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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 독립운동가의 삶을 통해 본 한국독립운동사
"[15-34] 독립운동가의 삶을 통해 본 한국독립운동사" 내용보기
<한국사 시민강좌> 47집은 “20세기 초반의 한국독립운동사를 인물 중심으로 접근함으로써 독자들이 독립운동사를 심층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보았다. (이를 통해) 조국 독립운동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추는 데 일조1)”하겠다는 의도로 ‘대표적 독립운동가 12인’이라는 특집을 결정했다고 한다.   여기
"[15-34] 독립운동가의 삶을 통해 본 한국독립운동사" 내용보기

한국사 시민강좌> 47집은 “20세기 초반의 한국독립운동사를 인물 중심으로 접근함으로써 독자들이 독립운동사를 심층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보았다. (이를 통해) 조국 독립운동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추는 데 일조1)”하겠다는 의도로 ‘대표적 독립운동가 12인’이라는 특집을 결정했다고 한다.

 

여기서 거론된 독립운동가들은 무장투쟁론, 외교독립론, 실력양성론, 의열투쟁론이라는 독립운동의 흐름을 감안하되, 상해임시정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 가운데 선정했다고 하는데, 일반적인 분류와 달리 무장투쟁론과 의열투쟁론을 구분한 것이 특이했다.

 

이들 12인의 독립운동가(이동휘, 이승만, 김구, 안창호, 김규식, 박용만, 조만식, 여운형, 조소앙, 이청천, 김두봉, 김원봉) 가운데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이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삶의 궤적이 가장 비틀어진 사람이 히못[白淵] 김두봉(金枓奉, 1889~1961 ?)이다.

 

한힌샘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의 수제자였던 그는 김윤경(金允經, 1894~1969)이 “사람들이 주시경에게 어떤 문제를 물어보면 “그 자세한 것은 김두봉 선생에게 물어보시오. 그가 나보다 더 잘 알으십니다” 라고 할 정도로 주시경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2)”라고 회고할 정도로 뛰어난 한글학자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항일 민족종교인 대종교(大倧敎)에서 “박은식, 신규식, 조완구, 박찬익 등과 함께 상해의 서이도본사(西二道本司)의 핵심간부3)”였다.

또한 한홍구 교수로부터 “ “이불을 꿰맬 때도 자로 재어서 꿰매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꼼꼼한 학자풍의 김두봉은 자신만의 직계 추종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4)”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요구되는 정치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1942년 화북조선독립동맹의 주석이 될 수 있었고, 1949년 북조선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이라고 한다)이 수립되면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대가로 대한민국에서 그의 업적은 잊혀져야 했고, 1958그가 종파분자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축출되어 순안농목장의 농업노동자로 추방되자 북한에서도 잊혀져야 했다.

 

이렇게 잊혀진 혁명가로는 우성(又醒) 박용만(朴容萬, 1881~1928)도 있다. 무장투쟁론자였던 그는 1913년 하와이 지방정부로부터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이하 ‘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를 자치기관으로 인정받아 사실상의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의형제였던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에게 기반을 사실상 강탈당하고, 연해주로 건너간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과 자금부족 등으로 통일된 군사조직을 통한 무장투쟁이 실패하자, 아예 발상의 전환을 하여 일본의 지원을 받아 독립운동기지를 조성하려다가 변절자로 몰려 동지에게 피살된다. 게다가 반() 이승만, () 임정의 창조파에 속한 탓인지 그의 독립을 위한 노력마저 잊혀져 왔다.

 

일제치하에서 활동했던 대표적 독립운동가 12인 가운데 이렇게 잊혀진 독립운동가가 있는 반면, 독립운동 기간과 해방공간에서 자웅(雌雄)을 겨루었던 여러 라이벌들을 제치고 신생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가 된 권력정치에서의 ‘최후 승자’5)”였던 이승만 같은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유영익 교수는 이승만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① 하와이에서의 교육자 - 교역자로서의 업적과 교민 다스리기의 경험

② 꾸준한 자가 홍보를 통한 국내적, 국제적 명성의 획득

③ 구미위원회와 동지회(同志會) 등을 통한 비교적 풍부한 정치 자금의 확보

④ 동지회 조직을 통한 상당수 미주 한인들의 지지 확보

⑤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등을 통한 국내 보수 세력의 지지 확보

(1932년 이후) 임시정부(내부의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조소앙, 신익희 등 기호파)로부터의 확고한 지지 확보

⑦ 미국의 다수 민간인과 군부 내 보수적 지도자들의 지원 확보6)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은 박용만으로부터 국민회를 탈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 통해 이승만은 ① 교민 다스리기의 경험, ③ 풍부한 정치자금의 확보7), ④ 미주 한인들의 지지 확보 등을 성사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의 추종자들이 거의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만큼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가이자 ‘모금의 귀재’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그가 신생 공화국의 최고통치자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도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보스정치를 떠올려보더라도 명백하다.

 

다만, 상대적으로 일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곳에서 풍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던 그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죽어가는 동안 ② 꾸준한 자가 홍보를 통한 명성의 획득 이외에 어떤 ‘독립운동’을 했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지역신문에 “우리는 어떤 반일적인 내용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보편적인 인류애를 강조할 뿐이다. 이 지역(하와이) 일본 신문들은 내가 반일감정을 일으킨다는 오해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8)”라고 기고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친일파라고 오해할 여지도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암살>(2015)로 촉발된 그 시대에 대한 관심을 좀더 심화시키기 위해 5년 전에 나온 한국사 시민강좌> 47(2010)을 집어 든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비록 편집자들이 원한대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추는데 일조하지는 못했지만, 독립운동사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는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여기서 열거된 12명의 독립운동가의 마지막이 동화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 것을 보아야 했지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일화들을 읽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예컨대, 해방 직후 이승만, 김구와 함께 우익 3영수의 한 사람으로 좌우합작운동을 견인9)”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이 한때 이르쿠츠르 공산당에 가입10)했다거나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가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인 김두봉,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金日成, 1912~1994)과의 합작을 시도하다가 뜻하지 않는 광복으로 무산11)된 이야기는 ‘If’의 무한한 가능성에 잠시 젖어 들게 하였다.



1) 유영익, “독자에게 드리는 글”, <한국사 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p. 4

2) 한홍구, “김두봉 혁명가가 된 한글학자 - , <한국사 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p. 212

3) 한홍구, 앞의 글, p. 213

4) 한홍구, 앞의 글, p. 226

5) 유영익, “이승만 - 건국과 집권에 성공한 외교독립운동가 - , <한국사 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p. 17

6) 유영익, 앞의 글, p. 35

7) 최영호, “박용만 - 문무를 겸비한 비운의 민족주의자 - , <한국사 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p. 119에 의하면 약 5천명의 한인으로부터 매년 $5의 의무금(일종의 세금)을 걷고 있어 국민회 내부에 항상 $35,000 정도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8) 김도훈, <미 대륙의 항일무장투쟁론자 박용만>, (역사공간, 2010) 2008 KBS 다큐한국사 傳등에 인용된호놀롤루 스타블레틴> 1915. 6. 17자 이승만 영문 기고문 중에서

9) 윤경로, “김규식 - 이념을 초월한 통일전선 지도자, 외교가 - , <한국사 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p. 69

10) 윤경로, 앞의 글, pp. 79~80

11) 도진순, “김구 - 임시정부를 이끈 민족주의 독립운동가 - , <한국사 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pp. 47~48

w******f 2015.09.2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