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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이 쓴 박열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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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새끼로소이다하늘을 보고 짖는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나는 개새끼로소이다-박열-일왕 부자에게 폭탄을 던져 죽이려다 발각되어 체포된 후 22년 2개월의 감옥살이를 한 혁명가 박열.그러나 박열을 항일 혁명가로 기록된 교과서는 없었다. 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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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


일왕 부자에게 폭탄을 던져 죽이려다 발각되어 체포된 후 22년 2개월의 감옥살이를 한 혁명가 박열.

그러나 박열을 항일 혁명가로 기록된 교과서는 없었다.

우리에겐 잊혀졌던 그가 작가 안재성의 기록으로 돌아왔다.


수재들이 다녔다는 경성고보에서 3. 1 운동을 겪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도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왜 고난의 삶을 스스로 택했을까?


김별아의 소설로 처음 읽은 박열이었다.
소설이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 기록된 박열을 읽고 싶었다.


박열과 후미꼬
후미꼬와 박열

동지이며 부부였던 두 혁명가.

박열을 이야기하면 박열의 이야기의 절반은 후미꼬가 차지한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섞이니까 더 호기심을 자극해서일까 아니면 혁명가 박열의 삶에 후미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일까.


이 책에서조차 후미꼬는 위대한 혁명가다.
오히려 박열을 넘어서는 위대함을 가졌다.

감옥에서 목을 매 삶을 마감한 후미코.
박열에게 후미코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박열이 이렇게 큰 존재로 보였을까?
내가 박열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도 김별아가 후미코를 그린 소설을 읽고였다.
박열이 별이라면 후미코는 그 별을 빛나게 한 밤하늘이다.

별은 저 혼자 빛나진 않는다.


김별아의 소설 『열애』에서 박열은 후미꼬의 죽음까지만 기록되어 있어 그 후의 박열의 삶을 알지 못했다.
아나키스트가 해방 후 북한에서 어떻게 70년대까지 살아남았는지 무척 궁금했다.
일제 치하 그것도 일본에서 천황과 그의 아들을 폭살하겠다던 그가 아닌가.

모의 단계에서 검거되었으나 혹독한 고문이 뒤따랐을 텐데 이 책에 실린 당시의 심문과 재판 기록을 보면 그는 단 한순간도 비굴하지 않았다. 


해방 후 일본의 감옥에서 22년 만에 출소한 그의 이후 행보도 무척 흥미롭다.

사회주의 계열의 재일본조선인연맹(조총련의 전신)이 아니라 이와 반대 진영의 우파 단체인 민단에서 활동한다.

24살의 나이로 일본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40대가 되어 출소한 박열이 47살에 출간한 그의 유일한 저서라는 『신조선 혁명론』에서는


"현실의 세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로 나뉘어 있다는 것, 정신적으로는 유물사관과 유심 사상이 대립하고 있음을 인정했으나 어느 한 편이 다른 한 쪽을 파괴하고 절대적인 승리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로 합쳐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261쪽--


20대의 무정부주의 혁명가 박열의 모습과 사상은 많이 퇴보한 듯 보인다.   

이 대목에서 저자 안재성은 22년간의 옥중생활 동안 박열이 삶과 죽음에 대해 본능적으로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며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는 것, 보다 훌륭하게 사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록했다.  

(반면 후미꼬의 경우 구차한 삶을 영위하기 보다 과감히 스스로 삶을 정리했다는 사실과 비교된다. 그리고 문득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출소한 박노해의 이후 삶이 왜 자꾸 생각나는지....)


박열의 삶은 이후에도 더욱 기묘하게 전개되는데 실제 그는 공산주의를 반대해왔는데 하필 1950년 인민군에 의해 납북된다.

납북 초기 그는 정치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나 이후 조총련 계열의 재일 동포 북송 사업에 이용된 듯하나 이 책의 저자 안재성도 자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이 책은 박열 평전이다.


이 책의 저자 안재성은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회주의 운동과 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과 현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대한 기록가로 유명하다. 『경성 트로이카』, 『이현상 평전』(이 책은 체 게바라 평전 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 『이관술 1902~1950』등의 저작들만 보더라도 안재성의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 기록인지를 알 수 있다.


'박열'이 영화로 제작되고 있어서 그런지 그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온다.

나는 안재성이라는 이름을 믿고 이 책을 선택했다.

