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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형식미학과 현대적 계승 윤금초 외 37인 고요아침/2010.8.10.
요즘은 시조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시와 시조를 함께 쓰는 시인이 적지 않지만 시조는 옛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거나 진부한 형식이라고 소외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시조에 대한 교육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고려말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여기로 즐겼던 시조창에서 비롯된 시조의 역사나 역할이 제대로 교육되지 못하고, 단지 입시문제 해설의 일부로만 교육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내 것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시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시조의 형식미학과 현대적 계승>이라는 학술세미나 자료집이다.
<시조의 형식미학과 현대적 계승>은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들과 시조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제1부 학술 세미나에서는 시조의 형식미학과 현대적 계승을 주제로 6편의 논문이 발표 되었다. ‘현대시조의 특성과 장르의 다양성, 시조의 아버지 상과 그 현대적 변주, 단시조의 깊이와 아름다움, 정형률, 그 깊이의 시학, 21세기 시조 창작의 일 방향 고찰, 기정 조운의 시조세계와 그 인간.’ 등이 그것이다. 제2부 자작시 낭송에는 윤금초 등 31인이 자작 시조를 낭송한 것을 실었다.
박철희는 ‘현대시조의 특성과 장르의 다양성’에서 “시조를 두고 한시를 쓰고 남은 감흥, 즉 詩餘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시 한문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흥에 한해서 시조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말로 된 시조는 사대부 시가(漢詩)의 변두리 형식으로, 餘技의 대상으로 출발한 것이다. 1910년대 초를 전후하여 서구 문학과 접촉함으로써 움튼 반전통적인 신시형과 함께 전통적인 시조형식도 씌여졌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실상은 자유시 못지않게 많은 시조와 민요 잡가가 함께 창작되고 있었다.(p.16)”라며, 육당은 신시보다 시조에 역점을 두었다. 신시에 대한 시론을 편 일이 없다. 시종일관 그의 시론은 시조가 그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시조를 근대문학의 개념으로 다루기보다는 조선문학의 전통, 다시 말하면 조선적인 문학양식으로만 일방적으로 본 것은 육당 등 시조부흥론자들의 한계이자, 그 후 현대시조의 한계다. 전통시조의 엄격한 정형률을 바탕으로 조선의 시에서 현대적 정형률을 도모하였다. 시조부흥운동이 범문단적 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餘技나 일부 시인들의 시조 창작으로 축소된 것은 순전히 이 때문이다.(p.18)”라고 박철희는 지적한다. 가람은 현대시조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전통시조와의 차별성을 곳곳에서 강조하였다. 전통시조와는 달리 언어 사용의 독특한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이 문학성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육당이나 도남이 시조 장르의 순수성에 집착할 때 가람은 장르의 개방성을 주목하였다. 가람은 조윤제가 외면했던 민요의 형식이나 연행방식을 주목하였다. 무엇보다 민요는 모든 시가의 원천으로 시조 또한 여기서 나왔다고 하였다.
“현대시조는 읊조리거나 노래되는 시조가 아닌 읽히는 시조라고 한 것은 가람이 시조를 논하면서 한 말이다.(p.22)” 전통시조의 특성 중 하나가 늘 독자의 존재를 두고 직접 말을 건네는 데 있다. 전통시조는 독자의 참여를 통해서 완성되는 모호성과 암시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물론 전통시조는 대부분 이미지보다 관념 쪽이 강조된다. 사실 시조란 장르 개념은 조선조라는 시대적 배경과 구전이라는 노랫말에 일방적으로 기대어 이루어졌다. 자연이라는 대상을 두고 유발한 인사의 감정에다가 이념을 겹쳐 노래한 것이 시조적 서정의 한 전형이다. 그만큼 자아와 세계, 자아와 사물이 하나이게 하는 ‘物我一如’의 시학이 낳은 것이 조선조 시조다. 이 때 화해의 서정이 이루어진다고 박철희는 말한다.
