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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책을 읽으면서 하는 생각 정말 교회 다니는 분들에게 새롭게 돌아볼수 있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책은 말그대로 그리스도인의 헌신을 위한 책이다. 이책의 순소한 목적은 프랑소아 페넬롱이 자신이 느끼고 배운 소중한 영적 지혜와 통찰력을 그리고 하나님의 계신다는 확신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싶어하는 책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일반 소설로 생각하지 말고 생명이 땅위로 가시적인 움을 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발이 될 뿌리를 아주 땅 깊이 내리는 것처럼 생각을 깊게 하여야 하다. 모든 식물은 얼마나 뿌리가 강한가에 따라서 열매가 많이 열린다고 하는것 처럼 이책을 읽으면서 헌신하는 마음으로 독서를해여한다. 한 권의 책을 읽을때 도 마음 밭에 그 책으로 인한 소중한 깨달음의 말씀의 씨를 부리는 것 처럼 언제나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한다. 참 좋은 말씀이란 생각을 합니다. 언제나 책을 보면서 한구절 한구절 새롭다는 생각을하면서 읽지만 이런 생각을 못했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안에 잠겨라. 사랑을 결코 멈추지 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라. 생명의 나무를 소망하라. 생각하면서 그안에서 정말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것을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아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면 자신이 부족하다고 행각하기않는다. 자신안에서 하나님의 선물을 직접 체험 할수 있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요? 물론 쉽지 않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것을 보면 축복하기보다 기분이 상하고 질투를 하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배우는것 내가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데 기도의 대상이 받아들이지 않고 시기하면 그 많은 기도의 복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닮기 원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수 있다면 그 보다 더 귀한것은 없다.
세상밖으로 나가면 정말 많은 교회들의 불빛이 보입니다. 그 많은 교회중에 진실로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몇개나 될까요 .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것을 알지만 실체가 그렇지 못할때가 많다. 프랑소아 페넬롱은 그런 그리수도인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를 하고 있다. 세상에 속에 있다는것은 대단한 유혹이고 뿌리칠수 없는 유혹이다. 우리는 향상 삶속에서 에배드리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마음속에는 절대란 단어거 있지만 실체를 만나게 되면 무너지고 마는것 같다. 프랑소아 페넬롱은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며,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바라면서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우리의 의지까지 하나님께 맡기길 바라는 강한 마음에 이책을 쓰게 되었다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실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야한다. 바리새인들 처럼 살아가지 말고 세리인들 처럼 살고 , 하나님 앞에서 절대 숨기지 말고 다 내려놓아라 살아가면서 절대 자기부정을 하지말라 본인이 스스로를 믿지못하면 다른사람도 믿지못한다. 나의 살아가면 모든 시간 속에는 향상 주님이 존재함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향상 생각하라 40이 되도록 교회를 다니면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스스로 피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답니다. 이책을 읽으며서 다시한번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어떤 마음으로 믿고 의지해야한다는것 다시한번 생각하게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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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고전시리즈란 이름만으로도 프랑소아 페넬롱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얼마나 귀한 책인지 증명하는 것 같다. 이미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기독교고전시리즈로 이미 출간된 적이 있는 이 책은 앞서 번역된 책이 먼저 번역하느라 수고와 헌신한 것에 대해, 좀 더 정확한 번역으로 보답한 것 같다. 본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아담을 통해서 창조하셨지만 다시금 새로이 빚으시고 재창조하신다. 그런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존재하게끔 하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섬기라 말한다. 사실 우리를 만드시고 재창조하신 목적도 하나님 자신을 위해 만드셨기 때문이다. 사실 페넬롱의 말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더 유익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므로, 우리 자아의 가련함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초월적인 도움 즉 하나님께로부터 밖에 올 수 없기 때문이다. 페넬롱은 이러한 우리를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기 위해 악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두가지 악이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짓는 죄로인한 악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악이다. 후자인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지고 재창조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순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2부는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체험하는 단계다. 우리가 타락한 인간을 보고 여전히 놀란다면, 아직 인간의 죄인된 실존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말하며, 그것들을 용납하라 말한다. 그리고 복음의 법과 내게 맡기신 십자가앞에서 조용히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한다. 놀라운 것은 조나단에드워즈가 신앙감정론에서 다루었던 거짓회심에 관한 부분이 여기서도 언급된다. 페넬롱은 회심이 단순히 죄를 그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어쩌면 로마카토릭의 공덕이니 선행을 통한 구원과 맥이 맞닿아 있는 것도 같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마태복음이나 야고보서의 믿음관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 말한다. 3부는 드디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단계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수술대인 고난에 올라 마치 욥기에서 말하듯이 순금같이 단련되라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 겸손하고, 마치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서 불필요한 것들, 그것들로부터 멀어지는 삶, 즉 단순한 삶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당하는 고통이나 힘듦속에서 페넬롱은 하나님의 숨은 사랑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4부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들이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길인 성화로 나아가라 말한다. 