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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만 굴러가도 웃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잘 웃지 않게 됐다. 딱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웃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잃어버렸던 웃음을 잠시나마 되찾을 수 있었는데, 바로『굿 이브닝, 펭귄』이다. 왜 저녁에 펭귄에게 인사를 할까, 당연히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 의문을 풀기 전에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그저 웃을 때도 있지만, 웃으면서도 슬플 때도 있다. 때로는 당혹스러워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비슷하긴 하지만 쓴웃음도 나온다.『굿 이브닝, 펭귄』은 이 모든 웃음을 유발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럼 이제 이 책에서 말하는 펭귄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펭귄이라고 하자. 있는 그대로 함부로 부르면 욕처럼 들리니까, 펭귄이라고 하자. 가끔 입에 좆을 물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앞으로는 부드럽게, “오늘 기분 참 펭귄 같네.”라고 하자. 오랜 옛날, 펭귄을 대신 부르기 위해 비유와 상징이 고안되었다. 존재하지만 부를 수 없는 무엇은 언제나 있다. 펭귄을 펭귄할 수 없으니까, 펭귄이라고 하자. 하루에도 몇 번씩 만지고, 닦고, 대부분 잘 닦지는 않지만,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바지춤에 손을 넣어 주물거리는, 펭귄. 정신을 차려 보면 오른손은 자고 있는 펭귄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름이 없는 것들은 없으니까, 펭귄에게 적당한 이름을 지어 주어야 마땅했는데, 역시 펭귄이 좋아 보였다. 펭귄은 검고, 미끈하고, 어쩐지 따뜻해 보이고, 은근히 귀여운 면도 있으니까. 펭귄 인형은 잘 팔리고, 잘 찾아보면 펭귄 장식 하나쯤은 모두 갖고 있으니까. 좆같은 새끼라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펭귄 같은 새끼라면 칭찬인가 싶겠지. -p. 8~ 9
어떤가? 헛웃음(혹은 쓴웃음)이 나오지 않는가?(점입가경이라고 펭귄과의 ‘악수’도 있고, 그로 인해 등장하는 ‘북금곰’도 있다.) 주인공이 열세 살 때, 펭귄이 눈을 떴다. 기립 자세의 펭귄이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굿 이브닝.”(p. 10) 펭귄이 “굿 이브닝”이라고 한 순간부터 주인공은 펭귄의 식민지가 된다. 주인공은 펭귄의 지배를 받으며 입시 경쟁을 거쳐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간다. 제대해서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졸업해서 회사의 인턴 생활을 한다. 이 과정이 펭귄, 악수, 북금곰과 함께 그려진다. 마치 ‘킨제이 보고서’ 같은 느낌인데, 여자(이 책의 원제는 여성의 성적 행동이라고 한다) 가 아니라 남자의 성적 행동을 그린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읽을수록 남자의 성적 행동은 후킹 포인트고, 펭귄이 “굿 이브닝”하기 힘든 사회를 고발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등록금을 갚거나 빌릴 때면 이유 없이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사회에서는 어디까지나 네가 선택한 결과라고, 성인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느 회사에 취직해서라도, 커피를 타라면 커피를 타고, 사장 자가용을 세차하라면 세차를 하고 싶었다. 문제는 커피를 타는 사람도, 세차를 하는 사람도 뽑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도 커피를 타고 싶어요. 깨끗하게 차를 청소할 수 있습니다, 라고 중얼거렸다. -p. 242~ 243
퀵 서비스를 불러야 할 일을 지하철을 타고 갔다 왔다. 꼭 회사에 다시 들렀다가 퇴근을 하라고 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복사만 하는 것보다는 심부름이 나았다. 복사를 하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긴, 하루 종일 복사만 했는데도 집에 갈 때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커피를 타라면 커피를 타고, 자가용을 세차하라면 세차를 하겠다는 마음은, 거짓이었다. 커피숍에서 일하고 세차장에서 일한다면 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싫었다. 그것도 인턴으로는. 펭귄, 너도 싫지? -p. 248
정말 환경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뒤로 갈수록 펭귄이 살기 힘든 현실을 집중해서 보여 준다. 비뇨기과 처방에도 펭귄은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기에 펭귄은 그런 미봉책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마치 우리 사회 문제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 펭귄의 모습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펭귄에게 인사를 한다. “굿 이브닝, 펭귄.”(p. 253) 바로 전에, 죽어가는 펭귄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주인공의 노력도 있어 마지막까지 웃긴다. 슬프기도 하지만 말이다.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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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펭귄이랑 인사할까요
13년 간 숨어 있던 그놈이 깨어났다!
