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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 뒤에 남는 여전한 우울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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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한마디로 족하다.” 정말 ‘사랑’, 이 한마디로 족하다면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고 투쟁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사랑’의 족함을 이미 충분히 맛보았기에 더 이상 다른 것에 사사로운 관심을 쏟을 일도 없고, 족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기에 이르는 것일까?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충분히 누렸으므로 자살을 택한 어느 여류 작가처럼 ‘다자이 오사무’도 그랬던 것일까? 네 번이나 미수에 그쳤던 자살시도가 성공했을 때 그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열광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던 젊은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이었을까?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음도 불사하는 애인이 곁에 있기에 마냥 행복했을까? 마지막이 될지 모르고 미완으로 남은 작품 ‘굿바이’의 슈지를 생각했을까? 아쉽다. 일찍 세상을 등진 그가. 세상에 올 때 자기 의지로 온 게 아니었기에 죽음만은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크나큰 재능을 가진 이의 요절은 내게 참 많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다자이 오사무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 일환으로 중단편을 모아 엮은 「굿바이」에서 분위기가 사뭇 다른 여섯 편의 글을 읽으며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환경을 뛰어넘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 환경 자체를 작품 안으로 끌어오는 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를 느꼈다. 책의 앞날개와 뒷날개에 쓰인 정보가 꽤나 충격적이어서 소설을 읽으며 현존했던 이의 감정을 대입할 수 있어 몰입하며 읽게 되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적은 편견이라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는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인 내가 ‘굿바이’의 다지마 슈지라는 인물을 대할 때 드는 생각은 겉으로 보여 지는 면을 중시하는 일본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도덕적인 삶을 위해 숨겨둔 정부들과 안녕을 고하기 위해 한 배를 탄 기누코의 ‘몸빼바지와 양장의 극적인 이중생활’ 역시 그리 보인다. 한 편의 희곡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많은 정부 가운데 두 번째로 정리 대상에 들었던 정부에게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작가의 자살로 인해 미완으로 남은 이 작품의 결말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돈과 공짜에 환장한 기누코의 도움으로 숱한 정부들은 정리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작은 집 한 채를 사서 아내와 딸을 데리고 와 살고 싶어 하던 다지마의 소박한 꿈은 기누코 때문에 물 건너가지 않았을까? 이렇게 상상해서 그런지 암거래로 거액을 모으고 정부도 여럿 두어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다지마가 너무 가엾게 느껴진다. 작가가 사망한 지 6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처음 접하게 된 다자이 오사무, 그의 진가를 알게 해준다는 ‘인간실격’을 접해봐야 그에 대한 내 개인의 평가(만족도)가 나올 것 같으나, 밋밋한 내용의 글도 내려놓지 못하고 읽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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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의 귀족적 센티맨탈리즘과 우유부단, 그리고 전후의 어두운 사회 분위기에 기생하는 패배주의와 퇴폐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지인들과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는 솔직한 용기와 자학에 가까울 정도의 자기부정과 자기풍자를 예민한 관찰과 감수성으로 묘사하는 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굿 바이]에서 다른 작품과는 달리 풍자와 아이러니라는 다자이 오사무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된다는 과장어린 평가에 순진하게 동의할 수는 없다. 작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바로 '자기풍자'이기 때문이다. 아마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이라면 이런 꼬리표에 속아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양]과 [인간실격]에서 이미 날카로운 아이러니를 발견하곤 했다. 저자가 주도한 데카당스 문학은 일본이나 동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런 유형들, 즉 나름의 사상적 계보가 존재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의 도스토예프스키라 불리는데 자전적인 <내 반생을 말하다>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어린 시절부터 타인에게는 하고픈 말도 제대로 못할 만큼 나약한 성격이었기에 생활력도 바닥에 가깝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이제껏 살아왔습니다. 오히려 염세주의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산다는 것에 별로 애착을 느끼지 않았어요. 그저 한시라도 빨리 생활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 세상과 영원히 이별하고 싶은 생각만 했던 기질이었습니다. "(122-3쪽)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선집 [굿 바이]에는 <추억><역행><망치소리><아침><내 반생을 말하다><굿 바이> 총 6편의 글이 실려 있다. 특히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굿 바이>(1948)는 저자가 죽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마지막 작품이다. <추억>(1933)은 작가 자신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스케치한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성장의 비밀을 간직한 동양판 [비밀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다. 작가로서의 다자이 오사무는 <역행>에 나오는 '철부지'와 '도적'의 이미지를 닮았다. 사실 영원한 '청춘의 작가'라는 꼬리표와 매우 잘 어울린다.
