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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에 읽은 하루키의 단편집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런 느낌이었는지... 거장이란 말이, 이제 조금 나에게 와닿는다. "당신의 머릿 속 어딘가에는 치명적인 사각지대가 있다!" 라는 홍보문구를 읽고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집은 정말 사각지대,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책이란 느낌이 한 편 한 편 읽을때마다 계속 들었으니까.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결코 저의는 가볍지 않고, 무척이나 쿨한 느낌 일색인 주인공들 때문에 하루키만의 색깔은 여전하다.
미친듯 밀려온 공복감에 아내와 함께 예전에 빵가게를 습격했던 경험을 맥도날드로 바꿔 재현한 <빵가게 재습격>, 갑자기 사라진 코끼리와 사육사에 관한 이야기 <코끼리의 소멸>, 여동생이 사귄 남자로 인해 오랜 시간 사이좋았던 오누이가 삐걱거리는 이야기 <패밀리 어페어>, 헤어진 쌍둥이 자매를 우연히 잡지 속에서 발견하고 그녀들이 없는 세계를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는 번역가의 이야기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일주일간의 일기를 몰아서 쓰는 남자가 맞이한 오후의 바람과 변함없는 세상의 모습, 여자친구에 관한 짧은 기록 <로마제국의 붕괴 1881년의 인디언 봉기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그리고 강풍세계> , 마지막으로 <태업감는 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까지. 주인공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비사회적인 느낌이 강하고 독자적인지. 그건 외로움이나 고독과는 다르다. 그들이 사회와 사람들을 왕따시키고 있다? 는 느낌이 더 강한 듯.
과격하거나 큰 갈등이 아니라 집착에 가깝거나 너무 작은 이야기들이어서 어쩌면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와타나베 노보루'의 정체에 관해 궁금해졌다가 다시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가를 반복하는 동안 왠지 하루키의 단편들은 참 많은 사람들이 창고처럼 온갖 것들을 처박아두고 다시 꺼냈을 때 이게 쓸모가 있을까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들을 잘 잡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했다가 때론 정말 현재에 쓸모가 있거나, 쓰레기통행...것도 아니면 언젠간 다시 찾게 되겠지, 하고 도로 넣어둔다. 그리곤 툭, 툭 손을 털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느낌이 매력적이어서 하루키의 단편들은 시간이 지나도 일상속에서 번쩍이며 떠오르곤 한다. 너무 큰 의미를 두거나 깨달음을 찾으려는 순간 하루키 단편의 매력은 사라지고 만다. 그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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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상실의 시대> <1Q84> 밖에 읽지 못했다. <1Q84>가 마음에 들어 무슨 책을 읽어볼까 기다리던 차에, 문학동네에서 하루키 단편집 3종 세트가 나와 무척 반가웠다. 3권 가운데 <빵가게 재습격>을 먼저 집어 들었던 것은 표지도 독특하거니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하루키의 독특한 단편들이 펼쳐졌다. 하루키 3종 세트 가운데서 가장 재기발랄하고 독특하고 재미난 소설들이었다. 하루키의 독특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고, 다른 단편집으로의 여행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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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다.
하루키는 장편소설이 더 낫다, 단편소설이 더 낫다, 고 나로 말하자면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해변의 카프카'와 '상실의 시대'와 '1Q84'로 라인업잡히는 장편소설은 의심할 바 없다. 단편소설은? '빵가게 재습격'이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조금은 생뚱맞아 보일수도 있겠다.
그건 곧 낭만이며,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렸던 하루키의 감수성이다.
너무나 평범해진, 일상적인 삶에서 꿈꾸는 환상이라는 것,
하루키상, 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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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6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새로 나온 개정판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 같다.) 형이상학적인 이야기가 없기에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나마 마지막 이야기인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야할까? 이야기가 이해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여자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은 후,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문체, 문장 등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쓰면서 읽었다. 특별히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지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 원래 글을 잘 쓰는 작가니까. 뭐 이정도면 하루키 소설 읽을만 하네,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소설이다. 누구라도 좋지만 아무나여서는 곤란한 것이다. (p.141) 상실한 뭔가에 대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것을 상실한 날짜가 아니라 상실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은 날짜뿐이다. (p.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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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작가 때문이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였으니 말이다. '상실의 시대'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최근에 1Q84를 통해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낸 작가. 사실 나는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는 않았다. 읽어본 거라곤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어둠의 저편' 정도이니 말이다. 가장 최근작이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1Q84의 경우는 구입을 해놓았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지는 않았다. 일부로 그런것은 아닌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지금껏 이러고 있다. 그러던 중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Q84도 아직인데 이 책을 접해도 될까 싶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얇아보였기에 책장에서 제법 묶혀있는 1Q84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먼저보고 싶었다.
