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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3대세습이 한창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에서는 혹시 떠내려올지도 모르는 난민들을 대비하기 위해 급하게 비밀스런 국가대책을 세우고 있을 뿐 아니라 따로 예비수용소를 마련한다고 한다. 사실상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경제적 난민들은 당연히 수용대상이지만 혹시 난민을 가장한 정치범들이 숨어들까 우려한 탓이다. 나랑 별 상관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덜컥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여느 날처럼 등교를 했는데 뭔가 모르게 떠들썩한 기운이 학교와 세상을 감쌌던 적 있었다. 그날의 기운은 평소의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무거움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어린 아이들이 교실에 놓인 TV를 켜고 멀뚱멀뚱한 눈망울로 쳐다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아주 중요하다는 듯 빨간 글씨로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김일성 사망'. 어렸지만 김일성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다. 세상이 떠들썩한 이유까지는 몰랐지만 북한이 달라질 수도 있을 거란 기대는 한 것 같다. 이후로 내가 스물 여덟 살이 될 때까지 북한은 한결 같았고 앞으로도 한결 같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지금 세상은 온몸으로 소리친다. 코드블루를 넘어 코드블랙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유명하지만 누구나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는 20세기에 일어난 최고의 사건 '홀로코스트'를 다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제까진 한낱 평범한 신분이던 이들이 그날의 사건을 기준으로 '가해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연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다. 이름하여 '101 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 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 유대인 학살 전문가가 되어갔는지를 통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선으로 '홀로코스트'를 들여다본다. 역사 속에서 꼼짝없이 학살자라는 이름으로 남았지만 그들을 단순히 악마적 존재로 규정하는 시도로는 아무 것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날 상부로부터 거역할 수 없거나 거역하지 못하는 엄청난 명령을 받았고,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시행하면서 온갖 몹쓸 일들을 체험하고 또 자신을 파괴하면서 그날을 살아냈던 또다른 의미로의 희생자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명백하게 가해자인 이들이 이제와서 그들 또한 피해자일 수 있다고 설득하는 책이 쉽사리 손에 잡히진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은 '홀로코스트'를 가엾은 이들에게 닥친 떼죽음이라는 평가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다른 이의 눈으로 새로운 사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특이하다.
학살 명령을 받은 이들 중 몇몇은 공개적으로 거부하기도 하고 은밀하게 회피하기도 하며 현실을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 힘썼다. 하지만 있어야 할 일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으며 자의로든 타의로든 한 번 발을 들여놓은 다음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듯 자신의 행위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힘든 시간과 싸워야 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유대인 모자를 죽이려 할 때는 망설이는 누군가를 대신해 좀 더 적응이 빠른 인간이 일단 엄마를 쏴 죽인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타당성을 갖지 못해 덜덜 떨던 사람은 남은 아이는 엄마가 없기 때문에 혼자서는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 죽여서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괜찮다고 자신을 안심시키며 일을 저지르는 거다. 모든 것은 이런 매커니즘이다. 사람이 반드시 타당성을 획득하며 살 수 없고 타당성을 가져야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이들에게 작은 타당성은 살아서 일을 수행하는 힘이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부대에 대한 최초의 심층 연구라고 밝혀진 이 책은 쉽사리 '용서'나 '이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지 않다. 아니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다만 '홀로코스트'를 오래 연구한 학자로서 다른 편에 서서 어떤 이들의 관점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101 예비경찰대대'가 어떤 식으로 임무를 수행했는지,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고민이나 집단의 광기가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는지, 긴 시간 학살에 가담한 이들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변해갔는지, 스스로 갇혀버린 굴레에서 그들 또한 정신적으로 얼마나 핍박받고 고통스러워 했는지를 담담히 서술하는 저자는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이해'를 말한다. '이해'가 모든 것의 시작점이라고 말한다. 가해자들이 유대인들을 어떻게 학살하고 어떻게 자신을 타당화해갔는지를 보자면 이 모든 것이 끔찍할 정도다. 리얼하게 묘사된 학살 장면들은 실제 죽고 죽이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 이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되먹지 못한 이유로 죽어갔는지, 과연 학살은 누구를 위한 거였는지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로봇처럼 윰직이며 학살을 가능하게 만들었는지는 충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더불어 '홀로코스트'를 단지 욕심 많은 놈이 광기로 똘똘뭉쳐 행사한 권력의 일종이라고 정의하는 대신, 진짜 '홀로코스트'는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정확히 판단하고 저마다의 기준을 세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주 많은 사람에겐 용서가 되지 않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에겐 이미 지나간 일에 불과한 일이다. 이제 다시 한 번 논점이 될 필요가 있겠다. 특히 내겐 독약 같았다. 상당 부분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이렇게 완전히 반대 입장에서 먼저 접근한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쉽게 읽히진 않는 책이 분명하지만 바로 그 점이 매력적인 것도 무시할 수 없어서 오랜만에 묵직한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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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망각이 습관인 동물이다. 요즘 일본이 심상치 않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고작 두 세대만에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잊은 모양이다. 헌법을 개정해서 재무장을 추구하려는 일본의 속내도 복잡하긴 할 테다. 무엇보다 일본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커버린 중국의 군사력이 두렵다. 이러한 동북아 정세 변화에 한국도 잘 대처해야 할 터인데, 윗사람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어쨌든, 책 이야기나 해보자.