입시 경쟁, 학자금 대출, 최저시급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등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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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이야기 솜씨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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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펭귄'이었을까? 생긴 것과는 달리 까칠한 성격을 타고난 때문일까? 그래서 말도 잘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성격이 펭귄을 닮아서? 아니면 미끈하게 수영을 잘해서? 작가는 '산책하는 펭귄이 있는 동물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갔'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펭귄'인 동시에 '나'였다. 그러므로 '펭귄'의 변화는 곧 '나'의 변화였고, 변화의 기록은 아직 끝나지 삶의 이야기였다.
신체의 일부인 동시에 액세서리에 불과했던 '펭귄'이 아무런 기척도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난 건 내가 열세 살 때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국기가 내려가던 시간, '바이킹이 내려갈 때 허리 아래에서 느껴지는 좋고도 싫은 느낌'이 들어서 바지 앞섶을 열자 기립 자세의 펭귄이 "굿 이브닝"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변신을 하는 <철인 28호>처럼 인사를 마친 펭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익숙한 고추가 되었다.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짐작했겠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펭귄'은 주인공인 '나'의 성기를 일컫는다. 작가는 남자의 '2차성징'인 발기와 사정을 펭귄이 깨어나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마치 '나'와 '펭귄'이 서로 다른 인격체인 양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화합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유머와 위트를 섞어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미친 펭귄. 펭귄은 단 두 번의 인사만으로 보이스카우트를 해산시킬 뻔했고, 한 가정의 평화를 영구히 파괴할 뻔했으며, 아빠에게는 한 달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했고, 아빠는 이 핑계로 또 술 마시러 나갔고, 여자아이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남겼다." (p.26)
펭귄이 깨어난 후 민달팽이 취급을 하는 누나와 한 방을 쓰고 있던 나는 한밤중에 몰래 나와 학교 운동장에서 펭귄과 악수를 하기도 하고, 야한 사진이 담긴 트럼프 카드를 모으기도 하고, 에로 비디오에 집착하기도 한다. 사내아이들은 대개 그렇지만 펭귄이 깨어나면 그 순간부터 펭귄의 생각에 지배받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깨어나는 펭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것을 명령하고, 모든 것을 펭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말하자면 펭귄은 자신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정체성인 셈이다. 때로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장난감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사내아이들은 펭귄의 크기를 갖고 경쟁하거나, 펭귄이 내뿜는 오줌발의 거리로 경쟁을 하기도 한다. 군대에서는 펭귄의 목에 양동이를 걸고 양동이에 조금씩 물을 채움으로써 누구의 펭귄이 더 많은 물을 들 수 있는지 서로 겨루어보자는 조모 상병도 있었다. 소설 속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진짜 여자를 보고 싶다'는 펭귄의 생각에 따라 교회를 나가기도 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형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교회를 다니는 청소년들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봤다. 남녀 공학이 사라지면 교회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지 않을까. 교회의 신자가 줄어드는 것은 사회적 물의 때문이 아니라 연애당의 기능을 대신할 곳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회는 늘 일정하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고도 공헌만큼 쳤다. 교회가 예전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천국, 인맥, 연애라는 교회의 3대 기능 중 연애의 역할이 예전보다 줄어든 탓이다." (p.65)
