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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좌파(左派)란 어떤 의미일까? 금방 떠오르는 이미지는“종북(從北)”, 즉 "빨갱이"란 이미지일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말미암아 좌파가 씨가 말라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좌파"는 "반공"이라는 무소 불위의 절대 진리 하에서는 척결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는 좌파에 대한 고전적 이미지로는 “계급투쟁, 체제전복, 무장 혁명”과 같은 왠지 으스스한 테러리스트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1990년대 초 소련 해체 및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연이은 몰락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로 받아들인 "역사의 종언"(프랜시스 후쿠야마)라는 선언으로 인해 좌파는 역사 속 낡은 이념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사회주의나 좌파는 더 이상 시대를 대변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면 과연 좌파는 글로벌 시대인 21세기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정치분야 저술가인 로버트 미지크의 <좌파들의 반항(들녘, 2010년 8월)>는 90년 대 글로벌 시대 이후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반항아적인 몸짓과 체제비판적인 말들, 즉 "신좌파"의 이론적, 예술적, 문화적 경향에 대하여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에서 자본주의를 칭송하는 사람들은 이제 진부하게 보이고 반항적인 태도가 다시 기세를 부리는 지금, 반항아적인 몸짓과 체제비판적인 말들을 어디서나 목도할 수 있게 되었고, <파이낸셜 타임스>의 주간인 마틴 월프의 말을 빌어 새로운 좌파의 물결은 하나의 증후군이며 강력한 정치적 대안과 불분명한 ‘진지함’을 향한 갈망의 증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윤택한 삶 속에서 반항이라는 몸짓으로 스릴을 즐기며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이른바 ‘공허한 몸짓’에 불과한 “래디컬 시크(Radical Chic)"에 불과할 수 도 있겠지만, 좌파 신화의 요소가운데 몇 가지는 비판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현실에서 항상 깨지고 마는 소망과 꿈, 그리고 삶에 대한 설계는 현실성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역사적 본질을 지니고, 불평과 반항은 자본주의의 가장 고귀한 생산품이 되며 이러한 것들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반항적인 자극이 되며, 이의를 제기할 때 설득하는 법을 배운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위대한 힘이라고 말하면서 좌파로서 똑 부러지게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하지만 똑똑하게 사는 유일한 길은 좌파로서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데 이 책의 집필동기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구성은 먼저 21세기 들어 일종의 "문제아"라 부를 수 있는 반항아들, 즉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미이클 무어", 현대 신좌파의 대표적 이론가로 유명한 "토니 네그리"와 "슬라보예 지젝", 연극을 사회비판의 돌파구를 찾는 하나의 장소로 만들어낸 독일의 희곡작가 "로넨 폴레쉬", 그리고 팝이라는 대중문화 속에서의 탈권위주의적이고 저항적인 몸짓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번째 장에서는 좌파의 현대적인 신화라 할 수 있는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와 "RAF(독일 좌익 테러리스트 그룹인 적군파)"의 "안드레아스 바더" 가 사실은 좌파 영웅이라는 상품으로서 신격화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이자 반대파들에 의해 "샬롱 볼세비키". 즉 브루주아 아나키스트로도 불리우는 브레히트, 벤야민, 브론네, 베허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작가는 나오는 글에서 신 좌파가 구 좌파와 구별되는 점으로 예전의 좌파는 국가를 지향했던 좌파 내부의 헤게모니들 둘러싼 투쟁에서 승리한 분파, 즉 남미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곳에서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승리를 거머쥐게 한 마르크스-사회주의 분파였지만, 최신의 좌파는 아무리 급진적인 대변인이라도 국가 권력의 쟁취에 대해선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권력을 잡지 않은 채 세상을 바꾸기" 원한다고 말한다. 또한 자본주의에 대한 쓴 소리들이 자본주의를 넘어서거나 폐지하지는 못하지만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참 어려운 책을 만났다. 모호했던 좌파의 개념을 정리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겠거니 책장을 열었지만 오히려 개념정리는 더 모호해졌고, 여기에 나오는 용어가 영 익숙치 않아 인터넷으로 계속 단어를 검색하며 읽었더니 책읽기가 더뎌지기만 하고 말았다. 내 식으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작가는 구시대의 좌파와는 단절 - 어떤 반항도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시키지 못한다는 작가의 말을 보면 체제전복이나 국가 지향은 더 이상 의미 있지 않다는 의미같다 - 을 말하면서도 신좌파의 반항정신을 저 멀리 마르크스나 정통 좌파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적 유산임을 강조하고, 신 좌파의 이런 흐름이 자본주의 틀 내에서의 변화를 가져올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강력한 정치적 대안과 불분명한 ‘진지함’을 향한 갈망으로서의 신 좌파에 분명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작가의 글에서 왠지 모를 좌파에 대한 냉소와 조롱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의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모 보수 일간지에 실린 이 책 소개 글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래디컬 시크”를 한국 사회의 '강남 좌파','강단 좌파','딴따라 좌파'와 구조가 아주 흡사하다며 이 책이 그걸 비판한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지지한다고 하는 건지 애매하다고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나 보다. 