박기섭은 ‘정형률 그 깊이의 시학’에서 “시는 어떤 경우에든 깊이가 넓이를 이깁니다. 많은 작품을 쓰기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게 먼저라는 말입니다. 대표작이 없는 시인이 제대로 된 시인으로 평가 받기는 정말 어렵습니다.(p.77)”라고 말하며 대표작은 결국 그 작품의 깊이가 말해준다고 주장한다. 이지엽은 ‘21세기 시조 창작의 일 방향 고찰’에서, “한 음보를 3자나 4자로 고정하지 않으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매우중요하다. 왜냐하면 시조 창작에 있어 한 음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창작의 실제에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수율의 제약적 규정 즉, 한 음보를 3자나 4자로 맞추는 것은 우리 언어의 자유로운 결합을 이반시키고 옥죄임을 함으로써 현대의 자유로운 심상을 담아내는 데 부적합하다.(p.103)”라고 말하며, 시조의 음보를 너무 강제하지 않고 여유롭게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조의 형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단시조를 기본으로 하지만 연시조나 사설시조 또한 수용할 만한 형식이며, 굳이 음보를 3, 4자로 고정할 필요는 없고 리듬을 살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시조 한편을 소개한다.
길 위에 서다 -달팽이 자국 민분이
흐린 날 벽을 오르다 길 위로 툭 떨어져
오체투지 상처 안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온종일 한 획을 그어도 명필이 되지 못하는
이생에 머물 수 없어 세월을 끌고 간
빨간 뿔 곧추 세워 밀어 올리는 하늘
어느새 총총한 별 밤 온몸으로 쓰는 자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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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형식미학과 현대적 계승 윤금초 외 37인 고요아침/2010.8.10. sanbaram 요즘은 시조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시와 시조를 함께 쓰는 시인이 적지 않지만 시조는 옛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거나 진부한 형식이라고 소외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시조에 대한 교육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고려말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여기로 즐겼던 시조창에서 비롯된 시조의 역사나 역할이 제대로 교육되지 못하고, 단지 입시문제 해설의 일부로만 교육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내 것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시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시조의 형식미학과 현대적 계승>이라는 학술세미나 자료집이다. <시조의 형식미학과 현대적 계승>은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들과 시조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제1부 학술 세미나에서는 시조의 형식미학과 현대적 계승을 주제로 6편의 논문이 발표 되었다. ‘현대시조의 특성과 장르의 다양성, 시조의 아버지 상과 그 현대적 변주, 단시조의 깊이와 아름다움, 정형률, 그 깊이의 시학, 21세기 시조 창작의 일 방향 고찰, 기정 조운의 시조세계와 그 인간.’ 등이 그것이다. 제2부 자작시 낭송에는 윤금초 등 31인이 자작 시조를 낭송한 것을 실었다. 박철희는 ‘현대시조의 특성과 장르의 다양성’에서 “시조를 두고 한시를 쓰고 남은 감흥, 즉 詩餘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시 한문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흥에 한해서 시조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말로 된 시조는 사대부 시가(漢詩)의 변두리 형식으로, 餘技의 대상으로 출발한 것이다. 1910년대 초를 전후하여 서구 문학과 접촉함으로써 움튼 반전통적인 신시형과 함께 전통적인 시조형식도 씌여졌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실상은 자유시 못지않게 많은 시조와 민요 잡가가 함께 창작되고 있었다.(p.16)”라며, 육당은 신시보다 시조에 역점을 두었다. 신시에 대한 시론을 편 일이 없다. 시종일관 그의 시론은 시조가 그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시조를 근대문학의 개념으로 다루기보다는 조선문학의 전통, 다시 말하면 조선적인 문학양식으로만 일방적으로 본 것은 육당 등 시조부흥론자들의 한계이자, 그 후 현대시조의 한계다. 