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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토리의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따뜻하면서도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감동이 아닐까한다.
'컬러 오브 워터'의 내용은 폴란드에서 유대교 랍비의 딸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해와서, 인종갈등이 격화되던 시절에 흑인과 두 번 결혼해 열두 명의 아이를 낳아 제대로 키운 '루첼 드와지라 질스카'(레이철 데버러 실스키를 거쳐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으로 이름이 바뀐다)의 인생역정 이야기이다.
사실 인종 차별, 종교적 문제, 아버지의 성적 학대, 가난과 편견 속에서 12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챙기는 가정사의 무게가 조금 침침하게 마음을 짖누른다. 6.25 전쟁을 겪고 아무것도 없는 이 땅에서 억척스럽게 우리를 키워내신 우리네 어머니의 이야기도 이 못지않을 터.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겁다.
추언 : 이 책을 읽은것이 한달 전이다. 그때의 감흥을 살리기가 쉽지않다. 리뷰는 책읽은 바로다음에 써야 감칠 맛이 살아나는데... 그때 가제본을 읽었기에 리뷰를 바로쓰지 못했고,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가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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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다섯개까지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100주 연속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그들의 한숨과 그들의 웃음과 사랑, 낭만과 아픈 청춘이 마치 나의 일인 양 가슴 아프고 행복하고 그랬다.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안젤라의 재>, <엄마의 은행통장> 이 책들은 내가 참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권하는 책이다. 공통점을 굳이 살핀다면 어려운 환경, 많은 가족, 그리고 착하고 책임이 무거운 조숙한 아이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이들이 내뿜는 삶에 대한 진한 애착과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 때로는 원색적일 만큼 절절한 인간의 욕망들이 책 속의 인물에게 깊은 유대를 갖게 하기도 해서 다 읽고 책을 덮을 때 쯤 너무도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책 <컬러 오브 워터>도 역시 그렇다. 부제는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이다. 제목 그대로 지은이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어머니 루스는 백인이다. 어린 시절 많은 형제(12명)들 틈에서 어쩌다가 어머니를 독차지할 기회가 오면 그렇게 행복하던 제임스는 점점 자라면서 어머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꺼려한다. 어머니가 흑인이기를 바라던 제임스는 점점 자라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방황을 한다. 폴란드 이민자이고 유대의 랍비의 딸인 루스가 어떻게 흑인과 결혼하여 그리 많은 아들과 딸을 두게 되었는지의 과정과 제임스의 성장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이 책에서 어머니 루스는 성인처럼 미화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열 둘이나 되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늘 돈에 쪼들리고 어머니와 피부색이 달라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을 돌보았고, 기어이 그 많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서 그야말로 사회의 건실한 일꾼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 아픔과 분노, 혼란과 방황 역시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서 더욱 그녀가 인간적이고 친밀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초연할 수 있다는 것, 누가 나를 욕하더라도 그것이 내 잘못 때문이 아닌 이상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게 온 힘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일 것이다. 제임스의 어머니 루스는 그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가져야할 덕목 역시 그 용기일 것이다. 이 세상의 여러가지 일들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같은 우리들이 가져야할 것 역시 용기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 소신을 가지고 자식을 키울 용기, 자식에게 필요하다면 과감히 멀리 떼어놓을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그것은 내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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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컬러 오브 워터>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뿌리 깊은 인종주의와 함께 한 아픈 성장기 -유대인 가족에서 기독교 가족으로 이 책은 단순한 흑인 차별의 인종주의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종주의라 할 때 우리는 단순하게 미국에서 당연시되었던 흑인 차별, 또는 유색인종 차별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의 인종차별을 발견한다. 바로, 백인 어머니와 흑인 자녀들이 흑인 할렘가에서 살아갈 때, 백인 여자가 흑인들의 도시에서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첫 번째 인종주의적 관점이 하나 있다. 