박열을 평전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 두 가지 의미에서 나는 좋은 책을 읽었다.






h*****m 2017.07.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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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 안재성
"[역사]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 안재성" 내용보기
요즘 박열이란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곧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박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사와 책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분들을 다 알진 못하지만 박열이라는 이름은 정말 생소했다.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의 시각에서 독립운동가란 무언가 행동과 결과가 있어야 했다. 즉,
"[역사]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 안재성" 내용보기

   요즘 박열이란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곧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박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사와 책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분들을 다 알진 못하지만 박열이라는 이름은 정말 생소했다.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의 시각에서 독립운동가란 무언가 행동과 결과가 있어야 했다. 즉, 폭탄을 투척했다거나 의병활동을 했다거나, 아니면 독립활동을 하다 일제의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던가. 하지만 박열은 정신과 배짱으로 일본 정부를 농락하고 희롱하고 감동시켰던 인물이었으니, 나의 편협한 시야에 들어오지 못했다.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아니고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자였던 박열은 소위 특정 '주의'에 경도된 인간들의 권력쟁투와 배신, 변절 등을 보면서 인간이란 본래 악한 존재이며 결코 세상을 하나로 만들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서, 인간을 지배하는 어떤 주의도 불신하게 되는 허무사상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이 때 그의 나이가 겨우 만20살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게 된다. 가네코 후미코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박열을 능가한다. 그녀 역시 박열을 만나기까지 살아온 삶이 지난한지라 헤겔이나 니체 등을 읽으며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어렸을 때 한동안 충북 부강의 고모집에 살면서 일본 압제에 시달리던 조선인들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측은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그녀가 나중에 조선의 독립에 대해 박열과 뜻을 같이 하게 된 중요한 경험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박열과 가네코는 일본 황태자의 결혼식에 폭탄을 투여하기로 마음먹고 이곳저곳 폭탄을 구할 수 있는 경로를 알아보던 중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실제 폭탄을 투척했다거나 심지어 폭탄을 수중에 넣은 것도 아닌데, 그들이 대역죄로 판결을 받게되는 과정이 박열과 가네코의 인생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된다. 당당한 모습으로 황태자를 죽이려 한 이유를 설명하는 그들의 논리와 일본 사법부를 농락하는 발언들, 심지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본주의적인 사상이 담긴 논거들은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참고 : 1924년 2월에 예심판사 앞으로 쓴 [한 불령선인으로부터 일본의 권력자 계급에게 전한다], 1924년 12월3일자로 완성한 [나의 선언])


   당시 그 두 사람에 대한 관심과 최종 판결이 가져올 영향이 엄청났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도 놀랍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끊임없이 그들을 회유하여 사상전향을 시도했는데, 감옥 내 자유로운 산책을 허용하고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게 했으며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허락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회유의 목적이었는지 진정으로 그들의 확고함에 감동한 재판장의 개인의 결정이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법정에서 죄수복이 아닌 조선의 왕의를 입고 재판을 받는다던지, 직접 법정에 서는 취지를 선언한다던지 하는 지금으로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특헤를 받았던 점을 보면 두 사람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사형을 판결받은 그들을 왕세자 히로히토의 은사를 들먹이며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선고하면서 두 사람이 역사적 영웅으로 남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비겁함을 보여준다. 이에 분노한 가네코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박열은 그 후 해방되기까지 22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해방 이후 박열의 행보는 법정에서 가네코와 함께 보여준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22년이라는 시간과 달라진 환경에 따른 변화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가네코가 보여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명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 법.


   마지막으로 '피고는 왜 일본의 천황, 황태자 전하에 대해 소위 폭살의 대상으로 삼았는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대한 박열의 대답을 인용해본다.


"나는 일본의 천황, 황태자 개인에 대해서는 어떤 원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일본의 황실, 특히 천황, 황태자를 대상으로 삼은 가장 중요한 첫번째 이유는, 일본 국민에게 있어서 일본의 황실이 얼마나 일본 국민에게서 고혈을 갈취하는 권력자의 간판 격이고 또 일본 국민들이 미신처럼 믿고 있고 신성시하는 것, 신격화하는 것의 정체가 사악한 귀신과 같은 존재임을 알리고 일본 황실의 진상을 밝혀서 그 신성함을 땅에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조선 민족에게 있어서 일반적으로 일본 황실은 모든 것의 실권자이며 민족의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 황실을 무너뜨려서 조선 민족에게 혁명적이고 독립적인 열정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세번째는 침제되어 있는 일본의 사회운동가들에게 혁명적인 기운을 불어넣게 위해서였다." (p124-125)

l********d 2017.06.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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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의 의외성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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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고 있는 인물 박열에 대한 관심이  이제서야  뜨겁다.  일제와 맞서 싸우며 독립을 외친 많은 운동가들의 이름중에서 왜 박열이란 이름은 그동안 등장하지 못했던 것일까 의문을 가져본다. 3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나  뛰어난 학구열을 가졌던 그는 경성고보에 입학하여 후진양성을 위한 꿈을 꾸는 학도였다. 그러나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사망하며 반일시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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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고 있는 인물 박열에 대한 관심이  이제서야  뜨겁다. 