"나는 도적. 세상에 보기 드문 뒤틀린 자. 일찍이 예술가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다만 하찮고 약삭빠른 인간일 뿐이다."(73쪽)
수록된 글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바로 <망치소리>다. 주인공의 모든 열정과 격정을 한방에 잠재우는 망치소리는 일본사회에 팽배한 패배주의와 허무주의라는 저항불가력의 경종 울림을 상징한다.
"멀리서 드려온 그 희미한 망치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깨끗하게 내게서 군국주의의 환영을 떼어 갔기에 두 번 다시 그 비장하고 엄숙한 악몽에 취하는 일은 완전히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9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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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처음 접하고 읽어내려가면서 적지않게 당황스러웠다. 사실 가벼운 느낌의 소설을 주로 읽다보니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난 적어도 이 작가를 알고 있었다고 느꼈는데 작품으로 만나는건 처음이라 그런지 좀 조심스러웠다. 리뷰를 써내려가기가.
그래서 좀 오래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이제 조금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씨는,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소설가 중 한 분으로, 그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 그의 생의 마감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1948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요절한, 네번에 걸친 자살시도, 그리고 그 끝은 결국 동반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이력도 이력이지만, 작품 속에 녹아있는 느낌도 뭔가 생에 대한 비관적인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는 것 같은, 그래서 제목이 <굿바이>라는 것인가? 하고 반문하게 만든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렴풋이 그의 작품이 드라마로 사용되었던 <인간 실격>이라는 드라마를 띄엄띄엄 봤던 기억이 난다. 순수함만을 갈망하던 여린 젊은이가 주변 인간들의 위선과 잔인함에 의해 서서히 파멸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진, 참 충격적인 드라마로 기억한다. 그래도 이번 작품은 살짝 어딘가모르게 풋풋한 청춘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긴 했다.
책 속에는 <추억>, <역행>, <망치소리>, <아침>, <내 반생을 말하다>, <굿바이>의 모두 여섯편의 짤막한 구성의 글로 되어 있다. 각각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이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추억>과 <역행>은 뒤에서 등장하는 <내 반생을 말하다>를 토대로 보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과도 비슷한 그런 느낌이 나는 구성이다. 특히 제일 처음 등장하는 <추억>은 그의 여드름이 돋기 시작할 무렵의 풋풋한 청춘의 모습과 생각들도 느껴볼수 있어서 마치 자전적인 느낌을 주는 그런 소설인 것 같았다.
1900년대 초의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였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서 자라기보다 유모와 하녀들의 손에 자란 어린시절과 작각가 되기를 갈망하던 모습, 가부키 배우처럼 연극을 해보거나 허풍스럽지만 풋풋했던 청춘의 이야기들로 순수한 청춘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역행>은 그가 도쿄대 불문과 재학 시절 유급을 당했던 일을 다루고 있어서 자전적인 느낌이 강하고, <내 반생을 말하다>는 사실 소설이라기보다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문단에서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자전적인 느낌이 강한 글이다. 또, 이번 소설의 책 제목이 된 <굿바이>는 그가 생을 마감한 바로 그 1948년의 작품으로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가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미완성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가 시신으로 발견된 날이 바로 그의 생일이었다고. 미완으로 끝나게 된 그의 <굿바이>에는 작품을 쓰면서 고뇌하고 힘들어했을까 몰라도 암울한 느낌보다는 경쾌한 느낌마저 드는 느낌으로 써내려간 듯한 느낌만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의 역자주를 살펴보면 그걸 풍자라고 한다고.