전통시조의 엄격한 정형률을 바탕으로 조선의 시에서 현대적 정형률을 도모하였다. 시조부흥운동이 범문단적 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餘技나 일부 시인들의 시조 창작으로 축소된 것은 순전히 이 때문이다.(p.18)”라고 박철희는 지적한다. 가람은 현대시조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전통시조와의 차별성을 곳곳에서 강조하였다. 전통시조와는 달리 언어 사용의 독특한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이 문학성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육당이나 도남이 시조 장르의 순수성에 집착할 때 가람은 장르의 개방성을 주목하였다. 가람은 조윤제가 외면했던 민요의 형식이나 연행방식을 주목하였다. 무엇보다 민요는 모든 시가의 원천으로 시조 또한 여기서 나왔다고 하였다. “현대시조는 읊조리거나 노래되는 시조가 아닌 읽히는 시조라고 한 것은 가람이 시조를 논하면서 한 말이다.(p.22)” 전통시조의 특성 중 하나가 늘 독자의 존재를 두고 직접 말을 건네는 데 있다. 전통시조는 독자의 참여를 통해서 완성되는 모호성과 암시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물론 전통시조는 대부분 이미지보다 관념 쪽이 강조된다. 사실 시조란 장르 개념은 조선조라는 시대적 배경과 구전이라는 노랫말에 일방적으로 기대어 이루어졌다. 자연이라는 대상을 두고 유발한 인사의 감정에다가 이념을 겹쳐 노래한 것이 시조적 서정의 한 전형이다. 그만큼 자아와 세계, 자아와 사물이 하나이게 하는 ‘物我一如’의 시학이 낳은 것이 조선조 시조다. 이 때 화해의 서정이 이루어진다고 박철희는 말한다. 박기섭은 ‘정형률 그 깊이의 시학’에서 “시는 어떤 경우에든 깊이가 넓이를 이깁니다. 많은 작품을 쓰기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게 먼저라는 말입니다. 대표작이 없는 시인이 제대로 된 시인으로 평가 받기는 정말 어렵습니다.(p.77)”라고 말하며 대표작은 결국 그 작품의 깊이가 말해준다고 주장한다. 이지엽은 ‘21세기 시조 창작의 일 방향 고찰’에서, “한 음보를 3자나 4자로 고정하지 않으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매우중요하다. 왜냐하면 시조 창작에 있어 한 음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창작의 실제에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수율의 제약적 규정 즉, 한 음보를 3자나 4자로 맞추는 것은 우리 언어의 자유로운 결합을 이반시키고 옥죄임을 함으로써 현대의 자유로운 심상을 담아내는 데 부적합하다.(p.103)”라고 말하며, 시조의 음보를 너무 강제하지 않고 여유롭게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조의 형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단시조를 기본으로 하지만 연시조나 사설시조 또한 수용할 만한 형식이며, 굳이 음보를 3, 4자로 고정할 필요는 없고 리듬을 살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시조 한편을 소개한다. 길 위에 서다 -달팽이 자국 민분이 흐린 날 벽을 오르다 길 위로 툭 떨어져 오체투지 상처 안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온종일 한 획을 그어도 명필이 되지 못하는 이생에 머물 수 없어 세월을 끌고 간 빨간 뿔 곧추 세워 밀어 올리는 하늘 어느새 총총한 별 밤 온몸으로 쓰는 자성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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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조의 특성 중 하나가 늘 독자의 존재를 두고 직접 말을 건네는 데 있다. 전통시조는 독자의 참여를 통해서 완성되는 모호성과 암시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물론 전통시조도 이미지에 기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미지보다 관념 쪽이 강조된다. 사실 시조란 장르 개념은 조선조라는 시대적 징표와 구전이라는 노랫말의 징표에 일방적으로 기대어 이루어졌다. 자연이라는 대상을 두고 유발한 인사의 감정에다가 이념을 겹쳐 노래한 것이 시조적 서정의 한 전형이다. 그만큼 자아와 세계, 자아와 사물이 하나의 계라는 物我一如의 시학이 낳은 것이 조선조 시조다. 이 때 화해의 서정이 이루어진다. 현대시조 역시 전통시조와 마찬가지로 서정적인 노래가 있는가 하면 교훈적인 노래도 있고 저항적인 노래도 있다. 또한 선행 장르를 모방하기도 하고 비판적으로 개작한 서사적이고 극적인 노래도 있다. 무엇보다 민요, 잡가, 판소리 등 하위(변두리) 장르가 장르의 순수성을 위협한다. 장르의 순수성이 흔들리면서 서정과 서사, 서사와 극, 극과 서정 등 일종의 장르 혼합 현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하위 장르의 순위 변화과정이 다름 아닌 문학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