두 번째는 백인 여자가 흑인 자녀들을 데리고, 백인의 거리로 들어섰을 때, 백인들이 백인 여자에게 들이대는 무서운 시선에 대한 것이다. 두 관점 모두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인종차별과의 결을 달리 한다. 백인 여자가 중간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백인은 흑인 자녀들을 그것도 12명이나 데리고 다닌다. 세상의 시선이 고울 수 없다. 백인 여자는 백인들의 거리에서 모멸과 조롱을 당한다. 흑인들의 거리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흑인들은 백인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흑인 유대인 랍비를 남편으로 맞이한, 유대인 백인에 대한 관점이다.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종교 지도자인 랍비 남편은 놀랍게도 아내에게 폭력적이었으며,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이웃 여자들을 희롱의 대상을 삼았다. 그리고 끝내는 아내와 이혼하고, 자녀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이웃 여자를 데리고 도망가서 살았다. 이 책은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흑인 막내 아들이 어머니의 흔적을 좇아 가면서, 어머니와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삶의 궤적을 따라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다시 생생한 삶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어머니를 위한, 위대한 헌사다. "요즘 흑인 아이들이 그 당시 서퍽에서 흑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좀 봤으면 싶기도 하구나. 맙소사, 넌 믿지 못할 거다. 수도도 없고 바닥도 안 깔리고 욕실도 없는 헛간 같은 판잣집에 살았지. 포장된 도로도, 전기도 없었고, 가끔 마메와 난 가게 뒤쪽의 더러운 길을 따라 걸어갈 때가 있었는데 대부분 길이 끊기면서 숲으로 연결되어 있었지. 거기 살았던 흑인들의 인생이 바로 그랬어. 길이 없는 거야." (23쪽) 이렇게 비참한 삶이 어디 있을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 같지도 않은 곳에서의 흑인들의 삶. 물론 우리네 어른들의 어린 시절도 비슷했다. 가난했고 비참했다. 타테라 불리는 랍비 아버지는 동료 랍비가 오면 그 사람을 먹이고 재우고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드리라고 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시켰다. 하지 않으면 혁대를 풀어 등짝을 때렸다. 엄마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자녀들도 백인 엄마를 가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어느날 저자는 자신에게 던져진 친구들의 비웃음을 엄마에게 다시 토스했다. "엄마, 비운의 뮬라토(흑백혼혈인)가 뭐예요?"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니?" 엄마가 물었다. "책에서 읽었어요." "그런 책은 더 읽지마. 그런 말 쓰면 안 돼." "난 흑인이예요, 백인이에요?" "넌 인간이야." 엄마는 잘라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는 거야." (102쪽) 어쩌면 어머니의 이 말이 이 책이 주는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메시지가 아닐까. 우린 흑인이나 백인, 황인종이나 중국인, 베트남사람이 아니라, 인간이다. 색깔로 구분되어지는 그래서 차별의 대상이 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단 한 명의 존귀한 인간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다. 1957년생인 저자는 아프리카계 유대인 랍비 아버지와 폴란드계 백인 어머니의 열두 번째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2명의 자녀들은 거의 대부분 석사 졸업을 하였고, 속한 지역에서 사회 지도자가 되었다. 시 보건부 부장, 뉴욕시 교육위원회 전문 심리학자, 지역 의료국장, 펜실베니아 대학 미국사 학과장, 조지아주 의료과 과장, 등 쟁쟁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자녀들의 면면이다. 사회적 차별을 이겨내고 남편도 없이 이렇게 열두 명 모두를 훌륭하게 자녀를 키워낸 어머니는 위대하다. 저자는 대학 1학년 때 "인종주의는 우리가 졸업할 무렵이면 사라질 문제야"라고 말했지만,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자마자 날아오는 병처럼 그에게 와서 부딪쳤다. 인생에는 인종문제가 복잡했고, 계급, 역사, 정치, 교육 등 다양하게 얽혀 있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온갖 차별로 가득 차 있다. 우리나라도 이데올로기의 노예로, 계급의 노예로, 빈부의 노예로, 외모의 노예로, 노동의 노예로 차별을 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차별 당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유일한 희망은 그 차별에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모든 차별은 연좌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까지 해도, 부모의 정치적 사상에 따라 연좌제가 시행되었다. 육이오 전쟁의 여파는 북한으로 가서 살게된 가족으로 인해 남한에서 취직도 하기 힘든 쇠사슬을 가지고 있었다. "마메는 늘 2층 침실의 작은 흔들의자에 앉아 새를 바라보셨지. 창턱에 빵 부스러기를 놓아두면 새들이 모여들어 먹었고 마메는 그 새들한테 노래를 불러주었지만 그런 다음에는 늘 쉬이 하며 쫓아내서 다시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했지. 그럴 때 늘 마메가 부르는 짧은 이디시 노래가 있었다. '페이게레, 페이게레, 게이 아 벡' '새야, 새야, 날아가거라.'" (239쪽)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창틀에 부어진 빵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인간은, 창틀을 떠나야 한다. 다시 날개를 움직여 하늘로 날아올라야 한다. 자신의 날개짓으로 세상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 빵 부스러기에 미련을 두고 계속 그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저자는 달아나려 했다. 