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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빠서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는 줄거리가 어떻게 끝이 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총싸움 영화나 전쟁 영화를 골라 보기도 한다. 앞뒤가 헝클어져있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영화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게 편하기 때문.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헨리 킹 감독이 1949년에 만든 <정오의 출격 Twelve O'Clock High>이다. 잉글랜드에 자리잡은 미국 공군 기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흑백 영화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일들은 제2차 세계대전때의 일이라 끝마무리는 짐작과 다르지 않다.
2. 1942년 가을, 아치베리 공군기지에 있던 미국 공군 918 폭격부대는 날마다 도이칠란트를 폭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윗사람들은 밤에 높이 날면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건 잘 맞지 않는다며 낮에 낮게 날면서 폭탄을 떨어뜨리라고 시킨다. 부대장인 키이스 대령(폴 스튜어트)은 "2,700미터로 폭격기를 모는 건 우리 보고 죽으라는 소리"라며, 공군사령관의 보좌관인 프랭크 새비지 준장(그레고리 펙)을 찾아서 사령관한테 말 좀 잘 해달라고 한다.
팻 프리차드 공군사령관은 어림도 없다.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낮에 딱 맞게 폭격을 해야 해" 키이스 대령을 나무라며, 오히려 보좌관인 프랭크 새비지 준장을 그 자리에 앉히려 한다. "싸움터에서 구차한 감정에 얽매이는 사람은 지휘관으로서 맞지 않아. 자네가 918 부대를 맡아 주게."
3. 키이스 대령은 작전에서 잘못한 아랫사람을 내치지 않는 사람이다. "완벽한 작전은 없어...쇠로 만든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미친듯이 일을 하면 탈이나...그는 운이 나빴어" 아랫사람들을 제 몸처럼 아끼는 사람이라 아랫사람들은 잘 따르지만 윗사람들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에 견주면 새비지 준장은 아랫사람들을 그냥 봐주지 않는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 사람이면 두려움이 있겠지만,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날마다 폭격을 하느라 힘들겠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해내야 해..."
먼저 부대원들을 다 잡는다. 부대 정문부터 장교들이 쉬는 곳인 클럽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는 누구든 내치고, 잘 하는 이는 끌어올린다. 계급을 떨어뜨리거나 높인다.
키이스 대령 때와는 아주 다르게 부대를 이끌자, 새로 맞은 부대장이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은 이에 맞선다. 먼저 조종사들이 일을 못 하겠다며 모두 다른 부대로 보내달라며 버텼다. 폭격기를 몰고 갈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일이라, 새비지 준장도 답답해진다.
4. 폭격부대를 보여주는 영화이므로 비행기로 폭격하는 모습이 많이 나올 듯하지만, 오히려 군인들끼리 왜 싸우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를 더 많이 보여주는 영화였다.
폭격하는 모습으로는 본디 제2차 세계대전 때 찍은 미국과 도이칠란트 공군이 싸우던 모습을 넣어놓았다. 영화와 실제 모습을 엮어 놓은 것이어서 볼만 하지만, 잠깐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곤 하지만 새비지 준장이 한 일 가운데 지나친 대목도 더러 보인다. 제 자리를 벗어나 술을 마셨다며 게이틀리 대령을 헌병한테 잡아오라고 한 다음 소령으로 낮추거나, 웃통을 벗어던지고 있었다며 맥킨리 중사를 일병으로 낮추는 일이나, 잘 할 것으로 생각해서 콥 소령을 대령으로 바로 올리는 일 따위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부대장이라고 해서 군대에서 계급장을 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사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잘잘못을 가린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폭격하러 나갈 때는 새비지 준장부터 먼저 나선다. 별 하나를 달고 전폭기를 타고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나 앞장 서서 일을 한다. 그렇지만 부대장이 나서서 될 일은 아닌 듯하다. 아랫사람들이야 앞장을 선 부대장을 따라 무슨 일이든 같이 나서겠지만, 부대를 이끌고 가야 할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전폭기를 탈 수 없는 이들도 나중에 모르게 타고 하늘을 날았다는 건 있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냥 꾸며낸 이야기로서는 훈훈하게 와닿는 모습이지만.
