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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일본 메이지 시대 말기 도쿄의 대학생을 그린 청춘 교양소설이라고 불리운다. 앞서 읽은 <풀베개>와 달리 초반부터 황당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재미에 쏙 빠져 들어갔다. 순박한 청년 산시로(三四郞)는 구마모토에서 올라온 시골 청년으로 대학 진학을 위하여 도쿄에 상경한다. 지적 탐구 등 대학 생활에 대한 희망을 가득 안고 말이다. 도쿄행 열차 안에서 만난 여자와 나고야에서 내리게 된다. 여자가 혼자서는 불안하다며, 숙소를 안내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산시로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용기는 더욱 없어서 대충 대꾸했다. 허름한 여관에 들어갔는데, 이 여자와 자신은 일행이 아니라는 해명도 못 한다. 산시로가 먼저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여자는 “등을 좀 밀어드릴까요?” 한다. 괜찮다고 해도 나가지 않고 오히려 들어온다. 당황한 산시로는 욕조에서 뛰쳐나온다.
여자는 떠나면서 “당신은 어지간히 배짱이 없는 분이군요.”한다.(p13) 산시로는 그 여자와 헤어진 후 곰곰이 생각하는데, ‘23년간 숨겨왔던 약점을 단번에 들켜버린 심정이었다.’(p14) 또 다른 짙은 수염의 사내는 “후지산은 일본 최고의 명물이야. 그것 외에 자랑거리라곤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후지산은 옛날부터 있던 자연경관이니까 뽐낼 것도 못 되지. 우리가 만든 게 아니거든.” 산시로는 러일전쟁 이후에 이런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p21)
도쿄에 온 산시로는 온통 놀랄 일 뿐이었다. 전차의 땡땡 울리는 소리에 놀라고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사람을 보고 놀란다. 도시의 파괴와 건설의 격렬한 활동에 놀란다. 여태까지 배운 것으로는 놀라움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멍해지고, 두렵고,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뭐가 뭔지 모를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찾아가 도움을 청하라는 노노미야를 만나게 되고, 학교에서는 요지로와 친구가 된다. 요지로는 ‘살아있는 머리를 죽은 강의로 가득 채워봤자 희망이 없다’며 일단 전차를 타는 게 가장 초보 단계이며 제일 쉽다고 한다. 강의는 쓸모없지만, 도서관은 중요하다고 한다. 대단히 수완이 좋은 요지로는 히로타 선생의 식객이다. 대학에서 서양인 교수를 들이려고 하자, 그들은 융통성이 없다며, ‘신시대의 청년들을 만족시켜줄 만한 사람을 끌어와야'(p154) 한다고 말한다. 요지로는 히로타 선생을 대학 교수로 만들겠다며, <위대한 어둠> 이라는 논문을 쓰고, 학생들 모임을 주최하느라 분주하다. 열심히 의견을 내놓고 활약하지만, 끝에 가서는 일을 망친다.
‘광선의 압력’을 연구하는 노노미야, ‘철학의 연기’를 뿜어대는 히로타 선생, 노노미야의 여동생 요시코, 노노미야를 존경하는 미네코, 미네코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하라구치(原口), 산시로는 이들과 전시회, 연극 등을 구경하며 어울린다. 노노미야, 산시로, 미네코가 삼각구도인가 생각 했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Stray sheep(길 잃은 양, 미아)을 중얼거리며 산시로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 놓고, 미네코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산시로는 그렇게 요지로에게 휘둘리고 빌려준 돈을 떼이기도 하고, 마음에 두었던 미네코와 어긋났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방황하지 않는다. 충동적이지 않고 절제하는 자아상을 보여준다. 교양소설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오히려 요지로가 이끄는 대로 어울리며 도쿄 생활에 적응을 해 나간다. 아직까지 ‘절실하게 생사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p240) 산시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세 가지의 세계 사이를 넘나든다. 그 중 세 번째 세계 찬란한 봄날처럼 빛나는 웃음과 환성, 아름다운 여성상이 있는 심오한 세계는 산시로가 접근하기 어렵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이 세계는 결국 어긋났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서 좌충우돌했던 도쿄 생활에 적응하면서 그 후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100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언제나 청춘의 시기에 고민하고 마음 쓰는 대상은 거의 비슷하니까. 도쿄 대학에 있는 ‘산시로의 연못’에 가면 나쓰메 소세키의 고뇌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까. 흔적이야 송두리째 사라졌겠지만, 언제 다시 도쿄에 간다면 작품속의 배경이 된 그 자리를 돌아보면서 내리쬐는 햇살과 공기를 한 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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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구마모토에서만 살아온 주인공 산시로는 대학교에 진학 하여 도쿄로 상경 한다. 대학교에서 요지로를 만나고, 그의 스승인 학자 히로타를 만나 사회를 처음 접한 풋내기 지식인으로 학문과 사회에 대해서 탐구하게 된다. 또한,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공학 과학자 노노미야를 알게 되었다. 노노미야와 히로타 또한 아는 사이다. 학교에서 처음보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미네코를 히로타의 이사 날에 우연찮게 만나게 된다.