아마도 여러번 곱씹어 읽어보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좌파 지식인들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좌파지식인들, 즉 벤야민, 슬라보예 지젝, 토니 네그리 등의 사상에 대해서는 역시나 어려웠던 책이었던 이택광의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글항아리)>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두 책이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있긴 하지만 보완적인 책읽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해보고 싶다. 어려웠지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좋은 책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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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바의 좌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 기표대로 알고 있는 좌파는 아니다. 아니 좌파는 늘 그 표기와는 다른 내용적인 의미를 보태면서 변화해 왔다. 지금 우리가 좌파를 말하면서 다만 프랑스 혁명기의 left wing/ leftist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는 그 시대적인 책무에 부응하기 위하여 좌파들은 진화해왔다. 초기 좌파가 기독교적인 천국을 지상에 건설할 책무에 복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면, 그 이후의 좌파들은 그것을 정치/사회적 차원, 그리고 경제적 차원으로 그 스펙트럼을 확장했고, 지금은 아마 남녀성의 관계, 가족관계, 그리고 그저 “소여(所與)”로서 주어진 것으로 여기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억압적 관계의 해소, 관계적 억압의 해소일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시장은 불안정과 착취뿐만 아니라 해방의 힘, 곧 인민을 후진성과 전통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해방하는 힘”(“공산당선언 서설” Gareth Stedman Jones)을 아울러 갖는 것이다. 구구한 말이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이 막대한 자본주의적 생산력이 그 생산력의 궁극적 구매자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그리하여 그들을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꾸준히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끝없이 나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로버트 미지크는 사실 여러 우리 시대 또는 전(前)시대의 좌파랄 만한 사람들을 인용하며, 똑똑한 좌파 노릇을 하자고 말하고 있다. 신화가 되고 여러 자본주의적 매체의 포스팅거리가 되어버린 “좌파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고 있다. 이 비판은 아마도 일반 독자를 위하여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허위의 아우라를 걷어내고자 할뿐 만 아니라 제대로 보여줌으로써 애초의 좌파의 존재의 목적, 그들 생애의 목적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자본주의와 상업의 저 대단한 힘을 “믿으며”, 그에 반하는 행진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산을 이용하되, 벽의 부조처럼 등은 하나의 조각품에 붙어있더라도 고래를 들고 주위를 살피고 언젠가 거기서 걸어 나올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 안에서 뭔가가 생각하고 있다는 데 대한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192쪽)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본디 목적을 배반하지 않고 그 해결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1970년대 이전 우리나라에서는 8할이 훨씬 넘는 사람이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들은 자식들을 그 후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 산업화(공업화)의 역군으로 키웠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그들의 부모를 늘 생각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 부모의 계급은 충분히 배신했다. 그렇게 탄생한 나라가 정치가가 아니라 CEO가 통치하는 나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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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탁, 마이클 무어, 슬라예보 지젝, 체게바라.... 아주 유명한 이들 몇을 빼고는 이 책에서 언급된 좌파들의 이름을 나는 잘 모른다. 일명 끼인 세대로 대학시절 사상가들의 책을 거의 접해보지 못 해서일 것이다.
처음 교사로 발령받은 선배가 학급문집 제작을 하면서, 제작비 문제로 인쇄소와 의논한 끝에 빨간색 약간 두꺼운 종이(아마 마멀레이드지 정도 되는 듯 하다)로 표지를 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완성된 학급문집을 본 교장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새내기 교사가 학급문집도 만들고 해서 칭찬받으리란 생각에 들떠 한권 들고 갔더니 교장선생님 말씀. " 왜 표지를 빨간색으로 했는가? 빨간색은 데모할때나 빨갱이들이 쓰는 색 아닌가?"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씀에 할말을 잃었다는 일화를 말해주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대체로 붉은색은 좌파들의 색, 반항의 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표지도 또한 빨간색의 비키니 수영복에 얼굴이 살짝 인쇄되어있다.
