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중권에 대한 편견 하나. 진보주의자이면서 여기저기 싸움걸기를 좋아한다. 진중권에 대한 편결 둘. 그의 발언이나 글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진중권에 대한 편견 셋.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한다. 자 진중권에 대해 이런 편견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면 당장 이 책을 읽어라. 진중권의 유일한 관심은 미며. 그것은 천박함, 상투성에 대한 혐오게 기반하고 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미학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철저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미란 넟설음이다. 이전에 미처 겪어보지 못했던 낯설음은 감동을 주고 더 나아가 사람을 변화시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정치에 대한 발언은 조금 자제하고 다기 본연의 그의 임무, 즉 미학의 세계로 돌아오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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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인 비비안 리와 <젊은이의 양지>,<클레오파트라>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중 누가 더 미인인지 묻는다면 당신은 누구를 꼽겠는가? 나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두 여배우 모두 매혹적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가 없다. 다만 배우 테일러를 "세기의 미녀"라 지칭하기에 그녀가 더 미인이라고 외친다면 또한 할 말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그녀들의 얼굴을 잘 뜯어보면 묘한 구석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비비안 리의 얼굴을 보면 오른쪽 눈썹은 갈매기날개처럼 휘어져 있지만 왼쪽 눈썹은 바른 곡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분장의 한 부분일까? 아니 그녀의 얼굴 표정 사진을 보면 대체적으로 눈썹이 비대칭이다. 의심되면 한번 찾아보길 바란다. 그 짝짝 눈썹이 바로 그녀의 매혹적인 표정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녀는 완벽한 미에서 제시한 수학적 균등비례에 반대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의심의 여지 없이 미인이지만 가만 보면 턱이 이중이다. 물론 살이 쪘을때만 그렇다고 하겠지만 어쨋든 그녀도 그 부분만큼은 미인의 규격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그녀들을 아름답지 않다고 누가 말하는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완벽한 수학적 분할외 플러스 알파인 Je ne sais quoi (즈 느 세 쿠아/ 무엇인지 모를 그 무엇)이 그녀들에게는 은밀하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격하고 차가운 수학적 비례에 이 우연의 요소가 들어가면 비로소 그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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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건축이나, 조각, 그림을 보고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가능할 것이다. 뭐가 아름답고, 어째서 아름답냐고 되묻는다면 할말은 많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면, 내 눈에도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유사하리란 생각이다. 그런데 전시회나 작품감상 같은 것은 딱 질색이다. 왜 일까? 학교 다닐 때, 이해하려 하지 않고 마냥 외 우려만 했던 것이 습관이 되어, 의례 어려운 것이란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미학이란다. 옆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작품을 보는 것 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사조가 어떻고, 추구하는 것이 어떻고 책을 읽기도 전부터 머리가 지근거린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책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못들은 척, 관심 없는 척 해보지만, 언젠가는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혼자서 생각은 했다. 더군다나 진중권이 쓴 다른 책들은 열심히 찾아서 읽으면서, 이 책은 못 본체 하는 것이 조금은 찜찜하기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마 그래서 더 읽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막상 읽기 시작하자 그리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수험준비로 읽는 책도 아니고, 그저 쓰여 있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간혹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다시 한번 읽고 싶지만, 우선은 3권까지 다 읽어보고 난 다음에 생각해보겠다고 맘 먹는다. 미학이란 말은 독일의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예술은 이성적 작업이었으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예술을 감성의 문제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성은 인식론에서, 의지는 윤리학에서 연구하고 있으니, 인간의 감성도 연구할만하다 생각하고 이를 감각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스테시스를 본떠 에스테티카(aesthetica)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저자는 원시예술에서부터 근대예술에 이르기까지 이를 미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하여 네덜란드 판화가인 에셔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여 읽는 사람에게 지적 유희를 선사하고 있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 나타나는 원시예술은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으나,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사유가 시지각(視知覺)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예술은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주술화 되었다. 그들은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않았다. 가상은 곧 현실이었다. 주술에서는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주술에 짓눌리면서, 주술에 숨이 막히면서, 사람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한다. 