사랑은 100년 전이나 현재와 다름이 없습니다. 동양과 서양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 또한 다름이 없지요. 다른 소세키가 말 한 대로 모습만 바뀔 뿐입니다. 설레는 사랑 때론 냉철하고 한편으론 설레는 양면적인 사랑, 혹은 셀 수 없는 다면적인 사랑은 표출되는 방법만 조금 다를 뿐이다.
소설 산시로는 시골에서 상경한 풋내기 대학생의 성장 이야기라고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소세키 소설은 삶을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맛이 있습니다. 팍팍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낯이 붉어지는 판타지 대신 일상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성장을 보이고 별다른 수식 없이 담백하게 표현한 소설이 산시로입니다.
추천하고 싶은 독자는 올해 수능을 보고 대학 진학 예정인 고3 수험생을 포함해서 대학(원)생입니다. 특히 지방에서 서울권으로 대학을 위해 상경한 이들이 보면 더욱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과 만족을 느낄 것이에요.
대학생들은 수험생활로 억눌렀던 연애 욕구를 자유로이 표출하고 자 신의 꿈꾸던 어른들의 확인한다. 그리고 미래를 계속해서 고뇌하고 탐구하며 자기 자신을 확립해 가는건 예나 지금이나 만찬가지 인데요. 젊은 그들의 두 마리 토끼 사냥은 산시로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전개 과정 속에서 소년도 아니고 밥벌이 하는 직장인도 아닌 그 중간의 위치에 선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고등학교에서 느낄 수 없었던 좀 더 진지하고 의미있는 경험과 생각을 하며 자아를 성립해 갑니다. 필자도 이런 경험이 있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의 연애를 포함한 사회 활동은 현 시대 평범한 젊은이들의 유희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그 시대 소수에 지나지 않은 엘리트인 지식인들에게 맞는 유희를 행하지만 현재 대학생들은 다소 세속적이고 부담없는 놀이를 통해서 관계를 맺어갑니다.
이러한 면에서 당대 젊은층은 엘리트의 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소세키의 소설을 통해서 충족하기도 하지만 이질감 또한 느낍니다. 현재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서 소시민의 엘리트들의 생활을 엿보고 그들과의 만남을 꿈 꾸는데요. 소세키 소설은 엘리트들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극적이고 과장되며 격렬한 현대 드라마의 모습은 소세키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게 차이점입니다.
이 소설의 중심축은 히로타와 노노미야를 통해 학문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와 콧대 높은 당대 여성 미네코에 대한 산시로의 애정으로 대변되는 사랑이야기입니다. 산시로와 이 둘의 관계를 허영심 많지만 미워할 수 없는 문제아 요지로가 긴밀하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줍니다. 독자가 오직 고차원적 학문을 하는 히로타와의 만남이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부드럽게 하며 산시로의 미네코 집 방문 이유를 요지로가 제공합니다.
