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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서구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정도 될 것 같다. 책은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라는 제목과는 달리 그닥 맑스주의 사상가들의 사상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전개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몇몇 맑스주의자들-그람시, 아도르노, 마르쿠제, 사르트르 그리고 알튀세르 등등등-이 만들어낸 몇가지 독창적인 '개념'을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책은 개개의 사상을 설명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전후 서유럽 맑스주의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이유는 저자도 밝혔듯 자명하다. 즉, 이론가들과 학파사이에 다양한 견해 차이와 적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건 서구 맑스주의의 통일성을 규명할 수 있는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 유산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정리하자면 서구 맑스주의는 따지고보면 유럽좌파의 '패배의 산물'이었다. 1차대전 이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실패, 러시아 혁명의 고립화, 이후 스탈린 치하 소련의 관료주의화에서 서구 맑스주의는 이론과 실천이 완전히 분리된 채 발전되었고 이론의 영역 또한 정작 고전적 맑스주의가 주력해왔던 분과였던 경제학과 정치학은 외면되고(그람시정도가 여기에서 예외가 된다) 맑스 본인조차 그닥 많이 다루지 않았던 철학분야로 그 중심이 이동한다. 아울러 서구 맑스주의자들은 이전의 그들의 선배세대와는 달리 노동자들의 삶과는 유리되어-이는 당시 유럽 좌파정당의 행태에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과거와는 달리 알아먹지 못할 이야기들로 도배(?)를 하고, 이론적 탐구는 상부구조, 그 중에서도 맨 꼭대기라 할만한 미학적 영역에 집중하였으며, 과거의 국제주의적 전통은 외면한 채 협소한 강단에서만 맑스를 언급하게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맑스주의의 '타락'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사변적인 방식으로의 궤도이탈은 유럽의 상황과 맞물려 시종일관 염세주의적 색체를 드러냈고, 이는 따지고보면 애초 서구에서의 맑스주의가 '패배의 산물'로서 발전된 것이기에 어찌보면 당연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애초의 고전적 맑스주의로부터 상당한만큼 궤도이탈을 해버린 서구의 맑스주의가 일종의 보편적 맑스주의로 세계 각국에 수용되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처럼 그 대상적, 지정학적 범위면에서 '협소'했던 서구 맑스주의가 '국제주의'적으로 언급되는 현상을 비롯하여 60년대 서구의 5월 '봉기'의 영향으로 이론과 실천의 괴리가-만족스럽진 않지만-다소 좁혀졌다는 점,(여기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이론과 실천의 간극을 좁히기위해 노력했던 트로츠키가 비로소 '발견'된다.) 정치이론이나 경제학에 관심을 갖는 젊은 맑스주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서구맑스주의가 비로소 청산-즉,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것은 취하여 조금더 나은 맑스주의로 발전한다는 의미에서-되는 과정에 있지 않은가라며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견해를 밝힌다.(여담이다만, 책이 쓰여진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자가 여전히 낙관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을지는 조금 의문스럽다ㅋ) 아울러 저자는 서구 맑스주의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 이후, 책이 다소 오독될 수 있겠다는 노파심 때문인지 '후기'를 덧붙히고 있다. 서구 맑스주의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때문에 저자는 본서를 통해, 이론과 실천의 간극을 줄여야 하며, 혁명이론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뒷받침이 될 때라야 비로소 올바른 것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이는 개혁주의에 빠지지 않은 '혁명적인'대중이 존재할 때, 그와의 연합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언급이 이론과 실천 속에서 또다른 한쪽 편향 즉, '활동가적'으로 읽히기를 바라지는 않음을 저자는 바라고 있다. 즉, 이론과 실천간에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서구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이 전통적인 맑스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서구맑스주의만큼이나 고전적 맑스주의 또한 끊임없이 재평가가 요구된다는 전제하에 대표적으로 맑스와 레닌, 트로츠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아무튼 책은 일반적으로 잘 다뤄지지는 않아왔던 서구 맑스주의의 사상사적 측면을 깔끔하면서도 나름 깊이있게 정리하고 있으며, 맑스주의가 해명해야 할-즉, 서구맑스주의에서건 고전적 맑스주의에서건 해명되지 못한-사안들을 자세하게 나열하고 있다. 맑스주의와 관련하여 아무런 지식이 없으신 분이 읽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기도 하겠거니와,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이 들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닌 듯 싶다. 맑스주의와 관련하여 어느정도 개론적 이해를 가지고 계신 분은 한번쯤 읽어보시면 앞으로의 학습(?)에 괜찮은 방향타가 될 듯 싶고, 그게 아니더라도 맑스주의와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개괄적으로 검토할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을 듯 싶다. 3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놀랍게도 오늘, 우리의 시대에 정합성(?)을 갖고 있는 듯 싶은데, 따지고보면 맑스주의가 양차 세계대전 후 '서구'맑스주의로 귀결되는 과정과 80년대 이후 맑스주의가 '우리'의 맑스주의로 귀결되는 과정이 묘하게 흡사한 면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ps.얼마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본서의 저자인 페리앤더슨과 '상상의 공동체'로 유명한 베네딕트 앤더슨은 형제지간이라고. 뜬금없게도 참 엄한(?) 집안이라는 생각이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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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앤더슨의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는 그저 평범한 맑스주의 이론가들에 대한 입문서 / 개론서로서 생각했었고, 그런 생각으로 가볍게 읽을 책을 찾던 중 찾게 된 책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읽게 되었지만 논의되는 내용들을 접하면서는 그렇게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읽어나갈 수 있기는 하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매우 의미 깊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맑스주의의 시작인 맑스부터 시작해서 68혁명 시기에 활동하던 알튀세르, 사르트르, 프랑크푸르트 학파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맑스주의 이론가들의 논의들을 시기 순으로 살펴보고 있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는 단순히 살펴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논의들이 어떤 역사적 혹은 사회 /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었는지를 그 논의들의 장점과 부족함은 어떤 것인지를 다루는 등 좀 더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저작이다.