어쨌거나 그의 작품은 나에게는 좀 어려운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후대에도 살아주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면 오히려 그에 대해서 다 알게 되었을까. 좀 드러내놓고 호탕하거나 한 부분보다는 다소 소심하고 칙칙한 느낌도 들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유머러스한 부분도 엿보이기도 하는 듯, 그의 작품 세계는 정말 독특한것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단편선집이라고 해도, 자전적인 느낌이 어쩌면 강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집이다. 특히 마지막 남겼다는 <굿바이>는 정말 그의 유작이 되어 미완으로 남아 안타까웠지만, 주인공 이름도 '다자이'랑 비슷한 '다지마'라는 점에서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쓰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 뒷 이야기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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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짤막한 글을 남기거나 코멘트를 하는 공간인데 한동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많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어떤 회원은 그 책처럼 우울하고 음울한 책이 없다는 둥, 그 책을 읽으면 자살충동이 일어난다는 둥 엄청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어떤 회원은 솔직히 그 책이 왜 그리 유명한지 모르겠다는 솔직한 반응도 썼는데 아무튼 그 글들에 달린 댓글수가 가히 폭발적이어서 지금도 기억난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물론 그 전에도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도 들었고 그의 대표작 ‘인간실격’도 알았지만 딱히 읽고 싶은 충동은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 이번에 내가 읽은 이 책은 표지부터가 묘한 충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붉은 표지에 음울하고도 기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한 남자.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유작이라는 짧은 한 줄은 엄청난 임펙트로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짧은 6개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주인공들이 묘하게 겹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게다가 우울한 작가의 이력이 생각나서인지 자꾸만 그의 모습일꺼라는 생각도 한 몫 했었다. 역자 역시 말하기를 이 책에 실린 [추억]은 작가의 유년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대표적인 자전소설이라고 언급했으니 나의 느낌이 틀린것만은 아니었구나 싶다. 각각의 단편들이 갖는 특별한 임펙트가 있지만 이 책의 제목과 같았던 마지막 단편 [굿 바이]는 내용자체가 가장 해학적이었고 미완성에 안타까움 때문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을 잠깐 소개하자면, 오벨리스크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다지마 슈지는 발군의 실력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과 함께 여자 꼬시기의 신공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여자관계를 깨끗이 정리하겠노라는 기특한(?) 결심을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정리할 까 고민하다가 또 다른 여자를 끌어들인다. 완전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게다가 엄청 먹어대고 건수마다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이 여인네가 생각처럼 쉽게 조종되지도 않고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주는데 이 둘의 옥신각신하는 장면들이 개그콤비처럼 익살스럽기 그지 없다. 나는 앞 부분 5개의 단편들에서는 그렇게 재미있거나 해학적인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지만 가장 애착이 간 이 마지막 단편이 미완성으로 남아 정말 아쉽기만 하다. 이 편집장과 나가이 기누코라는 여인의 한 판 승부는 어떻게 끝났을까? 그리고 다지마 슈지는 정말로 모든 여자관계를 청산할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고 말이지.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작가의 이력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수없이 자살시도를 하고 결국 부인이 아닌 또 다른 연인과 동반자살을 해버린 다자이 오사무. 그렇기에 이 마지막 유작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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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다 아는, 우리말에 서툰 꼬마아이들도 다 아는 헤어질 때 쓰는 영어 인사말이다. 굿 바이엔 헤어질 때의 인사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굿 바이는 죽음처럼 어쩔 수 없이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경우에 하는 인사말이기도 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제목으로 사용하는 ‘굿 바이’엔 후자의 의미가 강하다.