트럼프 카드를 모으고 야설을 읽던 나는 플로피 디스켓으로 진화하고, IMF 사태로 아빠가 명예퇴직을 하고,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동네 마트의 캐셔로 출근하고, 밤 늦게까지 공부만 하는 누나.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인터넷 전용선이 깔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야동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한다. 게임과 야동에 빠져 살던 나는 진로와 적성과는 상관없이 여자가 과반인 대학에 가까스로 합격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귈 기회만 호시탐탐 노려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고 친구의 코치를 받고 거리 응원에 나섰던 나는 여자와 함께 모텔에 입성하는 데 까지는 성공하지만 그때마다 펭귄은 깨어나지 않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자랐다. 선배들은 근본적으로 아날로그형 인간이었다. 후배들은 아날로그를 낯설어하는 디지털형 인간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덕분에 아날로그적 음란물과 디지털적 야동을 모두 접했다. 대신 선배들을 따라잡지 못했고 후배들에게는 곧바로 밀려버렸다. 힘을 쥔 기성세대는 아날로그를 강요했고 추격하는 쪽들은 디지털로 무장하고 있었다. 양쪽의 즐거움을 모두 맛본 세대에게 내려진 벌이었다." (p.194)
군대를 다녀오고, 생활비와 학자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펭귄은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풀이 죽은 펭귄은 생각의 주도권을 내게 넘겨주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펭귄도 나도 조금씩 지쳐갔다. 나는 이제 연민의 눈으로 펭귄을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눈과 입술과 볼이 약간씩 처진 것 같은, 표정. 말을 걸어줘야 할 것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표정. 보고 있으면 힘내라는 말만 간신히 건넬 수 있는 표정.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게 되는 표정이었다." (p.250)
한 사내의 성과 관련된 재미있는 경험담으로 시작된 이 소설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짠한 느낌에 젖어들게 된다. 펭귄의 지배를 받던 철부지 어린 아이가 어느덧 스스로 독립할 나이로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세상살이에 치여 펭귄의 존재마저 까맣게 잊고 지내게 되었나, 생각할 때, 소설 속의 나는 문득 현실의 나로 오버랩되는 것이다. 작가가 펭귄에게 보내는 위로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한 작가의 힘찬 응원가가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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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펭귄을 돌려주었으면... 이것은 편의상 남성의 성기를 펭귄이라 칭하여 온통 펭귄에 대해서만 적어놓은 펭귄에 대한 펭귄을 위한 펭귄의 글이다. 초반부터 온통 펭귄 투성이라, 아 이거 펭귄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어디 책 읽겠나 싶었다. 펭귄의 등장과 생리의 시작에 대한 비교를 해놓은 부분에서는 할 말은 좀 있는데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고. 그런데 정말이지 펭귄이 없어서 그런가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좀 심심하게 읽어넘기게 된 것 같다. 아쉬웠다.
처음에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낯선 다른 것으로 등장하며 그것을 펭귄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에서 아주 예전에 봤던 만화책이 떠올랐다. 좀 헷갈렸는데 아직 제목도 기억난다. '캥거루를 위하여'. 어느날 자신의 머리가 캥거루의 머리로 바뀌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다. '굿 이브닝, 펭귄'에서는 진짜 펭귄으로 변한건 아니지만, 그랬다면 아마 영화 '티스'와 비슷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쨌든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오래된 작품인데 이 책을 읽고 좀 더 여성향이고 관계에 집중한 성장 스토리를 원하는 여성독자들은 열심히 찾아서 봐도 좋을 것 같다.
응답하라 1997과 거의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삼십대 정도 된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지난 이벤트들이 좀 있었을 것 같다. 보이스카우트, 삐삐, IMF, 월드컵 같은 이벤트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죽 이어져있으니. 응사, 응팔까지 이미 나올 과거란 과거는 다 털어냈지만 나름 찬란했을 옛시절을 떠올리는 재미로 읽어볼만 하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어디에 놔뒀는지 기억만 나면 반드시 찾아서 소각해버리고 싶은 플로피 디스켓이 있다. 나름 오래도록 보관한다고 일부러 거기에 파일을 옮겨뒀다면 그 시절이 믿겨지려나.