 일제와 맞서 싸우며 독립을 외친 많은 운동가들의 이름중에서 왜 박열이란 이름은 그동안 등장하지 못했던 것일까 의문을 가져본다.

3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나  뛰어난 학구열을 가졌던 그는 경성고보에 입학하여 후진양성을 위한 꿈을 꾸는 학도였다.

그러나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사망하며 반일시위에 행동대원으로 활동 . 조선독립신문의 발간과 흑도회를 창립.

조선인의 힘으로 세운 진보적 사회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한다. 그가 조직한 <흑도회>는 무정부주의자 즉 아나키스트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박열 또한 청년기를 사회주의에서 무정부주의로 그리고 허무주의로 사상적 변화기를 겪는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가 무정부 주의자로 22년의 오랜 수감생활후 납북되어진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일본인 여성 가네코후미코와 활동을 함께 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제치하를 겪으며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반일적 시위와 반일적 감정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인물에 박열은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박열의 차후 행보를 보며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박열이 체포되는 시점 조차 관동대지진을 틈타 조선인 대학살을 자행했던 일본이 그 엄청난 사건들을 무마하기 위한 조선인 독립가들의 색출과정에 있었다.

그 시점의 박열은  일본 왕세자와 일본 고위자들을 처단하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터라 그의 체포는 더욱 안타까웠다.

박열이  계획은 세우고 있었으나 아직 거사를 시도하지 않은 시점이기에 처음 체포될때의 그의 죄목은  불법으로 불령사를 결성했다는 이유뿐이었다.

그러나 취조 과정에서 박열의 태도는  숨길이유가 없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1924년 예심판사 앞으로 쓴 < 한 불령선인으로부터 일본의 권력자의 계급에게 전한다>와  <나의 선언>의 글들을 살펴보면  일본의 강압적인 합병과  경제상의 탈취. 토지 측량조사를 통한 토지갈취와 협박. 학교에서의 교육적 탄압까지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박열과 가네코 두 사람 머릿속에만 있었던 폭탄구입과  권력이라는 악마에게 독점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 천황과 황태자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천황폐하는 병자로 표현하고 경시청관리들을 집권자들의 충실한 개새끼라 표현한 그의 표현이 극단적이면서도 통쾌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고 사상을 함께 했던 가네코 후미코를 바라보게 되었다.

일본인 여성과 감옥에서 결혼한 박열. 그 여인과 일본의상을 입고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존재한다.

<조선청년>이라는 잡지에 실린 '개새끼" 라는 박열의 시를 보고 박열을 찾아가 사랑을 고백했다는 가네코 후미코.

그 일본인 여성이 사상적으로 박열과 통하고  일본의 왕세자 결혼식에 박열과 함께 투탄할 계획을 세우며 20 개월에 거친 예심 끝에 대역죄로 본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한다.  자신의 행동을 감추려 하지 않고 스스로 밝히며 박열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그 모습은

 감옥에서 무기징역을 거부하며  죽는 그 순간까지도 변치않는 전사같은 태도라할만했다.


 대심원 재판을 일본정부를 큐탄하는 장으로 삼고자했던 박열의 요구 조건을 간략히 간추려 보자면

첫째. 나 박열을 피고로서 법전에 서는 것이 아니다.

천황을 대표하는 법관이 법관을 쓰고 법의를 입는 다면 나도 조선의 민족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조선의 왕관을 쓰고 조선의 왕의를 입는것을 허락하라.

둘째. 나 박열은  일본이 조선을 강탈한 강도행위를 탄핵하고자 법정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법정에 서는 취지를 내가 선언하도록 해달라.

셋째. 나 박열은 일본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조선어로 말할터이니 통역을 준비해 달라.

넷째. 내 좌석을 너희 일본인판사와 좌석과 동등하게 만들어 달라   였다고 한다.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장문의 그의 글들과 일본인이 행하는 법정에서도  민족을 대표할만큼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던 그의 기개는

왜 이제까지 몰라보았을까 싶을 만큼   당찬 울림의 소리들이었다.