주술로 소망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인간들은 신을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 그의 권능에 메 달리면서 종교가 등장했고, 주술이 설정하는 사물들 사이의 비유적 연관에서, 비유를 벗겨내고 진짜 연관을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 철학이 탄생된다. 이와 같이 숨막히는 주술적 기능에서 풀려나자 현실과 가상은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예술을 현실과 가상이라는 틀 안에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면서 문명이란 것이 시작되었고, 이렇게 탄생한 가상에 의해 고대예술은 시작되었다고 본다. 또 중세에 들어서는 감각세계의 가상을 포기하고, 그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드러냈으며, 그것이 중세예술의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예술은 가상의 부활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원시시대, 구별이 없었던 현실과 가상에 짓눌리던 인간들은, 어느 순간 그 현실과 가상을 분리하고, 또 분리된 가상을 넘어서려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찾아온 신격화는 사람들에게서 웃음을 빼앗아갔고, 사람들은 다시 가상을 부활시키기에 이른다. 이제는 그 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니 미학은 가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주술에서부터 종교와 철학이 탄생하고, 다시 미학이 탄생하였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단지 미학에 그치지 않고, 철학과 종교의 영역까지도 넘나든다. 아니 미학이란 것이 본래 종교와 철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전부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힌다. 책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진과 그림이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나 에셔의 작품 속에서 찾아내는 주제는 낮과 밤이 되었던, 천사와 악마가 되었던 아니 평면과 공간이 되었든 묘한 이율배반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읽고서도 미학이란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글 솜씨는 역시 ‘진중권 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2권으로 나를 재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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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철학과 옆에 미학과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경제학이라는 세속적 학문을 공부하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학문분야로 여겨졌다. 사실 그 이후에도 이 분야에 대한 공부는커녕 사소한 접촉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제와서 비로소 이 책을 통해 '미'와 '예술'의 세계를 접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과연 '아름다움(美)'이란 무엇일까?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강조했던 분야가 달라져왔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에게 미는 '유용성'이었다. 플라톤은 '선(善)'의 이데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미와 선을 아예 하나로 합쳐 '선미(善美)'를 삶의 이상으로 삼았다. 한편 근대인들은 미를 '인식'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주관적판단에 달린 문제라는 시각이다. 다빈치에게 예술은 과학이었고, 바움 가르텐에게는 감성적 인식이었다.
이처럼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어느 한 분야에만 한정할 수도, 한 가지 견해로만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은 아닌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인류의 역사, 예술, 철학, 문학, 놀이를 넘나들며 아름다움을 탐험하고 있다. 때로는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의 형식을 통해, 때로는 화가 에셔의 특이한 눈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을 재미있게 채색하고 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가상과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도식이다. 가상과 현실은 미학사를 다루는 핵심 개념으로 설명된다. 고대예술과 미학에서 가상이 태어났고 중세에는 가상을 넘어 본질을 추구하였다고 한다. 가상의 부활이 근대예술과 미학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도식은 창작자, 즉 예술가 미학, 작품 미학, 영향 미학, 수용 미학 등을 독자들에게 가사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문화구성능력’이 요구되는 현대 사회에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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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아름답다 말할 것인가. 이것은 너무 주관적인 문제 아닌가. 그런데 '미학'이랜다. 학문이라면 객관적이란 뜻 아닐까. 그럼 예술은 무엇인가.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특정한 활동? 너무 모호한 의미 아닌가.
사실 이런 고민을 자주 하지도 않는다. 그저 몸짱, 얼짱하는 이 사회의 외모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때나 나와 코드가 잘 맞지 않는 예술 작품(흔히 영화)을 감상할 때면 이런 생각을 가끔 할 뿐. 이러니 '미학'이란 학문도 그저 학문 이름만 들어봤을 뿐 학문적인 영역으로 접해본 적은 없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초짜에게 꽤나 매력적이다. 진중권식의 툭툭 던지는 문체나 어려울법 한 것을 가볍게 풀어나가는 것이 미학이 어렵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또한 다양한 예술 작품의 사진이 실려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림 많고 글씨 큰 책은 누구나 편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마련이니까.
이 책은 인류의 탄생 이후 예술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예술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예술의 흐름을 잡고,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한 이후 그 안의 사조들도 다루고 있다. 몇 천년의 역사를 책 두 권에 잡아낸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대화, 화가 에셔와 마그리트의 작품을 기반으로한 전개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책을 이끌어간다.
