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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종석의 일기, 196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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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종석의 일기, 1960~2007 “‘회색인 독고준’ 그가 돌아왔다!” 소설 재킷에 실린 광고카피 속 고유명사가 문득 ‘소설가 고종석’으로 고쳐 읽힌다. <독고준>은 단편집 <엘리아의 제야> 이후 햇수로 일곱 해(장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꼬박 10년을 더한 열일곱 해다), 같은 기간에 상재한 책으로는 아홉 권 째 만에 만나보는 고종석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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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종석의 일기, 1960~2007


“‘회색인 독고준’ 그가 돌아왔다!” 소설 재킷에 실린 광고카피 속 고유명사가 문득 ‘소설가 고종석’으로 고쳐 읽힌다. <독고준>은 단편집 <엘리아의 제야> 이후 햇수로 일곱 해(장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꼬박 10년을 더한 열일곱 해다), 같은 기간에 상재한 책으로는 아홉 권 째 만에 만나보는 고종석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바지런한 에세이스트이면서 굼뜬 소설가다. 이 말은 일종의 투정이다. 고종석표 에세이와 소설에 차별 없는 정을 품어 온 독자의 군소리 말이다. 그러나 이태 전, 연이어 작년 세밑에 한국일보의 기명 칼럼과 언어학 에세이 <말들의 모험> 연재가 갑작스레 중단된 이후로 그의 명패가 걸린 지면은 한 달에 한번 돌아오는 <시사인 에세이>가 전부인 상황이 벌어지자, 군소리는 군걱정으로 번졌다. 이러다 ‘바지런한 에세이스트’의 지위마저 흔들리는 게 아닐까? 언짢았다. 문화부에서 한국일보에 압력이라도 넣었나? 허튼 생각도 잠시 들었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등장한 장편이니 반갑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게다가 <회색인> 독고준의 후일담이라니.


2009년 5월 23일, 일흔 넷의 소설가 독고준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한다. 같은 날 전임 대통령이 비교적 뚜렷한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에 견준다면 문인 독고준의 죽음은, 거칠게 말해, 좀 뜬금없었다. 일 년 뒤 그의 딸 독고원은 부친이 남긴 일기묶음을 읽으며 덧글로 논평하거나 자신의 일상을 잇댄다. 사건이 아니라 관찰과 논평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셈인데 1960년 4월에서 2007년 12월까지 쓰여진 일기를 4월을 시작으로 3월까지 연대순으로 재배치한 점이 재미있다. 구조의 단순함을 눅이려는 의도일까.


‘자서’를 통해 저자는 실존인물의 등장을 예고하고 다만 소설로 읽어줄 것을 당부한다. 문제는, 다른 어떤 실존인물보다도 주인공 독고준에게서 (때때로 독고원에게서) 이미 고종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점이다. 이를 단점으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듯하다. 내 경우에도 2부 ‘사계四季’에 실린 독고준 일기가 거의 온전히 ‘독고종석’의 일기로 읽혔지만, 그게 특별히 거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빌려온 인물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넉넉하게 수긍할만한 새로운 주인공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시인 김정환이 ‘지식인소설’의 계보에서 최인훈의 맥을 잇는 작가로 고종석을 거론한 바 있지만, 평범한 인상비평의 눈으로 보기에도 두 사람은 닮아 있다. 당대의 문장가, 경계인이자 단독자, 이념과 문파 사이사이를 헤치며 그것들을 관찰해온 회색인,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주의자……. <기자들>의 장인철이나 <讚 기파랑>의 기파랑, <西遊記>의 한민수 등, 고종석이 창조한 인물들에게서 띄엄띄엄 어른거리는 최인훈(과 그의 화자들)의 그림자가 영 근거없는 혼자만의 상상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종석이 독고준의 미래를 회고할 때, 독자들이 청년 이후의 독고준에게 고종석의 이미지를 포개는 일은 자연스럽다. 적어도 어색하지는 않다.

다만 이런 종류의 비판은 어떨까. 몇해 전 김정환과의 대담을 겸한 강연 자리에서 고종석은 “불연속적인 언어로 연속적인 세상을 재현하는데 있어 신문기사나 역사서술의 언어보다 문학의 언어가 한결 섬세하기 때문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독고준>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언급이 나온다. 독고원의 말이다.

 

역사와 문학은 본래 한 몸이었다. …… 역사의 그물코는 너무 성기다. 그것은 …… 이긴 자의 이야기다. 문학의 몫은 그 약한 자, 패배자의 구체적 현실을 그리는 것일 터이다. …… 문학이라고 해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세계는 연속적이지만 언어는 불연속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의식이 엷은 역사의 언어와는 달리, 문학의 언어는 늘 그 한계에 대한 자의식으로 충일하다. 그 자의식 또는 반성을 자양분으로 삼아 문학의 언어는 자신을 좀 더 촘촘하고 섬세하게 갱신해가며, 역사의 언어가 사상해버린 삶의 복잡성을 낚아 올린다. - <독고준> 267~268쪽에서

 

독고준 일기의 상당수는 시평을 비롯한 독후감이나 현대사의 각 장마다 제이름 한 줄씩은 차지할 인물들의 부고기사, 그리고 거기에 연관된 인물과 사건에 관한 논평이다. 그런데, 고종석이 과거에 출간한 시 평론 <모국어의 속살>, 언어학에세이 <말들의 풍경>, 일일칼럼집 <히스토리아>와 <발자국> 등, 신문기사가 원적지일 이 텍스트들의 ‘역사의 언어’는 <독고준>의 ‘문학의 언어’와 얼마나 다른가. 독고준 일가의 이야기만 들어낸다면 두 텍스트의 언어간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양측은 거의 비슷한 목소리로 신동엽과 김수영의 시를 논하고 드골과 미테랑을 평가한다. 좋게 보자면 그만큼 고종석이 저널리즘 안쪽과 바깥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언어, 다시말해 ‘역사와 문학이 한 몸’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다른 쪽에선 <기자들>에서 <엘리아의 제야>에 이르는 전작들에 견줄 때 <독고준>의 언어가 ‘거대한 역사의 편’에 기울었다는 혐의를 씌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노무현에 대한 언급이 예상보다 적은 것은 의외다. 그것은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 한 시절의 비판적 지지자로, 임기의 어느 지점부터는 단호한 비판자로서, 고종석은 그의 죽음과 관련해 이렇다 할 언급이 없었다. 따라서 어떤 평가가 되었든 그에 관한 글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전임 대통령의 죽음을 끌어와 독고준의 죽음과 결부시킨 장치는 그 자체로 충격이다. 소설 전체에 비감을 칭칭 두르고도 남았다. 나는 그에 대한 언급이나 분량이 지나쳐 독고준과 그 딸의 이야기가 흐려질까 염려했다. 현명하게도 독고원은 자신이 “대한민국 시민이기 이전에 아버지의 딸”이라는 말로 균형을 잡았다. 전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해석은 공화국 시민의 평균치를 넘어서지 않았다. 덕분에 소설 <독고준>은 온전히 주인공 부녀의 이야기로 남을 수 있었다. 



