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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세상이 바뀔까? [마추카]
"언제 세상이 바뀔까? [마추카]" 내용보기
1.칠레의 안드레스 우드 감독이 2004년에 만든 <마추카 Machuca>는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며, 꿈이란 걸 다시 보여주는 영화였다.아옌데가 이끄는 사회주의 정권에서 피노체트를 앞세운 군사 정권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다룬 것이라,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50년대나 60년대를 보여주거나 80년대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칠레의 서울인 산티아고의 1973년은 어땠을까?영화라는 양
"언제 세상이 바뀔까? [마추카]" 내용보기

1.
칠레의 안드레스 우드 감독이 2004년에 만든 <마추카 Machuca>는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며, 꿈이란 걸 다시 보여주는 영화였다.
아옌데가 이끄는 사회주의 정권에서 피노체트를 앞세운 군사 정권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다룬 것이라,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50년대나 60년대를 보여주거나 80년대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칠레의 서울인 산티아고의 1973년은 어땠을까?
영화라는 양탄자를 타고 서른여덟 해 앞서 일어난 일을 구경하러 갔다.
허리띠를 풀어놓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세상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2.
산티아고에서 가장 좋은 '생 파트릭 영어학교'에 다니는 곤살로 인판테(마티아스 퀴어)는
엄마인 마리아 루이사 인판테(아린네 쿠펜헤임)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열한 살의 사내아이다.

배움터 가까이 사는 아이들을 돈 받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한 교장 맥켄로 신부(에르네스토 말브란)의
뜻에 따라 눈동자가 검은 인디언 아이들이 들어온다.
그 가운데 곤살로의 뒷자리에 앉게 되는 사내아이가 페드로 마추카(아리엘 마텔루나)다.

돈 많은 집 아이들이 다니는 으뜸가는 사립학교에
해진 옷을 입고 다니는 페드로 같은 인디언 아이들이 잘 다닐 수 있을까?
잘 사는 집의 어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넘어갈 수 있을까?

3.
영화는 두 갈래를 잘 꼬아서 보여준다.
하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착한 곤살로가 페드로와 사이 좋은 동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곤살로의 피붙이들이 칠레의 정치와 엮여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한 갈래도 제대로 보여주기가 어려운데 두 갈래를 어긋남이 없이 꼬아서 보여주는 감독의 솜씨는 뛰어났다.
인판테 집안을 보면, 아버지 파트리시오 인판테는 돈이 많고 배운 바가 많은 사람이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은 모습이다. 없는 아이들과 같이 배우는 게 잘못일 리 없다는 생각이다.
아내가 암시장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지나치게 사모으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건 사재기잖아..."

그런데 엄마인 마리아는 아버지와 다르다.
"신부님, 사과와 배를 함께 담을 까닭이 없잖아요. 그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달라요..." 하며,
배움터에서 잘 사는 집 아이들과 못 사는 집 아이들이 함께 있는 걸 싫어한다.

마추카 집안은 어떨까?
엄마는 갓난아기까지 키우며 힘들게 살지만,
곤살로와 같이 잘 사는 집 아이도 제 아들 페드로의 동무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배움터에서 잘 사는 집 어버이들이 나무라는 소리에는 따진다.
"농사가 잘못 되거나 하면, 언제나 일이 틀어지면, 모든 게 우리 잘못이었어요. 우리가 뭘 잘못 했나요?"

그런데 페드로의 아버지는 또 다르다. 페드로가 곤살로를 제 동무라고 하자 맞받아 말한다.
"너하고 어떻게 동무할 수 있니? 다섯 해만 지나면 쟤는 대학에 가고 너는 뒷간 청소나 하게 될 거야.
열다섯 해가 지나면 쟤들은 제 어버이의 일터를 물려받을 것이지만 너는 그때도 청소를 할 텐데..."