능력에 비해 작은 일을 하는 잠룡인 히로타를 대학교수로 만들기 위해 일을 벌이는 요지로와 외국에서는 인정받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 노노미야를 통해 이 소설은 청춘에는 빼놓을 수 없는 사회와의 만남에 대한 고민이 소설에서 자주 나와서 단순히 연애 소설로 국한하기도 문제가 있습니다.
동양의 최첨단 시설을 경험하고 적응하는 주인공은 틈틈이 오는 고향에서 오는 편지는 참 대조적으로 느껴집니다. 어머니의 편지가 좋을 때도 있고 반갑지 않을 있는 주인공 산시로의 마음이 최신 문명을 접하는 그의 감정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소세키 소설은 흡입력 있고 드라마틱한 장면이 자주 보이지 않지만 지하철을 탈 때 사람을 기다릴 때 틈틈이 보기 좋은 소설임을 산시로를 보며 알 수 있습니다. 산시로는 순진한 소년과 사회를 알고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어른 그 사이에 위치한 젊음의 사랑과 미래를 담백하게 그려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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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입니다. 그래서 닉네임도 나쓰메 소세키이지요. 산시로는 곱게 자란 시골 도련님이 대학에 진학해서 동경으로 와서 겪는 성장기입니다. 책이 출판된지 100년이 지났지만, 그때도 지금도 청춘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나 봅니다. 고등학교때까지, 정해진 가치만을 따라서 살다가 처음 자신의 삶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혼자 지어야 되는 환경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주인공이 처음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친구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멘토로 삼을 만한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훌륭한 어른으로서의 성공적인 삶의 시작점으로서 어떤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책이 아닙니다만, 그 시기를 고민하고 방황하며 보낸 사람이 읽기에는 "아, 나도 그랬었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것,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담담하고 현실적인 옛 추억을 떠오르도록 해 주는 그런 소설이지요. 모든 일에 자신감 넘치고 뒤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당당하게 달려가는 친구 성공한 삶은 아니지만, 나름 후회없는 삶을 보낸 고고한 선비같은 인생 선배 그리고 우연하게 만난 여인과 그 여인에 대한 짝사랑. 연적,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해 혼자 고민하는 시간들, 그리고 결국, 주인공과도 연적과도 아닌 제 3의 남자와 결혼해버린 그녀의 이야기... 재미있습니다.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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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읽고 싶었던 책 '산시로'. 그런데 왜 빨리 빨리 읽히지가 않는지....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 '산시로'는 전에 읽었던 여러권의 책에서 언급이 되어 읽고 싶었지만 "지금"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청춘의 문'의 1권과 많이 비슷한 '산시로'의 도쿄 상경기와 대학 생활이 왜 차분하고 느리게만 느껴지는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러자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쿠마모토보다 도쿄는 넓지. 도쿄보다 일본은 넓고, 일본보다....." 하고 잠시 말을 멈추고 산시로 얼굴을 쳐다보니 귀를 기울리고 있다. "일본보다 머릿속이 넓겠지요."라고 말했다. "얽매이면 안돼. 아무리 일본을 위한다고 해도 지나친 편애는 오히려 해를 미치게 될 따름이지." 이 말을 들었을 때 산시로는 정말로 구마모토를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p.18)
하늘은 맑게 개인 가운데, 서쪽 끝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엷고 빨갛게 뿜어와 산시로의 머리 위까지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듯이 생각되었다. 옆으로 비치는 햇볕을 반쯤 등에 받으며 산시로는 왼편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 숲도 똑같이 석양을 반쯤 등허리에 받고 있다. 거뭇거뭇한 푸른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는 물들인 것처럼 빨갛다. 굵은 느티나무 줄기에서 쓰르라미가 울고 있다. 산시로는 연못가에 와서 웅크리고 앉았다. (p.24)