무기징역으로 바뀌고  22년의 형량을 살고 나와

 미국과 소련의 반목과 쟁투아래 가려어져 있을지라도 그의 행보가 의도하지 않았던 납북으로 종결결되었을지라도 

그  울림있는 박열의  소리를 묻혀서는 안되겠다 싶다.


 독립운동가 박열에 대한 의외성을 발견하고 그 박열을 대하는 일본인의 의외성도 함께 발견하도록 해주는 <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였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나라의 민족이기에 한쪽으로 편중되어 바라보게 되는  시선이  내 스스로도  없진 않지만 

 맹목적인 반감을 주기보다  판단하도록 이끌어주는 자료의 전달에 오히려 많은  생각이 교차하게 되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이 영화에서는 또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지 책을 읽고 나니 영화가 더욱 궁금해진다.




p*********g 2017.07.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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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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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부자 폭살을 꿈꾼 한 남자의 치열하고 뜨거운 삶과 사랑1902년 3월 12일 경상북도 문경군 호서남면 모전리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박열, 본명은 박준식었지만 어려서부터 하고자하는 일은 꼭 이뤄야하는 결단이 있는 성격이었기에 박열이라는 이름도 본인 스스로 바꾼 것이라한다. 큰 형인 박정식하고는 20년이나 차이가 났지만 어린 나이에 본인 스스로 박열이라고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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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부자 폭살을 꿈꾼 한 남자의 치열하고 뜨거운 삶과 사랑


1902년 3월 12일 경상북도 문경군 호서남면 모전리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박열, 본명은 박준식었지만 어려서부터 하고자하는 일은 꼭 이뤄야하는 결단이 있는 성격이었기에 박열이라는 이름도 본인 스스로 바꾼 것이라한다. 큰 형인 박정식하고는 20년이나 차이가 났지만 어린 나이에 본인 스스로 박열이라고 이름을 바꾼 동생의 의지에 대한 법정 증언을 보면 집안에서 박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볼 수 있는 대목이었던 것 같다. 살림이 어려운 와중에도 박열의 영특함과 의지를 보며 유학을 시킨 가족들의 행동을 보면 박열의 가족애를 엿볼 수 있었다.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의 증언에서도 박열의 가족애를 엿볼 수 있는데 문란한 생활을 했던 아버지는 결국엔 처제와 도망갔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남자에게 의탁해 몇번의 동거생활을 했고 나중에 친할머니와 함께 조선에 있는 고모댁에서 몇년을 살게 되었지만 조선인보다 못한 식모같은 생활을 하며 밥은 굶기 일쑤며 학교조차 가지 못하는 처지로 나중에 아버지에 의해 외삼촌에게 처녀성을 내줬던 가네코의 삶에서는 박열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고도 남았을 것 같다. 불운한 가정사와 반대로 학구열만큼은 남달랐던 가네코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생각과 강단만큼은 박열 못지 않은 여장부로써 가네코는 훗날 박열과의 사랑에 빠진 것에 대해 남녀간의 통상적인 사랑이 아닌 사상적으로 통하고 연결되어졌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을 보면서 그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남다름을 느낄 수 있다. 어떤것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과 굳건함을 박열과 가네코 부부에게서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살아갔던 모진 세월속에서 민족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또 공산주의에서 무정부주의로, 조선이 겪어왔던 시대적 사상변화를 박열을 통해 그대로 볼 수 있었고 무정부주의 체제의 모순을 깨달아 허무주의로 돌아섰던 박열의 삶과 사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29일의 감옥 생활을 겪고 감옥생활을 하느니 폭탄을 던지고 자결하고 만다라고 이야기했다던 박열은 그 후에 일왕 부자 암살 실행이 발각되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그리고 22년이나 감옥에서 살았던 삶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싶다. 뚜렷한 그만의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얼마전에 개봉된 '박열'이란 영화를 접하기 전까지만해도 '박열'이란 이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기에 책을 읽으면서 '박열'이란 인물의 삶이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알던 독립운동가들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사상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보는 그의 모습에서 또 다른 독립운동가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d****i 2017.07.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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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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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들 중 우리가 안다고 하는 인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일어난다.불과 100여년 전의 일이지만 우리의 기억속에선 이미 기억이라는 방에 갖혀버린존재감으로 그다지 중요하거나 꼭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한낫 연계계의 누가무엇을 어떻게 했고, 어떻게 한다더라고 하는 가십성보다 못한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해 너무도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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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들 중 우리가 안다고 하는 인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불과 100여년 전의 일이지만 우리의 기억속에선 이미 기억이라는 방에 갖혀버린
존재감으로 그다지 중요하거나 꼭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한낫 연계계의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고, 어떻게 한다더라고 하는 가십성보다 못한 일이 되어버렸
는지도 모를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해 너무도 무지스럽다.
그러한 점에서 나 역시 반성을 하고 조금 더 우리의 지난 역사를 알아가고자
한다.