때론 우리 사회가 이만큼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전한 것은 분명 기존의 권력을 가진 집단의 힘이기도 하지만, 그에 반해 견제를 해주었던 좌파들의 힘이 더 큰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인물들은 다양한 직업군의 좌파들이 총망라되어있다. 가수, 영화감독, 정치인, 문학작가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해줌으로써 세상의 발전을 가져온 사람들이다.
좀 어려운 책 내용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좌파들의 활동 모습도 예상할 수 있어 읽을 가치가 높다. 깊어가는 가을, 마음먹고 다시한 번 읽어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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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란? 내가 알고 있는 의미의 좌파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기껏 해야 역사 속의 혁명가들이 몇 떠오르는 이 단어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자본주의 물결에 반대하고, 기존의 질서를 파괴해 더 나은 삶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뭐 그 정도인 것 같다. 적어도 이 시대의 좌파는 더 이상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기도하진 않는다.
아마도 이 책 역시, 지금의 좌파는 어떤 의미인지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몇 몇 그룹을 예로 들어 설명함으로써 그 사고의 초점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던 듯 하다. 적어도 더 이상 좌파는 가난하고 드높은 이상을 가진 이들만은 아닌 듯 하다. 흔히 '강남좌파'란 말처럼, 또 이 책에 등장하는 유명한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처럼 부를 전제로 하고도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지향점을 꿈꾸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쿨하다'라는 말처럼.. 짜여진 틀에 어렵사리 몸을 꺾어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내가 소외되지 않게 사는 그런 '아름다운 삶'. 그것이 오늘이 지향하는 새로운 좌파의 모습이 아닌지.
작가의 생각은 어느 한쪽에 치우쳐있진 않다. 더 이상 자본주의의 근본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도, 이제의 좌파가 국가를 두고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도. 과거의 좌파와 현재의 좌파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머리아플 정도로 어려운 말들의 나열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나의 작은 시도 하나 또한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속성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씨앗이 될 것이란 점이다. 내가 가진 대안, 내 생활에 대한 비판과 회의.. 그런 것들이 결국 나의 변화가 될 것이고 같은 생각을 가진 흐름들이 조금씩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바꿀 수도 있으리란 점이다.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라.. 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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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이 책 내용 이해가 쉽게 안된다.
간단하게 읽어볼 마음을 가지신 분들은 생각좀 해보시길 바란다.
난 정말 좌파에 몰랐나 보다. 마이클 무어 그 사람이 좌파인줄 처음 알았다. 읽으면서 좌파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을 해도 모르겠다 싶어서 왜 그런지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좌파이 대표적 이미지 북한...이러니 마이클 무어가 좌파라고 하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서 아무생각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책을 읽었다. 그랬더니..역시나 이 책 잘모르겠다. 내 머리속의 좌파에 이 책의 좌파의 이미지가 너무나 달라서 아무생각없이 읽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다가 접었다.
솔직히 이 책의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저자는 나름대로 '좌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독자의 나는 저자가 보는 '좌파'와 다른 '좌파'를 보고 있으니 저자가 말하고자는 하는 '좌파'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를 못한채 계속 안드로메다행을 하고 있다.
다시 책을 들었다. 그리고 읽었다. 역시 이해가 안된다.
왜?..좌파가 무엇일까?..과연 한국에서의 좌파란?..좌파들의 반항?..좌파가 원래 반항하는 이미지 아닌가?.여러가지 의문점만 남긴채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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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왼쪽. 빨갱이. 사회주의. 민중을 선동하는 불온분자. 냉전시대는 끝났고 반공법은 사라진지 오래이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좌파'라는 이름에 불편함을 느낀다. '북한'의 존재가 그 이유이지 않을까. 19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암암리에 남아있던 반공교육의 흔적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아니, 가실 수 없을 것이다. 어린 학생들의 머릿속에 깊숙히 심어놓은 결과이리라.
'좌파들의 반항'. 겉표지가 강렬하다. 좌파를 떠올리는 붉은색에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의 얼굴.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울리지 않게도 비키니에 새겨져있다. 절묘하다. 책의 내용을 이렇게 멋지게 함축하다니.
