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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는 하루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는 하루키..." 내용보기
그간 하루키의 여행기와 수필은 7,8종류를 읽었고, 소설류는 처음이다. 이 책을 읽고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 태엽감는 새를 읽어봐야지 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이번 단편소설에서 부터 혼란에 빠졌다. 이런 단편소설은 처음 본다. 말도 안되는 것 같으면서도 책을 덮은 후 남는 진한 여운은 도시 무엇인가? 짧은 나의 식견으로는 도무지 이 책에 관한 주관을 형성하기 어려웠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는 하루키..." 내용보기
그간 하루키의 여행기와 수필은 7,8종류를 읽었고, 소설류는 처음이다. 이 책을 읽고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 태엽감는 새를 읽어봐야지 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이번 단편소설에서 부터 혼란에 빠졌다. 이런 단편소설은 처음 본다. 말도 안되는 것 같으면서도 책을 덮은 후 남는 진한 여운은 도시 무엇인가? 짧은 나의 식견으로는 도무지 이 책에 관한 주관을 형성하기 어려웠다. 책 뒷편의 역자의 서평을 읽고서야 작가는 상실된 그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고, 허무주의 감정에 빠져있는 것 같다는 것이 이 글들의 '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곳에 안주하기보다는 낯선 곳을 수개월, 수년간이고 떠나있고 싶어하는, 그리고 그곳에서 고독하게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혼자만의 맥주를 마시는 그의 정형화된 듯한 습성에서 그는 몹시도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주변 사물과 사람을 관찰하고 자신을 대입시켜 보는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일면 그의 리버럴한 세상과의 단절이 꽤나 부럽기도 하기도 하고, 이는 복잡하고 은근한 불안감이 더해지는 현대인들의 허전함을 다독이게 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은 일반적 소설류와는 크게 다르다. 그의 글은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 그만큼 나의 일상은 직장과 가정, 사회의 구조에 모범생으로서 안타까운 한계를 가진 것이겠지.... 이 작품으로 인해, 이제 하루키를 본격적으로 이해할 출발이 시작된 듯하여 다음 작품들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다. 하루키, 그는 참 얄밉도록 삶을 빈정거린다. 그러나 그런 그의 허무를 근간으로한 자유로운 일상이 끌리기만 한다..... 그건, 이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그이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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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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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1983년 作. 중국행 슬로보트에 실린 단편들은 각각 1980~1982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으로, 1983년에 단행본화 되었다.중국행 슬로 보트안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5편은 이미 읽었던 것이고, 마지막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만이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었다.전에 읽었던 단편 소설집의 경우 다른 번역가 분께서 번역을 한 것이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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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3년 作.

중국행 슬로보트에 실린 단편들은 각각 1980~1982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으로, 1983년에 단행본화 되었다.

중국행 슬로 보트안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5편은 이미 읽었던 것이고, 마지막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만이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었다.
전에 읽었던 단편 소설집의 경우 다른 번역가 분께서 번역을 한 것이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새로운 책을 읽는 느낌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하루키의 책은 읽을때 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루키의 책은 표현이나 어휘 자체가 굉장히 독특하고,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표현도 굉장히 디테일하기 때문에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그자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게다가 하루키가 선택한 단어 하나하나를 곰씹어 생각해보면,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중국행 슬로 보트, 오후의 잔디밭, 땅속에 묻힌 그녀의 작은 개같은 경우는 오래전 잃어버렸던 혹은 잃어버릴 것 같은 어떤 대상에 대한 상실감을 이야기한다. 
마치 커다란 공원안에서 나 혼자만이 동떨어져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다. 언어는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꿈은 언젠가 붕괴될 것이다.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생각되었던 저 지루한 청년기가 어느 지점에서인가 사라져버렸던 것처럼 모든 것이 멸망하고 모습이 사라진 뒤에 남는 것은, 아마도 무거운 침묵과 무한한 어둠뿐일 것이다.                        ㅡ 중국행 슬로보트 中 (48p)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는 사실 몇 번을 읽는데도 확실한 감을 잘 못잡겠다. 다만, 지금 현실에서 지극히도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난한 아주머니에 비유한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뉴욕 탄광의 비극은 한 해동안 무려 다섯번의 장레식에 가는 나와 태풍이 오는 날에만 동물원 구경을 가는 내 친구의 이야기이다. 이 단편속에 나오는 인물의 감정은 굉장히 메말라 있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구원을 기다리는 매몰된 탄광에 갇힌 사람들의 처지와 같기 때문이 아닐까.