책의 출판과 더불어 시의 적절하게 '박열' 이라는 이름으로 영화까지 제작되어
국민들과 독자들을 찾는다.
나 역시 처음 들어 보는 독립운동가라 한가득 의문이 들지만 그의 삶과 행보를
마치 곁에서 동행한듯 설명해주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인물됨과 그가 걸어간
길을 하나의 또하나의 영웅처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어릴때부터 자신의 생각과 주장, 행동에 거침이 없었던 박열, 그 역시도 빈부의
격차를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고민으로 생각했고,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인해
일본인과 조선인이 허울만 좋은 대등함 뒤의 차별화를 꿰뚫어 불평등함을 토로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사상적으로 무정부주의자, 아나키스트로 태어난 때가 20세 쯤이므로
지금 우리의 젊은 청년들과 비교한다면 무척이나 담대하고 어른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와의 만남 역시 무정부주의적 선상에서 이뤄졌고
박열의 조선 독립운동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보여준다.
일본 황태자의 결혼식에 폭탄 투하를 계획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실행이 아닌
마음먹음만으로도 대역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이지만 일본의 사법부와
벌어지는 한판 승부는 그들이 죄인이 아님을, 조선을 지키고 독립을 위해 이뤄내야
하는 당위적인 일들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가장 말을 안듣는 악질적인 종자로 치부되는 박열과 그의 아내, 일본 사법부의
온갖 회유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은 끝까지 저항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의 자살로
인해 새로운 물살을 타게된다.
22년의 감옥생활마저도 그에게는 굽힐 수 없는 시간이었고 이러한 인물도 우리의
역사속에서 오롯이 숨쉬고 있음을 확인할 때 비로소 떳떳한 자긍심과 당당함을
스스로에게 부여해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책이라 전해 주고 싶다.

이달의 사락 n********1 2017.07.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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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불온한 조선인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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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박준식(1902~1974)인 박열은 넉넉치 않은 집안임에도불구하고 그의 학구열과 좋은 성적때문에 가족으로부터많은 도움을 받았다.하지만 처음 그가 신분의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학업의기회를 주고, 일본과 같은 동등한 대접을 받을거라는학교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여러곳에서 자행되는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서 반발심을 갖게 된다.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박열이라 개명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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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박준식(1902~1974)인 박열은 넉넉치 않은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구열과 좋은 성적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처음 그가 신분의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학업의

기회를 주고, 일본과 같은 동등한 대접을 받을거라는

학교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여러곳에서 자행되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서 반발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박열이라 개명할 만큼

자신이 믿는것에 대해 확고했던 박열은

일본에서도 무권력, 무지배를 추구하는 흑도회를 설립하며

제국주의로 천황아래 하나가된 일본에서도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일본인과 교류하게 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일본인 연인 가네코와 함께

천황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하고, 실패로 끝나고,

기나긴 재판과정과 22년의 복역동안에도

그는 전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누구보다 당당했다. 


그런 그의 재판기록만 보아도 박열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살았는지,

말뿐인 지식과 타협에 굴하지 않는

굳굳함을 볼수 있다.


그의 삶이 북한에서 마감되었고,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던

그의 이력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결코 반가운 존재는 아닌것으로 보인다.


아마 대한민국의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박열'이라는 이름에 대해

생소했을 것이고, 이념이나 관념이 

어떠한가에 따라 영웅시되고 범죄시 되는

그런 세상을 원치 않았던 그의

세상은 아직도 확실히 왔다고 말할수 없다는게 슬프다. 

s******t 2017.06.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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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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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 안재성 지음 / 한림출판사 펴냄요즘 많이 시사되고 있는 인물, 박열을 심층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박열의 본명은 박준식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본인 스스로 박열(朴烈)이라 불리기를 원했던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로 불리는 그는 사회의 이념과 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굳건한 신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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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 안재성 지음 / 한림출판사 펴냄


요즘 많이 시사되고 있는 인물, 박열을 심층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박열의 본명은 박준식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본인 스스로 박열(朴烈)이라 불리기를 원했던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로 불리는 그는 사회의 이념과 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굳건한 신념으로 오로지 그 길만을 바로 가고자 했던 굳은 의지가 있는 인물이다. 많은 선인들이 독립 조선을 향한 염원을 키웠다.  일본 민족을 향한 증오의 염, 조선 독립의 염을 위해 적극 나선 이들 중 한 명인 박열을 재조명한다.