몇군데는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되는 부분도 있고, 몇군데는 웃픈 부분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글쎄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혹 모르겠다 펭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재미있는 글이 되었을지. 그런데 펭귄에 집착만했지 초반 펭귄의 등장과 얽힌 과장된 부분이나 진부한 흐름을 따라간 사춘기 소년의 성장이야기 정도의 틀을 벗어났는가 싶지는 않았다. 꼭 벗어날 필요는 없지만 어디선가 이런 내용의 글이나 영상물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줘서는 안될 것 아닌가. 근데 왜 하필이면 펭귄이라고 한걸까. 남극의 눈물이다,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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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경쟁, 학자금 대출, 최저시급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고개 숙인 청춘들의 성(性)스러운 자기고백 을 그린 책
굿이브닝 펭귄
펭귄이라는 동물을 다들 알고 있습니다. 비유나 이야기가 풀어나가는것이 독특하고 그래서 20~30대라면 공감할만 내용이 많은것 같습니다. 굿이브닝 펭귄 반어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의 사춘기 전후의 변화를 펭귄으로 비유를 하였다고 하니 독특하면서도 남자라면서 누군든지 공감하면서도 남자의 머리속과 남자의 마음에 대하여 우리가 고민하든 모든것에 대하여 속시원하게 읽어보면서 마음도 후련하고 나름 재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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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다. 야동 취향만큼 당신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고르고 골라, 나누고 나눈, 구분과 정리를 반복해둔 컬렉션이 당신 자신이다. 혈액형 테스트보다 믿을 만하며, 미국 어덜트 코리아 주립대학에서 만든 심리테스트보다 정확하다. 당신의 성적 정체성이나 취향은 하드디스크가 알고 있다. 지우지 않고 고이 보관해둔 자료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야동이 당신의 내면이며, 새로운 야동을 거부하면서까지 지켜온 야동이 당신의 본질이다. 숨겨둔 폴더는 당신의 쌍둥이다. 한 번이라도 더 반복해서 보는 야동은 당신의 무의식이 바라는 판타지다. 야동 속에 당신이 있다. " 본문 116쪽
정말 그래? 펭귄이 나타난 이후로, 생각은 펭귄이 한다는 말. 진짜야 이거 참, 남동생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아버지께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하다. 제목만으로는 도저히 이 작품의 내용이 가늠되지 않았다. 펭귄이라니... 이건 뭐지 호기심 반, 의구심 반. 반반무마니의 심정으로 첫 꼭지를 읽고 나서 나는 그대로 이 소설에 푹 빠져버렸다. 저자와 내가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인가, 주인공의 성장기가 나의 그것과 많이 겹쳤다. 화자는 남자의 시점에서 남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데도 여자인 내가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신선했다. 이게 남자의 시선에서는 이렇게 느껴지고 읽히는 구나. 2차 성징은 단순히 신체적 변화와 특성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신적, 정서적 변화와 무게를 함께 가져온다. 2차 성징과 함께 여자는 비로소 여성으로서의 삶을 인지하고 남자는 비로소 남성으로서의 삶을 인지한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살아가고 싶고, 자기 가치를 확인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펭귄은 남성으로서의 욕망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정서적 욕망을 함께 품은 화자 그 자체다. 저자는 펭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욕망의 시작과 종말을 버라이어티하게 그려냈다. 겨울 한밤의 운동장에서 했던 첫 악수로, 욕망의 세계에 첫 발을 시작한 소년은 IMF와 대학입시, 군대, 취업 등 사춘기와 청년기에 걸쳐 욕망의 절망과 몸살을 온몸으로 겪는다. 욕망은 때로는 핍박당하고 때로는 자기를 혐오하다 결국 스스로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 남성의 성을 펭귄과 북극곰으로 유쾌하면서도 재치있게 풀어낸 작가는 핍박 당하다 그대로 꽃러럼 스러진 욕망, 젊은 세대들의 뜨거운 나이에 당연히 지녀야 할 욕망의 스러짐의 과정을 그리는 데에도 많은 웃음을 동원했다. 가능한 재미있게, 진지하지 않게 풀어내려 노력하는 저자의 노력은 병맛 돋는 문장들 사이에 꼼꼼히 스며있다. 주인공의 성스러운 고백과 회고를 따라가며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다 어느 순간 무릎을 치게 된다. 성의식이 인간의 정체성과 얼마나 긴밀하게 닿아있으며, 건강한 성 그리고 건강한 욕망(성욕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펭귄은 아닐지. 대한민국의 오늘에 현실이 무겁지 않은 이 어디 있으랴. 비정규직, 88세대, 오포세대, 성대립 문제. 또한 이 문제들이 어디 젊은 세대의 문제랴마는.... 한국의 2030이 건강한 의미에서의 욕망마저 시들어 버린 채로, 우리 각자의 펭귄을 영영 다시 못 올 곳으로 보내 버린 채로 콘크리트처럼 살아가는 현실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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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경기술사'입니다. 