<독고준>을 일종의 액자소설로 볼 수 있다면 문인 독고준과 그의 작품에 관한 평론은 3부의 ‘독고준 소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소설에 별다른 발문이나 해설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3부는, 이야기 구조의 일부이면서, 원의 독고준 비평이며, 동시에 고종석의 깔끔한 자기비평이다.

원은 아버지와 그의 작품을 자유와 균형의 문제로 해석한다. 여기에 소수자에 대한 태도라는 잣대를 보충한다. 독고준은 자유주의자다. 그가 그리는 ‘자유의 무늬’란 가진 자의 전유물로 귀결되는 자유지상주의가 아니다. 여자와 장애인, 동성애자와 외국인노동자로 그려지는 사회적 소수자들까지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다. 한편, 개인주의자로서 독고준은 차별받는 소수와의 연대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개인과 연대(집단),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충돌하는 어느 지점에 설때,  한쪽으로만 달려가거나 기계적인 중립을 취하지 않았다. 개인과 자유에 넉넉히 기울어진 ‘기우뚱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한 균형이, 그를 관념론자이면서도 관념 속의 노동자와 민중에 정을 주는 대신에 현실의 약자로서 그들을 연민케 했다. 균형의 기울기를 따라, 독고준은 ‘표준적 좌파’였지만 ‘꿋꿋한 우파’이기도 했다.

자유라는 가치의 신봉자로서 독고준은 어느 순간 '자유의지'에 관한 회의를 품었다. 인간은 타고나는가? 이 우파적 물음에 고종석은 내키지 않게, 그러나 일관되게 긍정했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재능이든 미모든 성격이든 환경이든 대개는 선천적이라고 믿는 것이 인간사회의 상식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면모들이 모조리 타고나는 것이라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다른 생물에 비해 귀할 것이 있을까? 이런 기운빠지는 모순 앞에서 나처럼 물렁한 자유주의자들은 흔히 불가지론으로 도피한다. 독고준은? 신의 존재에 관한 그의 불신이 애매해지는데 반해 자유의지에 관한 의심은 또렷한 방향으로 흘렀던 듯하다. 독고원의 판단에 따르면 독고준의 관념은 결국 결정론으로 기울었지만 자유의지의 존재를 끝끝내 부정하지는 않았다. 신념과 자기기만의 분별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독고준의 자살이 결정론에 따른 예정된 수순인지 그에 대항한 자유의지의 소산인지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다툼이다. 논리로 슬픔을 눅일 순 없다. 다만 나는 고종석의 회의가 독고준의 그것만큼 깊지 않기를 바란다. 독고준의 선택은 단지 전임 대통령의 부음에 크게 흔들린 그가 스스로 균형을 잡는 추스름이었다고 믿고 싶다. <서얼단상>과 <자유의 무늬> 이후로 매번, 그와 동시대를 사는 게, 한국어를 쓴다는 것이 기쁘다.

 

 


소소한 재미들.


1. <독고준>에는 ‘현실속의 이름과 역할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 한편, 현실속의 역할만 재현하는 가명의 인물들도 등장한다. 이전에 발표된 고종석의 글을 근거로 이들의 본명을 찾아보자.

척 보면 알겠지만, 94년 4월 2일자에 처음 등장하는 언론학자 현우림은 강준만이다. 그와 함께 2001년 9월 5일자에 나오는 평론가 우석규는 권성우다. 이들이 논쟁하는 지면인 <현대비평>은 당연히 <인물과 사상>이다.

2001년 9월 19일자에 등장하는 <서해문화> 주간 김지원과 문화평론가 이재연은 <황해문화>의 김명인과 이재현이다. 이 두 사람에 관한 사연은 칼럼집 <자유의 무늬>에 실려있다. 이재현의 경우 85년 5월 4일자 일기에 독고준이 꼽는 스타일리스트의 한사람으로 본명이 언급되는데 저자의 실수인지 애초 다른 인물로 설정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2. 1990년 6월 28일자. 평론가 김현에 대한 부고일기 中. 독고준은 김현을 두고 자신이 쓴 <플루트의 골짜기>와 <이모>가 자매소설이라는 것을 몰랐음을 지적한다. 독고준이 언급한 소설은 고종석 본인이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발표한 단편이다. 고종석이 곧 독고준임을 슬며시 드러내는 장면. 한편 저세상의 김현 선생이 들으면 억울해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후 16년이 흘러 발표된 소설로 생트집을 잡다니.


3. 독고준의 혈육인 원과 선은 모두 딸이다. 고종석의 장단편을 통틀어 한국인으로 나오는 화자의 자식이 아들인 경우는 <사십 세>뿐이다. 누이사랑 못지않은 고종석의 딸사랑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4. 민음사,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 새움. 순서대로 고종석의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다. 에세이의 경우 개마고원과 마음산책 두 곳에서 고정출간하는데 비해, 소설은 매번 파트너를 바꾼 셈이다. 이유가 궁금하다. 개인적으론 <독고준>의 디자인과 판형이 마음에 든다.

  

사소한 지적 몇가지.


1. 93년 7월 15일자. 시평에서 삼풍백화점 사건과 9․11사태가 언급된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95년 6월의 일이고, 9․11은 그 다음세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2. 60년 4월 28일자, 94년 9월 14일자 일기 논평에서 독고원은 아버지의 대학시절 문학동아리를  ‘닫힌세대’라 칭했다가 ‘갇힌세대’로 고쳐 말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할만한데 61년 1월 4일에 이번엔 독고준 자신이 ‘닫힌세대’라고 언급한다. 결국 원의 실수는 아버지의 착각에 기인한 것일까?


3. 74년 8월 11일에 독고준은 워터게이트에 따른 닉슨의 사임을 기록한다. 소설에 따르면 준은 74년 2월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꼬박 10개월을 갇혀 살았다. 미국 대통령의 사임이라는 뉴스의 크기는 인정하지만 유신치하의, 그것도 형 확정 이전의 정치범에게 그런 정보가 전달될 여유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수감기간 내내 독고준이 남긴 단 하루치의 일기가 미국대통령 사임 건이라는 것도 미심쩍은 장면이다.


4. 2001년 9월 5일치에는 <현대비평> 19호에 관한 분석이 실렸다. 94년 4월 2일자 일기를 참고하면 <현대비평>은 계간지 터울의 잡지로 그 시기에 창간 4주년을 맞은 <월간 현대비평>보다 앞서 창간된 잡지다. 따라서 19호라면 줄잡아도 11년을 이어온 계간지의 지령과는 크게 어긋난다. 94년의 일기에 <인물과 사상>의 창간일을 7~8년 앞당겨 <현대비평>으로 장치한 것을 잊은 작가의 착오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독고준이 <현대비평> 19호에서 분석한 현우림의 우석규 비판은 같은 시기 소설 바깥에서 출간된 <인물과 사상> 19호의 강준만-권성우론과 맞아 떨어진다.

c*****m 2010.12.26. 신고 공감 1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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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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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작가의 책 <불안의 황홀>을 읽으며 고종석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 책 속의 작가들의 이름들을 보며 내가 너무 알려진 작가들의 책만 읽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고종석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이름만으로 고른 책이다. 최인훈 선생님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젊은 시절 읽었을 때, 나는 독고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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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작가의 책 <불안의 황홀>을 읽으며 고종석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 책 속의 작가들의 이름들을 보며 내가 너무 알려진 작가들의 책만 읽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고종석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이름만으로 고른 책이다.


