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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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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인구 대비 기독교인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세계에서 가장 큰 50개의 초대형 교회 중 무려 23개가 있는 나라. 전래된 지 불과 10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부흥을 이룬 나라. 그러나 그 양적 성장에 비해 영적 성숙이 여전히 더딘 점을 기독교인들조차도 인정하는 나라. 바로 우리나라다. 한국 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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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인구 대비 기독교인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세계에서 가장 큰 50개의 초대형 교회 중 무려 23개가 있는 나라. 전래된 지 불과 10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부흥을 이룬 나라. 그러나 그 양적 성장에 비해 영적 성숙이 여전히 더딘 점을 기독교인들조차도 인정하는 나라. 바로 우리나라다. 한국 교회의 역사는 세계 교회사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드러나는 특징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유성을 지닌다. 한국 교회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그리고 한국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갖고 이 책을 펼쳤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도입 초기에는 거부반응으로 인한 배타성으로 어느 정도 정착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구한 말 서양세력들은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의도를 지니고 통상과 교역을 요구했으므로 위정척사나 동학 등의 민족 신흥종교들이 기독교를 배척하려 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김대건 신부의 순교 등 반()외세 분위기 속에서 입국 초기 기독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탄압과 수모를 겪었다.

속인주의와 북방선교루트를 택한 스코틀랜드 장로교와, 속지주의와 남방선교루트를 시도한 미국 장로교, 감리교의 노력은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 속에서 빛을 발하는데 당시의 근대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한국 사회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톤 등으로 대표되는 선교사들의 이름은 역사의 기록에 남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기념되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근대 한국의 개화와 지성의 상징이다.

기독교 자체가 지닌 외래종교로서의 배타적 반민족혐의를 벗어날 수 있던 것은 동시대 여타 피선교국가나 피선교지의 경우와는 달리, 비기독교 국가세력인 일본의 식민 침략, 그리고 그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서구 세력에 의한 기독교 선교라는 이원구조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탁월한 설명에,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부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침략을 받아 기독교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했던 다른 식민지 나라들과는 달리 애국심과 신앙이 결합한 민족교회의 등장이 가능했고, 독립 이후 6.25 전쟁에서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전적인 지원, 집권에 성공한 국가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도 한국 내 기독교의 발전과 교회의 성장에 기여한 조건들이다. 안중근이나 유관순의 사례에서 보듯이 3.1운동을 포함한 독립운동 과정에서 민족교회로서의 한국 교회의 역할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부 교단의 일제 신사참배 찬성 결정, 결과적으로 독립에 기여하지 못한 유약한 사회운동, 탈세속주의적 교리에 대한 반발과 신학적 해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속된 교회 간 갈등과 분열 등의 흑역사도 분명 존재한다. 냉전 이후 이념 갈등에 교회는 동참함을 넘어 오히려 부추겼던 측면과, 정치 세력과의 연대 과정에서 기독교의 본질적 가치(속죄와 용서, 겸손과 이웃 사랑 등)가 훼손된 측면은 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 기독교인이 반성해야 한다.

 

오늘 날에는 성직자들의 범죄, 세습, 권력화, 제정 관리의 불투명과 남용 등의 사회적, 윤리적 문제와 문화 다원주의 등의 세계적 흐름에 강력 반대하는 무관용 극보수적 성향, 일부 크리스천 정치 지도자들의 실언과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와 같은 세속적 이념과 결탁한 종교는 양극화, 사유화 등의 사회 문제를 극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기독교인으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실망과 비호감을 증가시킴으로써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를 지연시키고 같은 기독교인을 실족시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 세계 교회사를 살펴보면 탄압과 억압 과정에서 기독교는 부흥했고, 배불러진 기독교는 타락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벗어나 문화적 측면으로의 전환을 한국 교회의 과제로 제시한 저자의 교훈과 더불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써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다시금 재설정하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모범이 되기를 나 자신부터 다짐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2021.07.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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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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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해하기 힘든 일도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나기도 한다.이해하기 힘들고, 답답함. 그 속에서 종교는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인지 나의 근원적 물음에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종교인들은 없었다.그저 의문을 갖지 말고 믿어야한다는 대답밖에 들은 적이 없다.그래서 한 때 교회에 발을 디뎌봤지만, 하나님께 그런 사소한 것까지 해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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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해하기 힘든 일도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이해하기 힘들고, 답답함. 그 속에서 종교는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인지 나의 근원적 물음에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종교인들은 없었다.
그저 의문을 갖지 말고 믿어야한다는 대답밖에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 한 때 교회에 발을 디뎌봤지만, 하나님께 그런 사소한 것까지 해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다.
나 스스로 그 궁금증을 풀어야했다.
그래서 그들이 있게 된 역사를 알고 싶었다.
이 책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그냥 이 책으로 한국 교회의 역사,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싶었고, 딱 그만큼의 용도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먼저 살펴본 ‘한국 기독교의 수용과 갈등’으로 우리나라에 어떻게 가톨릭교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한국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의 정착 과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특히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던 미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알렌이 내한하였다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미공사관 부속의사의 신분으로 입국하였는데, 당시 금교상황의 한국현실에서는 불가피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제중원이 한국에 직접 세워진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선교기관이었다는 글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곳을 기점으로 한국에 도착하는 미국선교사들이 활동하게 되었고, 제중원에서 한국선교의 적응훈련을 받았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나라의 선교사들이 똑같은 행동을 다른 종교의 지역에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북한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웠다.