오늘의 책은 제목부터 표지까지 '무슨 책이지?'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책, "굿 이브닝 펭귄"입니다. P.115 인간의 야동은 상상력의 신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가방끈보다 휴지 끈이 더 길었다. 휴지 끈은 곧 야동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뜻했다. 야동을 알려면 두루마리 휴지 삼십 롤로도 부족했다. 재미난 이야기를 담은 남자의 소설, 남성성을 상징하는 양물을 펭귄으로 표현하여 읽기에 있어 거부감을 없앴고, 나의 성장과정과 함께 펭귄의 성장과정을 볼 수 있었다. 뭐랄까? 어쩌면 지금의 30대들의 이야기, 30대 중반의 이야기. 30대 중반이라면 글의 흐름과 나의 삶의 시간이 같이 흐르는 느낌의 소설이다. 설레며 봤던, 트럼프의 기억, 돌고 돌던 제목 없던 비디오, 그로 인한 학교에서의 체벌. 인터넷이 보급되던 그때 그 시절, 사방에 넘쳐흐르던 야설과 야동. 그로 인해 바빠진 펭귄들. 어쩌면 낯을 가리는 펭귄. 누구나 고민해봤을 이야기. IMF와 함께 시작된 가장의 고민, 여자이기에 양보와 이해를 해야 했던 그 시절, 지금과는 다른 그때의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때의 나를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매력 있었던 '굿 이브닝 펭귄'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김학찬의 장편소설. 여러분의 펭귄은 안녕하세요?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6기로 활동하면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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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브닝, 펭귄>을 읽었습니다. 13년간 숨어 있던 그놈이 깨어났다! 라는 문구가 흥미진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대체 펭귄이 13년 동안 숨었다가 깨어난 걸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펭귄이라는 놈이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단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거든요. 뭐 생각보다는 가독성도 좋고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고 여러 문제에 봉착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나름 잘 버무려낸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놀란 것에 비하면 꽤나 재미나게 읽은 편이기는 합니다.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느낌도 아니었고, 여자이기에 몰랐던 남자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기도 했고요.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이 책을 읽을 때 한껏 무기력해 있었던 것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세요. 남자 주인공이 13살에 펭귄을 만나고 (근데 도대체 그 북극곰이란 앤 누군가요?) 나서 직장에 취업해 인턴이 될 때까지의 시간 동안의 삶을 조명했고 그 과정 속에서 현대 문제들, 입시 경쟁, 학자금 대출, 최저시급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남녀차별 등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체로 남자와 펭귄, 이 두가지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문제가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모든게 다 성적으로 연결되어 문제가 제대로 들추어지지 못한 느낌이 든달까요? 물론 한없이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가볍게, 재치있게 풀어냈다는 점은 꽤나 마음에 듭니다. 다만, 초반, 아무리 어리다고 하더라도 여자애한테 펭귄을 쥐어줬다는 표현이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밤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펭귄과 악수했다는 표현도 그렇고. 남자들은 다 이런가요? 90년대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남자애들이 그렇게 순진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읽으면서, 연신 찜찜함이 남는 것은 왜인지. 남녀차별문제도 좀 껄끄럽지만 그런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다지 이상할 건 없는 것 같고. 여하간 전체적으로 꽤나 재미나게 그려낸 소설인데 썩 즐겁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작가의 말을 읽고, 그리고 전반적으로 읽다보면 공감이 되지는 않더라도(어쩔 수 없다. 나는 여자고 남자의 펭귄이 언제 나타나는 지, 그게 남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그저 어렴풋하게만 알 수 있을 뿐이니까) 하고 싶은 말이, 주제가 어떤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선 상당히 좋은 책인데,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공감되지 않은 것인지, 90년대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인데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건 저는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은 아니고 엄연히 200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긴 합니다만은. 