최인훈 선생님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젊은 시절 읽었을 때, 나는 독고준의 미래가 궁금했다. 이 소설은 독고준이 살 수도 있었을 한 삶의 스케치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최인훈 작가의 <회색인>과 <서유기>에서의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해서 쓴 소설로 독고준의 사후 발견된 일기와 그 일기를 바라보며 딸 독고원의 생각과 생활들을 그린 작품이다. 최인훈 작가를 기리며 쓴 작품이라고 해도 나는 최인훈 작가의 이름도 생소하다. 그래서 독고준의 어떠한 인물이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빈 마음으로 독고준을 읽기 시작했다.

1960년 4.19 혁명에서부터 2007년 12월 19일 까지의 일기로 아버지 독고준이 겪은 정치적 상황들과 외국 작가들의 이야기, 다양한 책을 읽은 독서일기가 주를 이루고, 아내 순임에게 쓰는 편지와 딸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나타낸 편지를 부치지 않고 일기에 써놓아 원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힌다. 그러한 독고준의 일기에 딸인 독고원이 그 일기에 대한 생각들과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들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딸들을 많이 사랑해주었던 아버지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들을 나타낸다. 독고준의 일기에 세계의 명사들의 죽음을 알리는 일기들이 있다. 죽음을 얘기하는 일기는 거의 한줄로 죽었다, 타계했다, 사망했다, 작고했다 라는 말을 썼다. 죽음을 나타내는 말에도 많은 단어들이 있고 그 단어들에서 독고준이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표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가 언어학자이자 저널리스트라고 해서 책이 너무 딱딱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 우려는 내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독고준의 독서일기가 나올 때는 내가 관심가는 책에 대한 생각들을 알수 있어서 좋았었고 정치인들의 짤막한 얘기들도 너무 지루하지 않게 나와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이되 소설 같지 않고 실존 인물 독고준의 쓴 산문들인것처럼 독고준의 생활들을 엿보는 것처럼 느껴져 산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너무 과하지 않게 담담하게 쓴 듯해서 읽고 나서도 책장에서 오래도록 먼지를 쓰지않고 자주 꺼내어 읽어볼 듯한 책이다. 김도언 작가의 책을 읽었다는 것과 고종석 작가의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0.09.28. 신고 공감 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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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허구 사이 ‘독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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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보통 허구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 현실처럼 느껴져서 간혹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적기도 하고 소설 속 상황이 너무 사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역사소설을 읽으며 답답해하고,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내가 주인공인 듯 상상을 하고, 코미디 소설을 보며 깔깔대고, 무서운 소설을 보며 소름이 돋기도 하고, 아이들 소설을 읽으며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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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보통 허구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 현실처럼 느껴져서 간혹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적기도 하고 소설 속 상황이 너무 사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역사소설을 읽으며 답답해하고,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내가 주인공인 듯 상상을 하고, 코미디 소설을 보며 깔깔대고, 무서운 소설을 보며 소름이 돋기도 하고, 아이들 소설을 읽으며 또 다른 나와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한다. 이 책 독고준도 어떤 면에서 좀 헷갈렸다. 최인훈 선생님의 회색인’ ‘서유기의 주인공 독고준의 나이 든 모습을 새롭게 탄생시켜 독고준 3부작을 완성한 고종석. 현실 속의 이름과 역할을 재현했지만 모두 픽션 속 인물이라는 말씀하셨듯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아버지를 회상하는 딸이 들려주는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가 마치 소설이 아닌 에세이처럼 읽혔다. 그 실감나는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작가들과 작품을 검색했다.

 

전임 대통령과 한 날에 돌아가셔서 사회적인 이목은 덜 끌었지만 가족에겐 충격인 한국문학의 어떤 우듬지였던 소설가 아버지의 자살. 일주기 후 어머니께서 주신 1961 5월부터 1987 6월까지의 염세주의가 스멀거리는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큰 딸 원은 그렇게 아버지를 가족을 문화계를 사회를 되돌아본다. 일기가 연도순이 아니라 특이하게 월별로 정리되어있어서 과거와 더 과거가 오가면서도 아 이달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알 수있다. 물론 허구와 사실이 섞여있다. 아버지와 월남을 하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매형과 지내다 순임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가족을 지킨 준. 가족과 종교를 지키는 엄마 순임, 교수인 큰딸 원, 동거녀 방송작가 연희, 이혼하고 두 딸이 있는 신문기자와 결혼한 잡지사 편집장 작은딸 선. 어떤 면에서 보면 조금은 극단적인 조합의 가족으로 좀 이기적이다 느끼게 만드는 가족의 모습이 보이는데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다 사는 게 그렇지 라는 생각도 든다.

 

남편을 위해 생계를 책임진 아내의 모습, 성 정체성을 찾은 딸, 기다란 꿈을 꾼 것 같다고 표현한 두 달간의 유럽여행, 실존을 좌우 너머로 밀쳐버린 독립적 개인 회색인아버지, 약자를 향한 연민을 가진 독고준들. 내 의지로는 절대 만나지 못했을 책을 감사한 분 덕에 만났고 마치 내가 원의 친구가 되어 그녀와 과거를 이야기하며 한껏 수다를 떤 기분이다.

제 마음은 가득인데 글은 부족하네요. 천천히 님 정말 감사해요.

 

전쟁엔 무사만 필요한 게 아니다. 악사도 필요하다.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악사들.

111페이지

김훈님의 현의 소리가 생각나는 구절이다.

무기를 만드는 야로, 금을 켜는 우륵 그리고 신라 장군 이사부



s******a 2012.02.28. 신고 공감 6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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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문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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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은 최인훈씨의 두연작인 회색인 , 서유기의 주인공인 독고준의 3부작 마지막 이야기 이면서 고종석씨가 쓴 독립된 작품이다. 소설가인 독고준이 노무현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날에 자신이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투신으로 생을 마감을 한다. 독고준의 장례를 마친후에 그가 남기고간 일기를 아내가 발견을 하고 일기를 딸에게 전해 주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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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은 최인훈씨의 두연작인 회색인 , 서유기의 주인공인 독고준의 3부작 마지막 이야기 이면서 고종석씨가 쓴 독립된 작품이다.


소설가인 독고준이 노무현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날에 자신이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투신으로 생을 마감을 한다.