예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유희, 노동, 주술 기원설이 있는데 이 중 가장 설득력있는 것은 주술이다. 처음에 예술과 주술은 등가였다. 그러다 예술의 역기능(터부의 일상화 등)이 커지자 현실과 가상을 분리한 예술이 등장한다. 고대 예술 중 자리가 좀 잡힌 게 바로 이집트와 그리스다. 이 둘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두 나라의 환경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환경과 인간의 상호 영향성이 이때는 환경의 영향이 더 컸는 모양이다.
극은 어땠을까. 비극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디오니소스 제전의 합창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예술 탄생에서 보았듯 제의에서 예술이 떨어져나온 경우다. 비극은 디오니소스의 지혜(가혹한 삶의 진리)를 아폴로의 아름다움으로 감성화한 것이다.
그럼 반대인 희극은 어떤가. 희극과 관련한 책인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웃음과 관련한 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웃음은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준 프로메테우스도 몰랐던 기술, 즉 두려움을 감추는 기술이다"(p187). 이러한 웃음을 자아내는 희극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희극은 실재보다 못한, 우리가 실재라고 믿던 것보다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림으로써,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준 서사시보다, 비극보다 더 열등한 것을 그림으로 써 진리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고 한다. (p189)
잠깐 객관성과 관련한 이야기. 예술과 아름다움은 과연 객관적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원근법을 객관적인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멀리 있으면 사람 키가 작아지고 가까이 있으면 사람 키가 커지고 그러지는 않는다. 눈은 그렇게 보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본질의 객관성은 아니다. 그렇다고 원래 모습대로 그리자면 과연 원래 모습은 뭔가. 그것 또한 어려운 문제다. 이래서 미에 관련한 담론이 생기고 결국 미학도 탄생했나보다.
미학이란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바움가르텐으로 감각이란 뜻의 그리스어인 에스테시스(aesthetics)라는 말에서 미학이라는 에스테티카(aesthetica)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유용성, 플라톤은 선(善), 근대인은 인식이라 말했다. 또 수천년간 진리, 도덕적 교훈 없는 순수 예술은 타락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칸트는 예술은 형식이며 상상력의 소산이자 천재의 산물이라 말했다. 또 인간은 공통감을 가지고 있어 보편 타당적인 미의 기준을 갖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예술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은데.
현대 예술은 어떤가. 현대의 예술은 대상성이 파괴되었다. 재현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현대 예술의 특징으로 추상(단순화), 표현(내면 감정), 레디메이드(기성품)를 꼽는다. 피카소는 형태를, 마티스(야수파)는 색을 해방시켰다. 여기에 더이상 점, 선, 면의 예술이 아니라 체(體), 즉 오브제가 나타난다. 일상적 사물이 예술에 들어온 것이다. 한 옛날 예술가들이 봤다면 아마 혀를 끌끌 차지 않았을까.
미의 해석에 대해 나오면서는 상당히 어려운 고민거리들이 나타난다. 우선 첫째는 선입관과 관련한 문제다. 선입관이라 하면 당연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선입관이 없다면? 아예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걸작이다. 안경이 찌그러졌으면 어쩌냐고? 가령 중세의 안경은 태양이 지구를 돌게 만들지 않았냐고? 하지만 어쩌랴, 안경을 벗으면 아예 볼 수가 없는데....(p162, 163) 이제껏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라 아주 신선했다.
두번째는 예술과 예술가의 욕망 승화에 관련한 문제다. 저자는 이루지 못한 욕망을 승화시킨 것이 예술이라 말하면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예술이 아니라 말한다. 금지된 것이라면 교묘히 변형시켜야 한다면서. 예술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려 애쓰던 작가가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유일한 부분이라 굉장히 와닿았는데, 저자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욕망을 나타내어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솔직함의 매력은 없는건가.