사실 나는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단편이 그러한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동안 만나보았던 단편들중 상당수는 내용이 좀 부실해보였고, 뭔가 좀 밋밋한거 같았다. 찌개에 무언가 양념이 하나 빠진 맛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던거 같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단편은 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은 하루키의 단편은 처음이기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또 하루키는 뭔가 다르겠지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과연 그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 만나보기로 했다.
이 책에는 제목이기도 한 '빵가게 재습격'을 비롯해서 6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빵가게 재습격은 제목 그대로다. 주인공이 빵가게를 재습격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예전에 배고픔을 참지 못해 친구와 빵가게를 털었던 이야기를 우연찮게 아내에게 하게되고 새벽에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잠에서 깬 아내는 다시 한번 빵가게를 습격하자고 하는 것이다. 과거 사건으로 인해 걸린 저주를 푸는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결국 빵가게는 찾지 못하고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습격해오는 것이다. 내가 이해력이 나빠서 그런건지 작가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한건지 모르겠다. 뭔가 좀 이상하다. 허무하기도 하고 꼭 쓰다만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다른 단편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책을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는데 내가 뭘본건가 싶다. 미처 내가 깨닫지 못한게 있는지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봐야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하루키의 방식이어서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다. '당신의 머릿속 어딘가에 치명적인 사각지대가 있다!' 이 책의 뒤 표지에 나와있는 문구인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말 내 머릿속도 그런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언가 결론을 내릴수 없는 그런 책인거 같다. 어찌보면 이것이 가장 하루키 다운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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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무척 인기를 얻고 있는 무라카미 선생의 단편집입니다. (작가마다 어울리는 호칭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미야베 미유키는 미미 여사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무라카미 선생으로 부르니 색다르군요 ^.^) 일본문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분들이라면 확실히, 이 작가는 무시할 수 없죠. 교원 임용고시에서도 한자로 이 작가의 이름을 쓰라는 문제가 나올 정도로 일본 현대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상실의 시대]를 접한 이후, 그 기묘한 분위기에 매혹당했답니다. 맨 처음 읽은 작품이라 그런지 저는 아직도 [상실의 시대]를 가장 좋아해요. 요즘 출간된 [1Q84]도 평이 좋던데 어쩐지 아까운 마음에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집 역시 한 마디로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에요.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모든 이야기가 간단한 듯 하면서도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그런 소설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어디서 무엇을 보고 상상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묘사도 재미있고 푹 빠지게 되는 다채로움을 자랑합니다. 무라카미 선생의 작품은 (무라카미 선생 뿐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작품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적용해서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저는 그런 쪽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작품의 분위기에 푹 빠지는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문학작품을 읽는 데 꼭 정해진 틀 안에서 해석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수능시험도 아니고.
앞서 다채로움을 자랑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소재와 분위기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작품 안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주제는 아마도 '상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표제작인 <빵가게 재습격>에서 주인공은 과거 동료와 빵가게를 습격한 적이 있습니다. 큰 가게를 덮칠 필요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굶주림만을 채워줄 만큼의 빵만 훔쳤던 그들의 관계는, 그 일이 있는 후 단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틀어지게 되죠. 옛날 빵가게를 습격했을 때 주인은 그들에게 바그너의 음악을 다 들어줄 것을 부탁했었고, 주인공은 그것이 어떤 저주가 되어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굶주림을, 어쩌면 그 때보다 더한 공복감을 주인공은 지금 아내와 다시 겪고 있는 겁니다. 아내는 이제 자신이 주인공의 파트너가 되었으니 그 저주에 자신도 걸렸다면서 그 저주를 풀 유일한 방법은 다시 한 번 빵가게를 습격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주인공의 '빵가게 재습격'은 시작되는 거죠.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상실감과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주인공은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언가가 변해가고 바뀌어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을 다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정하지 않았지만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 것에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공복감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해요. 제가 예전에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그랬거든요. 무엇이든 양껏, 한국에 있을 때 먹던 양보다 배를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픈 거에요.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서 병원에 가봐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생활에 적응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그런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주인공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어느 밤 갑자기 공복감을 느꼈고, 아내와 예전 벌였던 범죄(?)를 (범죄가 맞긴 한데, 어쩐지 안 어울리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되풀이함으로써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풀어졌던 게 아닐까요? 이 아내라는 사람, 평범한 시각으로 보면 참 신비한데(과연 인간이 맞긴 할까 라는) 주인공에게 있어 치료제나 다름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작품이 다른 분위기를 취하고 있지만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코끼리의 소멸>도 그렇고, <패밀리 어페어>에 등장하는 방황하는 주인공도요. 