독고준의 장례를 마친후에 그가 남기고간 일기를 아내가 발견을 하고 일기를 딸에게 전해 주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일기장에 있는 이야기들은 그동안에 어디에도 속하지를 못하고 중립으로 살아온 일명 회색인으로 느껴온 마음들과 그가 본 책들에 대한 소회를 담고 있는데 자신과 아무런 문제가 없이 결혼 생활을 영위를 하여서 서로 사랑을 하여서 결혼을 한 것으로 생각이 되던 부부가 실제로는 사랑은 없고 남편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경제적으로 무능한 시기에 많은 힘이 되어준 아내의 고마움 그리고 자신의 두딸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일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시인들의 시 드리고 작가들의 책을 읽고 느낀 점들로 채워져 있는데 이 책을 소설이라고 하는것 보다는 책의 저자인 고종석씨의 비평집 80% 소설 20% 로 구성이 된 서평집이라고 할수가 있을것 같다.


소설은 거의 안 읽고 시와는 거리감이 많아서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나오는데 그러한 작품들을 본 기억이 없어서 재미는 좀 떨어 지는데 작가의 감상과 느끼는 점들이 진솔하게 표현이 되어 있는것 같다.


독고준은 이북에서 살다가 원산에서 배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인데 남한에 먼저 내려와서 정착을 한 아버지가 죽자 자신의 피붙이는 아무도 없는 사람으로 어딘가에도 마음을 붙이지를 못하고 좌,우를 경계로 홀로 외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독고준을 구원해준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인데 특정 종교를 믿어서 그 종교로 남편을 이끌려고 하지만 죽을때 까지 종교가 없이 살았던 남편과 그러한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두딸들은 나이가 먹어서는 첫째는 커밍아웃을 선언하고 둘째는 이혼남과 결혼을 하는등 가슴에 많은 상처를 남기었지만 가장 큰 상처는 그래도 한 집안의 가장인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이라고 생각을 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남겨논 일기에는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는 고마움만이 흐르고 그러한 고마움을 표현을 못하고 살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내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가는 독고준의 모습은 어딘가에서 많은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남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행위는 문제가 크다고 생각을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0.12.24. 신고 공감 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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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아웃사이더 [한국소설-독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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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데, 소설이라는데, 소설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되새겨야 했다. 문학평론인 것 같은, 일기인 것 같은, 적어도 소설은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있는 내 의식을 되돌려 놓느라고 꽤나 애를 써야 했다.   (나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과 작품들을 검색하면서 실제 인물과 가상 인물까지 구별하는 수고로움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어떤 인물과 책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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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데, 소설이라는데, 소설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되새겨야 했다. 문학평론인 것 같은, 일기인 것 같은, 적어도 소설은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있는 내 의식을 되돌려 놓느라고 꽤나 애를 써야 했다.

 

(나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과 작품들을 검색하면서 실제 인물과 가상 인물까지 구별하는 수고로움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어떤 인물과 책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어서 섭섭했고, 어떤 책들은 절판이어서 무지 섭섭했으며, 겨우 살아남은 책들은 카트에 담았다. 이렇게 몇몇 작가와 작품들은 이 책으로 인해 내 세계 안으로 들어와 살아남았다.)

 

맨 먼저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실천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일기를 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니까 못한다고 자책은 하지 말자.) 

 

앞으로 세월이 흐른 후에 내 아들과 딸이 이 블로그를 보게 된다면, 그때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보는 일이 안타깝지 않고 흐뭇해졌다. 이 소설에서의 화자인 딸은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면서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아주 애틋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는데, 나는 화자(실제의 내 나이는 화자 쪽에 더 가까운데) 쪽보다는 자꾸만 아버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내가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 보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 산 책이다. 실망을 주지 않는다. 믿음직스럽고 고맙다. 내가 오늘 하루를 이 책읽기에 바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 주어서.(이제부터 밀린 숙제를 해야 하기는 하지만.)

 

소설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거다. 밥 먹기도 귀찮다고 여겨질 만큼.(나는 그랬다. 밥을 먹고 싶지 않을 만큼의 우울함이 이 소설 속에 담겨 있는데, 그 우울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결국 개인의 독서 취향이 되리라.) 

YES마니아 : 로얄 j***6 2011.01.04.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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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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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죽던 날, 유명한 소설가 '독고준'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하필이면 대통령과 같은 날의 자살이어서 소설가의 죽음은 신문 기사화 조차 되지 않는다.  유명했던 소설가치고는 무척 조용한 죽음이 되버렸다.   독고준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이 책은 첫째딸인 독고원이 화자가 되어 소설을 이끌어 가고 있다. 아버지인 독고준은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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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죽던 날, 유명한 소설가 '독고준'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하필이면 대통령과 같은 날의 자살이어서 소설가의 죽음은 신문 기사화 조차 되지 않는다.  유명했던 소설가치고는 무척 조용한 죽음이 되버렸다.

 

독고준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이 책은 첫째딸인 독고원이 화자가 되어 소설을 이끌어 가고 있다.

아버지인 독고준은 딸들의 이름을 지을때, 이름은 세 글자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으셨는지, 성 '독고'를 제외하고는 세 글자를 맞춘듯이 '원'과 '선' 이란 한 글자의 이름을 지어주셨다. 독고준이 죽고나서 일기장이 발견되고, 큰 딸 '원'이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면서의 느낌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내와의 사랑이 열정적인 연인사이라기 보다는 형제나 부모의 그것 처럼 그냥저냥 '가족애'로 살았다면, 두 딸은 끔찍하게도 예뻐했다. 평소에 대화도 자주 하고 딸들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베풀던 아버지였다.

그런 부녀의 사이였어도 못다한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외로움이 있었던지 끝내는 자살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일기에 자살을 결심하게 된 이유 같은 건 들어있지 않다. 

1960년대 부터 2007년 까지의 삶이 그대로 들어있어 한 사람의 일대기로 보는게 맞을 것 같다.  다독을 즐겼던 소설가여서 독서일기가 심심찮게 보이고, 정치적인 견해나 동년배 또는 선후배 문인들을 평가한 내용이 들어있기도 하다. 정치, 역사, 사회, 음악, 문화...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 길거나 혹은 짧은 일기를 읽고, '원'이 아버지를 회상하고 추억을 되새기며 아버지의 생각을 유추하고 어림 짐작한다.  때론 글과는 전혀 다른 자신의 일상을 풀어놓기도 한다.

 

특이하게 책은 월을 기준으로 들어있다. 즉, 4월이면 1960년도에서 2007년까지 4월에 쓰여진 일기가 한 챕터씩 묶여있다. 그다음 5월 일기, 6월 일기, 7월... 순차적으로 다음해 3월까지 1년 열 두달이 꼬박 월을 기준으로 묶여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년도를 기준으로 묶지 않았을까 싶은게 새로웠었다.  

 

 

이 소설로 고종석 이란 작가를 처음 만났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다보니, '한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나다'는 문장이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직접 눈으로 느낀점이기도 했다. 새로이 배운 말들도 있었고, "한글에 이런 단어가 있었어?" 하는 낯선 단어도 있었다.  문맥에 딱 들어 맞는 맞춤형 단어들을 보면서 프로필에 쓰인 말이 허구가 아니구나! 하면서 읽었다. 

 

정치적인 내용이나 유럽 작가들에 대해 평가를 하는 부분은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그랬을테다.