수세기전 사람이지만 아주 논리정연하고 잘 구분되게 4부로 나누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구체적으로 우리 삼에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지를 잘 제시해주는 책인 것 같다. 오히려 곳곳에 우리의 행함과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개신교가 루터를 통해 잘못 해석되어진 믿음의 부분을 잘 설명해준 것 같다. 이 귀한 책이 다시금 번역되었는데,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사랑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경험하고 싶은 분에게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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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은 도서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자기 계발서일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계발과 발전에 관심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자기 계발서가 갖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역시 성공일 것이다. 기독교 서적들도 예외는 아니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성공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에는 성공이라는 단어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은 무슨 말이겠는가?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성공을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생각이 너무 만연해 있지 않나 싶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헌신을 위한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이 많지만 이 책은 헌신을 함으로써 성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책이 아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처럼 내용 하나 하나를 묵상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는 삶”,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체험하는 삶”,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 자신을 내려놓는 성화의 삶“ 등 4부분으로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우리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저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이란 “오직 그분만을 알기 원하고 더 이상 자신을 알기 원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것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다”(p. 22)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만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과 상반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스스로 심기 원하는 것들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하자. 그리고 대신 그 자리에 열매가 풍성한 생명의 나무를 그분으리 손으로 직접 심어 달라고 간구하자”(p. 64)라고 말한다.
이러한 순종과 결단이 있을 때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체험할 수 있다.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체험한다는 것을 곧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분의 방식대로 사고하고 생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본받기를 원하지만 그 길을 걷지 않는다. 그 길은 어떤 길인가? “고독과 침묵, 가난과 고통, 박해와 모욕, 그리고 십자가와 죽으심의 방식을 본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분의 수치 당함을 본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분을 닮을 수 있겠는가? 실로 우리가 그분께로 가기 위해서는 수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p. 144) 세상은 성공과 높은 길을 원하지만 우리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길은 정반대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 속에만이 진정한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1부에서 계속해서 말하는 것 중의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기를 원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결국 자기 부인, 자기 망각을 할 때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망각이라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자신과 관련해서 어떤 것을 전혀 보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에 갇혀 자신의 소유와 복락의 관점에서 행복과 고난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p. 193)
자신을 내려 놓는 성화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비우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살 때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사실 이렇게 살 수 없다. 오히려 우리 힘으로 이렇게 산다는 것은 교만이요 위선이다. 우리는 절대로 자신을 부인하면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다”(p. 271)라고 말하고 있다. 17세기에 씌여진 책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도전이 되는 책이다.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짜 성공을 보여주는 책이다. 하나 하나를 묵상하면서 읽어나가면서 실천한다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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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고전인 이책은 프랑소아 페넬롱의 멋진 책이다^^ 책의 구성이 참 꼼꼼하게 구성되어져 있어서 놀랐다는! 헤헤 고전은 왠지 심플하고 몬가가 압축되어있을 것같다 는 내 편견 때문이였나 보다. 암튼 책의 내용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단계들을 순서대로 나열하여서 이해 하기 쉽게 잘 구성하였다. 내용이 어찌보면 딱딱할것 같기도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의외로 접근하기 쉽고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아서 책이 문안한 것 같다.
하나님을 향한신뢰에 관한 책의 내용중에서 자신이 열매 없는 나무 대신 열매가 풍성 한 생명의 나무를 소망하라. 가장 최상의 신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일을 순조의 자세로 무조건 받아 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꼐 맡길 때의 즐거움 곧 사라질 세상을 떠나 하늘의 양식을 받아 누려라.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은 기쁘다, 그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들은 포기를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수 백배의 축복을 받는다.등의 내용등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이 깊은 부분이다.