자유를 획득하는 것과 달아다는 것은 다르다. 인종 차별, 유색인종이라는 사회적 편견 앞에 저자는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피부색이라는 경계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커다란 장애였다. 그걸 없애기 위한 나의 해결책은 거기서 떨어져 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난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달아났다." (288쪽) 우리는 많은 경우 자기 속으로 침잠하고, 사회에서 달아난다. 그건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창틀에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12명의 흑인 자녀를 차별 사회 속에서 건져 올린 위대한 백인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그리는 위대한 흑인 아들. 아름다운 나눔을 하는 아름다운 가게에 우연히 들러 4천원에 사서 읽은 책이다. 책은 그 가격에 머무르지 않는다. 감동은 크고 울림은 깊다. 세상은 여전히 갇혀 있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를 갈구한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이 책은 그 자유를 향한 또 하나의 날개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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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통해 만난 이 책은 내 인생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은 책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자신의 어머니인 루스의 삶과 자신의 삶을 교차시키면서 이어나가는 이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나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첫번째 놀라움은 이 이야기 전체이다.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삶도 삶이지만 그의 어머지이자 놀라운 12남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루스 맥브라이드의 삶은 이게 정말 에세이가 맞나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소설적인 삶의 그것이다. 두번째 놀라움은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였다. 이 글은 정말 편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실제로 책을 쓴것이 아닌 이야기를 녹음해놓은 것 처럼 이야기를 술술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자신의 삶을 글로 적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랄까. 다른 책이라면 이런 느낌이 책의 형식을 깨서 어쩌구 저쩌구라는 비평을 할 수 도 있었겠지만 이 책의 내용과 장르와 성격은 글쓴이의 필체와 너무 딱 맞아떨어졌다. 세번째 놀라움은 내가 알게된 그 옛날의 시대상이다. 루스 맥브라이드와 그의 여덟번째 아들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살아왔던 1920년대 부터 20세기 끝까지의 미국은 사실을 담고 있는 만큼 나에게는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루스가 레이철 실스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던 미국 남부의 이야기였다.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를 쳐다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목매달아 죽이고 여자를 추방한다니… 그 당시에는 당연한 이야기였겠지만 나에게는 마치 다른 행성의 이야기같은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이 책은 다양한 놀라움을 전해준다. 내가 언급했던 감동들은 이러한 놀라움 속에 전해져오는데 가끔은 약간은 묵묵하게 표현된 이야기체가 가슴을 더 울리기도 했었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도 분명히 재미있게 읽은 나중에도 몇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책 중에서도 상위에 링크될만한 책이였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책을 교과서로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정직한 책이란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입소문이 널리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정말 정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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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정통 유대교 랍비 아버지와 소아마비로 왼쪽이 마비가 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루첼 드와즈라 질스카, 또 다른 이름 레이첼 데버러 실스키. 루첼은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함으로써 심적 고통을 많이 겪으면서 성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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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아들이 백인어머니에게 바치는 글이라는 부제와 이 책의 제목인 컬러 오브 워터 즉 물의 색이다. 물에는 색깔이 없다. 담기는 물체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 색을 내는 것이 물이다. 이 책속의 주인공인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은 폴란드의 유대교 랍비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랍비였던 아버지가 떠돌이 랍비생활을 그만두고 장사를 하게 될 때 까지 계속 이사를 다녀야 했고 소아마비를 앓았던 어머니와 그녀에게 성추행을 하던 아버지를 참아내며 살아야 했었다. 