많은 지식과 고민거리를 안겨준 이 책. 이 책을 읽고 내가 쓴 글이 더 어렵게 느껴질 만큼 이 책은 학문의 전반적 개괄을 담고 있는 개괄서로 보기에 쉬운 편이다.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다방면에 지식을 가지지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반가운 일이다. 다른 분야를 만나는 두려움, 이러한 책으로 날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인상깊은구절]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것 한갓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 훈데르트바서 "신이 창조한 이 세상은 부분적으로 추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전체적으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장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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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는 미술을 전공하고 가르치고 있는 전문가가 썼지만,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대로 구어체적 문장과 난해하고 방대한 서양 미술사를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게 아주 친절하게 쓰려고 했다는, 그래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미학 오디세이1]편은 네덜란드 판화가이자 수학과 논리학의 난제를 다룬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한 에셔의 미술에 관한 주제 10가지를 구석기 시대부터 서양 미술사를 아우르며 설명하고 있다. 석기 시대의 美에 대한 인지가 있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주술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해 고대, 중세 사회를 거치면서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어떻게 다르고 특징은 뭔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서양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로 그들의 美에 대한 기준도 알 수 있고, 그들의 대화를 빌어 작가의 각 시대별로 설명되는 미에 대한 기준이 사뭇 흥미로웠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이란 美의 이데아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이데아의 세계를 불완전하게 흉내낸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것은 소용이 없음을 설파한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두 철학자 사이의 美와 예술 세계에 대한 논쟁은 작가에 의해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책 속에는 그리스 신화부터 각 시대별로 등장한 철학자, 수학자들의 개념 그리고 문학 작품까지 예를 들며 美에 대입해서 설명하는 저자의 박식함이 또다른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르네상스로 넘어오면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두 예술가,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예술 세계에 대한 비교가 나온다. 다 빈치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예술가로 회화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예술의 목적을 외부세계의 과학적 인식에 두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조각이야 말로 예술중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美는 예술가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의 두 철학자의 대화를 통해 두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좀더 꼼꼼한 설명을 곁들였다.
바로크 시대로 넘어오면서 뜻하지 않게 재미있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그림이 바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라는 사실이다. 그 동화를 읽었을 때 그러한 사실까지 알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 새롭게 떠올려 보게 됨은 흥미로웠다. 동화에까지 예술가들의 작품이 언급될 정도이니 미술은 그냥 저 높이 우리가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게 아닌 우리 옆에 있는데 지금까지 고대, 중세 미술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고, 그렇게 인식되어 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언뜻 해 보았다.
2,3권에서 美에 대한 향연을 계속하게 되는 나로선, 이번 책에서 美는 어떤 작품을 보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美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美에서 추함과, 쾌.불쾌가 느껴지고 아름답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美가 다분히 주관적이더라도 사회엔 일정한 美에 대한 기준이 정해져 있다. 미의 경연을 다루는 자리에선 각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에 위배되는 아름다움이 뽑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는 내가 보면 아름다운 것의 주관적인 생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준에 적접한 미의 기준이 되는 객관적인 것에서 같이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점점 美(특히 여기선 여성들의 외모)가 획일화 되어가고 있는 요즘 사회에선 정확하게 미의 기준을 둔다는 자체가 의미 없을 것 같다. 美를 보는 관점에 보다 다양성을 가지고 보다 자유롭게 美를 드러내고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것 같다.
어휴~~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저자의 설명을 들으러 2권으로 향해 본다....
* 진한 글자 부분 내용이 2권의 에필로그 읽기 전의 내 생각이었는데, 2권을 다 읽어가고 에필로그를 읽는 부분에서 저자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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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여는 순간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다 읽고 나서 두번째 세번째 책도 읽고 싶었다. As soon as I opened up this book, I got a feeling that it would be a good one, and after finishing reading it, I would like to try the second and the the third one as well. ![]() 진중권 작가
첫 페이지에 '태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이 시작하는 처음부터 아름다움은 존재하고 있었다. 평서문으로 끝나지만, 마치 나에게 의문문으로 물어 보고 있는 것 같다. '태초부터 있어왔던 네 주위에 있는 아름다움을 너는 보았는가..' '가상과 현실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너는 보았는가..' On the very first page, it says 'There is beauty from the beginning of the world.' Beauty has existed from the beginning that the world started. The sentence is finished as a declarative one, but it is like asking me a question 'Did you see beauty that has been around you from the beginning of the world?..' 'Did you see beauty hidden in between virtuality and reality?..' ![]() Escher의 'Drawing Hands'
좋은 책을 보고 나면 울림이 다르다. 그 울림이 깊다.
A good book sounds different. It sounds deeply resonant.