101 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
저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은 대량학살, 홀로코스트 연구 권위자다. 이 책 『아주 평범한 사람들』로 홀로코스트 분야 전국 유대인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 제목만으로는 책이 어떤 내용을 담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스릴러 분위기가 나는 표지를 봤을 때, 처음에 드미트리는 이 책이 소설인지 알았다. 부제를 보고서야 어떤 책인지 대충 감이 왔다. 그렇다. '101 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이 책은 홀로코스트를 다룬다.
홀로코스트 전반을 다루지는 않고, '101 예비경찰대대(이하 101대)'가 저지르거나 가담한 학살을 다룬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유대인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저질렀다. 첫째, 사살이다. 둘째 이송이다. 1942년 7월부터 1943년 11월까지 101대는 3만 8천 명을 사살했고 4만 5천 명을을 이송했다. '이송' 작전은 유대인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정해진 지역으로 보내는 업무였다. 이렇게 보내진 유대인 대부분은 희생됐고, 희생되리라는 점을 알았다는 점에서 101대는 학살에 직적접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101대는 적어도 8만 명 이상의 학설에 관여했다.
계몽주의의 후예이며, 발전한 문명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던 유럽인에게 홀로코스트는 마주하기 싫은 문제다. 히틀러라는 인물은 학살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히틀러라는 존재로 히틀러가 아니면서 학살에 동조했던 사람들은 위안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후 행해진 밀그램의 실험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밀그램의 실험은 조직에서 권위가 갖는 힘을 증명했다. 설령 행위자가 행위를 부당하다 인식하더라도, 상부로부터의 명령이라면 따른다는 게 밀그램이 실험으로부터 얻어낸 결론이다.
책 제목인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밀그램의 실험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브라우닝이 강조하듯, 꼭 밀그램이 얻어낸 결론으로 101대의 학살을 설명할 수는 없다. 밀그램은 권위를 강조했지만 101대에서 학살을 추동한 힘은 권위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권위보다는 동조로 설명 가능한 부분이 많고, 이밖에도 세뇌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평범한 사람들 VS 평범한 독일인들
101대가 저지른 학살의 주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브라우닝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지만, 101대의 존재가 흥미롭다는 점은 확실하다. '예비경찰대대'라는 말에서 보듯, 이들은 군인이 아니다. 잘 훈련된 정예군인은 더더욱 아니다. 주로 예비역인 중년 남성으로 구성됐으며, 나치즘에 경도된 친위대나 보안대와는 별 관계가 없는 부대다. 히틀러에게 특별히 열광하지도 않았던 시대에 태어났고, 상대적으로 나치즘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원래 이들은 후방에서 치안 유지를 위해 창설된 부대였다. 그런데 전시 상황에 급박해지고, 어쩌다 보니 유대인 학살을 담당하게 된다. 첫 학살에서 대대장이 대원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대원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으나, 고작 12명이 그에 응답했다. 즉, 고작 2.4%만이 학살을 거부한 것이다. 그마저도 학살 경험이 전무했던 부대원 대다수가 한두번의 학살을 경험하면서 주어진 작전을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책의 2/3는 저자의 주관을 최대한 배제한 채, 101대가 어떻게 학살 전문 부대로 거듭났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장면 장면이 모두 소름끼치도록 잔인했으나, 최악인 것은 루블린 구역에서 이뤄진 유대인 사냥이었다. 대대적인 학살이 없을 때는, 게토로부터 도망친 유대인을 숲을 누비면서 건건으로 사냥했다고 한다.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말이다. 이렇게 '사냥'으로 희생된 유대인이 천 명 정도라고 하지만, 대략적인 수치고 훨씬 많을 수도 있다.
나머지 1/3은 해설이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학살자로 변할 수 있는지를 분석한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브라우닝은 결론을 유보한다. 학살을 추동한 원동력을 모두 나열한 뒤, 앞으로도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 브라우닝과 대비되는 학자가 골드하겐이다.