전반적으로는 가슴에 남기고픈 표현들도 여럿 있어서 좋았다. 속독으로 빨리 읽어가기보다는 한 문장씩 음미하면서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s***r 2012.08.3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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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아버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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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난 건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였다.호기심반 기대반으로 이 책을 선물 받았지만...  사실 쉽게 읽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래서 읽기를 조금... 뒤로 했다가 토요일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다.조금은 껄그럽고 조금은 딱딱할지 모를 거라는 나의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읽기에 속도를 더해갔다.어찌보면 무시하고 싶고 어찌보면 외면하고 싶고 어찌보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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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난 건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였다.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이 책을 선물 받았지만...  사실 쉽게 읽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읽기를 조금... 뒤로 했다가 토요일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다.
조금은 껄그럽고 조금은 딱딱할지 모를 거라는 나의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읽기에 속도를 더해갔다.
어찌보면 무시하고 싶고 어찌보면 외면하고 싶고 어찌보면...  안타까워 그 변두리를 서성거린
나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은 뜨끔함이 그곳에 있었다.

전임 대통령이 죽던 날, 유명 소설가였던 나의 아버지가 자살했다.
나, 독고원은 아버지가 남긴 47년간의 일기를 읽는다.
넘쳐나는 관념, 기우뚱한 균형, 생래적인 회의...
그 위에 나의 삶을 포갠다.
일기를 다 읽고 나면 아버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알 수 있을까?
(책 표지에서)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몇가지 단편적인 기억이 있다.
# 1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을때.  흑백텔레비젼에서 사람들이 하얀(흑백이니 검은색 혹은 흰색이었다) 한
      복을 입고 나라가 망한 듯 울고 있는 모습.
# 2  어떤 방송국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공개방송이 있어 구경하러 갔다가 울면서 집에 왔던 일(데모 대열
      에 놀라 엉엉 울면서 엄마랑 집에 왔던것 같다) 
# 3  전두환 집권때였던가?  정치적인 이야기든 뭐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어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던 어른들의 모습.
# 4  고등학교때 대학생이던 친구 언니가 학생 운동을 하다가 수배 당했던 일.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의 사건 사고들이 생각났던 건 왜 일까?

1960년대부터 쓴 독고준의 일기를 보면서 그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정권, 그리고 우리나라 이외 다른 곳에서의 급변하는 환경, 아이들이 태어나 행복해 하는 모습,
글쓰는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 본인의 작품등...  생각할 꺼리들이 많이 등장한다.
너무 많은 사건들을 머릿속에 담아서 인지 쉽게 리뷰가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리뷰쓰기를 망설였다.  아니 쓰고 싶지 않았다.
또한 핵심을 파악하고 책 읽기를 한 건지 자꾸만 나에게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리뷰를 쓰려고 노력한 이유는
나는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사회적 시선이 그곳에 있어서다.

나는....
내 윗 세대의 사건들은 나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냉소적으로 살았고
(사실은 그들의 노력으로 내가 이렇게 그나마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있는데...)
나와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그 이중적인 면 때문에 무시하면서 살았다.
(내가 겪은 사람들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판단하고 싶지는 않으나
기득권이 되고서 자신의 이익에 눈 뒤집어지며 손해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다)

누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고 누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새로운 세대 교체를 위해 그렇게도 목청껏 소리치던 사람도
그 자리에 올라가면 변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

이 책에서 "회색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 아버지에게 회색인이라는 딱지를 붙인 사람들은 그 말을 박쥐라는 말과 연결시켰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그 회색인은 실존을 좌우 너머로 밀쳐버린 독립적 개인이었다. (page 234)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이 회색의 색깔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본것은 아닌지
묵직한 심리적 변화가...  심장을 뛰게 한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1.07.04. 신고 공감 2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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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너는 누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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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 회색인, 서유기..김현 선생님 -호치민 평전 김수영전집...너무 비싸네...ㅠ나는 신동엽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특히 껍데기는 가라는... 지금 이 정부에게 딱 해주고 싶은말이거든"역사란 무엇일까?" 집에 책이 있지만.. 깊게 보지 못하였다.나도 로맹가리를 좋아한다... 잘 모르지만..그의 글쓰는 방식이 좋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음악에 심취해 본 영화킬빌을 로맹가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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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 회색인, 서유기..
김현 선생님 -
호치민 평전
김수영전집...너무 비싸네...ㅠ

나는 신동엽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특히 껍데기는 가라는... 지금 이 정부에게 딱 해주고 싶은말이거든

"역사란 무엇일까?" 집에 책이 있지만.. 깊게 보지 못하였다.


나도 로맹가리를 좋아한다...
잘 모르지만..그의 글쓰는 방식이 좋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음악에 심취해 본 영화
킬빌을 로맹가리가 썼다는것도 ...너무 좋았다
로맹가리 - 자기앞의 생


애거서크리스티 추리는 몇권 봤지만.. 별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답답한 흑백영화처럼 숨이 막혔다..

이인성 -

조선50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인이 곧 문인이자, 지식인이었다...
그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했을 때 그 시나 학문은 그들이 펴는 정사와 뗄 수없이 맞물려 있었다.
그것의 제도적 기반이었던 신분제나 과거제는 전근대적 악풍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과거를 지닌 나라의 정치군에 문필가나 지식인이랄 만한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좀 신기하다..
 P. 83

이 구절....... 그냥 지나칠 수 없는..구절이었다..
만약 지금 정치인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할 수 있는 자질로 이루어졌다면,
최소한 건설로 인해 돈이나 벌어 쳐먹는 것들이 금배지 다는 그런 형국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나라 정치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불가능한 소리같다..

-----------------------------------------------------------------------------

처음..독고준 이라는 책 이름만 보고..... 난,.. 독고준이라는 일생에 관한 혹은
그의 영웅적 이야기 인줄 알았다...........

독고준이 그날 하필 그날........ 노대통령과 같은날...몇시간전에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이른 넷에 자살한 독고준과 젊디 젊은 대통령의 죽음... 어쩌면 내겐 이 죽음을 이야기 하는
첫페이지 부터가 끌렸는지 모르겠다..
다시 그의 죽음  이야기를 읽으면서 터무니 없이 그립고...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그의 웃는 얼굴이
사무치게 그리워져 왔다. 내가 이토록 그리워하고 가슴아파한 정치인이 있었을까?
이름만 들어도 , 웃는 사진만 봐도..아직도 그가 이토록 ,,그립다니..하기사 내겐
정치인중엔.....첫사랑이다...........

독고준이라는 약간은 회색...중간자적인 작가의 자살로 인해.. 딸인 독고원의 필체를
통해 독고준의 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아버지를 기리는 형식으로 책은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을 읽다가 고종석님을 찾아 보게 되고..그분의 카페까지 가입을 하게 되었다..
너무 궁금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ㅎ 어떻게 화자를 여자로 잡았을까?..싶기도 했고
소설을 이끌을 가는 기법이...내겐 전혜린을 추억하게 했다..
내 십대에 골수에 빛을 넣어준 전헤린의 에세이를 보면서 희열을 느꼈다..