저자가 정의하는 좌파의 개념은 신선하다. '어딘지 모르게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체계에 나름의 몸짓으로 저항하는 모든 삐딱이들! 정치가나 사상가, 철학가들만이 아니다. '삐딱이'들이다. 그러하기에 그가 제시하는 좌파 인물들은 철학자이자 비판이론가인 슬라보예 지젝에서부터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힙합 가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며 'WAR IS NOT THE ANSWER'(전쟁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T-셔츠를 입고 시상식에 등장한 팝스타들 또한 좌파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도한 현대인에게 사회주의적 이상사회를 꿈꾸는 구 좌파는 더이상 주목받지 못한다.
표지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왜 체 게바라의 얼굴이 비키니에 새겨져 있을까? 자본주의의 위대함이여. 그것은 자신의 적 조차도 상품화 시킨다. 자본주의에 맞서고 사회주의를 구현하려고 한 체 게바라는 이젠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다.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붉은별이 박힌 베레모를 쓴 우수에 젖은 눈의 혁명가. 그리고 그의 행적이 남긴 '저항'의 이미지는 훌륭한 상품일 뿐이다. 부시정권을 비난하는 미국의 아이러니를 고발하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 또한 결국 상품일 뿐이다. 잘 팔리고, 마이클 무어에겐 경제적 부를 안겨준다. 자신을 향한 비판조차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힘. 저자는 이야기한다. 새로운 반역도 자본주의를 넘어서거나 폐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p.259) 자본주의의 막강한 힘 앞에 사회주의에 심취한 구 좌파는 무력할 뿐이다. 그렇다면 좌파는 종말을 고하는가? 좌파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이 모든 것(자본주의에 비판하는 모든 목소리, 새로운 좌파 모두의 움직임)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한다. 구 좌파가 국가권력의쟁취를 통한 전복을 꿈꿨다면, 신 좌파-모든 삐딱이들-는 자본주의를 겨냥한 쓴소리로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리라는 것이다. 아주 작은 변화일지도, 아니면 그들이 의도치 않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저항과 비판에 따른 변화의 흐름은 최근의 한국도 경험했다. 폭력적 시위가 아닌 비폭력 촛불 시위, 자율적 시민 단체의 고발 등등. 모든 시도가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변화시킬 것이다.
별로 불만이 없다면, 그냥 이대로 사는게 편하다면, 생각하기 귀찮다면. 그냥 살면 된다. 하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보자. 정말로 불만이 없는가?
"우리는 질문을 입에 담고 행진한다." 이탈리아의 과격주의단체 뚜떼 비안께의 강령적인 글 가운데 하나이다. 뭐, 굳이 행진까지 해야할 필요는 없겠지만 질문을 입에 담을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의문은 현사회를 지배한 자본주의의 오류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줄 것이고 이를 통해 작은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그러고보면, '똑똑하게 사는 유일한 길은 좌파로서 사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틀리지만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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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좌파에 대한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과 생각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본적인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해서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거나 어떻게 생각을 해보아야 할지 고민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로 인해 차근차근 책을 읽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지고는 있지만, 막상 그런 과정을 준비하고자 하면 이를 거스르는 참을 수 없는 게으름이 앞에 놓여 있어서 또 그렇게 넘어가고 말았던 것 같다. 그렇게 이번 책을 읽으면서, 현재라는 동시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속에서 생각해보게 되는 좌파들을 발견하게 된 듯 하다. 그래서 이전에 생각했거나 혹은 알았던 바와는 다르게 생활의 질이 상당히 높아져있으며, 어느 정도는 현재의 체제속에서 적응해나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흐름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식과 생각에 따른 표현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것이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현명한 비판을 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의 반항이 때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모습속에서 현재의 속도와는 다른 속도의 가능성을 살펴본 듯 하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상당히 재미있다고 느껴져서 몰입이 되다가도, 몇몇 부분에서는 약간의 막힘 혹은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해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즐겁게 이해하기에는 알고 있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좌파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제까지 너무 딱딱하거나 혹은 고리타분하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본적인 생각들과 이념에 큰 변화가 있었거나 혹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적인 상황이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의 소통을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 유연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재미있기만 했던 시간은 아니었으며, 또한 전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좌파에 대한 시선이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대한 접근이 보다 용이했던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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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미지크 지음 서경홍 옮김 <<좌파들의 반항-마르크스에서 마이클 무어에 이르는 비판적 사고>>/들녘 언제부턴가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언어 중 하나가 ‘좌파’라는 말이다. 