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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재미있고 감칠 맛나는 이런 책이 어디서 톡~ 튀어 나왔을까? 가히 세헤라자데가 풀어내는 천일야화만큼이나 재밋는 우리 옛날 '니야기'가 은은한 옥(玉)마냥 책 칸칸이 숨겨져 있어 책장을 넘길 때 마다 그 고아함에 눈이 즐거운 책이다. 근래 서권기 문자향(書卷氣文字香)나는 책을 보기 힘들었는데, 가히 책에서 느껴지는 청고고아(淸古高雅)한 기운으로 마음이 상쾌해지고 저자에 대한 존경이 절로 우려나온다. 우리네 선조들의 여유와 해학이 이정도 였음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840쪽짜리 두꺼운 책이지만 한번도 지루하거나 쓸데없는 잡설이란 생각조차 하지않은 대단한 책이다.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간호윤 박사의 20년 연구를 집대성하였다는 이 책은 표지에서 "이야기에 웃고, 이야기에 울던 옛사람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며 지향적 명제를 제시하고는 "한국인의 삶과 사상에서부터 문화와 역사, 민중의 희로애락까지 한 권으로 꿰뚫는 우리 고소설의 모든 것" 이라는 상투제목(precede)을 달았다. "즐거운 상상과 해학으로 가득찬 한국 고소설 천년의 세계" 부제(deck)와 어울려 제 가치를 인증하는 명징한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한 마당 고소설론은 소설이 아닌 론(論)인데도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을까! 간박사의 연구와 사고가 마치 능청스러운 입담처럼 긴장감을 풀게하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소설사 4대 사건'은 마치 르포기사처럼 시대의 여백을 소개하고 있다. '고소설 주요 배경지와 관계지역'이나 '고소설 주요 배경·집필·판각 지역'을 지도로 보여주는 연구물은 전공자가 아닌데도 한 눈에 그 의미를 알아챈다. 세책본과 방각본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는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가는듯한 읽을거리에 눈을 부릅뜬다. 왜냐고? 음란서생의 포스트가 보이므로... 고소설 관련용어도 흥미 그 자체이다. 강담사, 전기수, 책괘, 책비, 책사, 서사, 녹책, 전책 등 딱딱할 수 밖에 없는 용어 설명을 어떻게 이리 감치게 풀어갈 수 있는지, 간박사의 연구와 필력이 어우러진 내공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고소설계의 중요인물'편만 하나의 책으로 엮어도 팔리는 책이 될 듯 흥미롭다. 특히 '고소설을 최초로 정리한 김태준'의 삶은 암울한 근세와 현세에 걸쳐 민중적 의식으로 살다사라져간 한 천재의 아픔이 안타까움으로 전해져온다.(그는 공산주의자로 지리산 빨치산들을 대상으로 특수 문화 공작을 하다가 국군토벌대에 체포되어 1949년 11월 총살되었다).
'고소설 4대 작가'로 시작하는 두번 째 마당 '작가론' 또한 수준 높은 읽을거리로 기억된다. 김시습, 김만중, 박지원, 김소행이다. 앞의 세 분은 학창시절 짧은 국문학사에서 들은 이름이지만 '죽계 김소행'에서 그 생소함에 시간을 들여 한번 더 읽어본다. 서출 출신의 비통한 슬픔과 울분으로 마초적 소설 <삼한습유>를 썼다고 되어 있는데 그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폭넓은 역사적 조망과 박식함, 소재의 확장, 문체의 현란함이 돋보이는 장쾌한 스케일의 한문 장편소설로 눈맛이 여간 아니라고 하니 한번 찾아 읽어볼 일이다. 이 소설은 중국에 수출한 최초의 소설이기도 하다.
세 마당 작품론에서 우리나라의 고소설이 몇편인지 묻는다. 총 859종이지만, 이본이 많아 4천 편에서 기만 편까지 추정하고 있다. 그 중 금오신화, 설공찬전, 임진록 등 '별쭝난 고소설'(별쭝나다: 말이나 하는 짓이 아주 별스럽다.)은 일종의 요약설명으로 연구노트를 보는 느낌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패러디소설 <상사동기>였다. 젊은 연인의 사랑이야기가 마치 애잔한 국악 한 가락을 듣는 듯이 가슴을 파고든다. 재미있는 물음도 있다. 우리 고소설 중 현대 작가들이 가장 패러디를 많이 한 소설은? '허생전'이다. 악인형 주인공이 등장하는 <강로전>이나 여인들의 미모전쟁을 다루는 <투색지연의>도 관심을 끄는 소설이다. 최고의 품격소설로 꼽은 <구운몽>을 초 3때 몰래 읽고 잠을 설친 조숙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최고의 로맨스 소설은 당연히 <춘향전>이다. 대학 때 얌전한 춘향전이 아닌 애로틱 춘향전을 찾아 읽던 그 대목을 찬찬히 또 읽어본다. 그 누가 고소설이 재미없다 했던가? 춘향전과 변강쇠가 이 부분(378~381쪽)을 읽어보라. 그 대담함에 절로 민망해 질것이니... 최고의 군담소설 겸 베스트셀러는 <조웅전>이라는데 읽어본 기억이 없다. 대신 애로틱 소설로 꼽은 <주장군전>과 <관부인전>은 어릴 적(?) 읽었으니 조숙하긴 했나보다. ^^ 이외에도 정말 재미있는 고소설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며, 이본으로 본 국문소설과 한문소설 베스트 10에 꼽히는 고소설은 필독이라할 정도로 읽을거리다.
