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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ssed. On and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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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이라면 이 영화 기억하는 이가 많을 텐데, 일단 유언(이완) 맥그리거가 나오고, 항상 우리으 가스믈 찌~잉하게 만드는, 다름아닌 폐광촌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실제 세계에서의 폐광촌 관련 인사들께는 죄송하지만, 영화의 배경이나 인물로 등장하는 그들은 예사로 잘 만든 작품 속이 아니고서야 지독한 클리셰에 가깝다. 심지어 당사자들이 보아도 별 공감을 못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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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이라면 이 영화 기억하는 이가 많을 텐데, 일단 유언(이완) 맥그리거가 나오고, 항상 우리으 가스믈 찌~잉하게 만드는, 다름아닌 폐광촌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실제 세계에서의 폐광촌 관련 인사들께는 죄송하지만, 영화의 배경이나 인물로 등장하는 그들은 예사로 잘 만든 작품 속이 아니고서야 지독한 클리셰에 가깝다. 심지어 당사자들이 보아도 별 공감을 못 느끼는 경우까지 있으니). 이때쯤 이제 신자유주의란 단어가 슬슬 대중화되기 시작해서, 마거릿 대처에서 실비오 베롤루스코니까지 죽죽 이어지는 그 트렌드가 소위 '타도의 대상으로 관념화'하였으니, 감독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영화는 의식화의  '순한' 텍스트북으로 널리 활용되어, '꽈방'의 이 구석, 세미나실의 저 구석에서 살뜰히 돌려지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

근데 뭐 꼭 그렇게 공리주의적 시선, 혹은 贊이든 反이든 경향적, 작품외적 잣대를 마냥 들이댈 건 아니라서, 이 영화의 잔잔한 내러티브와 흥겨운 (말그대로)브라스뺀드의 관(현)악, 아름다운 화면, 여자애들이 무척 좋아라했던 맥그리거 특유의 착한 연기와 얼굴 등등의 요소가 이리저리 버무려지는 와중, 그냥 그 자체로 깔끔한 가작으로 라이브러리에 챙겨 둬도 좋은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광부들에게 악몽처럼 따라붙는 직업병으로 진폐증이 있다는 건 잘 아는 사실이다. 영화 전체를 통해 흥미로운 상징으로 잘 세팅되었다 싶은 게 바로 이 점인데, 암울한 압제적 현실을 극복하고 타파하려는 시도를, 바로 또 내면으로부터의 힘찬 내지름을 필수 요소로 하는1) 관악기의 연주에 빗대어 큰 얼개를 짠 점이 신선하고, 결과에 나타나듯 매우 유효하다. 게다가 다들 잘 알고 있듯, 제목 자체가 바로 중의법 레토릭이라 내용과 외관이 이중삼중으로 앙상블을 이루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 여자주인공보다 더 주의깊게 봐야 할 사람은 바로 악단장 역의 피트 포슬스웨이트이다.


어떤 사람이건 얼굴에 약간의 그늘은 있다. 10대 청소년이라고 해도 공부 걱정, 이성 친구 걱정, 기타 등등 나름의 걱정은 있게 마련이라 천진하고 맑은 얼굴에도 약간의 찌듦은 그 흔적을 남긴다. 요새 우리가 동안이니 뭐니 지겹게 타령을 읊는 것도, '그 나이를 먹도록 얼마나 고생을 않고 살았느냐'의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 아닌가 싶은데, 내가 전에 읽은 기사 중 하나는 '자식 장가를 보내는데 맞선 자리에 가면 자신의 너무도 주름지고 늙은 얼굴 때문에 부모 상견 자리에서 매번 혼담이 깨어진다'는 것. 인상이 그러니 얼마나 모진 일을 하고 살았을까 하는 선입견을 주는 바람에 자식 앞길까지 망친다는 소린데, 읽으면서 참 기가 찼던 기억이 있다. 나는 링컨이 남겼다는 그 말이 미국보다 정작 한국에서 더 확실한 말빨이 서는 금언이라, 이를 되새길 때마다 신기해하곤 한다(사실 그는 키만 컸다 뿐이지 국가대표격 추남이었다).



그런데말이다. 음,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 피트 포슬스웨이트. 이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고뇌와 짐을 자신이 도맡아 지기하도 한 듯,

마치 '그린 마일'에서 존 커피가 이런저런 병자들의 병원체를 메디슨 맨으로 제 한몸에 다 흡수하는 그 모습처럼,

이 사람의 이런 그늘, 저 사람의 저런 상처를, 넓어 봤댔자 몇 뼘인 자기 한 얼굴에 고스란히 다 담다시피한 그런 페이스를 하고 있다. 유한한 공간에 저런 많은 피처가 다 수용되는 건 물리법칙 위배가 아닌가 싶게, 정말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할 만큼 온갖 세파와 오뇌의 흔적을 딱히 별 수고도 없이 모조리 깡그리 표현하고 있다. 배우는 보통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오로지 고통과 비참의 표정만 특화하여 천 가지를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그 천 가지 찌듦이 한 순간에 다 표현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 하기보다, 그냥 '헉!'하는 물리적 불쾌와 충격만 선사하고 끝나버리기도 한다.

이 사람은 1996년 '쥬라기 공원2'에서 사냥꾼으로 잠시 나왔었고, 2006년인가 오멘 리메이크(역시 나오지 말았어야 할 기획)에서 그 신부 역을 맡기도 했었는데, 뭐 아주, 저주받은 예언자 역으로 제격 중에 제격이었다. 다만, 우리가 즐기는 건 예컨대 광인스러운 연기이지, 실제 광인이 스크린에 출연하면 그걸 두고 미학적 쾌감을 느끼지는 않는 법인데, 이 사람의 연기는 그게 과연 연기인지, 실제 간난의 연속인 자기 삶을 재연드라마식으로 퍼폼하는 건지가 간혹 분간이 안 될 때가 있구, 그게 특히 표정연기에서 그러하다.


아무튼 이 사람이 실제 영국 본토 정극무대에서 어느 정도의 완성도로 평론가와 관객에 인정 받던 능력자였나 하는 건 둘째 문제이고, 평균적인 층이 스크린에서 보고 즐기기에는 뭔가 그 연기와... 얼굴 면에서....부담이 상당히 따른다는 점 다시 지적하고 싶다. 각설, 여하간 인생은 잘 살고 볼 일이어서, 그 x 같은 상판이나 무식한 행동거지로 인해 주위에서 배척 받고, 늙은 나이에 왕따 신세로 오직 블로그에서 (그나마 잘 되지도 않는)벗을 구하는 그런 처량한 신세는 극력 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가 맹종한다는 죽은 전직 대통령도 아마 그 x같은 꼬락서니를 보고 무덤 안에서 돌아눕지 싶다.


1) 예전 현미 등의 남편으로 유명했던 색소폰 주자, 작곡가 이봉조씨도 호흡기 관련 질병으로 일찍 타계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s****o 2012.02.0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