캥거루 통신은 어떤 한 남자가 불만 편지를 접수한 고객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 남자가 이런 편지를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자아가 확립되지 못한 한 남자가 여자에게 어떤 구원을 바라고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저는 저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나 있습니다. 하나의 개체라는 것, 저는 이 사실이 몹시 불쾌합니다. 저는 홀수를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개인인 당신과 자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둘로 나눠지고, 저도 둘로 나눠져서 네 명이 침대를 함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ㅡ 캥거루 통신 中 (130p)

이 단편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잃은 혹은 잃게 될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스스로가 무얼 원하는지도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들은 구원을 받고 싶어한다. 상실감을 극복하고 고독에서 벗어나 재생의 길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마지막 단편인 시드니의 그린 코스트는 그런 재생이라는 주제와 맞물려 있는 작품이다.
돈이 너무 많아 주체하지 못하는 한 남자가 시드니의 뒷골목에서 사립탐정일을 하고 있다. 그는 양사나이와 양박사의 일을 해결해 주면서 자신이 뭘 원하는 지를 알게 된다. 행복은 언제가 가까이 있다.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 행복을 잡아 주기를 살그머니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y*****5 2009.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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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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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입니다. 결국 단편집까지 넘어오게 되었군요. 정말 처음엔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어쩔 수 없죠 뭐. 팔자려니 해야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만약 하루키 선생께서 노벨 문학상이라도 타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상금의 50%인 5억은 저한테 내놓아야 하는 겁니다. 부디 저의 이런 의지가 하 선생님의 마음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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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입니다. 결국 단편집까지 넘어오게 되었군요. 정말 처음엔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어쩔 수 없죠 뭐. 팔자려니 해야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만약 하루키 선생께서 노벨 문학상이라도 타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상금의 50%인 5억은 저한테 내놓아야 하는 겁니다. 부디 저의 이런 의지가 하 선생님의 마음에까지 전달되었으면 하네요. 아아, 참, 한국의 슈퍼 비토맨에게 5억을 줘야지, 하고 말이지요.

 

      어떤 분들은 하루키 선생님의 장편보다 단편이 더 좋다고 하시던데요. 그 어떤 분들 사이에 껴서 나도! 하고 손을 든 사람 중에 하루키 선생 본인도 있다고 하니, 종종 참 주책인 어른이시다,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만 뭐, 어쨌거나 그렇습니다. 그의 단편집이라고는 이제 꼴랑 한 권 째 읽는 형편인지라 저 역시 어떻다고 전체적인 느낌을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다만 이 소설집에 대해서만 말씀드리자면

      뭐, 쩝.

      이 정도가 감상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중국행 슬로보트

      작중 화자가 세 명의 중국인을 만난 이야기를 하 선생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 단편이고요, 평소 하 선생님이 프로이트를 애정해 마지않는다는 것은 조금 알고 있었으나 이 작품에서는 아주 대놓고 패러디를 하셨더랬습니다. 그 왜, 프로이트 선생님의 저서 중에 <정신 분석 강의>라는 책에 나오는 강의 중에 <실수 행위들>이란 챕터가 있거든요. 언어를 비롯한 행동의 오류들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정신 분석학적으로 풀이한 것인데 이 작품에서 그를 기초로한 일화가 소개 되네요. 프로이트의 실수 행위 이야기는 사실, 저 역시 일을 하면서 참으로 많이 느끼며 공감하는 부분이라서 유독 기억에 남았던 것인데 하 선생님도 아마 그러셨던가 봅니다.