그런 상실감은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쌍둥이들이 어떤 존재였는 지 모르지만 그들을 잃고 상실감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섬을 연상하게 했어요. <로마제국의 붕괴*1881년의 인디언 봉기*히틀러의 폴란드 침입*그리고 강풍세계>와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은 약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결국은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량이 매우 적은 단편들의 모음이지만 잘 찾아보면 동일인물로 생각되는 사람이 등장해요. 그 이름은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그래야 찾아보는 재미가 생길테니까요. 호홋. 찬바람이 불길래 거기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책이 읽고 싶었는데, 역시 무라카미 선생의 분위기는 좋군요. 책을 읽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아~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 오랜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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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을 읽다 보면 다른 작가와 비슷한 색깔이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아마도 작품의 구도나 묘사하는 분위기나 표현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각각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그 다른 작품에서 비슷한 느낌의 색깔을 느끼는 것은 작가나 작품에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소재나 구성 방식이 같거나 비슷할 수는 있겠지만, 문체나 표현력 등 그 작가 고유만의 느낌을 살리며 내용을 이끌어가는 작품이야말로 작가의 색깔 그대로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많고 많은 작가와 작품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는 것은 자신의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좋아하는 작가는 많다. 작품도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이나 외국의 작가까지도 좋아한다. 그런 것처럼 작품을 떠올렸을 때 바로 떠오르게 되는 작가가 있는 것처럼 잔잔하면서도 깊은 곳에서 깊숙하게 박혀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 내어줄 법한 작가를 떠올린다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닐까 한다. 오래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 중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우울하면서도 분위기가 차분했던 기억으로 그 당시 아무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이 되는 책이었다. 나에게는 그러했다. 그랬기에 그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게 되었고 작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된 작품으로 작가의 팬이 되어 버렸고 이번에 새 작품으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빵가게 재습격」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은 그의 단편집이기도 하고 그가 들려주는 6가지의 단편을 통해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제목이기도 한 단편 제목 중에서 ‘빵가게 재습격’이라는 단편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던 부부는 과거에 공복으로 일어난 일을 회상하게 되고 과거의 기억을 되짚으며 빵가게를 습격하자고 아내가 제안한다. 하지만, 빵가게 대신 맥도날드를 가게 되고 그렇게 부부는 빵가게 습격에 대한 저주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어서 ‘코끼리의 소멸’, ‘패밀리 어페어’,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로마제국의 붕괴 · 1881년의 인디언 봉기 ·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 그리고 강풍세계’,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라는 단편을 통해서 일상에서 그냥 흘려버릴 것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해주는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바람이 불어도 나무는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만 무심코 지나쳐버린 것들이나 누군가의 존재가 사라졌다고 할지라도 세상은 그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단편집을 통해서 만나게 된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각 단편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나 그냥 흘려버렸을 것들에 대한 것을 다시 한번 되짚어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가 소멸하고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 소멸에 대한 것에 다시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게 해주었던 것 같다. 각각의 단편이 주는 느낌은 달랐지만 하나의 완성된 그림에 여러 가지 색상으로 전체의 밸런스와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처럼 「빵가게 재습격」에서의 단편은 각각의 다른 주제로 펼쳐지는 이야기였지만 결국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는 것처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깔을 그래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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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친숙해진 작가이고,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하나쯤은 읽어보았을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작들 중 하나인 <상실의 시대>와 <1Q84>와 같은 굵직한 책들을 통해 그를 재미있게 생각했었다. 무라카미 히루키의 글에는 묘한 분위기와 톡톡 튀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마찬가지로 <빵가게 재습격>에도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묘한 분위기와 톡톡 튀는 생각들이 담겨져 있다. 이 책에는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러나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다. 스케일이 크고 웅장하고 흐름이 스펙타클하게 진행되는 법도 없다. 시종일관 물 속을 헤엄치는 듯한 분위기고 책을 읽다보면 몽롱한 기분만저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톡톡 튀는 상상력과 철학들은 도저히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빵가게 재습격>의 표제작은 주인공과 그 친구가 빵가게를 습격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둘은 단지 허기를 채울 만큼의 빵이 필요했고, 곧 실행에 옮겼다. 그 빵집 주인은 주인공과 친구에게 바그너의 음악을 끝까지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었던 이후로 주인공은 친구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옛날 빵가게를 습격했던 것과 달리 아내가 생겼다. 새로운 사람이 생겼고, 음식도 풍족히 먹는데도 공복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내는 주인공에게 새로운 빵집은 습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주인공의 새로운 파트너는 아내 자신인데, 주인공의 저주에 자신도 옮았다는 것이다. 아내의 '빵가게 재습격' 주장을 바탕으로 둘은 새로운 빵가게를 습격하기 시작한다. 이어 <코끼리의 소멸>, <패밀리 어페어>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로마제국의 붕괴ㆍ1881년의 인디언봉기ㆍ히틀러의 폴란드 침입ㆍ그리고 강풍세계>,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 차례로 실린다.