골드하겐은 브라우닝의 이러한 입장이 자칫 학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가 될 수 있다며, 101대의 학살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는 반유대주의가 결정적인 원인이라 말한다. 골드하겐은 학살은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 게 아니라 '평범한 독일인'이 저질렀다고 밝힌다. 이에 대한 브라우닝의 반박은 후기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되는데,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전율이 일 정도로 멋있었다. 이런 게 바로 책 읽는 즐거움이지. 아래 글을 보라. 정말 소름 끼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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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하겐의 책 전체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오류는 바로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반유대주의가 19세기 독일에서 강한 이념적 흐름의 하나였다는 그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반유대주의가 나치 시대 이전 독일 시민계층의 정신세계를 전반적으로 지배했다는 그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반유대주의가 1933년까지 독일 우익의 "상식"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전 독일 사회가 유대인 문제에서 히틀러와 한마음이었으며, 세계관, 당 강령, 선전문구 등에 들어 있는 반유대주의의 핵심 가치가 독일 문화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나는 반유대주의 -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확산, 유대인의 비인격화, 유대인에 대한 증오 - 가 1942년 학살자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어 있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반유대주의를 "이미 존재했던" 그리고 "오래 축적되었던", 그래서 히틀러는 이것이 "분출"하도록 단지 "작동"시키만 하면 되었던 것으로 파악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평범한 독일인들", 그들은 우리(미국인)와는 다른 민족이며, 분명 인종 학살의 집행자가 되도록 부추기는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평범한 독일인들"이 왜 기회가 주어지자마자 그토록 열렬하게 유대인들을 학살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는 결정론적인 오류가 숨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그들 나름대로 고유한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서양, 기독교 그리고 계몽추구적 전톧 안에 있던 문화에서 성장한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이처럼 인류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인종 학살을 흔쾌히 집행하게 한 특수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334-335쪽) ---
브라우닝의 반박은 몇 가지로 이뤄진다. 첫째, 골드하겐이 가리킨 반유대주의는 '몰살추구적 반유대주의'인데, 반유대주의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했고 '몰살추구적' 경향은 소수였다. 둘째, 소련 포로 사례처럼 비유대인을 향한 학살은 정권 차원에서 자제를 추구했음에도 계속 되었다. 즉, 전쟁 당시에는 유대인 학살 외에도 다양한 민족을 향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심지어 독일인 중 장애인도 그 대상이었다. 셋째, 전쟁 당시 독일인에 협조한 비독일인도 개인이든 정권 차원이든 잔학성 면에서는 우열을 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첫째, 둘째, 셋째는 편의상 드미트리가 붙인 것이다. 논의는 훨씬 복잡하다) 무엇보다도 브라우닝은 골드하겐이 다른 학자를 향해 자료를 취사선택했다고 비판하지만, 그도 결론을 미리 세워놓고 근거를 끌어모으는 견강부회 모습을 보인다고 말한다. 특히 골드하겐은 브라우닝을 겨냥하여 사회심리학적 접근이 몰역사적이라고 비난했다.
이상과 같이 골드하겐은 그냥 내지르고 보는 스타일인 것 같지만 아직 골드하겐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으므로 이 부분은 패스. 역자에 따르면, 학자가 되려면 브라우닝처럼 스타가 되려면 골드하겐처럼 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니, 브라우닝의 반박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명분 막론하고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
어쨌든 드미트리는 사회심리학적인 접근을 중시하면서도 다른 접근에도 열려 있는 브라우닝 논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골드하겐의 논지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학살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르완다 내전, 스리랑카 내전, 멀리 찾지 않아도 한국전쟁 때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까지. 브라우닝이 좀 더 골드하겐보다 유리하다.