네 마당 배경론은 그동안의 국문학과 관련된 나의 지식을 테스트한다. 최초의 국문소설은 <설공찬전>인가 <홍길동전>인가? 섣부른 지식에 길들어진 난 설공찬전이 발견될 때의 신문기사를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많은 헛점이 있음을 간박사는 지적하고 있으며, 그의 첨언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은 <오륜전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안계가 넓혀진다. '고소설 속 최고의 추녀와 추남은?', '고소설 속 불한당들은?', '고소설에서 악인과 선인의 결말은?' 등 11 항목의 흥미꺼리로 두꺼운 책이 가질 수 있는 지루함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당연히 고소설에 나오는 전법이나 도술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으나 등장설명 뿐인 밋밋함에 약간 아쉬움을 느낀다.
다섯 마당 문화론에서는 '속담이 된 고소설'을 훝고 지나가자, '그림이 된 고소설'의 컬러풀한 그림들이 활자에 지친 눈에 활기를 준다. 여덟 폭 병풍에 대한 설명이 바로 소설이다. 명성황후가 간직했다는 자수 <춘향전도>에서 눈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단아한 춘향과 꽃미남 몽룡의 여유롭고도 몽환적 러브스토리가 풍요한 가을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소설이 되고 한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놀이가 되고 설화가 되고 창가가 되고 가사가 되고 굿과 탈춤이 된 우리의 고소설은 어쩌면 너무나 친근하게 가까이 있어 그 중요성을 잠시 망각한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저 시절 니야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저자는 <춘향전>의 후언으로 맺음말을 마무리 한다. "책 보는 법이 책을 다 보앗스면 무슨 감상이 이서야만 인간이라 하는데 여러분 이 책을 보고 감상이 엇더하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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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암~좋은 책인데..선생들한테 참 좋은 책인데..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우리 고소설(이하 고소설)>에 대한 보고서 같은 책인데, 또한 아주 재밌기도 한데 일일이 모두 소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개를 안 하자니 주옥같은 <고소설>을 소개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뜬금 없겠지만 <고소설>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줄 아시는가? 고등학교 교과서를 제외하고 <고소설>을 소개하는 책들이 손으로 꼽을 정도라서, 또 <고소설>을 모티브로 쓴 소설조차 손으로 꼽을 정도라서 솔직히 별로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무려 '859종'이나 된단다.
이 가운데에는 '1종 1편'도 있지만, <조웅전>과 같은 경우에는 무려 4백 편에 달하는 '이본(異本)'이 있고, <삼국지>만 하여도 <언삼국지>, <삼국지연의>, <무쌍언문삼국지> 등 2백여 편에 가까운 '이본'이 있는데, '859종'이란 숫자는 이를 '1종'으로 본 숫자란다. 만약 평균으로 어림잡아 '1종'에 '5편씩'만 잡아도 무려 4천여 편이 넘는 <고소설>이 있는 셈이다. 여러분은 얼마나 읽어보셨는가?
물론 이 책에 이 모든 <고소설>을 소개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고전문학의 진수를 정말 알차게 읽어볼 수 있도록 작품 하나하나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소개는 각 작품의 소개를 하는 것보다 글쓴이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픈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 <소설>을 천대하였더냐.. 아무래도 우리는 역사적으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그닥 발달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 소설장르를 배울 때에도 외국의 것을 먼저 접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우는 것 같다. 특히나 <고전>쪽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명작소설>이라는 것도 어린이나 어른이나 대상을 가릴 것도 없이 <세계명작>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외국의 것을 읽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소설>장르를 허황된 내용을 다뤘다는 까닭도 있겠지만, <소설>장르가 당시 사회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비판하는 기능까지 있다는 점에서 당시 <지배층>이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대며 검열(?)을 한 까닭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고소설>에도 당시 사회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의 소설이 있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소설가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김시습>, <김만중>, <박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뒷탈이 두려워 이름조차 밝히지 못한 <작자 미상>도 참 많다.
우리 고소설의 특징을 말하자면.. 한편 대체로 <우리 고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배계층은 대개 당시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내용을 <한자>로 썼고, 피지배계층은 당시 사회질서의 모순과 지배계층의 비리를 <한글>로 썼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고소설>이 이에 따라 구분지을 수는 없으나 대체로 이런 경향을 띄었다는 점에서 기억해둘만 하다.
또 하나는, <우리 고소설>은 유독 <현실-꿈-현실>을 오가는 '몽유계열 소설'이 많은데, 이는 당시 모순된 사회질서를 비판하거나 지배층인 양반의 무능, 심지어 임금을 잘잘못을 비판할 때 유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 불만을 품은 이가 대놓고 비판을 하면 뒷탈이 두렵기 때문에 <작가 미상>이라고 숨기기도 하지만, 행여 들키더라도 <꿈속에서 한 일>이니 억지로 엮지 말라는 <안전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이만큼이나 우리 나라는 <소설>에 대해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결과 <활발한 문예활동>을 벌일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정조'임금마저 <문체반정>이라하여 <소설>을 쓰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였다니 우리 <고소설사>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최고이자 으뜸인 인쇄술을 갖추고서도.. 더욱 아쉬운 것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활자 인쇄술>을 갖추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대중화시키지 못하고 사장시켰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뒤진 인쇄술로도 <르네상스>를 이끌어 <문예부흥>을 이룩했고, 17~18세기에 급속한 발달로 이어져 현재 세계를 이끄는 자리에 오른 점을 보았을 때 정말 아쉽고도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것을 더욱 아끼고 사랑할지어다 그런데 이미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서 옛 상처를 아파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가려운 곳을 긁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고소설>도 수적으로도 외국의 것 못지 않고, 질적으로도 외국의 것에 못지 않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고소설>에 대한 몰이해는 여전하다는 점이다.
