성 들여 쓴 책이 또 있을까, 감히 올해 읽은 책 중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가득 찬 그것들을 파헤치고 거기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법을 알게 해 준 책. 이 책을 알게 해준 장석주님과 박연준님, 그들의 책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2017)를 출판한 난다 출판사, 번역자 함유선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프랑스 사람들의 일상과 글이 이렇다면 프랑스에서 살고 싶다. (당장 프랑스에 간다고 마냥 행복해지진 않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를 위한 그 시간에 가치를 누가 어떻게 정할까? 즐거움에는 정확하게 매겨진 값이 없다. 마찬가지로, 무를 위한 시간의 가치는 다른 것과 견줄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그 가치는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얻는 것이다. 스스로를 얻는다는 것은 시간을 잡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게 필요하다. (23) 고독한 명상에 따라붙는 느낌의 권태와는 다른 권태가 있다. 한결 기름진 느낌의 권태다. 이를테면 미리 놓여 있는 권태, 할 일 앞에서 몸과 마음을 빼면서 슬금슬금 일어나는 권태가 그것이다. . 나에게 바로 이 사실을 일러 준 화가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늑장을 부려요.” 그는 할 일이 엄철나게 많을 것이다. 화가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일 때가 많다. 어쨌거나 작업실에 들어서면 화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 “먼저 천천히 작업복을 입죠. 그러고는 붓을 씻습니다. 설사 그 붓들이 깨끗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다음에는 그림의 제재가 될 만한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습니다. 그런 식으로 작업실 안을 슬슬 돌아다니죠. 걸레로 탁자를 훔치고, 벽에 기대어 놓은 그림들을 다시 세우다가, 따로 어떤 그림을 뚫어지게 보기도 합니다. 나는 라디오도 갖다 놓습니다. 라디오에서 곤충 얘기를 하는 걸 듣기도 하고, 해설이 없는 파르티타의 몇 소절을 듣기도 하죠. 아니면 차라리 그 모든 걸 다 놓치기도 합니다. 내가 지표를 세우고 조금씩 일을 하고 싶은 욕구를 되찾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작은 의식을 막연하게 치르는 동안이라고 해야 할 거예요.” (104-105) 평일에는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사회에서, 직업 세계에서 내 자리는 바로 나에게 그 점을 일러 준다. 그렇지만 일요일에 나의 자리는? (...) 그리하여 일요일은, 휴식의 시간인 일요일은, 사람과 사람이 새롭게 맺어지는, 관계가 다시 창조되는 시간인 것이다. (123-129) 사랑은 우리에게 힘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패배만을 안겨 주지요. 우리를 위로해 주러 오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와서 우리에게서 이윽고 삶의 생생함을 앗아 갑니다. 이처럼 안다면 우리는 사랑을 기다리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굳이 그러한 재난이 닥치기를 바랄 건 없겠지요. (134) 글쓰기란 문학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랑이 사랑 속으로 날아갈 때, 아름다움이 아름다움 속에서 밝아질 때, 그게 바로 삶입니다. (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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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학교와 회사에 들어가서 공부와 일이 끝날때까지 시간을 보내다 집에 돌아오는 일상. 이 일상에 현대인들은 점점 지쳐가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묻게 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지만 노년에 나를 위해서 남는 게 없다는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어느 작가가 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기계처럼 바쁘게 일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좀 쉬게 하라고 권유하는 책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부지런함이 미덕인 세상이지만 정작 그렇게 부지런하기 위한 휴식의 가치를 잊고 사는 듯 하다. 게으름은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게으름의 가치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1부에는 게으름에 관한 프랑스 다큐멘터리의 내용을,,2부에서는 저자의 에세이를 묶어서 나누어져 있다.
단 한 가지, 이미 게으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책이 면책특권이 되지 못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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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있는 '게으름'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말 그대로 게으름을 피우라고 이 책은 말한다. 게으른 삶을 어리석다고 치부하지 말라고 한다. 게으름은 나름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평소에도 빈둥거리던 사람에게 게으르기까지 하면 인생 망친다. 따라서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쁜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책도 얇아서 읽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한 명이 아니다. 게으름에 대한 몇 편의 수필이 이 책에 묶여 있다. 몇 가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워낙 게으름을 타고나서 늘 빈둥거리며 사는 이들은 드물다.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뒤섞기 일쑤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장 깊숙이 가라앉았다가 그득 차서는 이윽고 살점 한 조작이 된다는 것이다." (11쪽) "우리는 휴식 시간이나 여가 시간이 있어도, 이를테면 일요일에도 계속 움직인다. 심지어 평일보다 더 열중해서 움직이기도 한다." (12쪽) "늦잠은 단박에 일요일의 시간이 평일의 시간과 다름을 알려 준다." (118쪽) 내용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도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천 년 전 예수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꼬박 사흘을 추위에 떨면서 약삭빠르기도 하고 잘 속기도 하는 가련한 몇몇 떠돌이가 도대체 뭘 기다렸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랑은 남아 잇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14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