평양은 일찍이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어졌다.
8.15당시, 즉 분단 시기의 단면만을 두고 보더라도 한국기독교의 교세,비중,영향력의 정도를 따질 때 북이 7 남이 3의 비율, 만일 서울이 지닌 모든 면에서의 중심성을 감안하지 않고 단순한 숫자적 구성비로 보면 8대 2까지 그 영향력의 편재를 논하는 학자들도 있다. (59p)

그리고 장로교단 수만 얼핏 160개, 혹은 200개에 가깝다는 통계, 다양한 교파에서 또 분열된 상태의 교단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개신교는 몇 개의 분파로 나뉘었을거라고 막연히 짐작했었는데, 생각하던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열된 교단이다. 교회라고 다 같은 교회가 아닌가보다.

서평을 쓰고보니,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보게 된다면 답답해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읽었고, 그 정도의 역할을 이 책이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s*****a 2010.07.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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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지 못했던 교회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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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백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하여 민족의 종교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한국의 기독교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의 역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서정민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기독교의 수용과 한국기독교의 성숙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부분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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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백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하여 민족의 종교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한국의 기독교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의 역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서정민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기독교의 수용과 한국기독교의 성숙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부분 어떤 통로를 통해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시작되었고 전래되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정확하게 한국의 기독교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어느 점이 부족한지, 앞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지적해 주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인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량은 25%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한국의 교회는 많지만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 기독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솔직히 짚어보고 회개해야 할 부분은 회개해야 하며, 성장과 성숙에로 한걸음 더 성큼 나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이 땅에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함으로 다시 한번 부흥의 불꽃이 불타오르기를 소원해 본다.
YES마니아 : 골드 y*****1 2004.06.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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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돌아온 서정민 교수, 한국교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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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정교유착 심각한 수준" 서정민 교수, 한국기독교역사학회서 발표   이범진 연세대 서정민 교수가 1년간 일본에서의 연구를 마치고,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한규무)에서 교계의 사회참여를 주제로 발표했다. ▲ 서정민 교수     © 뉴스파워 이범진이날 발표에서 서 교수는 188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사회참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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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정교유착 심각한 수준"
서정민 교수, 한국기독교역사학회서 발표
 
이범진

연세대 서정민 교수가 1년간 일본에서의 연구를 마치고,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한규무)에서 교계의 사회참여를 주제로 발표했다.

▲ 서정민 교수     © 뉴스파워 이범진
이날 발표에서 서 교수는 188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사회참여의 특성에 따라 구분했다. 특히 1997년부터 2007년까지를 “진보적 크리스천 그룹의 정치일선 참여와 부분적 실패, 진보, 보수 간의 극렬한 이데올로기 대립의 기독교시대”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 시기에 심각한 문제는 기독교 민주화운동 세력이 예언성을 상실한 것”이라며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던 사람들이 현실정치가 지닌 타협성 속에서 도덕적 해이를 낳았다”며 사회적 신망까지도 상실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 교수는 “보수의 복음주의 기독교세력은 ‘친미반북’을 내세우고, 진보의 사회참여 기독교 세력은 반미친북의 성향을 보인다”며 “같은 한국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 반대의 사회사상의 목표를 공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경향이 곧 한국 기독교가 신뢰와 영향력을 상실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

또한 그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를 ‘다수, 보수 복음주의계의 현실 정치 영향력 형성의 기독교시대’라고 정의했다. 그는 “현재 한국 정부는 친 기독교정부임이 자명하다”며 그 구심점에는 보수적 기독교 세력과 뉴라이트 리더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교수는 ‘한국기독교’의 이름으로 사회운동의 노선이 일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히고 “총체적으로 한국 개신교는 한국 일반사회의 인식 수준에서 최하의 평가에 놓여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한국의 주류, 다수 기독교는 정교유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교회 내부적으로도 신학적, 신앙적 기준보다는 교회 정치의 논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신앙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할 정도라는 것.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예언자적 역할을 해야 하는 부문이 신학”이라고 강조한 서 교수는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신학연구는 예속적이 되어 비판력과 예언성을 지니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하여 서 교수는 “새로운 자기점검과 예언자적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 운동의 분위기를 구축하는 것이 선결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발표회를 가진 한신대 신광철 교수(중국문화정보학부)는 ‘탁사 최병헌’ 연구 현실과 전망에 대해서 발표했다. 
▲ 발표자 신광철 교수와 논평자 이덕주 교수.     © 뉴스파워 이범진

최병헌에 대한 연구를 그의 호를 따서 ‘탁사학’이라고 이름붙인 신 교수는 그를 “한국신학의 선구자, 한국 종교사학의 비조, 목회자, 교회행정가,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면모를 통해 한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평하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 교수는 “한국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탁사학’이라는 말은 벌써 생겼을 것”이라며 “지금은 그의 사상을 갈무리하는 학회조차 결성되어 있지 못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병헌에게 붙는 ‘토착화신학자’라는 수식에 대해서도 “인정하기 어렵다”며 “탁사의 신학을 전체적으로 규정하는 말로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논평을 맡은 감신대 이덕주 교수는 “최병헌에 대한 전기를 쓰고 싶어도 그가 남긴 기록이 완전 한문이라서 아직 넘지 못한 산맥으로 남아있다”며 한계를 밝히기도 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일부 최병헌에 대한 비판이 “일리가 있다”면서도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교만을 경계한 겸비의 모습”이라며 요약, 분석, 정리의 작업도 소중한 학문의 과정이라고 덧붙이고 “신학이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7일 새문안교회 언더우드 교육관에서 열린 이번 발표회는 윤경로 교수 등 약 4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김흥수)는 오는 4월에 ‘한국기독교의 역사’ 제3권이 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p******e 2009.03.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