이렇게나 많은 우리 고소설을 통해 나름의 고찰과 연구를 하지 않고서 어찌 외국의 것에만 그리 열을 올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과거에는 어쩔 수 없다손치더라도 왜 현재에도 이런 고찰과 연구에 열을 올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적당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아니 실제로는 한창 연구 중인데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훌륭한 일에 홍보가 부족하냐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남을 탓할 처지는 못 된다. 나름 아이들과 <고전문학>을 공부하여서 꽤나 안다고 자만하고 오만했던 나이기에 이 책을 훑어보고 또 훑어보면서 가슴 한켠에 무거운 짐을 둔 것마냥 짐스럽기도 하였다. 이 책을 읽은 기회를 계기로 삼아 꾸준히 <고전문학>을 또 더 나아가 <우리 고소설>을 접해볼 작정이다. 짧은 시간에 헐레벌떡 읽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었다.
곁에 두고 한쪽 한쪽 주석을 달려 읽어볼 작정이다. 구할 수 있다면 고소설을 탐독하며 연구도 할 작정이다. 물론 아이들과 수업할 때 필요하기도 하여서 그런 것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제 나라의 것조차 섭렵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것을 탐독하는 것만으로 교양을 쌓을 수는 없다고 본다. 이래저래 <한국다운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나서 무척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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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책을 안 읽는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승객을 만나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닌 듯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과거에서부터 책을 멀리한 민족일까요? 아마도 어렸을 적에 어른들께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라 졸랐던 기억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보니 읽을거리를 구할 여유가 없었으니 들어서라도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풀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선조들이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명한 것은 단순히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서적으로 만들어 보관하려는데 있었을까요? 활자는 서적을 대량 생산해서 널리 유통시키기 위하여 발명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양한 종류의 책이 사람들 사이에 읽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간호윤교수님의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받은 느낌은, “두껍다! 우리 고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800쪽이 넘게 풀어낼 꺼리가 있었던가?”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고소설이라고 해서 떠오르는 제목들은 홍길동전, 호질, 금오신화 등등 교과서에서나 얻어들은 몇 편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이종을 포함하면 4,000여편이 넘어가고 이종을 제외하더라도 모두 860여편의 고소설이 현존하고 있다는 간호윤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옛날 사람들의 소설에 대한 관심이 어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방대한 종류의 고소설이 여염에서, 저자에서, 심지어는 구궁궁궐에서까지 광범위하게 읽혀진 이유는, “첫째는 사람 사는 세상일을 그려 냈기에, 둘째는 살자면 자연히 부닥뜨리는 슬픔과 즐거움, 얻고 잃는 것에 대한 경계가 있기에, 셋째는 현명하고 어리석으며 착하고 악한 사람을 명확히 가려내서다.”라고 저자는 서유영을 인용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에서 “ 소설을 써요?” 는 후카에리의 질문에 대하여 “소설을 쓸 때, 나는 언어를 사용하여 내 주위의 풍경을 내게 보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환해나가, 즉 재구성을 해.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나라는 인간이 이 세계에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1권 104쪽).”라는 덴코의 답변을 통하여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품의 구성을 위한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라는 안톤 체홉의 말을 인용하기도 합니다(1권 559쪽). "소설이란 ‘작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지껄이는 이른바 큰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작은 이야기’ 정도로 볼 수 있다.“(20쪽)는 저자의 생각처럼 소설의 비중을 작게 잡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자가 ”곡절을 만들어서 인정물태를 극진하게 표현(千曲萬折 以極乎 人情物態)“했다는 유만주의 소설비평을 인용하면서 ”소설이 허구적 창작물이라는 기본 인식과 함께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며, ”소설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일상생활의 묘사’나 ‘현실 반영의 산물로서 소설을 짐작케 한다.“고 정리하고 이는 점을 보면 독자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이유를 분명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보니 어렸을 적 동화책을 읽기 시작해서 청소년기에는 자연스럽게 소설로 옮겨 가서, 탐닉하다보니 신춘문예당선작을 목빼고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한 해 동안 읽은 소설이 손에 꼽아볼 수도 없던 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변했나 생각해봅니다.
앞서 소설이 무엇이고 소설가가 왜 소설을 쓰는지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소설은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그 시대의 독자들이 독서취향을 반영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세월 따라 변하는 소설계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면서 소설을 멀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 주독자층인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판타지소설은 스토리에 쉽게 올라탈 수 없어 빠져들기 어렵다는 등의 변명이 되겠습니다.
