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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을 가려면 가까운 곳부터..
"먼곳을 가려면 가까운 곳부터.." 내용보기
퇴계 이황의 ‘보낸 편지함’을 460여년이 지난 시간에 열어봅니다. 물론 시기적으로는 훨씬 앞서 열려 있었지만, 저의 시점으로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성록(自省錄)』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저술로서, 보기에 따라서는 퇴계의 주저(主著)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학문과 인간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원저는 완전 한자로 되어 있는
"먼곳을 가려면 가까운 곳부터.." 내용보기

퇴계 이황의 ‘보낸 편지함’을 460여년이 지난 시간에 열어봅니다.

물론 시기적으로는 훨씬 앞서 열려 있었지만, 저의 시점으로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성록(自省錄)』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저술로서, 보기에 따라서는 퇴계의 주저(主著)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학문과 인간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원저는 완전 한자로 되어 있는 것을 역자가 혼신을 기울여 한글로 역주를 달았습니다.

 

미천한 나의 한자 실력으로 한의학 원서를 읽어보겠다고 덤벼봐서 압니다.

제겐 한자가 영어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영어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이 책은 언뜻 명상록이나 반성문처럼 생각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보다는 오히려 학문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룹니다. 퇴계는 한국 성리학의 태두로서, 이론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는 ‘주리론(主理論)’, ‘이존적(理尊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경(敬)의 철학(哲學)이 특징인 주자학자요, 주리론자입니다.

 

 

저자는 책의 서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자란 인(仁)의 완성을 지향하여 발분노력(發憤勞力)하는 인간상을 말한다. 인(仁)을 완전히 실현한 인간의 극치가 성인(聖人)이다.

공자는 “옛 사람들은 자기를 위한 공부를 하였지만 지금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한다.”고 했습니다.

 

 

공자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거나, 환생하신다면.. 이런,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구나. 하시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나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써넣기 위해서 스펙에 목숨 거는 청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만 들뿐입니다.

 

 

자성록의 서(序)가 짧진 않으나, 그대로 옮겨봅니다.

 

“옛적에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으로 실천함이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이제 벗들과 더불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강구(講究)함에 그 말을 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런 것이니, 스스로 그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다. 하물며 이미 말한 뒤에 상대방은 잊지 않았으나 내가 잊은 것이 있고, 상대방과 내가 모두 잊은 것도 있다. 이는 부끄러운 일일 뿐 아니라, 거의 꺼려할 줄 모르는 것에 가까운 것은 매우 두려워할 만하다.

 

그 동안 옛날 상자를 꺼내 편지의 원고가 남아 있는 것을 찾아서 손으로 베껴 책상 옆에 두고, 때때로 살펴보고 거듭 반성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원고가 없어서 기록하지 못한 것도 그 가운데 있을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모든 편지를 다 기록하여 권(卷)과 질(帙)을 이룬다한들 역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가정(嘉靖)무오(戊午)년(1558) 단오(端午)다음날

퇴계노인(退溪老人)씀

 

 

 

학문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제자 남시보(南時甫, 남언경)에게 답하는 글 중 일상에서 마음관리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무릇 일상생활에서 수작(酬酌, 본래는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뜻이었으나, 말을 주고받거나 사람과의 접촉, 교제 등을 뜻하는 말로 쓰임, 역자 주)을 적게 하고 기욕(嗜慾)을 조절하여 마음을 비우고 한가롭고 즐겁게 지낼 것이며, 그림이나 글씨 또는 화초의 완상(玩賞)이나, 냇가의 물고기와 산의 새를 보는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생각을 즐겁게 하고 뜻에 맞는 것을 항상 접하기를 싫어하지 않아서, 심기(心氣)가 늘 화순(和順)한 상태에 있게 할 것이며 어긋나게 하거나 어지럽힘으로써 원망하거나 성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법(要法)입니다.”

 

 

 

또 다른 제자 정자 중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선 학문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이 학문한 것을 보면, 비록 쉼 없이 노력하며 반성하기를 잠시의 간단(間斷)도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러나 또한 반드시 거듭 쌓는 노력의 과정을 오래도록 하여 푹 잠기어 실컷 음미한 후에야 아는 바와 행하는 바가 저절로 순서에 따라 얻음이 있었습니다.”

 

 

황중거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역시 차근차근하게 학문을 이룰 것을 권유합니다.

 

“대저 유자(儒者)의 학문은 높은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하고, 먼 곳을 가려고하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야합니다. 대저 낮은 데서부터 하고, 가까운 데서부터 하는 것이 본디 우완(迂緩)한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을 버리고 또 어디로부터 말미암아 높고 먼 곳으로 가겠습니까? 힘써서 점점 나아가는 나머지에 이른바 높고 먼 것이 낮고 가까운 것에서 떠나지 않아 얻을 수 있는 것이니, 그리하여 석씨(釋氏)나 노자(老子)의 학문과 다른 것입니다. 이제 발도 들어 올리지 아니하고 갑자기 높은 곳에 오름을 다하도록 책려하고, 출발도 하지 아니하고서 먼 길에 오르기를 지극히 하도록 기약하니, 천하에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기대승에게 보내는 글월엔 명예, 관직과 학문과의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대저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벼슬을 하거나 집에 가만히 있거나 혹은 때를 만나거나 혹은 때를 만나지 못하거나 그 몸을 깨끗이 하여 그 의를 행할 따름이요, 화복(禍福)은 논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일찍이 이상하게도 우리 동방의 선비 가운데 조금이라도 도의(道義)에 뜻을 두고 흠모하는 자는 세상의 환난에 걸리니, 이것은 비록 땅이 협소하고 인심이 각박한 까닭이지만, 또한 그 스스로 하는 것에 미진함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이른바 미진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학문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지나치게 높게 자처하고, 때를 헤아려보지도 않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용감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 실패를 가져오는 길이요, 큰 이름을 지고 큰일을 담당하는 자가 절실히 경계할 일입니다.”

 

무식하면..쓸데없는 일에 용감해지고 목숨까지 걸지요..겁이 없어지지요..

이번에 금배지 다는 사람들이 가슴에 새길 말입니다.

 

50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건만..우리 살아감에 기본으로 갖춰야할 덕목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많은 학식과 경력, 발전 가능성이 하루아침,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퇴계 노인이 사시던 때에 비해 측량할 길 없게 늘어난 것은 유혹입니다. 돈, 섹스, 권력이 난무하는 앞에서 웃고 즐기다가 본인은 물론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크나큰 실망감과 피해를 주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퇴계 선생 이 세상을 내려다보며 한숨만 쉬시겠습니다. 이 자성록 쓰실 무렵에도 건강이 안 좋으셨는데 더 나빠지셨겠습니다.

 

 

P.S :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귀한 책. 우리에게 귀감(龜鑑)이 되는 좋은 글들로 채워져 있는 우리 어르신의 책이 절판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때 바람처럼 스쳐가는 책들과 비교해서 이런 책들이 좀 더 생명력이 길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은 책은 사 보아야 더 좋은 책이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책을 구할 수가 없어서 도서관 대출로 읽었습니다.

 



s******5 2012.04.20. 신고 공감 4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