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말하고 싶은건, 가능하면 두 책(1권과 2권)을 연달아서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회학에 대해서 전공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가능한 어느정도 간격을 두고 보는 것이 좋겠단 판단을 한다. 2권이 함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똑같은 포맷의 글을 24편을 연달아 읽는 것이 아무래도 좀 지루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권에는 약간의 캐리커쳐도 있긴 하지만... 큰 도움은 안된다. 역시 12명에게 던지는 질문 12개가 있는데, 이것마저 1권과 동일하다보니... 하지만, 1권을 읽을때는 왜 이런 질문이 던져지는지 명확하지 않았는데, 2권을 볼때는 조금 감을 잡게되는것이 있었다. 특히 첫번째 질문 "당신은 스스로를 사회이론가나 사회비평가 또는 사회설계가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그저 동시대인으로 생각합니까?" 질문을 받는 학자의 입장에서 이에 대한 구구한 대답들이, 2권에선 좀 재미있게 느껴졌었다. 2권을 1권과 비교해서 보자면, 한마디로 보다 미시적인 접근에 방점을 찍은 연구가의 분석들이 다소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겠지만, 목차에서 깜을 잡을 수 있듯이(??), 상당수가 변화되는 사회에서의 개인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을 법한 이론틀들이 각자가 정의하는 사회의 명칭으로 제시되어 있다. 1권을 관통하는 편집자의 문제의식이 니클라스 루만식의 이론틀이라면, 2권은 막스 베버의 '탈주술화'를 나름대로의 화두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건 편집자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물론 그 탈주술화를 그대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서문의 앞머리에 언급되는 다음과 같은 종말에 대한 주장을 담은 책들 리스트를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최근 들어 종말에 관한 일련의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 '사회민주주의적 세기의 종말'(랄프 다렌도르프), '거대 서사의 종말'(장-프랑수와 료타르), '역사의 종말'(프랜시스 후쿠야마), '현대성의 종말'(지안니 바티모), '확실성의 종말'(지그문트 바우만), '이데올로기의 종말'(다니엘 벨), '노동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계급의 종말'(울리히 벡), 도시의 종말'(알랭 투랜느), '전통의 종말'(앤소니 기든스), '확신성의 종말'(니클라스 루만), '문자시대의 종말'(마셜 맥루한), '교육의 종말'(닐 포스트맨), '조직자본주의의 종말'(스콧 래쉬), '공공생활의 종말'(리처드 세네트), '민주주의의 종말'(장-마리 기엔노), '국민국가의 종말'(오마에 겐이치) 등등..." 참 기가 막힐 지경이다. --;; 2권의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국가의 종말(으~ 또 종말이냐)을 수용하는 관점이 1권의 '사회안전망의 해체의 정당성과 그 대안'의 시각에서 해석되지 않고, 거대 구조의 해체에 따른 넘치는 자유와 자율, 그리고 정보의 홍수와 그에 대한 자발적 - 자본의 그리고 나름대로의 소조직의 - 대응에서 개인들의 좌표설정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접근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체성이 강조된 미시적 접근이라고 말한 것이다. 상당히 도덕주의자인 듯한 에치오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사회를 "첫째,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둘째, 그에 필요한 자원들을 동원하고, 셋째, 그 시민들을 이 과제에 동참하게끔 합니다. 마지막 일은 공동체의 공동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라고 설명한다. 국가의 역할을 어느정도 기대하긴 하지만, 그는 해체된 절대권력의 시대에 공동체를 다시 꿈꾸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개인들의 무의식적 기대가 박제처럼 남아 살아가는데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의 단면을 기든스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예를 들어 저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생태적 재앙이나 핵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서로 논쟁을 하면, 이것은 장기적으로 만성적인 불안을 야기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세계가 자체의 문제를 이미 통제하고 있다고 가정해버립니다." 이런 수동적인 주체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 거시적 사회개혁의 전망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투명해진 사회, 정보의 홍수에 거의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는 사회, 하지만 그것들을 개개인이 소화시키기는 어렵고, 투명이 극단화 되었을때 스스로의 아이덴티티 자체도 투명화되어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기가 어려워진 사회. 