이번에 읽은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선집【굿 바이】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일은 많이 망설였다. 제목의 느낌이 많이 아프고 슬플 것 같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작가는 서른아홉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였기에 책은 온통 비극으로 도배되어 있을 것 같았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작품을 읽기는 처음이다. 【인간실격】이란 책을 읽고 싶었지만 작가의 소개를 읽고 포기했었다. 책을 읽고 나면 암울이 내 몸 깊숙이 스며들 것 같았다. 지금도 나의 자아는 빗소리와 바람소리에도 흔들리지만 당시 나의 심리적 자아는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것은 일본의 많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그의 존재감이 궁금했고 그를 절망으로 밀어 넣은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이 책을 읽어도 버틸 수 있는 삶의 희망을 주는 소설들로 예방주사를 맞아두었기에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굿 바이】에는 [추억], [역행], [망치소리], [아침], [내 반생을 말하다], [굿 바이]의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 번째 단편[추억]을 읽으면서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헛갈렸다. 소설의 세계는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지만 그 허구의 세계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추억]은 소설이라기 보단 그냥 작가의 실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의 주인공 ‘나’의 이름은 작가의 이름인 ‘오사무’이며 작가와 마찬가지로 1909년생이다. [추억]에서 든 생각은 마지막 단편[굿 바이]를 읽을 때까지 이어졌다. 특히 [내 반생을 말하다]는 실제 작가의 인생 고백으로 읽힌다.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서른아홉 살의 나이지만 삶이 막막하고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작가는 서른아홉 살에 연인과 함께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홉이란 숫자는 하나가 부족해 불완전한 숫자다. 몇 개월만 더 버텼더라면 그래서 마흔 살, 불혹을 맞았더라면 어땠을까?
표지를 보면 허공을 응시하는 한 남자가 보인다. 남자의 입은 많은 입들로 가려져 있다.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묵한 것일까? 아니면 가짜와 진짜가 섞인 말의 혼란 속에서 자신이 말을 해봤자 듣는 이가 없기에 스스로 침묵을 선택한 것일까? 그가 보고 있는 곳은 허공이었을까? 아님 두려운 실체, 그 무엇이었을까?
어떤 경우는 남자는, 혹은 작가는 겁쟁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부호집안의 형제 많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대적 혼란으로 마음의 황폐했던 그는 글과 여자, 그리고 죽음의 세계로 숨었다.【굿 바이】의 단편들엔 주인공들의 추억 속 ‘그녀들’이 등장한다. 형제 많은 집 아이들은 부모,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온전히 받기는 힘들다. 작가가 어머니의 사랑 속에 자랐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어머니 같은 여성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미완성 상태의 유작이자 작품선집의 제목이기도 한 [굿 바이]를 읽으며 비극적인 선택으로 생과 ‘굿 바이’했지만 작가는 꽤 유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단편선집의 내용들도 생각만큼 우울하진 않았다. 가정이지만 [굿 바이]를 읽으며 작가가 몇 개월을 더 버티어 마흔, 불혹을 맞았더라면, 모성성이 강한 여성을 만났더라면 조금은 더 긴 인생을 살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 새로우면서도 유쾌한 농담이 가득한 소설을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삶의 질문들로 머릿속은 복잡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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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 [굿바이]를 읽기전까지는 명성만 알고 있었지 그의 문학을 제대로 접한적이 없었다.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유작을 국내 최초로 번역한 책이라고 한다. 솔직히 이제껏 나는 일본문학에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책을 읽어보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한다거나 문학작품으로서 감동을 받았던 적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도 이름만 들어도 모두 안다는 일본의 국민작가 무 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는 다자이 오사무이기에 많은 기대감 속에 첫 페이지를 넘겼던거 같다.