깊은 우물 속에 돌덩이를 던져 넣으면, '퐁당'이 아니고 '풍덩'한다. 그 돌덩이는 무수한 공기방울을 일으키며 가라앉는다. '미학의 미'자를 모른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깊이 잠재되어 있던 미적 감각이 되살아난다. 뽀글뽀글.. If I throw a stone into a deep well, it sounds like 'plunge,' not 'splash.' The stone sinks down, raising up a countless number of air bubbles. Even though I don't know of the word '美' of '美學(aesthetics),' it is truly okay. My aesthetic senses are awaken from deep subconsciousness. Bubbling..Bubbling.. ![]() Escher의 'Relativity'
좋은 책을 보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 같다. A good book tastes like a good food.
요리는 종합 예술이다. 좋은 재료가 필요하고, 알맞은 조리법에 조리사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기가막히게 잘 어울려야 한다. 물론 조리사의 아이디어는 음식을 맛있게 하는데 있어서 둘도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에셔(Maurits C. Escher, 1898~1972)의 작품을 통해서 아주 옛날 돌망치를 쓰던 때부터 현대 미술까지 모든 '미'와 관계된 예술품들을 아우른다. 진중권 작가의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 Cooking is a comprehensive art. It is necessary to have good ingredients and appropriate recipe, and a cook's fresh idea should mix them together astoundingly very well. Firmly, nothing is more important than a cook's idea to make a good food. Through Escher's works, this book puts together all art works relevant to 'beauty' from the very old stone age to modern art. ![]() Escher의 'Regular Division of the Plan 72'
좋은 책은 은은한 향기가 난다. A good book smells like pleasant fragrance.
진한 향기는 쉽게 지쳐서 조금 지나면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은은한 향기는 오래 간다. 날듯 말듯..신비함을 유지한다. 에셔의 그림들이 어떻게 모든 예술품들과 이야기 줄거리의 큰 줄기가 될 수 있는지..신기하다. 지금도 킁킁..킁킁거리고 있다. A strong smell makes me fatigued easily and I am not able to smell it. Not-that-strong smell lasts long. Does it smell..or not?.. It keeps its mystery. It makes me curious on how possibly Escher's works can be the main theme out of the whole story.. Even now I am sniffing..sniffing..
좋은 책의 질감은 부드럽지만 질기다. A good book gives me a soft but tough feeling.
종이가 있기 이전에 양피지로 기록했다 한다. 양피지는 부드럽지만 질기다. 미학은 양피지와 비슷한 것 같다. 아름다움이라는 부드러움에서 시작하지만, 예술, 종교, 철학이라는 우리 실생활의 뿌리를 물어 보고 있다. 찢고 싶으나 너무 질겨서 모양만 조금 바뀔뿐 찢겨지지 않는다. I heard that people recorded on sheepskin before a paper was invented. Sheepskin is soft but tough. Aesthetics seems very similar to sheepskin. While beauty begins from softness, it questions about the essence of our real life such as art, religion and philosophy. I would tear it, but it just changes a bit and it is so tough that it cannot be torn out. ![]() Escher의 'Still Life and Street'
좋은 책은 조각 그림 맞추기이다. A good book is like a jig-saw puzzle.
한 조각의 생생한 그림이 다른 조각과 짜 맞추어지면서 하나의 큰 그림이 되어간다.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은 일단 진행하면서 다른 조각들을 먼저 하나씩 맞추어 가면 결국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풀린다. '미학 오디세이'도 처음에는 산만하게 흩어져 있으나, 그림들과 명쾌한 설명들이 퍼즐 맞추듯이 이어지면서 결국 하나의 틀 속에 있는 것이다. 그 틀은 미학이고, 예술이며, 종교와 철학인 것이다. A piece of vivic picture fits together with other pieces and becomes a big picture. if there is some part I don't understand, I would go ahead first by matching one another and everything will be naturally resolved. 'Odyssey of Aesthetics' looks scattered around in the beginning, but pictures and clear descriptions get together to make everything within one kind of a big frame. The frame is aesthetics, art, religion and philoso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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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나 미학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에셔나 마그리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학이란 학문과 그 학문의 뜻조차 들어본 적이 없거나 들어보았더라도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라 당황해 했을 것이다. 그런 당황스럽고 생경한 학문을 대중들에게 이해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어려운 일을 일개 철학자 한사람이 1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고군분투하여 마침내 미학의 대중화를 일구어 냈다면 이 책이 어떤지 읽어볼 필요성이 절로 샘솟지 않겠는가.