 

      2.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상징적으로 표현된 작품입니다. 하 선생님의 기호에 대한 집착과 이름 따윈 난 몰라, 등의 신념이 이 작품에서도 집요하게 나타납니다. 재미요? 그건 그저 그렇습니다.

 

      3. 뉴욕 탄광의 비극

      이라고 해서 정말 뉴욕 탄광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이 역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소설입니다. 아주 짧고요, 찌질한 화자가 등장하는데 하 선생님의 작품에는 은근히 찌질한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생각에서는 하 선생님의 젊은 시절이 좀 찌질했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나'라는 인물의 원형이 어쩐지 하 선생님의 실제적인 페르소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4. 캥거루 통신

      재미있는 제목만큼이나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내용까지 재미있진 않습니다. 한 남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단편인데요, 역시 뭔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는 있지만 이쯤에선 솔직히 생각하기가 쫌 귀찮아졌습니다.

 

      5.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역시 하 선생님의 실제적인 페르소나일 것 같은 '나'가 등장하고요 이 캐릭터 또한 예외없이 친구들하고 잘 못 어울리고 저기 멀리 외따로 떨어진 곳에 홀로 앉아 점심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분위기의 젊은이랍니다. 그러면서 뭐랄까, 스스로 남과 다르게 나만의 정직한 어떤 삶을 노력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는 하 선생님 특유의 변명 스토리류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희들의 이런 찌질한 면을 나는 도저히 참아 줄 수 없기 때문에 너희들과 어울리지 않는 거다, 하는 하 선생님 특유의 내가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니들을 왕따 시키는 거야, 철학이 담긴 단편이라지요.

 

      6. 땅속에 묻힌 그녀의 작은 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실린 일곱 편중에 이 작품이 제일 나았던 것 같습니다. 하 선생님 특유의 마치 나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듯한 느낌의 나른한 작품입니다.

 

      7.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

      일곱 편중에 가장 익살스러운 소설이고요, 양 박사와 양 사나이가 등장합니다. 물론 장편에서의 양 사나이와 양 박사는 아니고요. 우물도 등장하네요. 우물이 일본어로 이도라고 한다던데 그래서 이것이 프로이트의 이드를 상징하는 거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양은 대체 뭐야? 일본어로 양이 뭐지?

 

      하 선생님의 단편집은 일본에서 발표된 것 대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게 아니라 어떤 책은 이것저것 유명한 단편만 모아 편집해서 출간한 것도 있기 때문에 제목을 좀 기억해두려고 각 편마다 나누어 리뷰를 적은 것인데 아우, 간만에 이 짓을 하려니 못해 먹겠습니다. 어쨌거나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건데요, 별 넷도 좀 많은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솔직히 하 선생님의 문장 읽는 맛을 빼면 그다지 재미있다고는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어서 말이죠. 어쨌거나 축구 땜시 이 정도 하겠습니다. 마음이 급하네.

 

http://blog.naver.com/vitojung 



b******k 2010.06.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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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어야 하는 바로 그 자리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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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거리, 그 풍경은 왠지 내 마음을 몹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연중행사처럼 빠져드는 저 단골손님, 탁한 커피 젤리같은 정신의 희뿌연 어둠이 다시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지저분한 건물, 이름없는 사람들의 물결,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 마음대로 달릴 수 없는 자동차들의 행렬, 잿빛 하늘, 공간을 꽉 메운 광고판, 욕망과 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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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거리, 그 풍경은 왠지 내 마음을 몹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연중행사처럼 빠져드는 저 단골손님, 탁한 커피 젤리같은

정신의 희뿌연 어둠이 다시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지저분한 건물, 이름없는 사람들의 물결,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 마음대로 달릴 수 없는 자동차들의 행렬, 잿빛 하늘, 공간을 꽉 메운 광고판, 욕망과 체념과 분노와 흥분.

거기에는 무수하게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고, 무수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수하면서도 동시에 제로였다. 우리들은 그것을 전부 취했음에도, 그러나 우리들 손에 남아 있는 것은 제로였다.

