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세상이 '인민 공화국'이라는 가정을 생각한 적 있는가. 기업가들이 게릴라가 되어 지하로 숨어드는 상황을. 약해서가 아니라 강하기때문에 스스로의 정의감과 동정심으로 약점을 잡혀 권리를 포기하는 상황은? 그리고 결국 현실을 깨닫고 세상을 포기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독립 공화국을 세운다면? 이 세상은 그 전제하에 전복된다! 반항과 자유. 전체주의와 전혀 걸맞지 않을 듯한 이 두 가지의 이미지가 희한하게 정반대의 사람들에게 씌워져 있는 지금,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 책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된다. 1920년대 공산화된 러시아를 겪고 그 땅에서 재산과 자유를 속박당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1950년대에 이 글을 쓰면서 말할 나위 없이 혐오감을 드러내지만, 그 에피소드는 대체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인가. 관료주의와 무책임성, '어떻게든 되겠지'의 점령, 사실과 논리보다 우위에 있는 이념-혹은 희망 사항. 건강한 야심이 아니라 병적인 동정심에 호소하고, 눈 앞의 수자보다 머리 속의 계획을 우선시하고, 그리고 나라를 뒤덮는 선전 문구와 대중의 감정적 대응, 또 그것과 따로 노는 정책 결정자의 행위들. 정치적 역학 관계. 저자는 그 뒤에 있는 것이 악덕이라 분명히 단언한다-이 책은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의 우월성보다는 그 묘사의 탁월함, 상황에 대한 명쾌한 통찰력 때문에 재미있다. 문학 소설보다는 대중 소설에 가깝다. 시드니 셸던의 캐릭터, 프리드만의 이론, 폴 오스터의 묘사력을 합쳐놓으면 이렇게 될까. 문체며 스토리는-번역자들의 노고였는지-충분히 빠르고 경쾌하다. 그러나 논리는 단순하고 단순한 나머지 공격당하기 쉽다. 생산과 이윤의 자유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전제와, 그것이 물리적 법칙과 다를 바 없다는 논리에 완전히 설득당하는 것은 역시 심리적 저항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묘사하는 사람들의 미덕은-논리적 일관성조차 가끔 비틀거리는 저 미덕들은-이윤과 소유에 대한 욕망이 탐욕으로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의 미덕인데 그게 또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나 캐릭터들은 한없이 강인하고, 그 강인함이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라는 것을 논증하고 주장한다. '나는 강하다, 그래서 뭐?'라는 식의 주장은 역시 시원하지 않은가. 강인함이 경외는 커녕 죄가 되는 사회, 나약함이 동정이 아닌 미덕이 되는 사회에 대한 저주. 온 세상이 약자고 양보받아야 할 사람이라면, 결국 누가 그 모든 것을 준다는 건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 유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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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한국에서 공병호 교수가 이 책을 인용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의 소개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 100권중에 1위를 차지한 소설, 미국의회 도서관에서 조사한 결과 미국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는 책이라는 말에 끌려 읽기 시작했었다.
소설은 정치, 경제, 문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여느 다른 소설과는 사뭇 다름을 느꼈다. 내용은 기업에 대한 끊임 없는 규제와 간섭, 사회복지라는 미명아래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형식을 띄고는 노력과 재능 보다는 구성원들의 필요에 의해 우선 분배의 원칙들이 적용되는 사회에서 더 이상 가치 창조자들(획기적인 기업가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사회를 등지고 파업의 대열에 들어가면서 국가의 동력엔진이 꺼져 간다는 내용이다. 약탈자 대 가치창조자….. 이 두 그룹간의 대결이 이 소설에서의 근간을 이룬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약탈자는 어느 조직에서나 있다. 소위 말해 묻어가는 사람들, 복지 운운하며 천신만고 끝에 얻은 노력의 결실을 나에게는 동등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결실만을 탐내는 사람들. 이 소설의 배경은 미국 뉴욕이지만 작자의 태어난곳이 구 소련이고 공산권 나라에서의 여러가지 경험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시장 경제논리가 아닌 계획경제의 논리로 소설을 써 내려가는 사실이 좀 아이러니컬 하게 느껴 되지만 많은 부분에 공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가지 에피소드는 미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 해서 미국사람에게 물어 봤다 이 책에 대해서 아느냐고… 그사람 왈 “이 책 처음 들어보는 책이다” 라 했다. 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