다시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로 돌아가면, 우리의 고소설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엄청난 사료를 챙겨 분석한 결과를 방대한 연구서로 묶어 낸 간호윤교수의 집념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한 마당 < 고소설론>에서는 고소설의 정의하고 고소설이 탄생한 배경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고, 두 마당 <작가론>에서는 고소설 4대 작가로 일컬어지는 김시습, 김만중, 박지원, 김소행 등의 행적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당을 요약한 글에서 “시대에 억눌려 온 저들의 존재 증명은 바로 소설을 창작하는 일이었다.”라고 적은 간호윤교수의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각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실 소설만이겠습니까? 글을 쓰는 일은 무언 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남기려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세마당 <작품론>에서는 고소설사의 흐름을 요약하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고소설을 독자의 흥미를 돋울 수 있게 해설하고 있어 비교적 쉽게 읽혀지는 부분입니다. 네 마당 <배경론> 고소설의 다양한 배경을 살펴 당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으며, 고소설과 관련된 쟁점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섯 마당 <문화론>에서는 고소설의 영향을 받은 다른 예술문화부문, 예를 들면, 속담, 그림, 소설, 시조, 한시, 노래, 놀이, 설화, 창가, 가사, 굿․탈춤 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소설이 영화 혹은 연극으로 재탄생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은 것처럼 고소설 역시 다른 예술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쳐온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던 소중한 문화유산인 고소설을 총괄하여 정리한 간호윤교수의 땀의 결과인 <아름다운 고소설>은 우리 고소설의 아름다운 모습을 새삼 일깨워내고 있습니다. 논점을 하나로 묶어내다 보니 방대해진 분량이 읽는 사람에게 부담이 된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특히 고소설을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옛체 그대로 인용한 부분은 읽어 내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고소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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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재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개그, 유머 등으로 폄하되거나 축소되어버리는 이야기들의 ‘재미’에 대한 잣대는 냉혹하다. 관객과 독자들에게 이야기들은 드라마틱하고 자극적인 볼거리가 아니면 재미없다라는 한마디로 평가절하된다. 현대사회의 재미의 의미퇴색과 협소해지는 재미를 고소설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해본다. 저자의 고소설을 대하는 애정이 매우 흥미롭다. 나는 이를 재미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혹시 저자를 우스갯거리로 느끼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전달이 될까 매우 우려되지만 그의 고소설에 대한 애정어린 태도는 즐겁게 고소설을 대하는 저자의 생활에 배인 연구자세를 느낄 수 있었고 바로 그런 저자의 열정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의 첫번째 매력은 고소설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고소설의 주요 배경을 표시한 대동방여전도를 볼 수 있다거나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을 금오신화 로 보는 데 대한 문제제기가 학계에서 논란이 있었으며 이제 학계에서조차도 이 논의에 대해서는 진부하게 생각할 정도라는 점 등은 우리가 교과서로 배우는 반사실적인 것에 대한 충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알려지지 않은, 그렇다고 많이 밝혀진 것도 아닌 고소설의 작가들의 이름들을 볼 수 있는 이 상당한 양의 연구본은 저자의 고소설에 대한 오랜 연구의 결과물임을 느낄 수 있는데, 독자로서 쉽고 가볍게 읽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그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소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빴을텐데 저자는 역사적 배경과 작가론까지 짚고 작품을 읽어내려가면서 우리가 서양의 문학사보다 무지했던 곳을 긁어주기에 바쁘다. 나는 15명의 여귀가 등장한다는 ‘강도몽유록’(작자미상)에 대한 부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고소설의 내용은 모두 흥미롭지만 열다섯의 여성주인공이 등장하고 귀신이 되어서야 소리내어 말하는 병자호란 당시의 여러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 저자의 말대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렇게 많은 여성들의 삶과 한을 짐작했을 ‘강도몽유록’의 저자가 여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해보고 병자호란 시의 개입된 남성사대부들의 실명이 거론 되는 것으로 보아 그 중 한 지식인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본다. 이 책의 두 번째 매력은 책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고소설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고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장르문학으로서의 이야기의 즐거움도 있지만 저자가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저자는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와 연극을 인용하여 고소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거운 책 치고는 쉽게 읽히고 저자가 말하는 고소설이 왠지 더 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도 하다. 이 책은 어느 고소설도 전문을 싣고 있지는 않다. 제목이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이고 목차에 고소설의 제목들이 나열된다고 해서 전문을 볼 수 있는 고소설은 없다. 줄거리 혹은 인용문, 번역 혹은 이본의 쉬운 인용문 등을 통해 우리는 고소설의 일부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옛 이야기들의 매력이 반감되기보다 오히려 호기심이 고개를 치민다. 사료로서의 옛그림, 고지도에서부터 역사를 요약한 간략지도와 저자가 보기 쉽게 정리한 표에서 현대 영화 포스터와 연극의 한 장면까지. 저자는 고소설에 대한 이해를 글자와 글자간이 아닌 역사와 문화 속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역사가 현재 안에 있음을 누차 강조한다. 이 책의 세 번이자 가장 큰 매력은 국문학의 역사라고 믿고 있던 우리같은 입시위주 세대들에 비판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문학계에서는 진부한 논쟁거리가 이미 되어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 문학을 독서하는 우리가 한국문학에 대해 이토록 무지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 책의 요점들은 적어도 역사가 밝히지 못한, 혹은 역사가 왜곡한 우리나라 고소설의 왜곡된 역사도 존재할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자극한다는 점에 매우 의의가 있다. 과연 알려진 저자가 맞는 것인가. 이야기를 지은 것과 한문 혹은 한글로 옮긴 이가 달랐을 수도 있으니 원본에 대한 의구심도 있을 것이고 이는 아마 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논쟁거리였을 것이다. 역사의 사실성에 대한 비판점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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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보물이다. 이 책을 몰랐더라면, 모르고 계속 국어교사로 살아야 했더라면, 그래서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나는 참 허전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난 것이 내 남은 교사 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으로 살아나게 될지, 벌써부터 가슴 설렌다.(무지무지 잘난 척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제대로 익히기만 한다면.)