- 중국행 슬로 보트 본문 중에서

 

*

도시생활에 염증이 나는 그런 순간,

나는 지금 여기에 있지만 여기는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

우리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나는 여기에 있지만 이 자리는 그저 자리일 뿐이며 그 누구로 대체되어도 상관없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허망함.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절망감.

그러나 무서운 것은 그런 불안은 내가 서있는 자리,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하철 안에서든, 직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책상 하나이든,

친구들 사이에서 술을 주고 받는 술자리 한켠에서든, 심지어 가정에서나 사랑에서 조차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가 나를 배신할 때 나 역시 가뿐하게 그 자리를 내팽개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직책이 아니라 내 돈이 아니라

진정 나이기에 사랑받고, 사랑하며, 일하고 환영받는가.

누가 확실히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텅빈 자연은 그 침목은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깨우치게 만들지만

가득찬 문명은 언제나 자신을 지우고 자신의 존재를 숨죽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대체될 수 없는 나의 자리를 고집하기 이전에,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우치기 위해서.

가끔은 번잡한 도시가 아니라 텅 빈 자연 속으로 자신 속으로 침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어떤 수식도 필요없이 그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기 위해서.

- 다락방서 허뭄

g*****6 2010.03.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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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실망스러운 무라카미행 슬로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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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읽어본 무라카미의 소설 상실의 시대라는 타이틀이 너무나도 크고, 동양인으로써는 전무하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기 때문인지 단편모음집인 이책은 정말 그저그런 책이였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대단한 책이구나 하고 감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구절이라던가, 분위기가 있었는데 단편이라는 취약점 때문인지, 혹은 장편으로 구사되던 그의 소설만의 분위기 때문
"조금은 실망스러운 무라카미행 슬로보트" 내용보기
오랫만에 읽어본 무라카미의 소설 상실의 시대라는 타이틀이 너무나도 크고, 동양인으로써는 전무하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기 때문인지 단편모음집인 이책은 정말 그저그런 책이였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대단한 책이구나 하고 감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구절이라던가, 분위기가 있었는데 단편이라는 취약점 때문인지, 혹은 장편으로 구사되던 그의 소설만의 분위기 때문인지 정말 그저그랬다. 책의 제목이기도한 중국행 슬로보트라는 단편과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땅속에 묻힌 그녀의 작은 개,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 정도가 가장 괜찮았다. 물론 무난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만의 묘사와 단어배합이 가장 잘 드러났다고할까. 항상 주인공은 남자이고, 두가지(여기서 두가지란 남과여 두개의 성개체를 말한다) 관점에서 서술하지 못하는것은 내가 좋아하는 에쿠니 가오리의 서술방식과 비교되서일까, 아님 남성중심적인( 결코 우월적인건 아니지만, 여자의 입장에서는 기분나쁜 구절이 꽤나 나온다) 문체 때문인지 지루하고 고지식하고 그저 그랬다. 특별한 감동도없이, 이렇다할 특징도없이 무덤하게 읽은책. 비교할만큼은 안되지만, 밀란쿤테라의 향수라는 책을 곧바로 후에 읽어서인지 조금 비교도된다. 아기자기함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정말 실망스러웠던 단편집-
d******a 2004.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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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초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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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단편소설을 모은 것이다. 어제 심심해서 서가를 거닐다가 일본 문학 코너에서 '중국행 슬로보트'란 제목이 붙은 다른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뭔가 해서 살펴봤더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흠모한 한 젊은 작가의 '트리뷰트판' 패러디 소설이었다. 작가로서 큰 영광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하루키 칸을 가봤더니 책의 권수가 '앙상하게' 줄어있었다. 방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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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단편소설을 모은 것이다.

어제 심심해서 서가를 거닐다가 일본 문학 코너에서 '중국행 슬로보트'란 제목이 붙은 다른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뭔가 해서 살펴봤더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흠모한 한 젊은 작가의

'트리뷰트판' 패러디 소설이었다.