아, 이렇게 글을 쓰는 여자도 있구나... 하면서..그당시 모든 에세이집이나
소설의 여류작가필체는 그저 아름다운 문체를 사용해 서정적인 면을
많이 쓰든 시절이었는지... 전혜린의 거침없는 필체는 내게 전광석화처럼 다가왔으니까..

그 때 전혜린의 그 일기 혹은 편지 들 속에 나오는 서양이나 유럽쪽..혹은 러시아
작가들의 무수한 책들을 사보고, 빌려보고.. 그렇게 이십대 중반까지 달렸었다..
그러다 지치고, 지겹고... 할때...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위대한....... 너무나 위대한........ 터무니 없이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분을 뛰어넘지
못할바엔 입을 다물라 말하고 싶다.. 지금 내 나이 마흔 여섯이지만..아직도 남편은 이분의
대학이나 중용, 논어 강의를 듣는다.. 버릴 것이 없다...인정할건 인정해야 하는데
자존심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중에 유독 그를 폄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비겁한

또 새고 있다.. 난
항상 책속에서 다음 읽을 책을 많이 선택하는 나로서는... 고종석님의 이 책이
당연 흥미로웠다..

전혜린의 책에서는 이미륵님을 알았고, 루이제 린저, 까뮈... 등.. 서양고전의 매력을 알았었는데
고종석님의 독고준에서는 우리나라 근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평소 김현님의 글을 좋아하는데..김수영은 수박겉핧기 정도 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어쩌면 끌리는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가끔은 나의 편협한 시각이 걱정되기도 한다.. 나하고 코드가 맞으면 한없이 애정을 쏟는데,
코드가 맞지 않으면 .. 읽을 시도도 해보지 않는다는거..
그래서.. 편파적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한 나를 자주 본다..

고종석님의 글들은 내게..참........ 부담이 없다..그만큼 내코드와 일치한다는 뜻일게다.

이 책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월별로 글이 이루어져 있는데, 내겐 그것이 맥락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근대작가들에 대한 글은 그 글대로 가정사는 가정사대로 묶어주었으면 더 막힘없이
읽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는..그래서 좀 산만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g******8 2011.06.30.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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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기 보다는 불의롭지 않은 매력적인 존재
"정의롭기 보다는 불의롭지 않은 매력적인 존재" 내용보기
작가 독고준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찬사를 받은 몇몇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는 47년 동안 오로지 자신의 일기 속에서만 속내를 밝힌 작가였다. 딸에게 쓰는 편지도, 작품에 대한 비평도 모두 일기 속에 갇혀있었다. 물론 문단에서도 눈에 띄는 교류는 없었다. 그가 일기 속에서만 펜을 놀린 사연은 이러하다.   이북 태생인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자아비판’의 경험은 혹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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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독고준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찬사를 받은 몇몇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는 47년 동안 오로지 자신의 일기 속에서만 속내를 밝힌 작가였다. 딸에게 쓰는 편지도, 작품에 대한 비평도 모두 일기 속에 갇혀있었다. 물론 문단에서도 눈에 띄는 교류는 없었다. 그가 일기 속에서만 펜을 놀린 사연은 이러하다.

 

이북 태생인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자아비판’의 경험은 혹독했다.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가 ‘정신 개조’를 요구 받았던 그는 북의 경직성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그는 남한에서도 '문인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다. 자본주의의 폭력성 보다는 사회주의적 가치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어떤 고초를 당했는지 그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입을 다물었고, 누구도 사상범으로 얽어맬 수 없을 아주 관념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는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고, 문단에서는 그를 '회색인'이라 평했다. 그나마 그가 남쪽에 계속 남았던 것은 남쪽에선 ‘회색인’의 자리라도 존재했기 때문일테다. 그의 소설이 '운동권 필독서'가 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현실에 거리를 두고 살았다. 오로지 일기 속에서만 입을 열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 정의인지 답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정의란 애초에 많은 불순물들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1파운드의 살을 떼어낼 수 없듯,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정의'와 '불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모두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듯, 모든 결정에도 저마다의 '정의로움'은 있기 마련이다. 작가 독고준에게 (조금은 거칠게 말해) 사회주의는 정의지만, 북한은 정의가 아니었다. 남한은 (적어도 북보다는 나은) 정의였지만, 자본주의는 정의가 아니었다. 그는 '정의'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희뿌연 안개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의 사연이, 그의 결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아니 심지어 매력적이기 까지하다. 내 한 몸이 불의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정의란 무엇일까. 정의와 불의 중 하나를 명확히 택하는 것일까. 아니면 선택을 피하고 안개 속으로 숨어드는 것일까. 어렵다. 하지만 부지불식 간에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에는 아마 약간의 정의와 좀 더 많은 불의가 덕지덕지 붙어있기 쉽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항상-이미 정의롭거나 정의롭지 못하다. 그런 우리들이 지금 정의를 갈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순결한 정의’라기 보다는 ‘좀 더 많은 정의’일 것이다. 정의로부터 불의를 적출할 외과적 수술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항상-이미 ‘좀 더’ 노력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건방지게도 ‘숨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라 답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지금 충분히 불의롭고, 나는 ‘좀 더’가 아니라 ‘많이’ 반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독고준을 비난하고픈 생각은 없다. 사실은 글보다 훨씬 호의적인 마음을 품고 있다. 회색인의 수나 영향력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압도할 정도만 아니라면, 나는 이같은 회색인-지식인들의 존재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 어떤 정의도 과오가 없을 리 만무한 상황에서, 이들의 존재야말로 '혁명-개혁 후의 보수화'를 막을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닐까. 정의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이 항상 불의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정의를 꿈꾸는 이들일 수 있음을, 이들을 거부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함을 느낀다. 고백하건데, 너무나 매력적인 존재다. 존경할 수는 없지만.

c*****9 2010.10.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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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의 유서 혹은 고종석의 자기검열문
"독고준의 유서 혹은 고종석의 자기검열문" 내용보기
독고준은 고종석의 분신 같다. 아니 바로 그다. 글 중간 중간 넌지시 에둘러 자신임을 내비치더니 결국은 덜컥 커밍아웃까지 해버렸으니 말이다. 본인의 에세이집 제목을 직접 들더니만 그 책의 필자를 독고준이라 노골적으로 소개하는 모습이라니. 애초부터 독고준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었음을 단도직입 드러낸 것이다. 소수자를 등장시켜 자유의 한계를(‘자유의 무늬’라는 말이
"독고준의 유서 혹은 고종석의 자기검열문" 내용보기

독고준은 고종석의 분신 같다. 아니 바로 그다. 글 중간 중간 넌지시 에둘러 자신임을 내비치더니 결국은 덜컥 커밍아웃까지 해버렸으니 말이다. 본인의 에세이집 제목을 직접 들더니만 그 책의 필자를 독고준이라 노골적으로 소개하는 모습이라니. 애초부터 독고준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었음을 단도직입 드러낸 것이다.