그렇다. 신앙의 기본이자 가장 기초적인 것을 충실히 한결같이 실천하는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완전에 이르는 길인 것 같다. 이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느꼈다. 신앙엔 정말로 왕도가 없다 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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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부로 프랑소아 페넬롱의 끊임없는 묵상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성화의 길로 가는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매일 매일 먼저 하나님앞에 엎드려진 무릎과 침묵속에서 그의 음성을 듣고저 하는 연습을 통해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을 향해 조금씩 발을 내딪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수십년을 크리스챤이고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그의 말씀을 읽고 순종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하는 이들 앞에서도 이 책을 읽다보면 아직도 나의 이기심을 위한 갈망을 간구하고, 나 중심의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또한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 나는 하나님께 얼마만큼 헌신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단지 주일성수만을 잘 지키는 정도일까. 아니면 십계명을 어기지 않는 정도.... 저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세상적 정욕을 버리고 완전히 자기부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바라고 있다.나를 버리기 위해 매일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그에게 올인해서 귀기울이며 그가 말씀하실때까지.. 친밀한 교제의 시간까지 들어가기 훈련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정말 범인이라면 도저히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와 같이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삶을 이루기까지 나를 버리고 내가그의 다스림안에 들어가 순종하는 삶~~~ 나의 인생조차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맡기는 삶, 어린아이와같이 단순해져야지만 가능하다. 너무도 많은 것들을 계산하고 앞일을 계획하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앞에 너무도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내가 지어야할 인생의 십자가의 무게들이 다르지만, 그것조차 내가 지는 것이 아닌, 그의 앞에 내려놓을때, 나는 자유함을 얻을 것이고,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삶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전지전능하시고 지금도 무한한 속성을 가진 하나님의 위엄앞에 우리는 매일 엎드려지므로 그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매일 그와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내 속에 있는 세속적 자아가 없어지고 점점 내 안에 하나님의 자리를 내어드림으로 나는 그리스도의 깊이를 알고 그 안에 함께 더불어 있는 것을 깨달음으로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게 될 것이라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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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될수록 그분의 위대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럽다. 나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지금 살아 호흡할 수 있음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매 순간 잊지 않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우리 삶에 풍성한 열매를 주게 되고 하나님께 삶을 전적으로 맡길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양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나의 의지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완전에 동의하는 삶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는 삶에 나아갈 수 있는 도전을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죄를 짓고 늘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삶이 더 많다. 나 또한 늘 이 부분 때문에 고민하고 쉽게 변화하지 않는 예전의 삶의 방식으로 염려한다. 그래서 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삶이 중요하다.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얻은 새 생명의 은혜에 감사하고 매일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삶을 덮어주시길 간구할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제대로 알고 주님처럼 고통의 쓴잔을 마시며 고통앞에 서라 말한다. 비록 세상의 기준으로 보기엔 고통스러워 보여도 사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이다. 3부와 4부에서는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한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하는지 구체적인 목록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처음엔 다소 메시지가 강하고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내가 너무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내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이렇게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내 삶에 큰 위로와 감사로 느껴졌다. 하찮은 피조물에 불과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리고 하나님이 꿈꾸시는 소망을 함께 품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놀랍고 인간은 결코 불가능한 무한하시고 크신 하나님의 사랑때문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해 주었다. 영적인 회복뿐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되었던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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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축복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실행할 때에 역사하는 힘이 크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가운데 살아간다고 하지만 축복과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완전한 삶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완전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완전을 외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수 많은 유혹으로 쉽게 현혹되어서 비참한 삶을 그리며 살고 있는 듯하다. 프랑소아 페넬롱의 그리스도의 완전은 극한 어려움과 일상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며, 거룩한 삶을 갈망할 때에 총 4부로 1부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는 삶, 2부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체험하는 삶, 3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 4부 자신을 내려놓는 성화의 삶를 통해서 단계별로 거쳐가며 완전을 꿈꾸며 인간의 최대 행복을 찾기를 원한다. 프랑소아 페넬롱는 이 글이 마냥 기도문처럼 쓰여졌고 읽혀지면서 읽는 독자에게 깊은 메시지를 던지며 하나님께 갈급함을 호소하고 있다. 저희 학교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4복음을 나타내며 그중에 성결의 삶을 본 바탕 위에 둔다. 성결은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한 백성들이 깨끗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이런 단어가 생소하기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삶과 사회의 삶이 엄청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함은 우리의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그리는 것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성결의 삶, 완전의 삶은 넓은 길, 편한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좁은 길이며 누구나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앞에서 완전한 자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며 통로이다. 스스로 정화되지 않는 찌꺼기들이 모두 살아지는 느낌이다. 해결 받는 느낌이다.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는 결과처럼 느껴진다. 하나님께로부터 완전의 삶을 단계적으로 나뉠 때와 같이 우리의 조금 넘어질 수 있겠지만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어맡길 때에 그 효력과 효능을 감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완전의 삶을 외치는 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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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읽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갖추어야 할 자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지위가 높고, 금전이 많다 하더라도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좋은 목표를 간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의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하겠다. 