작가로서 큰 영광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하루키 칸을 가봤더니 책의 권수가 '앙상하게' 줄어있었다.

방학인가 싶더라, 

그 칸의 책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서 '아, 시험시즌인가' 알게 되는데

 

7편이 실려있다.

다 저마다의 독특한 착상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루키 작품들이 대체로 '이야기'가 있다기 보다는

사소설 형식으로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는 일인칭 독백체 문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심정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나 또한 나만의 아이디어를 그처럼 써내려갈 수 있는 필력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같이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가난한 숙모 이야기'

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은 듯 싶다.

k*****k 2008.12.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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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읽으면 하루키처럼 쓰고 싶다...
"하루키를 읽으면 하루키처럼 쓰고 싶다..." 내용보기
하루키의 책을 꽤 읽은 것 같은데 단편집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하루키를 읽다보면 왠지 말려들고 있어, 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래전 김수경은(여자였고 열음사던가 미래사의 사장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아니면 말고) 그의 소설 『자유죵』에서 읽고 있으면 쓰고 싶고 쓰고 있으면 읽고 싶다, 라고 말했는데, 하루키야말로 읽고 있으면 자꾸자꾸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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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책을 꽤 읽은 것 같은데 단편집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하루키를 읽다보면 왠지 말려들고 있어, 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래전 김수경은(여자였고 열음사던가 미래사의 사장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아니면 말고) 그의 소설 『자유죵』에서 읽고 있으면 쓰고 싶고 쓰고 있으면 읽고 싶다, 라고 말했는데, 하루키야말로 읽고 있으면 자꾸자꾸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이다. 그의 모든 면모를 아끼고 사랑하지는 않지만 이 부분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키는 하루키를 읽는 동안 하루키처럼 쓰고 싶게 만드는 작가이다. 게다가 이 단편집은 그가 초기3부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둘러싼 모험』)을 쓰고 난 후, “내 몸속의 파워를 어딘가에 밀봉해 두고 싶다. 납상자 같은데 가두어 놓고, 그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걸 보면서 문장을 쓰고 싶다.”라는 의도를 가지고 쓴 소설집이란다. 그러니 보고 있으면 쓰고 싶어질 수밖에... 실린 단편들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중국행 슬로보트」. 내가 만난 중국 사람의 역사. 첫 번째는 시험을 치렀던 중국인 초등학교에서 시험 감독을 맡았던 중국인 선생님, 두 번째는 대학교 2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났던 중국인 소녀, 세 번째는 중국인을 상대로 한 외판일을 하고 있던 고등학교 동창... “...우리들은 아무 데나 갈 수 있고, 동시에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어떤 오류들은 역설의 욕망에서 발생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역설의 욕망은 때때로 숙명이 되고 만다.(추상적인 소설에 추상적인 해석이지만 뭐, 내게는 그렇게 이해됐을 따름...)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 “그녀에게는 이름이 없다. 단지 가난한 아주머니, 그뿐이다.” 정체는 분명한데 존재감은 전혀 없는, 가난한 아주머니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어느날 나의 등에 가난한 아주머니가 올라탄다. “...내 등에 달라붙어 있는 것은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 가난한 아주머니가 아니고, 보는 사람의 심상에 다라서 각각 모습이 달라지는 일종의 정기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가난한 아주머니는 실재하는 가난한 아주머니는 아니다. 불현듯 떠올라 내 등에 철썩 달라붙어 버리는 어떤 것(소설가의 소재이든, 직장인의 기획안이든, 주부의 불륜이든, 소녀의 첫사랑이든)의 총칭이다. 