소수자를 등장시켜 자유의 한계를(‘자유의 무늬’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그려보는 작품을 독고준은 여러 편 썼다. (400쪽)


글의 구조는 단순 명료하기 그지없다. 독고준이 남긴 일기를 딸이 읽으며 아버지의 생각에 자신의 견해를 덧입히는 얼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형식적 변주의 폭이 그리 크지 않고 템포도 사뭇 같은 보폭을 유지하고 있어 인내의 한계를 잔뜩 늘여야 했다. 하여 고종석 매니아이면서 글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는 타입의 독서 패턴을 지닌 내겐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지향과 독서 방식이 다른 이들에겐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까 한다.


글감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일상적인 가족사에 대한 소회, 매일 매일 그날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작가의 견강부회랄 정도의 주관적 해석에다 그의 정신세계의 지향을 엿볼 수 있는 독서경험에 대한 것들이다. 이를 때론 독고준의 일기에 담아 딸의 코멘트를 살짝 버무려 나름 맛을 내기도 하고 더러는 일기 한 줄에 딸의 장황한 의견을 덧붙이는 식의 배리에이션을 보이다가 딸이 쓴 아버지의 평전 형식의 <독고준 소묘>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렇게 부녀간에 교감하는 방식으로 펴 보인 생각의 결들은 물론 고종석의 사유의 기록이자 세상을 향한 발언이다. 이를테면 ‘앙드레 말로가 죽었다. 나는 그의 좌파적 영웅주의가 싫었다. 드골주의로의 전향도 싫었고’(266쪽)처럼 짧은 아빠의 일기를 토대로 딸의 시점을 빌어 인간과 역사, 문학에 대한 작가의 탁견, 아니 혜안을 펼쳐 보이고 있는데 하나 같이 평소부터 고종석이 일관되게 지녀오던 지론인 것이다. 이렇게 독고준의 입을 빌어 발언하고 있는 고종석의 정체성을 몇 가지 측면에서 규정해보고자 한다.



자발적 망명자


독고준, 아니 고종석은 언어와 관념의 성채를 스스로 짓고 자신을 그곳에 유폐하여 자발적 고립을 택한 내부 망명자이다. 그러나 그의 고립은 세상과의 소통을 일체 단절해버린 극단적 폐쇄가 아니다. 균형과 중용을 실천하기 위한 방편으로 택한 것일 뿐.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당하는 세상사와 일정 부분 절연하여 스스로 균형 있는 가치 기준을 정립하고 이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인위적인 선긋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하여 그의 망명은 권력의 압제, 그 무도한 칼날을, 혹은 대중의 거칠고 성근 비난을 비껴가려는 우회전술로 읽힌다.


물론 그 일기는 성인의 고백록이나 자서전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시대의 흐름을 타거나 거기 맞서지 못하고 자기 마음속으로 망명해버린 한 남자의 실루엣이 담겨 있었다. 그 남자는 때로 나약했고, 때로 비겁했고, 때로 이기적이었다. 그런 대목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슬펐고, 안쓰러웠고, 마침내 아버지가 그리웠다.(29쪽)


그는 세상 모든 억압의 굴레로부터 독립을 원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세상과는 무관하다는 듯 모든 걸 방임해버린 건 아니었다. 고립되어 있되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참견하는 공인이었다. 그 발언의 울림이 비록 적대적 의견자의 심장까지 가 닿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언제나 투명한 이성을 바탕으로 질곡의 일그러진 세상을 향한 지식인의 사명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외형상으로는 늘 세상과 담 쌓고 스스로의 내면에 깃들어버린 공고한 자발적 망명자로 비쳤다.



NL도 PD도 아닌 순정 좌파


고종석은 북한에 대해 애증이 교차하는 듯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지만 근원적으로는 적대적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전체주의의 숨 가쁜 압제의 굴레를 도무지 용인하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하여 그 체제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민족해방파(NL계열)들에 대해 너그러운 시선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또 모든 걸 경제적 계급문제로 환원해버리는 민중민주파(PD계열)의 견해에도 동감하지 않는다. 민중은 실체가 모호한 개념으로 이익추구를 위한 탐욕적 집단이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독고준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어떤 개인의 장애이지 그의 계급이 아니다. 독고준은 계급이 개인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좌파적 견해를 믿지 않았다. 그의 소설에는 불행한 부자와 행복한 빈자들이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관찰자로서 독고준이 탁월했던 점은 그가 추상적 민중만이 아니라 구체적 소수자들에게도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는 데 있다.(405쪽)


그러나 그가 실은 왼편으로 상당 부분 기울어져 있음은 약자에 대한 연민의 눈빛으로 단박에 알 수 있다. 소수자에 대해 일관되게 우호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계급이나 국적, 또 사회적 지위 따위는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양 결코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는 소외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좌파 가운데서도 경제적 이익이나 민족적 유, 불리를 넘어선 순정 좌파임이 분명하다.


[아내의 봄비]에서 화자의 아내가 실천하는 것, 그리고 화자가 흐뭇하게 공감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소박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그것을 연민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보다 힘든 이웃에 대한 연민 말이다. 만약에 인간사회가 진보해 왔다면, 그 진보의 과정이란 그런 연민의 확산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운 연민의 마음은 이 노동자 시인의 다른 시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강인하고 헌걸찬 분노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97쪽)



개인주의자


그는 천상 개인주의자였다. 집단적 구속의 매커니즘을 생래적으로 거북해 했고 못 견뎌왔다.


아버지는 혼자서 사유하고 혼자서 행동했다. 아버지의 그 독립성은 시몬 베유의 말을 연상시킨다. 자신과 홀로 마주 서 있는 정신 속에서만 사상은 형성된다. 집단을 결코 생각하지 못한다.(254쪽)


개인주의자였기에 자유에의 과도한 집착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유였다. 그것은 연대나 평등보다 더 높은 가치였다.(406쪽)


그런 지향은 언제나 홀로이기 일쑤다.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경계선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니 늘 단독자일밖에. 경계인에게는 집단의 규범을 내면화한 일체감을 느낄 동지가 있을 리 없고, 그는 또 신에게 의탁하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니 신의 은총에 기댈 수도 없을 것이다. 동지도 신도 지니지 못한 단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내밀한 글쓰기밖에 더는 없으리라. 이를 생각하니 독고준, 아니 고종석의 선 자리가 너무 쓸쓸해 보인다. 돌출된 광대뼈에 불안한 눈빛으로 서성대는 뒷배경으로 휑한 살풍경이 도드라지는 듯하다.



아름다운 우리말 예찬론자


그는 언어의 세계로도 망명을 택했다. 아름다운 우리말의 섬세한 결을 문맥에 딱 어울리게 배치하여 읽는 맛,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데 모든 것을 걸기라도 한 것처럼.


반듯반듯하지 못한 것, 얄긋한 것, 샐긋한 것, 삐죽 나와 있는 것을 역사는 벽장에 가두고 한 줄로 처리하지만 문학은 팔을 활짝 벌려 보듬는다.(268쪽)


그의 우리말 사랑은 각별하다. 그래서 우리말을 아름답게 구사하는 이에게는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비록 지향이 다르더라도 말이다.