무슨무슨 정치가도 좌파이고 스님 누구도 좌파이고..라고 분류하는 걸 보며 대체 ‘좌파’를 분류하는 기준이 뭘까 의아스러웠다. 내가 구독하는 신문의 칼럼을 쓰는 K도 B급 좌파라고 불리는 이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생각들이 너무나 명쾌하여 나는 그의 글을 찾아서 읽기도 한다. 생각의 주파수가 맞는다고나 할까. 자본주의의 지배질서 속에서 이 글의 저자는 좌파에 대한 진단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새로운 좌파의 물결을 하나의 증후군으로 본다. 말하자면 강력한 정치적 대안과 불분명한 ‘진지함’을 향한 갈망의 증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비롯된 정신적 공황은 결국 거대한 눈사태가 되어 이 같은 갈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순수함’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물론 충만한 삶, 진실한 감정, 의미 있는 행동의 순수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금방 무참히 짓밟히니까..(pp.14-5)” 인터넷에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뉴스중 하나가 ‘명품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케이블 티비에 그녀가 출연하였는데 그날 그녀가 걸치고 나온 옷과 악세서리가 합쳐서 4억이 넘는다 아니다로 공방을 벌이며 검색어의 순위를 갱신하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서민 경제가 바닥을 치고 물가가 올라 추석 차례상 준비가 어렵다느니 상추가 한 장에 150원이라느니 하면서 서민의 경제를 진단한다. 자본이 권력이고 힘이다. 우리는 그 거대한 힘 앞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공황’상태를 맞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것에 대한 소망, 진실한 삶에 대한 소망과 갈망이 개인의 유전학적 구조 안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며 사회적으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몸짓이 완벽하게 공허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의 양면의 가치 속에서 “똑똑하게 사는 유일한 길은 좌파로서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이 보여주는 그 공허한 멜로디가 일반 서민들에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려면 우리 스스로 “똑똑하게”사는 길 밖에는 없다. 저자는 좌파의 명단 속에 슬라보예 지젝과 캐나다의 여성작가 나오미 클라인, 마이클 무어, 토니 네그리 등을 이야기 한다. 지젝은 도발적 방법으로 좌파이론을 만들어 냈고 나오미 클라인은 <<노 로고No Logo>>라는 책에서 소비지향 풍조와 메이커 지상주의를 비판하여 스스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이커가 된 작가이다. 무어는 무거운 정치비판을 인기팝송처럼 대중적으로 만든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자신의 주력 무기로 삼아 활동한다. 그는 아무도 예기치 못한 방식의 유머로 미국을 날카롭게 비판하여 두각을 나타내었다. 저자는 독일의 극작가 르네 폴레쉬의 말을 빌어 자본주의가 “너희들은 우리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노래 할 때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치라고 가르친다.(p.113) 테리 이글턴은 “문화는 60년대부터 자본주의를 위하여 결정적인 의미를 얻으려했고 그 문화는 90년대에 들어서자 자본주의와 실질적으로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p.142)고 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뜨자마자 갑자기 추락하는 인기, 새로운 것의 등장, 그리고 여러 가지가 얽히고설킨 것들이 새롭게 생성된 소비의 세계 안에 등장했다. 대중화와 표준화에 대항하여 점점 커지는 반대세력은 개인적 생산품, 전통적인 수공예품과 같은 ‘아름다운 물건들’, 이국적인 음식, 친환경적인 물건들에 대한 욕구를 가중시켰다....그 물건들의 유일성과 순수성은 왜곡되고 그것들이 상품으로 변하는 바로 그 순간에 소멸되고 만다. 친환경 가구는 도시에 사는 중산층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고 ‘유기농’요구르트는 마케팅 전략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유기농 감자는 특별히 세련된 방법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엘리트인 체 하려는 속물근성을 따르려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p.143)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가는 부분이자 나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의 심지를 일깨운 게 다음 대목이다. "...바로 좋은 삶, 진짜 삶에 대한 열망,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짜로 느낄 수 있도록 진짜로 살아보는 것이다...누군가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느낌들, 어디엔가 아직 남아 있던 느낌들, 당장에 이 빌어먹을 자신의 삶 전체를 바꾸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느낌들이다. 너의 삶을 규제하지 않는 느낌들이다...괴팅엔이여 더 멋지게 살아라“(pp.198-9) 나는 지금 이 순간 이후부터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더 이상 의무와 책임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숙이며 굽신거리지 않을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으로 할 것이며 내 느낌이 이끄는 대로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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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공산주의자=빨갱이?
이 책의 무어 편을 보면서
한편, 이 책은 자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틀과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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