부유치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끝없이 높은 학구열은 박열을 앞으로 나가게 했다. 그러나 식민의 조선인 학교는 그의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그는 일본 열도에서 본격적인 배움과 활동을 시작한다.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는 사실에 기초한 일련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남달랐던 어린 시절부터 청년 박열의 기개와 일련의 재판 과정, 22년간의 옥중생활을 거쳐 독립된 나라의 박열, 납북된 박열, 그의 일대기가 담긴 책이다.


18살의 청년 박열은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무권력과 무지배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흑도회 등의 단체를 설립했다. 조선인으로써 받은 불평등은  그의 내면을 단단하게 했으며 세상을 향한 포효는 거침이 없었다. 자신이 옳다 여기는 신념 앞에서는 결코 비굴하지 않았고 지난 간 것을 연연치 않은 바람 같은 기개를 지녔다.

진리란 무엇인지, 사람의 진정됨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박열은 지속적인 물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열어 나갔다. 일본의 억압에 아랑곳하지 않고 행보를 지속했던 박열은 같은 마음을 가진, 사상을 나눌 수 있는 인물을 만났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여인이었으나 혹독한 어린 시절로 인해 사회에 반감을 가졌고 그로 인해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은 억압되고 불평등한 세상을 향해 울분을 마지않았다. 그런 그녀가 박열의 정신을 사랑했다. 그와 함께 살아간 짧은 세월, 그들이 나눈 사랑과 사상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퇴색되지 않았다. 그 믿음은 실로 굳건하다.


일본을 향한 비판, 물리적인 투쟁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단단하게 결속시켰다. 일본왕족의 황태자를 폭살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으나  일본으로 폭탄을 들여오는 것은 늘 현실 앞에 부딪혔다. 쉽지 않은 경로였지만 그들은 포기를 몰랐다. 일본 황실을 목표로 삼은 이유를 박열은 [1. 일본 황실의 신성함을 떨어뜨리고, 2. 조선 민족에게 독립의 열정을 자극하고, 3. 일본 사회운동가들에게 혁명의 기운을 넣기 위해서]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본문 발췌 p125) 박열은 일본 사회 운동가들과 뜻이 같았다. 일본인이었으나 야욕과 제국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투쟁한 인본주의자들과 친분을 다졌다. 이들은 1923년 광동 대지진 때 붙잡히고 죽음을 맞이했다. 혼란을 틈타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본의 계략에 무참히 희생되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도 그때 붙잡혔다. 총 21회, 20개월간의 예심 동안 법정에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법정을 호통하는 기개와 인간을 향한 열정을 숙이지 않았다.


박열과 가네코의 절개와 강단은 예심판사 다테마쓰와 사형을 선고한 재판장 마키노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피고인이 아닌 조선 대표로 법정에 서서 호통을 내리고 사형을 선고받고도 물러섬이 없었으며 옳고 그름을 선포한 그들을 향한 존경은 표명하는 뜻이 다르다 하여 그들을 멸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존경을 받았다. 일본의 필요에 의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집행되었지만 가네코는 사형을 환영했고 죽음 앞에서 강했다. 스스로 치욕을 견디느니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를 많은 이들이 기린다.


독립을 향한 염은 많은 조선인들을 결속했다. 독립을 향한 방법이 다르고 품은 뜻이 달랐으나 염원하는 바는 같았다. 그럼에도 해방 후 조선은 자주 국가로서 나라를 추스르지 못했다. 외세에 휩쓸려 완전한 독립국가로 나가지 못하고 전쟁과 분단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납북된 박열은 1974년 73살로 사망했다. 납북 후 그는 애국지사로서 북한에서도 고위층으로 대접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에 박열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묘는 2003년 박열의사기념공원으로 이장되었다.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는 사실에 기초한 박열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예심과 본심에서 박열과 판사가 주고받은 진술과 박열이 작성한 <한 불량 선인으로부터 일본의 권력자 계급에게 전한다>, <나의 선언>, <일하지 않고 잘 무위도식하는 론> 등 허무주의 사상을 정리한 글들이 실려있다. 그의 말과 글을 보면서 박열이 추구했던 허무 사상과 인간 평등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i****s 2017.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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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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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최근 독립운동가 박열에 대한 영화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아나키스트 박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것 같다. 최근 소설로도 박열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졌고 또 그의 삶을 담은 이책도 쓰여졌다. 이책의 저자인 '안재성'은 오래전 장편소설 '파업'을 쓴 작가인데 노동관련 저서를 많이 출간한 인물이다. 그의 손에 의해 기록된 박열에 대한 이야기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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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최근 독립운동가 박열에 대한 영화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아나키스트 박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것 같다. 최근 소설로도 박열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졌고 또 그의 삶을 담은 이책도 쓰여졌다. 이책의 저자인 '안재성'은 오래전 장편소설 '파업'을 쓴 작가인데 노동관련 저서를 많이 출간한 인물이다. 그의 손에 의해 기록된 박열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볼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이책을 읽었다.