복거일의 문체는 그의 생각만큼 과격하지 않다. 단아하고 명료하고 깔끔한 그의 문체는 그의 글에 담긴 메시지의 과격함과 도발성을 때론 덮고 때로는 돋보이게 하면서, 그의 글을 묘한 아우라로 감싼다. 아무튼 그는 글 솜씨가 부족한 전문가들과 전문지식이 부족한 문장가들만 흔한 사회에서, 전문적 담론을 잘 다져 일반인들이 먹기 편하게 요리해주는 탁월한 대중화 저자의 면모를 보여 왔다.(140쪽)


그리고 자신의 소망을 넌지시 피력하기까지 한다. 독고준의 죽음을 이례적으로 사설로까지 다루어 상찬해마지 않는 <한국일보>칼럼 형식을 빌어 자신의 글이 세상에서 이렇게 평가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고종석의 속마음이 또렷이 읽힌다.


고인은 십여 편의 장편과 수십 편의 단편을 통해서 한국어 문체가 다다를 수 있는 미학적이고도 논리적인 끝 간 데를 보여주었다. 그럼으로써 작가들이야말로 모국어의 수호자라는 점을 생생히 증명했다.(20쪽)



치열한 자아비판을 가하는 성찰자


고종석은 세상의 부조리한 단면과 탐욕적인 인물에 대해 가차 없이 벼린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데 그 칼끝이 가리키는 대상엔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딸의 입을 빌어 자신의 무책임성과 꾀하는 일의 무의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외부인의 시각에서 객관적 점검을 시도하기도 한다. 특히 국가보안법 개폐를 주장하는 2000년 3월 5일자 아버지의 일기를 읽은 딸이 아빠의 입장과 처지를 호되게 나무라는 대목에선 지나치리만치 준엄하게 자아비판을 행하고 있다.


이 글은 무책임하고 무의미하다. 글을 쓴 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대의의 실천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책임하고, 글쓴이의 일기장에 갇혀 있는 탓에 아무런 선전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다.(364쪽)


그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라 여겼지만 세상의 눈은 에고이스트라 낙인찍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여 부단히 사회적 자아로서의 자기검열을 꾀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지식인다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측은하기도 하다. 그렇게 의식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나는 오로지 내 성공을 위해 분주하게 살았다. 나는 이기주의자(였)다. “나도 그렇단다.”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기주의는 공적인 이기주의였다.(사실이 그래요 아빠!) (52쪽)


또 더러는 자신의 취향, 호불호에 따라 균형과 절제를 잃고 잘못 판단한 경우도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닉슨이 사임한 것을 미국 민주주의의 승리일까? 하고 회의적 시각으로 본 데 대해 딸은 시니컬하게 되받는다. 고종석의 자아비판은 구석구석 어느 하나 놓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고 집요하다.


아버지처럼 균형과 절제를 중요시했던 이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가볍게 보았다는 것이 좀 뜻밖이다.(200쪽)


이런 것들은 모두 고종석을 향한 일부 지성계의 시선을 적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도 이런 비판이 일리가 있는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고와 행동방식이 그렇게 굳어져있는데 달리 어쩔 도리가 없을 터여서 아마 많이 갑갑했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 타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자기검열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여 이 책은 고종석이 외부인의 시각을 의식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검열문으로도 읽힌다.



결국은 회색인


독고준, 아니 고종석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규정은 결국 하나의 용어로 수렴되고 만다. 바로 회색인이 그것이다. 박쥐로 대변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사려 깊은, 그래서 섣불리 세상에 발을 담그고 성급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닌 숙고형 인간 말이다. 그 회색인은 투명한 이성을 지닌 객관적 독립자일 것이다.


아버지의 발은 반민주주의와 과도한 민주주의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이 점에서도 아버지는 회색인이었다. 나는 그 ‘회색인’을 ‘사려 깊은 사람’으로 읽는다. 아버지는 사려 깊은 분이었다. 새삼 아버지가 그립다.(157쪽)


아버지에게 회색인이라는 딱지를 붙인 사람들은 그 말을 박쥐라는 말과 연결시켰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그 회색인은 실존을 좌우 너머로 밀쳐버린 독립적 개인이었다.(234쪽)


그 독립적 개인, 회색인은 집단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으며 극단주의로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유지했고 일관되게 소수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와 행동 패턴은 일제 강점기와 좌우대립을 거쳐 남북분단이 이루어지고 양 체제에서 극단적 권위주의가 경쟁적으로 행해졌으며 진보 진영은 오로지 독재 정권에 대해 강고한 투쟁 일변도의 노선을 지녀온 우리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지적 풍토에서는 제대로 자리매김 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늘 기회주의자로 매도되고 한가로운 지적 유희나 즐긴다는 비아냥을 감내해야 했을 밖에. 독고준의 비애, 고종석의 분노가 눈에 선하다.



이 땅에서 독고준으로 산다는 것 - 늘 유서를 준비해야 하는 삶


독고준은 전직 대통령이 목숨을 버린 바로 그날 아파트 14층 베란다에서 투신하고 말았다. [자기 앞의 생]의 작가 로맹 가리가 그랬듯이. 그 자살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독고준이나 딸의 입을 통해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딸은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의 죽음의 연유를 캐려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글의 말미에 독고준의 심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케 하는 대목이 얼비친다. 독고준이 실은 결정론자였음에도 어쩔 수 없이 자유의지 신봉자 행세를 해 왔다고 분열적 내면을 고백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생의 말년에 결국 꿰뚫은 게 결정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 존재의 유한한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을 오롯이 지탱하기 위해선 자유의지론을 견지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독고준의 내면이 얼마나 부대꼈겠는가? 작위적 설정인 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시침을 떼는 자신이 또 얼마나 위선적이고 불가항력적 상황 앞에 무기력하게 여겨졌을까? 아마 치를 떨며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았을까 한다. 게다가 특유의 로맨티시즘까지 가미되었으니 어쩜 그의 투신은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결정론의 견해처럼 애초부터 그렇게 태어나 그런 식으로 삶을 마감하게끔 운명 지어졌던 건 아닐까? 절대자가 유전자에 아로새겨 놓았기에 말이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문득 우리의 고종석이 겹쳐지는 게 아닌가. 혹 [독고준]을 쓰다 자기실현적 예언을 떠올린 건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아니다. 절대 안 된다. 천부당, 만부당. 고종석은 명실상부 내면과 외적 견해가 일치하는 자유의지론자이고 그를, 내심으로 아니 당당히 표명하며, 적극 옹위하는 이들이 즐비한데 분열을 빚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독고준을 비록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다 하더라도 이 점만은 명백히 분리해야 할 것이다.


하여 독고준은 일기를 통해 자신이 거쳐 온 삶의 여로를 돌아보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연유까지 밝힌 셈이니 그의 일기는 평생 동안 기록한 유서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고종석은 독고준의 일기와 딸의 코멘트를 빌어 자신의 정체성을 진단해보고 외부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회적 자아로서의 자기검열을 시도하여 끊임없이 완벽한 고갱이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리라. 결국 [독고준]은 한 망명객의 유서이자 작가 고종석의 자기검열문이었다 하겠다.



a*****7 2010.09.17.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