4.
영화 속에서 곤살로와 페드로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그에 못지 않게 눈길을 끌어가는 건 페드로의 옆집에 사는 또래 계집아이 실바나(마누엘라 마텔리)다.
아버지와 같이 데모하는 데 가서 깃발이나 담배 따위를 팔면서 살아가는데, 당차다.
곤살로의 엄마와 마주쳐서 욕을 먹자 나중에 곤살로한테 말한다.
 "그게 네 엄마니? 그렇다면 네 엄마는 갈보야. 잡년이고, 똥자루야"

곤살로한테 "샌님..." 하며 놀리기도 하지만 핏줄이 다른 곤살로를 슬며시 좋아한다.
그래서 곤살로가 산 연유 깡통을 마시다 입에 넣고는 입맞춤으로 곤살로한테 넘겨준다.
아이들이 입맞춤을 하는데도 남세스럽거나 보기 싫지가 않았다. 아이들다우면서도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배운 바가 짧고 가진 게 모자라는 칠레 사람들한테는 살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걸 보여주었지만,
어른들의 아픔 만큼 아이들한테도 아픔이 드러나는 대목은 조금 안쓰러웠다.
이렇게 얼개를 짜가는 건 감독의 솜씨를 드러내는 것이겠지만.

곤살로한테는 엄마가 그 몫을 해준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피붙이들 두고 떨어져 사는 로베르토(페데리코 루피)와 바람을 피운다.
제 아버지를 두고 다른 사내와 살을 섞는 엄마를 곤살로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로베르토가 준 책 <외로운 방랑자>가 좋은 책이지만 좋다고 내색을 할 수가 없다. 로베르토가 싫기 때문.
몹쓸 엄마다. 다른 사내가 좋으면 혼자 만날 일이지, 어째 아이를 데려가서 구경시킨단 말인가?

페드로한테는 아버지가 그런 몫을 한다.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사는 아내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술값을 달라며 아껴둔 돈을 빼앗아가려고 한다.
참 못난 아버지다. 세상 살기가 힘들고 어려워 술이 없으면 버티기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다른 피붙이를 생각하면 악착같이 벌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실바나에겐 엄마가 아쉽다. 집을 떠나고 없어서다.
왜 떠났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살기가 팍팍해서 그럴 것으로 짐작해본다.

5.
곤살로가 겪는 삶의 굽이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은
자전거를 타고 페드로의 마을에 갔다가 제 집으로 돌아갈 때의 모습이었다.

첫 번째는 무섭다. 페드로의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다. 마을 개들이 짖으며 따라가자 부리나케 달아난다. 두 번째는 기쁘다. 실바나와 연유 때문에 입맞춤을 하고 갈 때는 세상을 다 얻은 양 입가가 찢어진다.
그런데 세 번째는 슬프다. 눈물이 가득하다.
군인들이 판자집에 사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면서 잡아가는 걸 보고 돌아갈 때다. 

데모를 하면서도 편을 갈라보려고 하는 짓 따위는 보기에 씁쓸한 대목이었다.
"빨갱이가 아닌 사람은 깡총 뛰어라~" 아옌데 정권이 싫은 사람들이 외친다.
다른 모임에선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못 사는 이들이 외친다.
"미라가 아닌 사람은 깡총 뛰어라~" 미라는 돈 많고 썩은 사람들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사람답게 사는 건 배움터를 이끌어가는 맥켄로 신부다.
"너희가 누구건, 어떤 집에서 살든, 그런 건 내 눈에 안 들어와...너희들은 서로 존경하면서 살아야 해"
맥켄로 신부한테는 좌니 우니 하는 건 쓸모가 없다. 그냥 사이 좋게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뿐.

잘 사는 집 아이들과 뒤늦게 이 배움터에 온 인디언 아이들이 싸웠을 때, 주먹을 휘두른 이한테 말한다.
"동무를 때린 다음 어떻게 할 거냐? 숨을 못 쉬게 목을 조를 거냐? 그래서 죽으면, 다음에는 뭘 할 건데?
이번에는 잡아먹을 거야?" 곁에서 듣고 있던 곤살로가 실실 웃었지만, 가슴을 찌르는 한 마디였다. 
이렇게 속을 콕 찌르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6.
길 옆 담에 적어놓은 '내전은 없다'는 큰 글씨가, 없다를 빼고 '내전이다'로, 다시 아예 다 지워져 없어진다.
좌와 우가 싸우지 말자는 것에서, 싸우는 쪽으로, 그리곤 이 틈바구니에서 정권이 피노체트 무리한테
넘어가 둘 다 쪽박을 찬 칠레의 모습을 카메라는 잘 담았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 정권은 소련과 가깝고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지내도록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옛날 잘 나가던 사람들과 날마다 다툼이 그치지 않아 나라가 시끄럽다.