드디어 내가 찾던 연못이 나왔다. 도쿄의 한쪽에 있는 '산시로 연못'이라 불리는 이 연못은 이 소설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고 한다. 그 전엔 그냥 이름없는 연못이었나 보다. 이 연못은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인공의 청춘이 시작되는 곳으로 이야기의 시작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도쿄 생활과 대학 생활에 기대를 안고 오지만 산시로가 보는 실제의 생활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연못가에서 본 여자에게 반하고 그 여자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는 산시로의 생활은 그저 현실일 뿐이다. 풋사랑에 아파한다기 보다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그 사랑은 끝나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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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라디오에서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말을 들었다.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했던가? 솔직히 말하면 이 말은 소설 뒤에 써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렇고 일본은 이름을 성으로 말할 때가 많은데 나쓰메 소세키는 이름인 ‘소세키’라고 한다고 했다. 정말 친근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가 만든 말이 많다고 했다. 그것을 지금까지 쓰고 있기도 하다고. 아는 말이었는데 적어두지 않아서 잊어버렸다. 나쓰메 소세키의 어린 시절에 대한 것을 봤을 때는 예전에 본 적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다. 어머니는 두번째 부인으로 나쓰메 소세키는 5남 3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친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하고 양자로 보내졌다. 양부모한테도 그리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며 얼마 살지 않고 다시 친부모님한테 돌아왔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나쓰메 소설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본 것은 《마음(こころ)》이다.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 책 《산시로》를 볼 때 떠오른 것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이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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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그의 책을 처음 듣게 된 것은 다른 일본 문학작품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만약 제가 옳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을 때 그에 대한 평론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현대 문학 작품의 나쓰메 소세키 - 산시로 ,그 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 을 접하게 되었네요.
이 글은 다이스케에 관한 글입니다. 처음부터 종잡을 수 없는 내용..
느낌은 왔습니다. 확 와닿지를 않았으니까 쉽지 않겠구나. 산시로는 명작 이라서 그런지 제가 읽은 문학사상사 뿐만 아니라 한국외대 출판사, 민음사, 등 다양한 출판사에서 번역을 이미 했더군요. 내용이 어렵지는 않지만 (구성 연얘소설이라는 점 복잡해도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그렇지만 저한테는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지하철 역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맞은 편에 앉은 어떤 여자와 동행하게 되지요 ( 여자는 타지라서 잘 모른다고 숙박을 할만 한 곳을 추천합니다. 주인공은 학생모의 마크를 이제 떼어 냈을 정도로 젊습니다. 사회 새내기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이제 대학생? 일반인 정도 우리 나라 나이라면 군대 생각할 나이라 피식 웃음 짓게도 합니다. 그럴리가 없겠지만요.)
전차를 이용해서 고베? 어느 곳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여자가 동행하고 이동을 하네요. 결국 같이 내려서 ( 행선지가 우연히 같음) 이동합니다. 여자에게 숙박할 곳을 권하게 되고 ( 자신 본인도 잘 모릅니다 .그냥 갔을 뿐) 결국 동침하게 됩니다.( 하지만 말그대로 잠만 잡니다. 어떡해 보면 여자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핀잔을 주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문제가 비록 있어보이지도 않습니다만 도중에 여러가지 표현은 그가 영문학도이고 공부하는 여러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개 교수가 지루하고, 대학교오면 여러가지 될 줄 알았더니 별 거 없더라는 우리 일반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만 그건 저만 그런게 아니겠죠?) 자주 딴 짓하는 모습도 보이고, 험담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다양한 표현도 보이네요.영어에 의한 양에 대한 표현도 보이구요. 이 후에 현대화 되어 가는 일본의 풍경도 얼핏 보입니다. 전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등에서 여럿 묘사하고 있군요.
사랑에 크게 관심 없는 다이스케지만 그는 아이러니 하지만 이것에 집착합니다. 결국 짝사랑에 관한 건데 이에 관한 청춘의 모습을 묘사하네요. 책을 읽으면서 가끔 저도 그 시절로 이동합니다. 이제는 가끔도 생각하기 힘들 만큼 먼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간직은 하고 있으니까요. 더 닳으면 추억하기조차 힘들려나요? 산시로도 그런 누구나 겪으면서 함부러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 이겠죠. 묘사등이 세밀하고 이상적입니다만 읽기에 쉽지만은 않습니다. 저에게는 그리스인 조르바만큼이나 힘이든 소설이었습니다. 다 읽지도 못한 것도 반성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