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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리뷰한 <테이큰 3>에서 밀스 씨(리암 니슨 扮)을 돕는 현직 고참 경찰로 포레스트 휘태커가 나왔는데, 이 배역의 역할도 사실 극중에서 참 설득력 없게 찍혀 나온 편이었다. '따뜻한 베이글을 들고 온 걸로 봐서 부인을 죽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 도망가느라 난리만 안 쳤어도 수고가 덜했을 텐데.' 저 3편에 대해 악평이 나온 것도 이런 무슨 장난치는 것도 아닌 무책임한 마무리가 크게 한몫했던 편이다. 그런 판단이 섰다면 현장 급습이나 이후 검거 과정에서 그런 메시지가 용의자에게 전달 잘 될 만한 책임자다운 배려가 있어야 했고, 밀스씨가 아니라면 최소한 관객들에 대해서라도 일찌감치 적당한 복선이 베풀어졌어야 했다. 밀스 씨를 꼼짝못할 도망자(예전 해리슨 포드의 스릴러를 떠올려도 됨)로 세팅하기 위해, 일단 한 컨셉에 무식하게 몰빵하고 나머지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고 보자는 식의, 제작진의 무뇌 상태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금 리뷰하는 이 영화에서 포레스트 휘태커가 또 경찰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내가 지난 11월 초에 쓴 리뷰(<이디오크러시>)에서 잠시 언급했는데, 당시 나는 상영관에서 관람했고 매체들이 일러 준 가이드라인에 따라 별 생각없이 감상을 마쳤으나, 지금 다시 보니 꼭 그런 틀에 맞춰 볼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내용은,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말인데다 여자들한테 환심을 사려고 온갖 무모한, 뒷감당 못할 쓰레기 같은 사기극을 이어가는 자칭 PR 가이 '스튜'가, 느닷 정신병자 한 놈한테 찍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겪는 기막힌 인질극을 다뤘다. 주연은 '무능, 우유부단, 여자들한테 잘보이고는 싶으나 무책임한 성향' 따위의 코드를 언제나 한 몸에 품은 콜린 패럴이 맡았다.
영화 처음에는 '대도시에서 업무에 바쁜 누구에게도 폰 부스는 의존해야 할 작은 시설이겠으나, 최근에는 이동전화가 신분의 과시 수단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는 등, 제작 당시의 시대상을 잘 드러내는 신기한 멘트가 깔린다. 영화는 끝에서, '전화란, 누가 걸었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받고는 봐야 하는 이상한 녀석이다' 같은 멘트로 막이 내려진다. 영화든 문학이든 그 해석의 자유가 관객에게 주어진다고는 하나, 시대상이 바뀌고 나면 아예 모든 해석의 여지가 막힐 만큼 작품이 옹색해져 다가오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포일러)
심각한 스릴러로 구태여 성격을 한정하자면, 마지막 키퍼 서덜랜드의 출연과 대사는, 최소한 그 대사만큼은, 스튜의 환각으로 보는 게 마땅하다. 모든 불성실한 남편, 얕은 속임수로 순진한 여성들을 후리려 드는 불량한 녀석들을 응징하러 이 '콜러'가 도시를 누볐다는 설명이라면, 현실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러닝 타임 내내 영화가 취한 극사실주의 스타일과 어긋남) 애꿎은 피자 배달부가 죽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물론 배달한다고 여자가 없으라는 법도 없고, 그 여자한테 고마워하며 충실해야 한다는 법도 없긴 하므로, 이 배달부 역시 스튜와 같은 이유로 놈에게 걸려들었는지도 모르며, 일타쌍피의 놀라운 수완이라며 적극적 해석도 가능하다).
만약 목소리와 수수께끼의 협객이 모두 실체가 있었다면(배우 키퍼 서덜랜드의 개성 때문에 여기에 대해 의심을 안 하는 것 같음), 이건 불성실한 모든 남자들에 대해 가면을 쓴 협객이 의적질을 하고 다닌다는 소린데, 그렇다면 극은 스릴러가 아니라 코미디(바람피우다 죽을 수도 있다는 강한 교훈을 담은)로 받아들여야 한다.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모두를 향해 고해성사를 하고, 눈물 콧물 다 쏟으며 부인에게 싹싹 빌기까지 했으니, 어지간한 부정을 저지른 상대라 해도 오히려 용서를 못 해 주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위의 두 결론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상식이겠는데, 이 영화가 실패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명작은 어느 쪽으로 새겨도 울림이 깊고, 졸작은 어떻게 봐도 뭔가 어색한 구석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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