그래서 바로 이런 사회를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가장 모범이 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영적 지혜와 통찰력, 사랑과 확신을 바탕으로 모범적으로 생활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봉사와 헌신을 통해서 사회를 위해 이롭게 함으로써 당당하게 하나님을 뵐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은 이런 하나님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하여 직접 저자가 실천하는 과정들을 담아놓은 책이다. 즉 책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완전한 삶, 즉 성화를 이룰 수 있는 성경적 지혜를 들려주고자 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갖고 있는 한이 없는 지혜와 권능, 사랑에 대해서, 또는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자아에서 떼어내어야 한다고 설명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데 있어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성과 전 존재가 침묵해야 하고, 열려 있고 수용적인 자세로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겸손을 통해서 전 인격적으로 그 내용을 꼼꼼하게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인식하고 감상하기 위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작품이 스스로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진면목을 보여줄 때까지 인내와 겸손의 자세로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또 농부가 씨를 뿌려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수확의 열매로 맺어지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저자 페넬롱의 성실한 하나님을 향한 성실한 삶의 모습을 우리 독자들이 진한 우정을 나누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고 풍요로운 교제를 나누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고 진실한 성자의 발밑에서 배우겠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분명코 하나님의 지혜와 저자의 탁월한 가르침을 몸으로 터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리라 확신한다. 아울러 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데 대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반드시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새롭게 도전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가 성공의 결과로 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헌신으로 좋은 독서를 통한 통찰력의 획득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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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게 읽어지지 않지만, 읽고 나서 잘 읽었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대부분 고전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차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역시 고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모습에 이르기 위한 여정이 소개되어 있는 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성화라는 주제에 대한 최고의 고전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어 가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저자는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자기애'에 대한 경고가 얼마나 많이 나오던지, 저자가 그것을 얼마나 무거운 죄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글 중에서 몇 가지 마음에 와 닿은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부의 내용 중에 하나님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라는 주제에 관해 서술한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성숙한 신앙인과 미성숙한 신앙인들을 대조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해 비난하기 보다 이해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숙한 신앙인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그것은 "미성숙한 사람들에게서 이기적인 생각들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아직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아이에게서 우유를 이유시키는 것처럼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들을 어리다고 비난하면서 그들이 붙잡고 있는 것을 강제로 버리게 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분이 원하시는 뜻을 행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친히 일하시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100-102쪽).
이러한 저자의 말은 얼마 전에 있었던 저 자신의 개인적인 논쟁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 논쟁에서 저는 상대방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탐심이라고 지적하였고, 상대방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탐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라고 하며 저의 지적에 반발하였습니다. 논쟁의 결과는 심히 좋지 않았고 서로 기분이 상한 채로 헤어졌는데, 이러한 저자의 글을 보면서 굳이 그런 논쟁을 할 필요가 있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고, 상대방이 하려고 하는 일의 결과가 어떨지를 충분히 예측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논쟁을 하기는 했는데,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에 괜히 나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의 수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치시기를 기다리며 기도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반성을 해 보았습니다.
3부의 내용 가운데에서 겸손에 관해 서술한 내용은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저자는 진실된 겸손으로 충만한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거나 겸손하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이 모든 것보다 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의 쓸모없음과 가치없음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채로 겸손하려고 하는 것은 비열한 미덕으로 진정한 겸손을 대신하게 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하나님 앞에 완전해 지기 위해서는 비본질적인 노력들을 떠나 본질적인 면에 집중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앞에 굴복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애, 자기 사랑을 버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주제나 성격은 오스왈드 챔버스의 책들과 거의 일치되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실제로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글의 주제나 성격은 물론이고, 글의 스타일조차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짧은 단문으로 끊어치면서 글을 전개해 나가는 것하며, 전체적인 흐름조차도 끊어가며 핵심적인 주제를 설명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과 너무나 비슷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저만은 아니었는지, 역자 후기를 보니 역자 역시 오스왈드 챔버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더군요. 역자는 글의 강조점이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는 글의 강조점 뿐만 아니라 글쓰는 스타일조차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따라서 오스왈드 챔버스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 역시 좋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약간은 신비주의적인 경향의 책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 부인과 하나님 사랑을 강조하는 건전한 신학 위에 쓰여진 성화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탁월한 수준의 묵상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바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점검해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 못지 않은 상당한 유익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추천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