이렇게 세상이 떠들썩하면 이를 탓하면서 치고 나오는 무리들이 있다. 바로 군인들이다.
늘 한 줄로만 선 모습을 좋아하고 명령에 죽고 살 뿐이지 더 생각하지 않는 군인들.
이들에겐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다투면서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게 마뜩찮다.

칠레에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육군 총사령관이 아옌데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빼앗았다.
그 뒤로 칠레 사람들은 늑대를 피하려다 범을 만난 꼴로 엄청 애를 먹게 된다. 무려 열일곱 해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좌익과 우익이 제 생각을 외치며 다투던 해방 뒤나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나고 민주당이 잡았을 때의 1960년대 초반,
박정희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고난 1980년의 봄에는 새롭게 뭘 해보겠다고 나라가 떠들썩했다.
그런데 이렇게 시끄러우면 어김없이 이를 싫어하는 무리들이 힘을 앞세워 나타났다.

그게 1961년 5월 16일에 해병대를 앞세워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소장이었고,
1979년 12월 12일 탱크와 공수부대를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킨 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죄없는 백성들한테 총을 퍼붓게 한 전두환과 노태우 소장이었다.
 
이렇게 힘을 앞세워 나라를 잘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이들은 어땠을까?
제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은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제 뜻에 맞지 않으면 누구라도 밖으로 다니지 못하게 하고,
어디서든 끄나풀을 심어놓고 사람들을 몰래 살펴보게 했다.

그래서 배가 고팠던 시절이라 먹고 살게 해줬다거나 물가를 잡고 깡패들을 힘 못쓰게 만들었다며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이 다스리던 때를 좋게 말하는 이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감옥에 보내 콩밥을 단단히 먹였어야 할 사람들이지, 본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닌 까닭이다.
나는 억울한 일을 겪지 않았다고, 내 고픈 배를 채워 주었다고 고마워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나한테는 이 영화가 굽이진 우리나라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칠레나 우리나라가 그런 독재정권을 지나 이제 민주사회로 넘어왔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멀었다고 본다.

영화 속에서 로베르토가 "배움터의 사제들이 빨갱이라던데 맞아?" 하며 곤살로의 엄마한테 물을 때를 보면,
같이 나누고 사는 길을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좌파야" 하며 덤터기부터 씌우려 드는
우리네 돈 많고 많이 배웠다는 이들과 어찌 그리 같은지 놀라웠다.

7.
아이들이 겪는 삶과 어른들이 보여주는 삶을 잘 버무려 만든 덕분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좋았다.
정치를 앞세운 듯하지만 그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어른들의 다른 모습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힘주어 말하지 않고도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는 감독의 눈길이 마음에 든 영화였다.
영화 이름을 <마추카>로 지은 건, 곤살로의 눈에 비친 칠레의 모습을 담았지만, 
곤살로가 '페드로 마추카'와 같이 지낸 때를 그리워하기 때문은 아닐런지...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셋이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실바나는 제 바람을 털어놓는다. "돈을 모으면 나중에 가게를 차릴 거야. 길거리에서 파는 건 지긋지긋해"
그러자 페드로가 말한다. "나는 나중에 맥켄로 신부 같은 이가 될 거야.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거야"
주근깨가 덮힌 얼굴의 곤살로가 뒤를 잇는다. "나도 신부가 되고 싶어"
이들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칠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고 살고 싶은 나라일 테니까.

영화를 만든 지 일곱 해밖에 안 된 것이라 디뷔디는 아주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화면이나 소리도 나쁘진 않지만 그저 그렇고, 덤이라곤 예고편도 없다.
사고 싶어도 나오지 않아 목만 매었던 터라 덥석 사고 말았지만, 13,200원은 비싼 셈이다.

영화를 찍을  돈이 없어 해날에만 찍었으며,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연기로 밥벌이를 한 적이 없는 새내기들로 감독이 일곱 달이나 가르쳐 찍었으니, 깔끔한 화면을 바라는 것이 어쩌면 지나친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영화를 구경할 수 있는 것이나마 복에 겨운 일일 지도 모르겠다.

b******g 2011.08.07. 신고 공감 8 댓글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