박열은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다. 무정부주의 경향으로 아나키스트에 가까운성향을 보였는데 일본왕실의 히로히토 왕세자의 결혼에 맞추어서 결혼식장에 폭탄테러를 준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된다. 그는 일본법정에서 자신의 정당성과 투쟁의 의미를 재판정을 통해 주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함께 체포된 그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는 "만세"라고 소리쳐 외치고 박열은 재판장을 향해 웃으며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려거든 죽여라. 그러나 나의 정신이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며 도리어 사형판결에 난것에 대한 떳떳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일본 천황은 여론들을 의식하여 그들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토록 지시한다. 가네코 후미코여사는 감옥에서 의문의 사망을 한다. 자살이라고 공식 발표가 있었으나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일본을 움직인 10대 여장부'로 불리는 그녀의 묘소에는 지금도 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오고 일본인들의 방문도 많다고 한다. 박열은 22년 2개월이라는 기간을 형무소에서 보내고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이후 출소하여 한국으로 들어온다. 공식적인 정부각료로는 임명되지 않았지만 이승만과 함께 활동을 하기도 했다. 6.25전쟁중 납북되어 북한에서도 공식적인 활동을 한것으로 기록된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남한에서 활동을 하면 북한에서의 기록이없고 북한에서 활동을 하면 남한에서는 인정하지 않던 당시의 분위기속에서도 박열은 남북한 모두에서 인정받는 활동을 한것으로 기록된다. 북한에서 1974년 사망한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한국에서도 1989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한다. 

우리가 이렇게 독립국가의 모습을 가지고 살수 있었던것은 일제시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많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인것은 얘기할 필요조차 없지만 역사속에 사라진 독립운동가,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국가에서 독립운동가를 대접하지 않고 있고 오랜기간동안 친일부역자들이 정부의 요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서라도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이 후손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잊혀진 그들을 다시 역사앞에 살아날수 있도록 한것은 당연히 우리 후손들의 몫이 아닐까?

이책은 그의 일생을 역사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기록되어 박열 선생의 활동을 확인할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든다.

 

 

제목: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저자: 안재성

출판사: 인문서원

출판일: 2017년 6월 10일 초판 1쇄 

h******6 2017.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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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의 굴욕의 역사, 조선이 허망하게 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나라가 없어진 국민의 삶은 처참했고, 일본의 물적수탈, 인적수탈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이런 격랑의 시기,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조국의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까요? 유명한 분들만 기억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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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의 굴욕의 역사, 조선이 허망하게 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나라가 없어진 국민의 삶은 처참했고, 일본의 물적수탈, 인적수탈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이런 격랑의 시기,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조국의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까요? 유명한 분들만 기억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넋을 기리는 것이 우리의 자세입니다.


이 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혁명가 박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중심에서 조선독립의 당위성과 타당성을 설명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인물입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반동분자로 보였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정말 대단한 혼을 지닌 인물입니다. 과연 나라가 망했을 때, 독립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의 관점으로도 정말 넘을 수 없는 가치관을 지닌 분입니다.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오늘 날 대한민국이 존재하며,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과는 상상도 안되는 탄압,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 힘의 논리로 인한 모든 질서가 재편되던 사회에서 이런 분들의 용기는 많은 분들에게 큰 영감과 반향을 일으킵니다. 알려진 애국지사나 독립운동가 외에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인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물론 친일행각과 조국과 민족을 팔면서, 기생한 친일파들도 많았지만, 반대로 적극적인 무장투쟁이나 계몽운동, 신교육을 습득하여 일본에 맞선 분들도 많았습니다.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해, 부역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분들을 모두 친일파라고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고, 올바른 관점과 기준에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에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에서 가장 상세하게 언급되며, 강조되는 부분이 근현대사와 일제강점기인 만큼, 우리가 이 시기의 사건과 인물을 정확하게 알고, 친일과 애국의 구분을 구체화시켜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던 시기, 반대로 친일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 더이상 이런 말도 안되는 모습을 막고, 제대로된 처벌과 몰수, 구제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런 분들을 더욱 조사하고 알아야 합니다.