5. 이 영화는 미국 해군이나 공군에서 리더십을 다룬 강의에 쓰인다고 한다. 새비지 준장과 키이스 대령의 서로 다른 리더십을 견줘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이다.
자부심을 심어주면서 원칙을 세워가고 앞장을 서는 새비지 준장도 본받을 만 하지만, 나로서는 새비지 준장이 키이스 대령보다 낫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영화에선 키이스 대령이 있을 때 부대원들이 군기가 빠져있다고 보여주고 있으나, 아랫사람들을 내 몸같이 생각하면서 아끼는 지휘관을 둔 부대가 그렇게 보일 리가 없을 듯해서다. 새비지 준장도 나중에는 키이스 대령과 비슷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새비지 준장 노릇의 그레고리 펙이 돋보이지만, 내 눈에는 부대장의 부관으로 나온 스토발 소령(딘 재거)이 더 들어왔다. 변호사를 하다 군대에 들어왔는데, 다리를 다쳐 이젠 비행기를 몰 수가 없는 이다. 싸움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생긴 탓에 술을 마시고 오자, 새비지 준장이 묻는다. "술 마셨나?" "네, 스무 해만에 처음 마신 거지만, 또 마시게 될 것 같군요..."
조종사들이 다른 부대로 못 가게 열흘만 어떻게 버텨달라는 새비지 준장의 말에 꾀를 낸다. "훌륭한 변호사는 일을 맡긴 이의 말을 믿죠...일을 꼼꼼하게 하면 됩니다. 중대에서 올라오는 서류를 다시 돌려보내고, 우리 쪽에서도 몇 번 고치게 하면 열흘은 지나갑니다..."
6. 영화는 1949년 이젠 풀들이 마구 자라난 비행장 활주로를 보면서 제대를 한 스토발 소령이 옛날 그 비행장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비롯된다.
영화 이름은 본디 "열두 시 방향 위쪽에 적기 나타남"을 뜻하지만, <정오의 출격>도 괜찮은 듯하다. 처음 영화 이름을 봤을 때는 하늘에서 전투기들이 싸움을 많이 하지 않을까 해서 보고 싶었다. 영화에서 전투기들이 싸우는 모습은 조금 밖에 나오지 않아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땅에서 같은 편끼리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는지,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따지는 게 좋았다. "나하고 한 번도 같이 싸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다 왜 우리는 폭탄을 퍼부어야만 할까요?"
그런데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 무리들한테 바로 퍼붓는 것도 아니며, 폭격으로 사람이 죽거나 다친 모습이 같이 나왔다면 그런 폭격을 잘 했다고 마음 놓고 봤을까? 어릴 때는 전쟁 영화를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우리 편만 찾았지만, 이제는 다른 생각이 자꾸만 든다.
만든 지 예순두 해나 지난 영화라 그런지 디뷔디 화면은 깨끗하지 못하다. 가운데 줄이 나올 때도 있고... 덤으로는 예고편조차 없다. 그저 이런 영화를 구경할 수 있는 것만도 고맙게 여기라는 뜻인지...
우리말로 옮긴 것도 좋지는 않다. 918 부대 이름을 연대와 사단으로 같이 나타내 헷갈리게 하고, 폭격기가 날아가는 높이도 킬로미터로 나타내고 있다. 5,400과 2,700킬로미터로 나타내고 있으나 우주선도 아니므로 내 생각에는 미터로 보인다.
내가 살 때는 7,500원이었는데 8,800원에 팔고 있으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예스24에는 이 디뷔디 말고 2,900원 하는 디뷔디가 있다. 8,800원 하는 거나 알맹이는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만든 곳만 다를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