97년도의 IMF를 그저 어린 시절 스치듯 보냈기에 모르는 것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 정도야?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적다보니 90년대가 좀 애매한 시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여하튼 제 기준보다 10년 전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되네요. 그래도 그렇게 남자애들이 순진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혹은 독자의 나이대를 어느 시점으로 맞춘 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을 배경으로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꽤나, 즐겁게, 보실 수 있는 소설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재가 툭 튀어나와서 놀랍기도 하지만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그리고 남자의 성에 대한 이야기도, 가볍고 통통 튀게 잘 풀어낸 소설인 것 같습니다. 언제 좀 기분이 나아지면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느낌이 확연히 달라질 지도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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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브닝, 펭귄 소설의 첫 장을 읽고는 음? 으음? 내 눈이 토익 성적을 보고 난독증이 생겼나? 음...? 다시 읽어보았지만 맞다. 펭귄이 펭귄이 아니다 굿
이브닝, 펭귄을 읽는 2-3시간은 소설 속 사춘기를 겪는
소년의 그러나
분명한건 이 책을 읽고나면 당분간 펭귄, 북극곰, 악수만 10부 동안 10대의 소년에서 20대의
대학생이 되며 겪는 현실적인 문제 자, 굿 이브닝, 펭귄 시작이다. 性 흉측한
외모와 통제 불가능한 성질머리를 가진 펭귄 펭귄으로
시작해 북극곰이 나오고 악수도 나온다. "믿기 힘들겠지만,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가족이 먹고살 수 있었다. 이제는 가족 모두 벌어도 먹고살기 힘들지만, 두 사람이라도 취직하는 것부터가 어렵지만.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조사하면 엄마 직업으로 '가정주부'가 제일 많았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은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밥때가 되면 놀이터에서 놀던 애들도 다 집에 들어갔다... ...P.13"
굿
이브닝, 펭귄 이라는 소설 속 담긴 팩트는 이것이 아닐까? 물론
보이스카우트, 아람단, 걸스카우트의 명예고 뭐고 집안망신을
떠나 충분히
될 놈이 되었을 것 같다고, 펭귄과 북극곰을 위해 정말
단순하게 하나만을 생각하며 청소년기를 살아오다 재밌는
듯 심오하고, 19금스럽지 않은듯 19금스러운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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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숨어 있던 그놈 '펭귄'이 깨어났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생각했던 펭귄은 은유적인 표현의 펭귄이 아닌 실제 펭귄이었습니다. 적어도 펭귄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요 ㅎㅎ 처음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나서 어? 그게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이 소설에서 나오는 펭귄은 적어도 세상 30억 마리(?)는 살고 있는 남자의 중요한 신체 부위를 뜻한답니다. 작가만의 기발한 발상, 발랄하고 위트 있는 문장이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대를 함께 담고 있어요. 내 것이지만 나와는 독자적인 생각을 지닌 듯한 펭귄의 탄생과 성장을 이야기하며 그와 함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신랄한 표현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평가네요 ㅎㅎㅎ 남자들이 들으면 인정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요 ㅎㅎ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이 책은 점점 가까워질 아들의 이차성징을 생각하게 하더라고요. 제가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아들의 입장에서는 곧 경험하게될 펭귄과의 만남... 그 만남과 함께하는 과정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이야기해줄 수는 없겠지만 내 아이가 살아갈 시대는 내가 겪었던 그때와 다르길 바래요. 그렇지만 점점 좋아질거라는 희망을 갖기는 힘들다는 것이 슬픈 현실... 하지만 그 현실을 함께 걸어가며 넘어지려 할때 손내밀어주는 역할 정도를 할 수 있겠죠. 기발한 작가의 문장에 조금은 부끄러워하고 웃으면서 즐거워하다가 내가 겪었던 그 시간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남자분들에겐 특히, 그리고 펭귄이라는 생물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