아쉽게도 저자는 분량의 한계 혹은 논의의 한계(그 수많은 이론가들의 논의들을 상세하게 다루려면 몇천페이지의 분량이 필요할지도 모르고 그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는 학자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로 인해서 각각의 이론가들의 논의들을 간략하게 다루거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논의들만을 다루고 있고, 그 논의가 갖고 있는 탁월함과 함께 부족한 것은 어떤 것인지를 단순화 / 간략화 시켜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기도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게 각각의 이론가들의 논의들을 정리해주고 있고(난이도를 조절해주고 있고), 그 논의들에서 어떤 점들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구성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설득력 있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맑스의 저작들을 살펴보며 맑스가 어떤 점들게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논의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있고, 맑스의 논의들을 받아들인 1세대 이론가들로 평가하는 이들이 어떻게 맑스의 논의를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고 있다.
그런 이론의 발전과 전개 그리고 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며 저자는 다른 입문서와 개론서 저자들과는 다르게 지리적인 점과 경제적인 조건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처음 맑스의 논의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대부분 동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다는 점과 대부분의 맑스주의 이론가들이 노동자 출신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고, 맑스주의가 항상 중요시 하고 있던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혹은 모색이) 시간이 흐를수록 분리되고 있었고(혹은 되어버렸고), 다시금 그 결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무척 상세하게 논의를 하고 있다.
맑스주의와 관련된 여러 이론가들 대부분을 간단하게나마 /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들의 활동하던 시대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면서 어떤 맥락에서 그들이 그와 같은 논의와 저작들을 발표하게 되었는지도 설명을 해주면서 각각의 이론가들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론가들의 논의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다고 해도 / 이해가 어렵다고 해도 읽어나가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각각의 논의들도 상세하게 검토하기 보다는 조금은 단순화 시켜서 혹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 각각의 이론가들의 논의에 대해서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어려움 없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장점 또한 있었다.
저자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맑스주의자들에 대한 이론들이 갖고 있는 뛰어남과 탁월함 보다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 분석과 결론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를 하게 되기는 어려울지라도 충분히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일정부분은 인정하게 되기도 했으며, 그 문제의식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점들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까다롭고 상세하기 보다는 쉽게 이해시키는 것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저작이기 때문에 입문서와 개론서로서도 괜찮을 것 같고, 맑스주의 이론가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약간은 다른 시각으로서 현재의 맑스주의 이론들에서의 부족한 점들 혹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게 될 것 같다.