1. 한 마당-고소설론
모르던 것, 어중간하게 알던 것, 제대로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알아야 하는 것, 알면 더 좋은 것 등을 알게 해 준 부분이다.
나는 지난 세월, 학생들에게 고소설을 가르치면서 가르친 내용이 정말 적었다는 생각을 한다. 고작 그것밖에 말하지 못했다니, 그 정도밖에 아는 게 없었다니,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간 제자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이렇게나 해 줄 이야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가장 뜨끔해 하면서 깨우쳤던 것-필사본, 방각본, 활자본의 관계들. 경판본과 완판본의 의미. 우리의 고소설을 제대로 대접할 수 없게 한 역사적 배경들.
2. 두 마당-작가론
김시습, 김만중, 박지원-인물의 일화를 제대로 많이 알고 있으면 수업이 아주 풍요로워진다. 앞으로 이 세 사람의 작품을 가르칠 때는 이 책의 자료를 잘 정리하고 활용할 것. 내가 재미를 느끼는 수업이라면 학생들도 당연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김소행-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사람이다. 더 공부해야 한다.
3. 세 마당-작품론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고소설이 있는지 몰랐다. 나는 참고서만 보고 살았던 거다. 내가 따로 작품을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막연하게 우리에게는 별 작품이 없노라고 여겼다.(무식해서 용감했던 증거) 이제는 그런 말 안 할 것이다. 적어도 이 책에서 언급하는 작품들을 본 연후에야 무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작가가 보여주는 줄거리를 보면서 나는 무안했다. 이렇게 수월하게 다 보아도 괜찮은 것인가. 그러면서도 나는 이 줄거리만으로 수업에 응용할지도 모른다.(학생들 앞에서는 원본을 다 읽은 척하면서, 너희들은 이런 책도 안 읽지? 하면서)
4. 네 마당-배경론
흥미진진한 토론 수업의 재료가 되는 글들 모음이다. 중학생들보다는 고등학교 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너무 전문적이지는 않게,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시도를 해 보는 수업으로. 대학생들에게는 논문 주제가 될 수도 있겠다. 내용을 넉넉히 보완한다면.
그 중에 아홉 번째의 '고소설에 쓰이는 모티프는?'은 내게 각별한 자료가 되었다. 나는 이제 우리의 고소설 문화를 절대로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나를 겸손하게 해 주었다. 모르면서 함부로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
5. 다섯 마당-문화론
나로서는 읽는 재미는 덜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다른 영역에서 2차 자료로 삼을 수 있도록 제시해 주는 1차 자료 모음집 형식이다. 분량과 예의 방대함에 놀랄 따름이다. 모름지기 학자라면 이렇게 부지런해야 한다는 증거가 되겠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자료들. 가만히 책장만 넘기면서 이 자료를 얻을 수 있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한번 읽고 덮을 책이 아니다. 사전처럼, 시시때때로 찾아보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내게로 와 주어서 너무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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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는 사형당한 뒤, 원님의 명에 따라 송장으로 젓갈을 담근 뒤 그것을 그 어미에게 보낸다. OO 어미는 처음엔 선물인 줄 알았다가 사실을 알고는 기절하여 지옥에 떨어진다. -Page 631 OO에 들어가 우리 고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소설의 결말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우리 아이들도 읽었을 것이고 나도 읽었었는데 고 소설의 원본에 나오는 결말 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부분과 좀 차이가 있어서 말이다. 좀 잔인한 것 같으면서도 처절한 결말은 어쩌면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흐름을 말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만만치 않은 분량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다. 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오래전 이었는데 실로 짜릿한 지식의 보고를 전달하여준 책이다. 단순하게 고소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이야기의 구성 또한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잘 따라 갈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더 큰 매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던 것 그리고 알았던 것 중에 잘 모르고 시험을 보기위해 달달 외웠던 기록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해진다. 그럼 저자는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여 주고 있을까?