처음 이 책의 <추억>이라는 소설은 아무래도 작가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는듯 했다. <추억>이라는 소설을 통해 본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것에 비해 서 열등감이 많은 인물인거 처럼 보였다. 그리고 조금은 특이한 성향을 가진, 이 책을 읽기 전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해 미 리 알아두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계속 되는 빠른 전개에 숨이 가쁠 정도였고 [굿바이]라는 단편선집 한권을 읽었 을 뿐인데 많은 길을 달려온 사람처럼 아득했던거 같다. 그리고 마지막 <굿바이>는 소설이 끝나기도 전에 다자이 오사무가 사망했기 때문에 미 완성 상태로 유작이 되어버린 작품이다.
<굿바이>는 잡지 오벨리스크 편집장인 서른 네살의 다지마 슈지에 관한 이야기다. 워낙 여성편력이 심한 바람둥이인 다지마 슈지는 결혼도 두번이나 했고 그의 능력을 맘 껏 발휘하여 많은 여자들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정리하고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자꾸 맘에 걸 리는 여자들을 어떻게 깔끔하게 정리할까 고민하는 내용이다. 그러던 중 나가이 기누코라는 보따리 장수 여자를 만나서 그녀와의 거래를 통해 여자들 을 한명씩 정리해가는데 그러면서 일어나는 갈등과 고민을 익살스럽게 풀어놓았다. 아니 다자이 오사무는 그렇게 풀어놓을 예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미처 완성하기도 전에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하고 말았다. 아직 정리해야할 남은 여자들은 많고 나가이 기누코의 기를 눌러줄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다지마 슈지의 이야기가 이제서야 흥미진진해질 참인데 여기서 모든게 멈춰버렸다니.... 더이상은.. 영원히 그 뒷 이야기를 들을수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마냥 궁금해진다.
다자이 오사무....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그 전에도 동반자살을 시도했었고 함께 자살을 시도했던 그의 연인만 죽고 자기는 살아남 아 힘든 시절을 보냈으면서 결국 또 다른 연인과 다시 동반자살을 하다니....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참 나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어찌했건 그의 문학만큼은 이렇게 오래토록 사랑받고 빛을 발하고 있 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해서 그의 인생도 그의 문학도 모두 이해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책 을 한권 읽었기에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빠른 시일 내에 그의 [인간실격]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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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이 책을 받아 보았을 때 잠깐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읽기를 그만두었고, 다시 읽기까지는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는 단숨에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2년 동안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의 문체와 의도를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잘 이해한 것 같다. 그리고 알게 된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의 일대기. 그는 정말 비범하고도 순결한 문학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그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고,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단편들과 함께 미완의 유작인 <굿바이>를 중심으로 엮어진 책이라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낯설은 면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쓴 이 부스러기 같은 단편들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가 굉장히 자기 고백적인 글을 쓴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눈에 와 닿을 정도로 인상적인 구절들은 없었지만, 내용은 기억에 남는다. 특히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쓴 <추억>과 짧은 자서전 같은 <내 반생을 말하다>는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 왔는지 어렴풋 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망치소리>와 <아침>은 그의 재미있는 발상과 약간 모호한 함축이 담백하게 다가왔다. 아쿠타가와 상을 받을 뻔한 <역행>은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결말이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그의 유작 <굿바이>는 뭔가 재미있어 질 것 같은 찰나에 미완이 되어 너무나 아쉽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부분은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읽어 줬는데, 듣는 이 역시 이 책의 내용에 흥미를 느끼며 재미있어 했다.
네 번에 걸친 자살시도 끝에 결국 죽게 된 다자이 오사무. 그의 자살시도들 중 두 번은 애인과 함께 한 동반 자살이었고, 그 중 한 번은 자신만 살아남아 죽은 애인을 바라봐야 했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짧은 생을, 그것도 아내가 아닌 애인과 함께 자살을 한 그의 삶과 그가 쓴 이 책의 글들은 뭔가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죽음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을 위해 글을 썼을까? 등등.. 나는 그에 대한 의문들을 간직한 채 이 책을 덮으며,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야겠다는 필연적 의무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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