흑인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집안에서는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하니 그 당시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었는지 설명해 준다. 더군다나 완고한 유대교 랍비의 집안에서 흑인과의 결혼은 용납 될 수 없었던 일일 것이다. 그녀가 흑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8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편의 죽음으로 재혼한 그녀는 4명의 아이를 더 출산하여 12명의 아이를 길러야 했다. 흑인남자가 백인여자를 쳐다만 봐도 목매달아 죽였다던 시절에 흑인남자와 결혼을 하고 12명의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그녀의 삶은 힘들었지만 유쾌하게 살아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인간의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을 것이다. 백인이지만 흑인사회에 살아야했고 백인과 흑인 양쪽에서 조롱과 비난을 받아야 했던 그녀이지만 그녀는 자신을 향하는 수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렸다. 12명의 자녀를 위해 돈 들지 않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게 한 그녀의 교육방법이 있었기에 자녀들이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자녀들이 자라오면서 무수히 흑인과 백인의 차이에 대해 물어 올 때에도 그녀의 피부는 그냥 옅을 뿐이라고, 하느님의 피부색도 물빛이라고 말하던 그녀의 속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인종간의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미국에는 흑백혼혈의 대통령이 탄생 했다. 루스가 죽기 전에 지금의 대통령을 보았으니 더 감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은 인종문제를 다룬 책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12명의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 루스의 삶을 볼 수 있었기에 더 감명 깊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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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힘든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건,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란 험한 광야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상처를 떠안고도 멀쩡할 수 있는건, 그 상처를 온전하게 품어줄 따뜻한 가족과 집이 있기 때문일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처진 어깨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어깨를 쭉 펴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가족은, 가정은, 사람들에게 그런 곳일거다. 내가 마음 놓고 상처를 털어놓고 쉴 수 있는 곳.
저자 맥브라이드의 어머니 루스는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유대인인 아버지는 오직 미국으로 오기 위해 장애를 갖고 있는 어머니와 결혼했다. 사랑없는 부모님의 삶,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봐야하는 현실, 때때로 끔찍하기까지 했던 아버지의 성적 학대는 루스를 점점 어둡고 소심한 아이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리라. 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자신의 가족들이 떠오를거고 가족이 떠오르면 아픔의 기억이 물밑듯이 그녀를 덮쳐올테니 말이다.
그런 그녀가 결국 아들 앞에서 자신의 진짜 이름을 털어놓으면서 과거를 이야기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죽어버린 과거는 생각보다 끔찍하고 어두운 것이였다. 든든한 지지기반이 되어주어야할 가족마저 루스에게 등을 돌렸다. 그 가엾고 조그마한 여자아이는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떠한 믿음 하나로 집을 뛰쳐나왔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목숨보다 귀하게 여길 13명의 자식들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검은색 사이에서 너무나 눈에 띄는 하얀 백인이였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친구들의 어머니와는 다른 어머니, 그리고 흑인인 친구들과 다른 자신을 보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 루스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그들은 마침내 의심을 버리게 된다. 어머니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되며 자식들 역시 어두운 과거를 버리고 내일이라는 새로운 날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백인인 루스가 자신의 흑인 아이들을 지켜내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점점 더 어려운 문제들이 다가오는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했다. 믿음을 가진 어머니는 더욱더 강했다. 신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믿고 자식들을 사랑한 루스는 결국 자신만의 가정을 단단한 땅 위에 올려놓았다.
"오, 얘야......하느님은 흑인이 아니란다. 백인도 아니셔. 하느님은 영(靈)이시지."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에는 아무색도 없다. 매일 마시는 물도 그렇고, 숨쉬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는 공기 역시 그렇다. 그리고....루스의 굳은 믿음과 신념 역시 색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