책은 미학이란 거대한 주제를 에셔와 마그리트란 두개의 초콜릿을 첨가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만들어냈다. 그 감칠맛을 우리의 미각이 느끼는데엔 큰 어려움은 필요치 않았다. 철학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도 이 책을 몇장 읽어본후엔 '재밌다'란 말을 연발해낼 정도로 책은 쉽고도 유쾌하게 읽힌다.
나는 이 책을 알기 전부터 에셔와 마그리트를 좋아했다. 책을 읽고난 후엔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책은 속도감있게 읽혔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를 재치있는 상상력으로 엮어낸 저자의 필력은 실로 놀라웁다. 지금같아선 좀더 일찍 책을 알지 못한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권의 에필로그에서는 뜻하지않게도 저자의 일기를 엿보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아픔과 진솔한 매력을 알게 된다. 저자의 아픔에 눈씨울이 글썽여지기도 한다.
설레임에 받아보았던 책의 표지안쪽엔 <진중권>이란 저자의 친필 사인이 쓰여져 있었다. 또한 레퀴엠이란 훌륭한 책이 보너스라니... <예스24>에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리뷰를 빌려 감사함을 전한다. [인상깊은구절] 이 책의 몇부분은 그를 기념한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 그리고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그림이 루벤스의 그림이라는 걸 처음 알게된 건 그를 통해서였으니까.플란다스의>예스24>진중권> |
| 인터넷에서 미학을 검색하니 미와 예술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하며 미의 본질을 탐구하여 그 원리를 구명하는 형이상학으로서의 미학과, 여러 가지 미적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이를 법칙적으로 기술하려고 하는 과학적 미학이 있다고 한다. 미학 오디세이는 3권이나 되는 책이다. 1권은 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2권은 마그리트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3권은 피라네시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라는 부제가 있다. 1, 2권이 고전에서 시작해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까지 탐험했다면 3권은 탈근대의 관점을 두루 살피고 있다. 이집트에 가면 좀 이상한 점을 느낀다. 그것은 정면성의 원리라는 이름하에 설명이 된다고 한다. 사물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측면에서 묘사하여, 되도록 사물의 형태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1권 64쪽). 가령 인간의 얼굴은 옆에서 볼 때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고, 발은 가슴은 정면에서 보아야 거기에 달린 두 팔이 잘 보인다고 한다. 한편 발은 정면보다는 옆에서 보아야 특징이 잘 드러난다고 한다. 이 책은 상당 분량을 대화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1, 2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도였다면 3권은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도이다. 현대 예술은 그림 밖의 어떤 사물을 지시하지 않으며, 지시하는 게 있다면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고 한다. 의미 정보를 중시한 고전 회화에선 형태나 색채가 주제에 종속되어 있었으나 재현을 포기한 현대 예술에는 내용이나 주제가 있을 수 없고 다만 색과 형태라는 형식 요소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 즉 미적 정보가 있을 뿐(2권 43쪽)이라고 한다. 그러니 현대 예술을 보고 ‘저게 뭘 그린거냐’고 물으면 실례가 된다고 한다. 세잔은 하나의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100번의 작업을 필요로 했고, 하나의 초상화를 위해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게 했다고 한다. 뚜렷한 윤곽과 고유색을 가진 대상의 항구적인 모습을 포착하라는 고전주의의 요구와 대상에 반사된 빛이 눈에 부딪힐 때의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라는 인상주의의 요구사항을 일치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현대 미술은 어렵다. 이런 문제를 이해하게 하는 저자의 비유가 좋아 보인다(3권 152쪽). 현대 예술은 고통스럽다. 고전 음악을 듣는 것은 미적 향유라 할 수 있지만 현대 음악을 듣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예술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사회에서 사물과 인간이 당하는 고난을 증언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나도 현대 음악은 제대로 듣지 못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이 작곡한 음악도 어려운 곳이 많다. 아니 어렵다기보다 귀를 고문하기 때문에 듣지 않게 된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현대 미술과 현대 음악의 관계에 대한 비유가 딱 나의 가슴으로 다가 온다. 3권은 탈근대를 나타내고 있어서 그런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아니면 나의 현대 미술의 이해 수준이 낮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열심히 읽었다. 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들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일상적으로 이해되는 저자의 진보성과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천재성도 느끼면서 천천히 읽어보길 기대한다. |