책의 구성은 다섯 마당으로 구성하여 진다. 첫 마당은 고소설론이라 하여 우리가 고소설을 어떻게 구분하고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정치권에서 바라본 고소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도입배경과 주변 국가의 고소설에 대한 조사 조선시대 고소설의 위치 등을 짚어 보면서 고소설의 생성과 지식인의 비판 그리고 각 시대별 군주가 보인 고소설에 대한 태도 등을 알아본다. 두 마당에서는 고 소설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작가들 중에 저자가 가려 뽑은 네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아쉽게도 모두 양반이고 아니 김소행은 서출이라고 했던 것 같다. 지식인에 대한 기록만이 남아있어 민간에 있을 많은 작자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 좀 아쉽거나, 혹은 원작자는 아니지만 글을 쓴 사람이 원작으로 혹은 구전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원작으로 오해 할 소지도 있다는 말을 남긴다. 세 마당에 들어가면 많은 우리 고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와 모르고 있었던 소설들 그리고 알고 있었던 것 중에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 소설들이 의미하는 바를 저자의 눈으로 설명하여 준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고 많은 소설의 해설과 배경을 듣는 듯한 느낌과 우리 소설이 보여주는 선조들이 바라는 이상향과 꿈을 조금씩 엿볼 수 있는 공간이라 할 것 같다. 네 마당으로 가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가에 대한 질문, 즉 최초의 한글 소설에 대한 고찰, 고 소설 중에 최고의 추남 추녀 찾기, 흥부전을 한문으로 써보기, 흥부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악인으로 나오는 우리 고소설의 주인공들의 결말은 어떤지 등을 작가와 함께 찾아보는 시간이다. 즐겁기도 하고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잘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마지막장은 아니 마당은 우리 고소설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과 문화적 관점을 돌아보게 만든다. 소설이 너무 유명하기에 만들어진 속담.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 그리고 노래와 시조 등에 영향을 준 우리 고소설을 접하면서 책이 마무리 되어진다.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고소설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내게 술술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정리 되어 있으니 말이다. 소설에 대한 정의를 책의 문장을 인용해 이야기 해보면 ‘ 소설이란 민간에 떠돌고 있는 신이한 이야기를 취하여 허구적 구성으로 인정물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욕망의 서사체이다.’(26쪽) 소설은 한 사람의 상상이 아니라 그 시대에 떠돌던 이야기의 집합이란 이야기 이다. 우리의 고소설역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한자로 기록을 남기던 시절 일반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소설 즉 한글 소설이 만들어지고 그도 저도 아닌 문맹을 위해서는 글을 읽어 주고 돈을 받는 전기수까지 등장하였다니 우리 선조들은 참 이야기를 좋아하고 즐겨 하였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일반 백성에게 이렇게 인기 있었던 소설도 조선시대 학자들에게는 그렇게 좋은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책만 보는 바보라는 아호를 가진 간서치 이덕무는 읽은 책이 수만 권이요 배낀 책이 수백 권 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소설의 배척은 일반 유교를 숭상하던 선비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작가는 거짓과 공론을 꾸민다는 점에서 평자는 이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독자는 시간을 허비하고 경전을 등한시한다는 점에서(185쪽) 배척을 하였다고 한다. 이덕무의 소설에 대한 독설 이외에도 조선시대에는 당파와 명분 그리고 천주교와 서양문물에 해한 배척으로 소설을 금지하고 금서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는데, 그 모티프를 살펴보면 아마도 우리가 소설을 읽고 있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강렬한 희원이 빚은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중세 사회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들이기에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모티프를 동원하여 마술적 상상력을 펼친 것으로 이해된다. (660쪽) 백성들은 지배계급의 억압과 금서를 통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전기수를 통해서나 책을 임의로 배껴서라도 책을 돌려 읽었다. 자신들이 가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은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힘없이 무너진 일본의 침략에 임금이 도망가고 관리들은 그 속에서도 수탈을 일삼고 가족이 흩어지고 왜구의 잔인함 속에서 만들어진 소설 임진록은 그런 열망을 가득히 담은 소설이라 하겠다. 이 소설에서 사명대사가 일본에 건너가 쇠로 만들어진 방에서 고드름을 매달고 있었다는 이야기 우리 선조들이 바라던 현실의 세계에서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마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그렇게 강성한 나라를 원하였던 것이 표출 되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여 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오신화, 시험을 보기 위해 그렇게 도 외웠던 김시습의 금오신화 역시 금서이었고 김시습은 이야기를 만들자마자 석실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왜? 아마도 임금이 오해하고 역모로 몰아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이 땅의 임금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284쪽) 등의 이야기는 자신이 임금 앞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고소설은 이런 많은 백성들의 탈출구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지금도 우리는 많은 책을 읽고 그 감상을 만들고 그 감상 속에서 작가와 시대상을 그려 보곤 한다. 우리 많은 소설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는 얼마가 되었는지 시험 보기 위해 우리 고전을 외우고 했던 것 이외의 이야기는 너무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을 느낀다. 다행히 접하게 된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우리 선조들의 삶과 삶의 방식에 연관 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의 문화가 되었고, 우리의 이상향이 되었을 것이며 나나 내 후손들에게 도 전달 될 것이다. 지금처럼 우리 고소설이 홀대 받지 않는 다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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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상상과 해학으로 가득한 한국 고소설 천 년의 세계... 오늘에서야 만나다.^^
저자는 “고소설은 선인들이 살고 간 흔적이요, 남을 만한 것들 중 일부라 해도 좋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그 말에 적극 공감을 표하고 싶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를 떠올려보면 호랑이가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지렁이가 환생을 하고, 동물들이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 현실에선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깨달음, 풍자, 권선징악이 고스란히 녹아있지 않았던가.