특히 혁명가 박열의 경우, 꺼져가던 독립의 등불을 밝혔고,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을 잘배워서, 활용한 사례로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또한 일제로부터 광복을 하고, 바로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독립운동가나 애국지사들이 강제로 납북되는 경우도 허다했고, 이로 인한 사료의 부재, 이념적인 잣대가 적용되면서 잊혀진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박열의 경우도 그랬고, 이분에 대한 정보와 언급이 부족했던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에 대한 올바른 처우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교육은 계속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바르게 이해하며, 역사에 대한 중요성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이달의 사락 m**********m 2017.06.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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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운명을 짊어진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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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8일,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최근 들어 역사가 주목하기 시작한 인물 ‘박열’이 영화의 제목이었다. 기록은 권력을 손에 쥔 이의 편이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택한 우리나라는 의도 여부를 떠나 현 국가 형태에 부합하는 인물들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반대로 사회주의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상들에 대한 억압을 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정부주의자는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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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28,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최근 들어 역사가 주목하기 시작한 인물 박열이 영화의 제목이었다. 기록은 권력을 손에 쥔 이의 편이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택한 우리나라는 의도 여부를 떠나 현 국가 형태에 부합하는 인물들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반대로 사회주의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상들에 대한 억압을 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정부주의자는 어떠할까. 영어로 아나키스트(anarchist)라 하면 사람들은 폭도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모든 형태의 국가와 질서 등을 부정하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 인간의 성향을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오만한 태도겠지만 인물 박열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무정부주의자일 듯하다.

 

저자는 박열을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라 칭했다. 그 시대에 태어난 대다수의 인물처럼 그의 가정은 가난했다. 그가 지닌 학구열을 뒷받침할 능력을 가족들에게 기대해서는 곤란했지만 그는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경성고보에 진학한 그의 인생은 순탄하게 풀리는 듯했다. 무사히 졸업했더라면 적어도 끼니 걱정은 않는 수준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는 예민했다.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것에 이끌리기도 했다. 일제로 하여금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노선을 바꾸게끔 만든 만세운동을 경험하며 그는 어용교육을 거부키로 마음먹는다. 거의 파산에 가까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선보다 더 극심한 차별대우뿐이었다.

 

1923,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천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된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내각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영화 박열1923년은 주목했다. 강력한 지진이 일본 열도를 강타했고, 민심을 수습하고자 일제는 공동의 적을 상정하기로 작정한다. 박열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모든 지배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진 그는 수차례 무기 반입을 꿈꿨다. 일왕 부자 폭살의 목적은 그러나 아무런 구체적인 시도도 시작되기 전에 무너지고야 말았다.

이야기가 만일 여기서 끝이 났더라면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실패했다평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실패가 맞다.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 싶은 마음에서 허무함이 우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그가 보인 태도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고야 말았다. 그와 뜻을 함께 한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 또한 박열 못지않은 기개를 보이는데, 그들의 나이가 고작 20대 초반이라는 사실은 믿기지조차 않았다. 보통내기들이라면 형량을 낮추고자 안간힘을 쓸 텐데, 그들이 재판정에 설 때면 마치 역할이 뒤바뀐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분명히 일왕 부자를 저격하려 들었음을 밝혔다. 그의 삶이 딱 여기까지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감옥에서 무려 22년의 시간을 보내며 그가 겪었을 고통을 상상하자니 경솔한 생각이 마구 피어올랐다. 특히 평생을 함께 하려 했떤 가네코 후미코가 (일제의 발표대로라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도 이 때였기에. 해방 이후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정치에 발을 디딘 부분부터는 마음 같아선 삭제해버리고픈 마음이 일었다. 어떠한 권력도 거부할 것만 같은 꼿꼿한 무정부주의자가 어찌 이승만과 뜻을 함께할 수 있단 말인지. 이해가 쉽지 않았다. 저자는 독자들의 오해를 사지 않고자 그가 반공을 부르짖긴 했지만 그들로부터도 장점을 읽어낼 줄 알았음을 기술했다. 납북된 이후로 그가 이승만과는 전혀 노선을 달리했던 김일성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그 증거로 꼽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심정을 지우기 힘들었다.

 

드물게 남북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인물, 박열은 그런 존재였다고 한다. 차라리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납북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요, 가족과 생이별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또한 자신의 선택이었겠지만 하필이면 역사가 왜 특정인에게 이토록 무거운 운명을 짊어지우는지, 한 생을 접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숨을 내뱉는 것뿐이었다.

이달의 사락 q*****2 2017.10.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