하루키는 그것이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것이 서운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난한 아주머니는 탄생한다. 탄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등에 올라탄다. 하지만 불현듯 사라진다. 살펴보면 우리의 삶은 가난한 아주머니들의 등장과 퇴장으로 가득하다. 우리들 삶의 이면엔 그래서 가난한 아주머니들의 삶이 도사리고 있다. 「뉴욕 탄광의 비극」. “...입가에는 여름날의 저녁 무렵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런 미소가 어디 있담? 이라는 불만보다는 정말 그런 미소가 있을 것 같다, 라는 상상이 앞서는 그의 표현들이 맘에 든다. 지리멸렬한 생의 갑갑함,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태풍전야의 동물원 찾기. 그리고 마지막 장면... 탄광에 갇힌 광부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낢은 공기가 얼마 안 되니 가급적 숨을 쉬지 않는 것이라는 진리... 하지만 이미 그의 친구들은 오래전 생을 마감한 뒤이다. 탄광의 비극과 일상의 비극의 부조리한 중첩... 「캥거루 통신」. 백화점 상품관리과 직원인 내가 캥커루 울타리 앞에서 깨달은 ‘커다란 불완전함’이라는 계시. “커다란 불완전함이란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당신은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당연히 물으시겠죠. 커다란 불완전함이란 쉽게 말하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결과적으로 용서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캥거루를 용서하고, 캥거루가 당신을 용서하고, 당신이 저를 용서한다 -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녹음된 편지글을 이용한 삶의 불완전한 순환과 완성에 대한 고찰...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꽤 나른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나태한 것은 아닌 삶의 한 순간에 대한 포착... 젊은 시절 잔디를 깎는 나에 대한 기억은 어딘지 허술해보이지만 또 어딘지 완벽해 보인다. 실린 소설들 중 가장 훌륭해 보인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기억이란 소설과 비슷하다. 혹은 소설이란 기억과 비슷하다.” 라는 문장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한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말 그럴까? 왜곡이란 측면에서는 그럴 법도 하다. 내 스스로 기억의 왜곡을 많이 경험했다. 그것은 기록으로도 제어되지 않는다. 그래서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닌 기억들에서 비롯된 왜곡은 다른 이들로부터 지적을 받고 수정을 요구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설은? 소설을 쓰는 일도 이와 가깝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된다.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닌 기억들에 의지하여 쓴 소설들은(그것이 허구라는 면죄부를 당당하게 내보이고는 있지만) 지적을 받고 수정을 요구받는다. 둘은 비슷해 보인다. 「땅속에 묻힌 그녀의 작은 개」. 비수기의 리조트에서 난 ‘물건을 받는 데 익숙한’ 그녀, 보기드문 ‘위대한 재능’을 가진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그녀가 키웠던 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팔년동안 키우던 개가 죽은 후 그 개를 정원에 묻으면서 자신의 예금통장까지 함께묻었던 그녀... 하지만 그로부터 일년 후 필요에 의해 다시금 예금통장을 꺼내야 했던 그녀... 그녀는 그 이후 예금통장을 꺼냈던 자신의 오른손에서 풍기는 냄새에 철저하게 사로잡혀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난 그녀의 오른손에서 비누냄새를 맡을 뿐이다. 트라우마는 일본 작가들이 특히 잘 이용하는 분야이다. 그들이 어째서 이토록 트라우마에 집착하는지 연구해볼 일이다.(물론 내가 할 일은 아니다...^^)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 ‘최신식 항공모함을 제트전투기 오십대까지 껴서 살 수 있는’ 정도의 재산을 물려받은 젊은 나는 그러나 별볼일 없는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란 곳에 탐정 사무실을 연다. ‘사립탐정. 싸게 사건을 맡습니다. 단 재미있는 사건에 한합니다.’ 라는 모토를 내건 사무실에 일다운 일이 들어왔다. 양 박사가 자신의 귀를 찢어서 훔쳐갔으며 그 귀를 되찾고 싶다는 양 사나이의 주문...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내가 자주가는 피자집의 웨이트레스인 찰리의 도움으로 양 박사를 찾고, 찰리의 도움으로 양 박사가 실은 양 사나이가 되고 싶은 것이라는(프로이트적인 해석) 사실을 밝혀 내고, 곧바로 찰리의 피자집 냉동고에 감추어져 있던 양 사나이의 귀를(비록 타바소크 소스가 묻어있기는 했지만) 되찾은 것... 조금은 난감하지만 그럭저럭 동화스러운 중편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4.12.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