나쁜 사람을 결국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 너무도 당연한 결말이었지만 어린 시절 나에겐 매일 밤 듣고 또 들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 재미난 옛날이야기였던 기억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즐거운 상상과 해학이 가득한 한국의 고소설이 이렇게 많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고소설에 대한 이해는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것이 전부였기에 기껏해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들 중에 흥부전, 금오신화, 설공찬전, 사씨남정기, 구운몽, 장화홍련전, 양반전, 심청전, 춘향전과 같은 몇몇 작품을 알고 있었던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고, 그중에서 원전을 읽어본 것은 거의 없었기에 당연히 고소설의 정확한 이해나 궁금증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펼치고 초반에는 부끄럽지만 생소한 단어와 어투, 한자 때문에 문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했고 때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네이버로 단어 검색을 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수록 우리의 정서가 녹아난 고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더군요. 요즘소설에선 느낄 수 없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칠맛(?), 정겨움, 구수함이라고 해야 할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한 줄, 한 장 넘길 때마다 고소설에 대해 저자가 풀어내는 작가, 작품, 배경에 대해 체계적인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며 읽다보면 처음 팔백페이지나 되는 책을 언제 읽지 했던 것도,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소설에 대한 선입견도, 어느새 사라지고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한편을 읽고 난 느낌에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을 읽는 동안 저절로 고소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고소설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서 아쉽고 책속에서 저자가 살짝 엿보게 해주었던 고소설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며 나를 괴롭히고 있다. 아기가 맛있는 사탕을 먹다가 빼앗긴 것처럼 살짝 엿보기만 한 이야기들로 인해 고소설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각설하고 고소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고 궁금한 게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또한 우리 소설을 다시 보는 계기를 갖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앞으로 차근차근 아름다운 우리고설을 한권씩 꼭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해본다.
그런데 한 가지 나처럼 고소설을 처음 접하는 초보들을 위해 어려운 단어나 고어에 대해서는 주석이나 각주를 달아서 풀이를 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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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기 쉽지는 않다. 그리고 두껍다. 현대에 사는 대부분이 이런 두꺼운 책을 머리 아파가며 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제목 또한 우리 고소설 이라고 한다. 너무 진부한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도 한다. 그리고 현대의 이 복잡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간단 명료한 것을 주던지 이리 저리 복선을 까는 것을 주지 않으면 흥미를 못 느끼는 세상 아닌가? 그렇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서 아 우리 고소설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 책을 크게 우리 고소설을 다섯 마당으로 구분하여 그 속에 녹아 있는 맛을 보여주려고 한다. 한 마당은 고소설론, 두 마당은 작가론, 세 마당은 작품론, 네 마당은 배경론, 다섯 마당은 문화론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 고소설에 대해서는 이 정도는 알아야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저자는 먼저 고소설이 무엇인가? 물어보고 있다. “음 고소설이라. 이것 옛날 소설아니야? 조선시대에 있었던 그 무엇이더라. 맞아 김시습의 금오신화와 허균의 홍길동전이 아마 최초의 한문 소설이고, 최초의 한글 소설이었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지나간다. 그래도 고소설도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본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현실세계에 있음직한 가공의 사실을 이야기로 꾸며낸 허구적인 것이다. 그리고 요새는 꼭 현실세계에 국한하지는 않는다. 즉, 가상세계에 대한 것도 소설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소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소설이란 민간에 떠돌고 있는 신이한 이야기를 취하여 허구적 구성으로 인정물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욕망의 서사체이다.’그러므로 현재에 정의되고 있는 소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고소설은 아마 천편일률적이며, 대부분 권선징악의 주제로 삼는 것이 특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 또한 고소설의 시대적 배경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고소설은 보통 조선 시대에 나왔기 때문에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여기서 고소설의 생성 공간, 출판, 관련 용어, 주요 인물에 대한 것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두 마당은 작가론인데, 여기에서는 4명의 주요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그들이 지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하고 있다. 3명에 이미 국사책에서 나오신 유명한 분들로, 김시습, 김만중, 박지원이고, 나머지 1명은 김소행이라는 다소 생경한 분이다. 저자가 중요한 인물로 다룬 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은 내가 받은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여하튼, 여기서는 대표적인 작가에 대한 설명을 위주로 각 작가의 고소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세 마당은 가장 긴 작품론으로 여러 작품에 대한 소개가 주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고소설의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고소설을 기원은 저 신라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그 시초로 <온달> 로 보고 있다. 사실 온달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책 또는 드라마에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고소설의 시초라니… 그리고 우리나라 고소설의 만개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조선 중기, 후기, 말기로 많은 고소설들이 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본으로 본 한문, 국문 소설 베스트 10을 뽑은 것 또한 흥미거리라고 할 수 있다. 네 마당은 배경론으로 고소설의 배경을 흥미 있는 질문을 통해서 알려 준다. 예를 들어 흥부전의 한자는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또는 최초의 국문 소설은 <설공찬전> 인가 <홍길동전> 인가 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조금 더 고소설에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기가 가장 재미있게 읽는 부분이다. 다섯 마당은 문화론인데, 우리 고소설이 우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 지 알려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속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소설, 그리고 그림, 소설, 시조, 한시, 노래, 놀이, 설화, 창가, 가사, 굿 또는 탈춤에 반영된 고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현대 시대와 비슷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에서도 유명한 소설은 이것의 하나의 문화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고소설에도 동일 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 고소설에도 아름답고 멋진 소설이었음을 알 수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소설을 우리 것으로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우리의 고소설은 점점 잊혀지게 될 것이다. 