마무리로 저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과 부족함을 후기에 말하고 있을 정도로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는 무척 균형감각을 갖고 맑스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각각의 이론들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들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런 균형감각은 쉽게 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한번쯤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
| 이 책은 서구에서 1920년대 초에 일어났던 프롤레타리아 봉기가 패배하고, 동구에서 러시아 혁명이 주변 강국들에 의해 고립된 이후, 서유럽에서 발전해 나온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성격과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여러 학파들의 주요 특징과 각 학파들이 성취한 이론적 혁신에 대해 살펴보면서, 개별 사상가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서구 마르크스 주의'가 갖는 구조적 통일성을 이전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전통과 상호 대조해봄으로써 밝혀내고, 서구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한 역사유물론이 당면해 있는 주요 문제들을 간략히 살펴본다. 번역 무난함. 그러데 책의 분량과 질에 비해서 값이 비싼편.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개괄적 흐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신 분들께는 반드시 소장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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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왜 예전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들을 이제서야 하나씩 잡게 되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 일들은 항상 있는 것들이고 또 많이 있는 것들이다. 아무리 다독을 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들. 장르를 불문하고 말이다. 그리고선, 가끔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내가 이 책을 15년 전에 읽었더라면 내가 바뀌었을까? 그럴 거라고 농반진반으로 이야기 했던 적이 있는데, 내가 굴드의 책을 중고생때 읽었더라면 싫어하던 생물학이더라도 전공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또는 파인만의 책을 읽었더라면 기필코 물리를 하려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패리앤더슨의 책을 읽었더라면, 내가 혹시 경제학을 하거나 철학을 하거나, 아니면 대학때 봤더라도 아예 운동으로 투신하지 않았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려다 말았다. 뭐, 그만큼 임팩트를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이 책을 제대로 일독했더라면, 당시 그토록 모호했던 서구 좌파 이론가들의 계보를 조금은 쉽게 인식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관련된 책들을 선택해 공부를 할 때 우회를 좀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난 그람시고 트로츠키고 프랑크푸르트학파고, 코르쉬나 루카치도 안내서 없이 무작정 잡았었기 때문에... 알튀세는 워낙 주변에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나마 뭔가 징검다리 같은 건 있었던 듯 하지만 말이다... 쩝 또 하나, 이 책은 그처럼 어렵고 모호하기만 하던 서구 좌파의 이론들을 한발 떨어져서 쉽게 맥락을 짚어준다. 영국식 사고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게 보다보니 그들의 모호함이나 관념적 언설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조금은 더 알게 되고, 그 어려움 자체가 오히려 그드르이 한계일 수 있다는 시각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랬었다면... 어려움을 어려움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따라서 서구마르크스주의의 숨겨진 특징은 그것이 [부르주아 정치질서 또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정치적 패배의 산물이라는 데 있다...." "... 놀랍게도 서구마르크스주의 전체를 통털어 한 이론가가 다른 이론가의 저술을 다루는 경우에, 그 이론가의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나 최소한의 분석적 관점에 기초해 평가하거나 일련의 비판을 수행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 이런 흐름에 맞춰 역사유물론을 재해석 하는 작업이 당시에 주류를 이뤘다. 이런 경향은 다름의 세가지 결과를 초래했다. 첫번째, 방법론에 초점을 둔 인식론이 작업의 중심이었다. 두 번째, 이 방법이 실제로 적용된 분야는 미학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분야 이외에서 새롭게 등장한 주요 이론들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부재했던 새로운 주제들 - 대부분 사변적인 방식으로 - 을 발전시키면서 시종일관 염세주의적 색채를 드러냈다. ..." "... 여하튼 마르크스주의가 미국과 영국 - 각각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제국주의적 계급[미국의 부르주아]과 가장 오래된 노동자계급[영국의 노동자계급]이 존재한다 - 을 지배하게 될 때에라야, 비로소 20세기 후반 자본주의 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명확한 것 같다. ..." 이 책은 내가 초등하교 들어가던 해인 1979년에 쓰여졌다 한다. 역시 우리 사회의 비극이겠지만, 이런 서구좌파에 대한 분석이 우리 사회에 전파되는 것이 늦어졌다는 것, 제한적이었다는 것... 그것이 80년대 우리사회 일각을 주도하던 좌파분파의 한계와도 관련이 깊었단 생각이 들고, 특히 그들의 자기성찰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물론 페리 앤더슨이 진리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원전에 대한 강조라 할 때 맑스와 레닌이 짱이고, 트로츠키는..... 뭐 나중에 일부만 신경쓰고, 알튀세의 자본론 읽기가 원전강조라는 슬로건과 연결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별 황당한, 기형적인 왜곡들이 꽤나 많았었다는 것들. 사상의 검열이 무서운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을, 서구좌파에 대한 여러 분석과 함께 정말... 늦게서야 인지된다. 이 책이 편찬된 것이 최근은 물론 아니고, 86년, 87년에도 발간되었었다고 한다. 일부 국내 좌파분파들도 분명 이 책을 여러차례 읽어봤었을 것이다. 