학살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학살은 전쟁 상황에서 흔히 벌어진다는 점이다. 전쟁은 타자를 향한 증오를 최대한 부추기고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폭력 수단을 총동원하여 상대방을 궤멸시키려 한다. 이미 전쟁까지 벌어진 상황이라면, 시민 사회가 견제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그러니 그 이전에 전쟁을 막아야 한다. 어떻게? 호전적인 정권을 시민 손으로는 절대 뽑지 않아야겠고, 겉으로는 공략을 그럴싸하게 내세우지만 극우 성향의 지지층을 많이 가진 정당은 기피해야겠지. 그러고 보니, 전쟁 이전에도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네. 고작 4,5년마다 한 번씩 하는 투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니. 게다가 선택지도 보수양당밖에 없다. 슬프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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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흉악범 또는 연쇄살인범을 잡고 보니 내 이웃집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술 더 떠 그는 평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충격이 크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2. 이를 두고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묻고 따지는 것은 진부한 느낌도 든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되돌아본다. 결코 편치 않은 스토리다. 독일인들로선 영원히 감추고 싶은 이야기. 더 이상 거론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유대인은 물론 다른 민족에게도 잊기엔 너무 깊은 상처와 고통이다. 3. 궁극적으로 홀로코스트는 아주 기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개별 인간들이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인간들을 다수 살해했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 살인자’가 되어갔다. 4. 이 책의 지은이는 1945년 나치 정권이 패망한 후 학계가 히틀러와 바이마르 민주주의의 몰락, 나치의 집권과 나치 독재의 성격 그리고 나치의 외교정책과 침략전쟁에 집중해서 연구가 진행된 점을 주목한다. 5. 특히 나치 문서에 “최종해결”로 표기된 유럽 유대인 학살 프로그램은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에서 “반인도주의적 범죄”라는 네 번째 항목이 기소장에 일부 주목을 받긴 했지만, 이후 학계에서 비교적 등한시 되었다고 한다. 6. “최종해결”에서 극에 달한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와 인종박해가 히틀러와 나치즘 이해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견해는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그리 논의가 되지 않았다. 7. 지은이는 나치 정권의 최 일선 집행자들이었던 한 학살부대에 대해 최초로 심층적인 사례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학살 메커니즘의 최고위층이나 중간 명령권자 단계뿐 아니라 마지막 단계의 집행자. 즉 현장에서 학살을 수행했던 학살 집행자의 단계를 경험적으로 살펴보게 한다. 8. 홀로코스트에 대한 것은 여러 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실제 학살 집행자들의 증언을 통해 그 상황을 보는 것은 더욱 편치 못하다. 101 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이 다른 전형적인 학살부대들처럼 임무를 위해 신중한 선발과 강도 높은 훈련을 받지는 않았어도 학살자가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9. 권위에 대한 복종, 그리고 동료집단의 행동에 참가해야 한다는 동조(同調)의 압박감이 책의 이곳저곳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 과정 중에 대원들 행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대다수 인간의 경우 주어진 조건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사회심리학적으로 예측이 가능하지만 각 개인은 여전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 선택의 방향이 어떠냐가 관건이다. 10. 지은이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은 1944년생이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역사 교수이다. 대량학살, 홀로코스트, 독일 현대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되었으며 한국어판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11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사회 하층 계급의 평범한 중년 남성들로 구성된 나치의 한 예비경찰부대가 수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또한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한 사례를 심층 연구한 이 책은 라울 힐베르크의 선구적 업적인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의 뒤를 잇는 홀로코스트 연구의 또 다른 기념비적 저서로 평가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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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에 의해 약 1천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인 홀로코스트. 특히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유태인의 2/3 가 사망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학살의 책임자와 희생자들이 아니라 학살을 수행한 당사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학살을 목적으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아니라 평범한 사회적 이력을 가진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에 관해서 연구를 한것으로 의미를 가진다. 101예비경찰대대는 가장 덜 나치화된 지역인 함부르크 출신이었으며, 다수는 정치문화적으로 반나치 정서를 갖고있던 사회계급 출신이었으므로 정치적,인종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처음의 사살명령이 있었을때 이를 집행한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리고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겪었다. 그러나 학살이 진행될수록 이들은 무디어 졌고,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에 점차 적응되었다. 특이한 점은 사살 면제 요청을 할수있는 상황에서도 대부분은 사살에 참여를 했다. 희생자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 보다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동료들 눈에 비칠 자신의 위치에 대한 관심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사살면제 요청을 할수 없는 상황에서는 "선택의 고통"이 없으므로 더욱 죄의식 없이 집행할수 있었고, 나중에는 '끔찍하게 불안한 기다림의 고통'없이 신속하게 사살되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인간적 연민의 표현으로 여겨질만큼 효과적이고 무감각하고 잔인한 학살집행자로 변해갔다. '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자들에 대한 높은 복종심, 잠재적으로는 살인까지도 불사할 섬뜩한 복종심은 권위에 대한 믿음과 역할순응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의 위계질서나 조직된 사회활동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생존경쟁에서 유리하므로 사람들은 권위자의 관점이나 상황이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들이 일단 권위자의 이념을 받아들이면 권위가 내면화 되어 감시하지 않아도 "자발적 복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료집단에 대한 동조' 또다른 요소로는 대열에서 이탈하는것, 즉 공개적으로 비동조 행위를 보였을때, 자신의 의무를 다른 동료들에게 전가했다는 비난 및 동료들로부터 고립될 위험때문에 차라리 총을 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쉬웠던 것이다 집단에서의 "충성심,의무감,규율정신"은 희생자의 입장보다 우위에 서는, 개인의 신념에 의한 판단보다 확고한 도덕규범이 되었고,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다른 사람을 살해하도록 유도될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을 학살자로 만든것은 이데올로기나 신념이 아니라 구조와 상황 즉,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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