만약 현대의 시대에서 우리의 고소설이 환영받지 못한다면, 이것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재구성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보기에도 다시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우리 고소설이 매우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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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국 고전문학을 전집으로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책 안 읽기로 소문난 우리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면 일단 긍정적인 일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는 학창시절 외국 고전문학을 읽으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고, 지루하게 느껴진 부분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책 위에 소복히 쌓였던 먼지를 털어내며 다시 그 시절 그 추억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한다. 고전문학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아마 우리들 ‘인간’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내용은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사랑, 욕망, 배신, 선(善), 악(惡), 아름다움, 쾌락, 행복 등.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나라가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인간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추구하는 것은 같은 것 같다. 외국 유명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줄줄이 꿰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 고소설에 대해서는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와 작품의 개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당시 작품을 원문 그대로 읽은 적은 거의 없었다. 최근 ‘문학동네’에서 우리 고전소설을 전집으로 출간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얼마전 ‘홍길동전․전우치전’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을 읽어보았는데 세심한 편제와 해설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원문과 한글 번역문으로 되어 있어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고소설은 현재의 글과 말로 기록된 것도 아니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 이외의 나머지 작품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사전(事前) 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고소설이 서구 고전문학에 비해 잘 안 읽히는 것처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우리 고소설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 책들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접했을 때 기분은 한 마디로 나만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책은 총 다섯 마당으로 되어 있다. 우리 고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어서 ‘마당’ 이라는 표현을 쓴 지은이의 센스가 재미있다. 한 마당 ‘고소설론’ 에서는 고소설이란 무엇인지, 우리나라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생소하게만 들리는 유양잡조 사건, 설공찬전 사건, 명기집략 사건, 소설 수입 금서령 사건 등 고소설사 4대 사건, 지도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 고소설의 배경지와 집필지에 대한 이야기, 궁금하기만 했던 필사본, 판각본(방각본), 구활자본(딱지본), 강담사(講談師), 전기수(傳奇叟), 요전법(邀錢法) 등 고소설 관련 용어에 대한 설명, 그리고 소설 수입 금서령을 내린 정조, 소설을 시로 배척한 이상황, 소설을 세 가지 헷갈림이라 질타한 이덕무, 소설을 팔아 신선이 된 조선 제일의 책 장수 조신선, 고소설을 최초로 정리한 비극적인 천재 김태준 등 고소설계의 중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두 마당 ‘작가론’ 에서는 고소설 4대 작가로 일컬어지는 김시습, 김만중, 박지원, 김소행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소설은 대부분 한문 소설이고 작가들 또한 한문에 능한 양반 계층으로, 서얼 혹은 대단치 못한 벼슬을 지낸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8백여 종이 넘는 고소설 중 이름이 밝혀진 작가와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빈약하다고 한다. 그나마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으로라도 당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당시를 살았을 그네들의 고단한 삶이 4명의 작가론에서 읽혀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반면, 또한 좀처럼 읽을 수 없는 고소설 작가에 대한 작가론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세 마당 ‘작품론’ 에서는 고소설사의 흐름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 최초의 금서였던 ‘금오신화’, 필화를 부른 ‘설공찬전’, 최초의 민중소설 ‘임진록’, 바보가 등장하는 ‘온달전’, 패러디 소설 ‘상사동기’, 자본주의 소설 ‘왕경룡전’, 최초의 조선어 교본 소설 ‘숙향전’, 최초의 피란소설 ‘최척전’ 등 우리 고소설 중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23종을 이리저리 해부하며 우리 고소설이 가진 진가를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어서 엄청나게 많은 이본(異本) 중에서 국문 소설과 한문 소설 각각 베스트 10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각 작품이 가지는 가치를 생각한다면 순위를 매기는 것이 적절한 것 같지는 않은데, 독자로서는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고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 같다. 네 마당 ‘배경론’ 에서는 최초의 국문소설은 무엇인지, 고소설 속 최고의 추녀와 추남은 누구인지, 고소설 속 불한당들은 어떤 모습인지, 고소설에서 악인과 선인의 결말, 신분 계층과 직업, 모티프 등 11가지 재미난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제목으로만 본다면 흥미위주의 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고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당대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민중들의 삶과 생활 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섯 마당 ‘문화론’ 에서는 속담이 된 고소설, 그림이 된 고소설 등 고소설이 바탕이 된 소설, 시조, 한시, 노래, 놀이, 설화, 창가, 가사, 굿․탈춤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고소설이 어떻게 다른 장르의 예술로 번져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예전에 임권택 감독이 ‘춘향전’을 판소리와 접목시켜 영화화한 적이 있는데, 얼마전 춘향전을 방자의 입장에서 본 ‘방자전’과 ‘전우치전’ 등이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고소설은 현대에도 영화나 연극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면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 고소설이 가지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800여 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에 압도를 당하면서도 다섯 마당을 다 둘러 보고 나니 왠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져 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우리 고소설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책은 고소설의 개념에서부터 작가론, 작품론, 배경론, 문화론에 이르기까지 고소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풍부한 참고 문헌과 사진, 서양의 고전문학 등과의 비교 분석 등 지은이의 땀방울이 책장 곳곳에 배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 고소설은 1,000년이 넘는 오랜 문화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치하와 급속한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그 명맥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조명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민중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고소설. 고소설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언제나 변함없기 때문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고소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현대소설이 가지지 못하는 고소설만의 특별한 매력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그와 같은 고소설의 매력으로 이끄는 멋진 인도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