근데 왜 균형적이지 못했을까? 이론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해봤자 부질없는 것이리라. 동구는 이미 한참 전에 몰락했고, 서구 좌파 스타이론가들도 대부분 세상을 떴다. 맹렬히 비난받던 제3의 길이란 것도, 어찌보면 오바마류와 같은식으로 오히려 입지를 갖추고 있고, 한계에도 불구하고 높게 평가되는 트로츠키주의는 여전히 그냥 그수준... 남미 좌파들의 강세는 오히려 문제점이 있다는 민족주의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늦었다는 건 정말 늦기만 한 것인지, 국내 좌파 이론가들은 그냥 이것저것 소개하고 도입하고 일부 적용하기만 하는 것인지? 국내만이 아니라 21세기 좌파들은 그런 것인지? 이 책이 말하는 패배주의, 염세주의는 과연 극복되어 있는지, 제한적인 소통은 확대되긴 했는지... 정말 늦었다는 건 진짜로 늦기만 한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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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맑스주의 -페리 앤더슨의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
페리 앤더슨의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이매진, 2003)를 꼼꼼히 읽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서 발원한 맑시즘 본류가 레닌이라는 큰 운하를 거쳐, 루카치, 그람시, 프랑크프루트학파, 사르트르, 알튀세, 델라 볼페 등의 지류와 어떻게 조응하며 흘러갔는지를 찬찬히 살핀다. 지은이는 예의 백과사전식 나열로 보일법한 꼼꼼한 천착을 통해,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변천사를 되짚는다. 이 책은 일견 도도해 보이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물결이, 기실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추구했던 초기 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완만한 이탈의 과정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1920년대를 기점으로 서구 마르크스주의라는 범주를 주조한 이론가들은 그 이 전 세대 맑스주의자들과 상이한 특징을 지닌다. 대부분 부르주아 가정에서 출생했다는 점, 그 이전의 맑스주의자들이 직업적 혁명가이었던 것에 비해, 대학에 적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가 그들이 내놓은 지적 성과물들의 성격을 결정짓는 원인이었다고 앤더슨은 말한다. 예컨대, 지은이가 그람시를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고집한 유일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할 때, 이는 그람시 이론의 탁월함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람시가 유달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직업적 혁명가로 성장한 사례라는 고려도 작용하는 셈이다. 정치경제학을 주된 내용으로 한 초기 맑시즘의 언설이, 사변적인 철학을 중심으로 한 ‘학원 맑시즘’으로 귀결되고 만 서구 마르크스주의 현실을 역사적 조건과 사상적 맥락 속에서 밝혀내고 있는 점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
앤더슨이 책의 말미에 보론의 형식으로 제기한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의 오류나 한계 등은 결과론적인 비판이라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지향을 잘 드러내준다. 이와 함께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풀어야 할 숙제들은 적시한 끝 대목은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인류의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고 믿는 이들에게 현재진행형인 고민들이다. 특히 맑스도 예견하지 못한 민족주의 문제, 레닌이 간과한 노동자들의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 가장 개인적인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트로츠키의 언명 등을 고려할 때, 실로 의미심장하다.
1976년에 출간, 열띤 논쟁을 분만한 이 책이 주는 울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것은, 앤더슨 지적이 비단 서구 마르크스주의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를 기계적으로 도입․적용한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오늘도 앤더슨의 지적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않은 까닭이다. 서구에선 네오 맑시즘을 비롯한 신사회운동의 파고가 높아가던 1980년대, 오히려 정통적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수입된 한국의 현실은, 폭압적 국가권력의 존재와, 자유주의적인 전통의 부재라는 역사적 조건에 대한 고려에도 불구, 서구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본질적으로 맑시즘이 노동자들의 것이 아니라, 지식인을 비롯한 대학생들의 것이었다는 씁쓸한 진단을 내리게 만든다. 노동운동의 성장을 통해, 이념적 도구로 선취된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지식들의 담론 차원에서 소개되고 회자된 한국 마르크스주의는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한국 노동운동이 쇠퇴를 거듭한 90년대 초, 급격한 이념적 폐기처분을 당했다. 어제의 강고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하루아침에 문화주의자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라끄라우와 무페, 알튀세의 관념주의적인 포스트 맑시즘, 라깡과 데리다 들뢰즈 따위의 ‘포스트모던이즘’의 담론이 창궐했으며, 계급을 논하는 것은 이제 유행이 지난 얘기가 되었다. 사회운동의 퇴조기에 문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한국의 경우 이 도래와 폐기가 오로지 지식인들의, 지식인들에 의한, 지식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결국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도래와 급속한 폐기는 동전의 양면이었던 것이다.
총체적 패러다임이 아닌, 하나의 퍼스펙티브로서 맑시즘을 국한하는 데에 선뜻 동의하긴 어려우나, 그렇다고 체제로서의 맑시즘 재림을 논할 사상적, 지적 밑천이 내겐 없다. 실천할 수 있는 부분만큼만 발언해야한다고 믿는 나는, 그런 점에서 아직 소심하다. 내세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는 그 소심함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라고, 그 소심함이 한국 마르크스주의를 더욱 성찰적인 이념으로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나는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