아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사회에서 어떠한 총체적인 전복을 꿈꿀수 있단 말인가. 잉글하트는 이런 사회에서 개인들의 가치지향을 물질주의적/탈물질주의적으로 구분하여 통계조사를 수행하였다. "질서의 유지, 국방, 경제의 안정, 인플레이션과 범죄와의 전쟁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기준에 의하면, 물질적 가치들에 높은 우선성을 두고 있습니다. ..... 다른 답변 범주들은 언론의 자유, 직장이나 정부의 결정에서의 발언권 및 더 깨끗한 환경, 그리고 권위, 권력, 돈보다는 평화, 자유, 이념이 더욱 중요시되는 사회를 강조하는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구분에 따라서 보면 1970년과 1971년 우리의 첫 질문조사에서는 물질주의자와 탈물질주의자 간의 비율이 거의 4대 1이었으나, 1988년에는 약 4대 3 정도였습니다." 독일에서 정치적으로 이러한 변화의 경향은 좌우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식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좌파나 우파는 시장을 어떻게 보는지 차이가 있건 없건 국가의 범주에서 개인을 보호/통제하는 사고를 하던 정치이념이었던 것을 상기하면(다소 거칠은 정의이긴 하지만), 역시 개인화되는, 그리고 개인전략과 선택이 중요해지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연구라 하겠다. 스콧 래쉬부터 바티모까지, 후반부의 6명의 사회학자의 시각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들은 이런 판단을 싫어할 지 몰라도) 투명해지고 정보가 넘치고 미디어의 홍수가 있는 다이내믹한 이 사회를 그다지 부정적으로도 그렇다고 긍정적으로도 보고 있지 않다. 다만 거기서 일탈되는 개인들에 대해서는 따뜻한 시선을 보낼 것을 고민할 뿐이다. 미국으로 이민올때 선조가 성을 묻는 질문을 직업을 묻는 것으로 착각해서 희안한 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닐 포스트맨은 인간에 대한 배려를 다음과 같은 말로서 마무리하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사고능력과 판단력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사회에서 더욱 커져가는 무관심에 대해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다수의 인간을 패배자, 즉 기계와의 경쟁에서 진 패배자로 격하시키는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여야 합니다." 좋은 말이지만, 뭐 스스로 전략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그 시각이 주로 개인의 안위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어찌 보면 사회안정망의 위태함을 지적한 1권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2권 역시 신자유주의의 위해에 대한 우회적 지적이 골간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주로 유럽의 학자들에 의해서 논의가 된 이 책에서도, 신자유주의의 제국은 역시나 미국이었다. 리처드 세네트는 "미국사회는 분명히 세 나라들 중에서 가장 유연한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독일, 영국 또는 일본보다도 국가개입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가 '유연하다'라는 말을 쓴다면, 이때는 관료주의적 구조와 관련된 의미입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제도를 가능한 한 유연하도록 조직하는데 가장 힘써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 행위의 정치적 결과에 대해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고려를 안하는 편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 미국은 제국주의 세력이고, 미국의 적응능력은 바로 이러한 제국주의적 지배를 유지하는 열쇠인 것 같습니다." 편의상 국가, 미국의 역할을 좀 더 논의해보자면, 앞에서 언급한대로 개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스러운 투명사회에서, 일군의 세력이 나름대로의 네트워크와 동력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는 것, 그것이 개개인의 삶을 어렵게 하는 주 요인이 되는 것이다. 국가로는 미국제국(네그리와 하트적 의미에서)일 것이고, 사회에서는 첨단 금융자본 일 수 있겠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유연하고도 견고한 자기만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자본은,역시 대단하다. 써놓고 보니까 좀 암울해 지는데, 2권의 분위기는 1권에 비해선 꽤 경쾌한 편이다. 3권이 아직 나오질 않았으니, 연달아서 읽진 않을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