짧은 단편이지만, 이야기들이 묶여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무언가 공통되는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 떠오른 것은 단 하나였다. '상실과 소멸'
무라카미 히루키는 지독한 상실과 소멸에 따라오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이미 이야기 했던 표제작 '빵가게 재습격'을 통해 이야기를 하자면, 더 쉽게 이해된다. '빵가게 재습격'에서 주인공은 친구와 틀어진 것은 빵가게를 습격할 당시 들었던 바그너의 음악이 저주가 되었다고 했지만, 둘은 그 이유에서만 틀어지지 않았을것이다. 미묘하게 둘의 사이에 틈이 생기고 있던 찰나에 그것을 계기로 둘은 완전히 틀어졌을 뿐이다. 주인공은 친구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외로움을 느끼고 고독을 느낀다. 그 상처로 인해 새로운 사람인 아내와 있어도 어떤 음식을 먹어도 공복감이 찾아오고 행복하지 않다. 아내는 주인공이 빵가게 습격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재습격을 주장한다. 이어 <코끼리의 소멸>.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을 읽으면서 무라카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확실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무라카미 히루키의 글을 자칫하면 의중을 파악할 수 없어 지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냥 활자들만 가득한 책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라카미에게 이끌려 몽한 분위기로 따라가지 않고 조금만 가볍게 읽는다면 그의 진짜 속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어딘가 음침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은 와타나베 노보루. 그가 재미있는 이유는 아마 책을 읽을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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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렴풋이 읽었던 하루키의 단편들을 다시 만났다. 귀여운 표지 때문에 기분이 더욱 새로웠다... 하루키의 단편은 단편대로 장편을 읽을 때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에는 표제작인 빵가게 재습격 외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상실과 소멸의 이야기... 그의 단편을 읽고 있노라면, 보통 때는 느낄 수 없는, 그러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책 속의 인물들처럼, 담장 하나만 넘어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동물원의 울타리만 넘으면 그곳으로 빨려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단편마다 등장하는 '와타나베 노보루'들을 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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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세상에는 옳지 않은 선택이 옳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고, 옳은 선택이 옳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부조리-라고 불러도 상관없겠지-를 회피하려면 우리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고, 대체로 난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것이며,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p 67
코끼리의 소멸을 경험한 후로 나는 곧잘 그런 기분이 든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다가도, 그 행위가 초래할 결과와 그 행위를 회피함으로써 초래될 결과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때때로 주변 사물들이 본래의 정당한 균형을 잃은 것처럼 느껴진다
p 109
"저도 사실은 형님처럼 서른 정도까지는 혼자 지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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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친구를 만나고 아무래도 결혼하고 싶어졌습니다"
"괜찮은 애야" 나는 말했다 "좀 고집이 세고 변비가 있긴 하지만, 틀림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결혼을 한다는 게 왠지 두렵기도 합니다"
"좋은 면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 시점에 다시 생각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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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왜 하루키인가. 왜, 하루키여야 하는가. ! 그런 류의 얘기에 아마도 나는, 일단 아직까지는 하루키를 좋아하고 있고, 하루키는 하루키만의 매력이 있어,! 라고 얘기하는 타입일 듯 한데... 생각해보니 어찌보면 하루키의 매력을 안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뭔가, 우유부단하고 돌려말하길 좋아하는, 상대방은 조금 답답할 수도 있는 성격이지만,
대하기 어려운 성격 힘든,,,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